[조설근 평전](6) 2. 완적이 사람들을 향해 눈을 흘기듯(一),(二)​ > 동방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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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 평전](6) 2. 완적이 사람들을 향해 눈을 흘기듯(一),(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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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8-03-12 03:25 조회4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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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장을 끝내고 2장을 읽는다. 한 챕터의 제목을 계속 게시판 제목으로 쓰는 전략을 짠 걸 조금 후회했다. 같은 제목이 반복되니 사람들이 같은 내용이라 여겨서 식상해할까봐...

전략변경은 늦었고, 앞으로는 한 챕터를 조금 더 많이씩 번역을 해서 후딱 끝내려고 한다. 똑같은 제목이 4개나 올라오지 않도록. 무엇보다 지금 속도로는 여름이 다 가도록 이 책을 다 못읽을 듯하여 조금 분발하기로 한 이유가 더 크다.   


이번 편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조설근을 어떻게 조씨집안 자제라고 생각하는지부터 추적 60분처럼 하나하나 따져들어가서 매우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너무 알려진 게 없어서 실망스럽기도 하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왠 평전이란 말인가.... 그래도 쉬이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홍루몽의 저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탐색의 과정이 홍루몽 저자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는 평전저자의 말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냥 떠들어보자. 상상해보자. 그것만으로도 홍루몽을 읽는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_ 김희진

 

2. 완적이 사람들을 향해 눈을 흘기듯

步兵白眼向人斜​1

- 조설근의 생애

 

가족의 역사가 분명하게 묘사될 수 있는 것과는 반대로, 조설근 본인에 대한 소개는 매우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확보한 자료가 너무 적을 뿐 아니라, 이 유한한 자료들이 때때로 상호 모순되어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설근에 대해 알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문헌자료의 심각한 결여는 매우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역사란 얼마나 이토록 인색하고 기괴한지, 우리에게 최고의 소설작품을 선사하면서도 그 속의 비밀들은 치밀하게 숨겨놓는 것이다. 결국 유쾌해야 할 독서가 아주 고통스러운 추적 작업이 되고 말았다. 독자들은 한 세대 한 세대 스스로를 달달 볶는 과정을 이어왔다. 사실상, 연구자들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조설근의 배경만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윤곽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것은 매우 모호한 배경이다. 우리는 영원히 조설근의 진면목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는 적지 않은 초상화를 보지만, 이것은 화가들의 마음속에 있는 조설근일 뿐이지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상상과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진정 유감이다. 그러나 꼭 좋은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각자 독특한 조설근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하게 자기에게 속한 조설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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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장에서 조설근의 가족을 소개할 때사람들로 하여금 조금 부자연스럽게 또는 곤란하게 느껴진 한 가지 문제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조설근의 고조와 증조, 조부까지는 모두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데 그의 부친에 대해서는 시종 누구라고 확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스운 농담같지만 이것이야말로 사실이다. 통상적인 정황에 비추어 보면, 아버지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조부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고 크다. 조설근을 키워낸 그 부친에 대해서 우리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또 그에 대해 알아야 할 게 많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설근의 부친에 대한 추적과 탐색은 절대 무료한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며, 커다란 의의를 가지고 있다.

 

어째서 조설근의 아버지를 확정할 수 없는 현상이 초래되었는가? 조설근의 조상들은 모두 관리를 지냈기에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했다. 궁정의 공문서나 지방정부의 연대표, 또 족보에 이르기까지 그들 집안과 관련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조설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무슨 관리를 지내지도 않았고, 자연히 정부당국의 각종 지시문서에도 기록이 없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족보에도 그에 대한 어떤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부친이 누구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친구들이 그에 대해 몇 수의 시를 짓지 않았다면 조설근은 정말로 이 세계에서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 위대한 작가가 죽은 뒤의 상황이 이토록 처량하다니,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후인들의 탄식을 자아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족보에 기재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조인(曹寅)이 조설근의 조부인 것을 아는가? 이것은 조설근의 친한 친구인 돈성(敦誠)이라는 자가 한편의 시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돈성은 조설근과 교류가 매우 깊었던 친구였고, 그의 신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시의 내용은 믿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풀리지 않는 지점은 이것이다. 조인은 분명 딱 한 명의 아들 조옹을 두었다. 그는 매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한 명의 유복자 조천우를 남겼다. 이 이름은 조씨집안의 족보 중에 기재된 것이다. 그러나 조천우가 과연 조설근인가? 족보에는 이것을 설명하는 기록은 전혀 없다. 다른 문건에서도 마찬가지로 공백이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두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증명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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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돈민의 시집에 실린 글

 

 

 

만약 조설근이 조천우가 아니라면, 다른 가능성도 한 가지 있다. 조설근은 조부(曹頫)의 아들일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가 조부의 자녀들의 정황에 관해서 아는 바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청나라의 제도에서는 이렇게 조씨가문처럼 황가의 노비집안에서 중요한 가족구성원이 출생했다면 조정에 보고해야만 했다. 유감스러운 점은 이 방면에서 조부에 관해서는 어떤 보고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기묘하다. 만약 조인이 할아버지라면 조설근의 부친은 조옹 또는 조부이다. 그러나 대체 누구란 말인가! 현재까지도 우리가 알 수 없는 바이다. , 후보자는 이렇게 좁혀져서 명명백백히 우리 눈앞에 있다. 누구라고 말할 수 없을 뿐. 기왕 상황이 이럴진대, 우리는 억지로 아는 체하지 않겠다. 이 문제는 후대로 넘겨주도록 하자. 혹시 그들이 알아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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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돈성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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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에 대해서는 확정이 어려운 것과 달리 조설근이 살았던 연대는 대략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홍루몽에 써있는 한 줄의 비어(批語: 문장에 대한 평어, 또는 지시사항 등의 기재)에 근거한 것인데 위쪽에 명확히 해설되어 있다. 조설근은 임오년 섣달 그믐날에 죽었다. 임오년은 건륭27년이며, 서기 1763년이다. 이 해의 섣달 그믐날은 212일이다. 섣달 그믐은 중국에서는 매우 성대하게 치르는 명절이다. 모든 가정에서는 이 날 함께 모여앉아 묵은해를 보내는 것과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경축한다. 이 날은 분명 기쁨으로 충만한 날이었지만 뜻밖에도 조설근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기일이 되었다. 즐거운 축하와 세상을 뜨는 것, 시끌벅적함과 처량함, 바로 이렇게 기묘하게도 뒤섞여 있는 것이다.

 

조설근이 사망한 구체적 날짜가 확실하니, 우리는 분명한 시간의 기점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를 안다면 바로 그의 출생년도를 추론할 수 있다. 돈성, 돈민, 장의천 등의 기록에 의하면 조설근은 40세 넘게 살았고 50에 가까웠다. 그러나 50은 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대략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은 조설근은 강희제의 만년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몇 년도였는지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는 확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조설근은 청조 강희, 옹정, 건륭 연간에 걸쳐 살았다. 이 점만을 확정해도 홍루몽의 창작 배경을 이해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조설근이 사망한 때에 관해서는 다른 주장도 있다. 연구자들은 그래서 매우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연도의 차이는 겨우 1,2년이다. 누가 맞고 틀리고간에, 사람들이 홍루몽을 이해하는 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실 일반 독자들에게는 각종 서로다른 주장들의 대략적인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안에서 어떤 주장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아니다.

 

40여세의 인생은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고, 의료기술의 조건이 좋지 않았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도 결코 길지 않은 햇수다. 아니, 매우 짧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행히 생명의 가치와 의의가 결코 연령의 장단을 기준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 짧았던 40여 해의 세월동안 조설근은 최소한 10년의 시간을 홍루몽 창작에 쏟아 부었다. 그가 얼마나 이 책을 중시했으며 애정을 쏟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이 조설근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1 이 步兵白眼向人斜​라는 표현은 친구 돈성이 조설근에 대해 쓴 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진자료에서는 이 문구를 찾을 수가 없다. 보병은 완보병을 말하며, 바로 삼국시기 위나라 사람 완적을 말한다. 백안시라는 말의 주인공이다. 통속적인 예의를 차리는 자를 미워하여 흘겨보았다는 뜻이다. 

 

세로로 된 옛 글은 해독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2장의 제목도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텐데도... 그냥 막 붙여보았어요. 

이 완적의 고사가 왜 조설근과 연결됐는지 나중에 알게 되면 꼭 다시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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