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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 평전](11) 3.황엽촌에서 소설 쓰는 것이 제일 낫다네(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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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8-04-16 02:09 조회1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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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의 말씀을 먼저 드리면, 

같은 제목의 글이 계속 올라오지만(ㅠㅠ) 분명 다른 글입니다!  

헉! 읽어봐도 계속 같은 글 같다구요..? ... 그건, 조설근에 대해 밝혀진 것이 너무 없는 나머지, 저자가 추론의 방법을 일이관지하여...쿨럭 -.-;; 

아무튼, 요지는 <<홍루몽>>은 이런 평론과 달리 정말 재미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ㅋㅋㅋ  _by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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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홍루몽>>의 수많은 판본 중, 갑술본이라고 불리는 판본이 있다. 연구자들은 통상 그것이 저본(底本)을 필사한 것 중에서 가장 이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 책 중에 이런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至脂砚斋甲戍本阅再评仍然沿用<<石头记>>” 이 의미는 : ‘지연재가 갑술년에 필사하여 읽었으며 평론을 하였는데, 여전히 <<석두기>>라는 제목을 계속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갑술년은 건륭 19, 1754년이다. 이것은 최소한 1754년에는 조설근이 이미 대략적으로 전체적인 소설의 창작을 마쳤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지 않다면 소설의 첫머리에서 “10년간 열람하면서 다섯 차례나 덧붙이고 목록을 만들고 장회를 나누었다는 문장을 썼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해에 지연재가 이미 그 책에 대해 두 번째의 평점을 달았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당시의 책 제목은 <<석두기>>하나만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여전히라는 글자가 다른 제목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로써 추론해보건대, 조설근이 <<홍루몽>> 창작을 시작한 것은 늦어도 건륭10, 1745년이다. 이 해는 조설근은 30세 전후쯤 되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홍루몽>>의 대략의 창작시기를 알게 되었다. 문학 창작자에 대해 말하자면, 이 때는 황금연령때이다. 풍부한 사회적 체험과 인생의 경험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왕성한 정력과 재능도 있을 때이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하나의 다른 의문점이 있다. :

첫 번째는 작품 중의 “10년간 열람하면서 다섯 차례나 덧붙이고라는 말은 대체 사실인가, 허구인가? 만약에 수많은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실이라고 한다면, 후에 다른 필사본이 필사된 시기와는 맞지 않다. 왜 그것들은 모두 이렇게 똑같이 서술하고 있는 것일까? 11년간, 12년간 열람했으며, 여섯 차례, 일곱 차례 덧붙였다고 하지 않는가? 왜 다른 시기와 다른 차수의 수정본을 모두 똑같은 숫자를 사용했는가, 설마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이 허구라는 것인가? 만약에 허구적 숫자라면 <<홍루몽>>의 창작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두 번째는, 만약 갑술년에 이르러서 조설근이 이미 홍루몽을 대부분 완성했다면, 왜 이후에 필사된 다른 판본들- 예를 들어 기묘본과 경진본의 내용이 다 갖춰져 있지 않았을까? 기묘본과 경진본은 모두 64, 67회가 빠져 있고, 경진본은 17,18회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19회는 회차와 제목(回目)이 없다. 22회는 미완이며 75회는 가보옥 등 인물들의 중추절 시가 적다. 이것은 분명히 책이 완성된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 창작 중에 있는 미완성 작품으로 보인다. 기묘, 경진년은 각각 건륭 24(1759)와 건륭25(1760)이다. 이 시기는 조설근이 세상을 뜨기 3, 4년 전이다. 설마 조설근은 죽기 전까지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것일까?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건륭19년에 소설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일까? 그가 저작을 하고 수정을 하는 방식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전해지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풀기 힘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단의 자세한 내막은 아마도 영원히 복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기본적으로 확실하다. 그것은 조설근이 이 <<홍루몽>>을 창작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시간과 정력을 투자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대대적인 개편도 있고, 부분 수정도 있다. 갑술본의 범례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字字看来皆是血十年工夫不寻常”, 그 뜻은 : 모든 글자를 읽어보니, 그것은 모두 피로 쓴 것이며, 십년동안 쏟아부은 노력은 예사롭지 않다. 라는 것이다. 이 점을 알고 나면 소설 중에 간간이 보이는 누락들, 예를 들어 보옥이의 나이의 문제, 교저의 문제, 이야기의 진행 장소가 바뀌어 확실치 않은 문제 등이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된다. 조설근은 아마도 진작에 소설의 초고를 완성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끊임없이 수정을 했고, 그것은 대략 죽기 직전까지도 이어졌으나 결국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중에 누락되고 헷갈리는 부분은 미처 보충하지 못하고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게 된 것이다.

 

책 제목에 관한 문제도 사람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다. 가장 이른 작품은 <<홍루몽>>으로 불린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에 이 소설을 본 영충(永忠)’, ‘부찰명의(富察明義)’ 등의 사람들이 모두 이 제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연재(脂硯齋)’라는 평론가가 <<석두기>>라는 이 이름을 좋아하였고, 자신이 비점을 단 책의 제목으로 썼다. ‘정위원(程偉元)’고악(高鶚)’의 판본이 출판된 후에, <<홍루몽>>은 가장 유행하는 제목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이것은 이 책이 가장 널리 전파되고, 끼친 영향이 가장 큰 제목이다. <<정승록 情僧錄>>, <<풍월보감 風月寶鑑>>, <<금릉십이차 金陵十二釵>>등의 제목은 비록 작품 중에 언급이 되어있지만 정말로 사용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설근 본인이 책 제목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느냐이다. 결국 그가 작가가 아닌가. 우리는 그의 의견을 필히 존중해야만 하겠지만, 자료가 없으니 현재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조설근이 <<홍루몽>>이외에도 <<풍월보감>>이라 불린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월보감>>은 대체 어떤 책이었을까? 무엇을 이야기한 것이었을까? 한스러운 것은 지금 그것을 볼 수가 없으니, 이것도 역시나 대답할 수가 없는 문제다. 단지 여러 가설과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조설근이 <<풍월보감>>이라는 책을 썼다는 것을 알고 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연상하게 된다. 이 책과 <<홍루몽>>사이에 무언가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홍루몽>>에 나온 관련된 묘사로 보아도, 두 책 사이에는 분명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작품의 제12회에 언급하고 묘사한 신비한 거울이 있는데, 그것의 이름도 공교롭게도 풍월보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것이 <<홍루몽>>에 나왔다는 것은 작가의 깊은 뜻이 자연스레 나오게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어떤 연구자들은 심지어 <<풍월보감>>이 바로 <<홍루몽>>의 원래 초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초고는 남녀 사이의 풍월을 노래하고 인과응보를 이야기한 소설이며 또 그 안에는 적지 않은 남녀의 애정과 침실에서의 일 따위가 묘사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주장하기를 조설근이 여기에 기초하여 환골탈태의 변화를 거쳐 그것을 훨씬 깊은 함의를 담고 예술수준이 훨씬 높아진 세계적 명저, <<홍루몽>>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풍월보감>>에서 <<홍루몽>>으로의 변이는 조설근의 사상의 변화를 반영하며, 또 창작의 수준이 업그레이드 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역시, 더 많은 자료와 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서 증명해야만 할 것이다. _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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