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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평전](34) 7.생동하는 필치가 천년을 가리라 (二)(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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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8-10-01 08:20 조회1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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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 56년, 정위원과 고악은 《홍루몽》을 정리하고 보완하여 활자본을 인쇄한다. 이로써 《홍루몽》 판본과 유통의 새로운 단계를 열었다. 이 해부터 1921년까지 상해의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홍루몽》을 교감(校勘)하고 정리했다. 이것이 《홍루몽》전파의 제2단계인 인쇄단계이다. 

 

필사본에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 비용이 매우 비쌌던 것과 비교하여 인쇄의 잇점은 매우 뚜렷하다. 인쇄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대량으로 할 수 있는 데다가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싸다. 그것은 《홍루몽》의 광범위한 전파를 진정으로 가능케 한 것이다. 이후 각 책방들은 경쟁적으로 인쇄를 하여 《홍루몽》출판의 열기가 고조되었다. 정위원과 고악이 작품을 수정하는 등 손을 본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들이 대중에게 《홍루몽》의 정본을 제공했고,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파되도록 했다. 이것이 《홍루몽》의 전파에 공헌한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이 때 이후에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정본(程本)에 의거해 《홍루몽》을 이해했다. 이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정위원은 총 두 번의 인쇄를 했다. 첫 번째 인쇄는 정갑본(程甲本), 두 번째 인쇄는 정을본(程乙本)이라고 속칭하여 부른다. 아마도 정을본의 인쇄량이 많지 않아 광범위하게 전파되지 않은 이유 때문인지,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영향이 가장 컸던 것은 정갑본이다. 정갑본은 책에서 지연재의 비어를 없앤, 백문본(白文:주해가 없는 원문)에 속한다. 그 이후의 정을본 역시 백문본에 속한다. 가경 16년(1811년) 동관각서방(東觀閣書坊)의 재판본(重刊) 인쇄에 이르러서야 평점을 달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평점본이 간행되어 나왔다. 도광과 광서 연간에는 《홍루몽》평점의 열기가 극에 달했다. 또 왕희염(王希廉), 장신지(張新之), 요섭(姚燮)등의 청대의 저명한 평점가들이 대량 배출되었다. 평점(評點)은 사람들이 《홍루몽》을 평론하는 주요한 형식 중의 하나가 되었고,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시사와 필기, 회화 등의 형식으로 이 작품을 평론했다. 《홍루몽》을 둘러싸고 그 뒤에 쓰여진 속서나 모방서 역시 적지 않아서 이에 의거해 개편되어 짜여진 희곡, 곡예술(曲藝)등의 많은 종류의 예술 형식의 작품 역시 그 양이 상당하다. 이로써 《홍루몽》이 그 이후의 소설과 통속문학의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시 《홍루몽》의 성행의 상황은 당시 사람이 읊었던 “開談不說紅樓夢, 縱讀詩書也枉然” 의 시구절으로 개괄할 수 있다. 그 의미는 : 만약 이야기를 나눌 때 《홍루몽》을 얘기하지 않는다면 적지 않은 시서를 읽었다 하더라도 모두 헛된 것이라는 뜻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시기에 《홍루몽》은 만주어와 몽고어 등의 적지않은 소수민족 문자로 번역이 되었고, 그들 민족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몽고족의 하스바오(哈斯宝)는 《홍루몽》을 번역했을 뿐 아니라, 40회의 몽고문자로 된 《신역홍루몽》을 쓰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이 책을 위해 서문과 독법, 총평 및 평론과 주해를 저술하여,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독특한 견해를 구축함으로써 청대의 수많은 《홍루몽》평점가 중에서도 매우 독자적 경지에 이르렀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람되고 사랑을 받았던 것과 명확하게 대비되는 현상이 있었는데, 이 시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화와 지배사상의 고수라는 각도에서 이 소설을 음흉한 책이라고 판단하고 비판한 것이다. 청대에 《홍루몽》은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어 몇 차례나 조사당하여 금지됐다. 그 때마다 금서의 목록에는 모두 《홍루몽》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 황제와 황후들 모두 《홍루몽》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궁정안에서는 읽고 토론하면서 일반 백성들이 보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는 이 금서지정은 우레 소리는 컸으나 비는 적게 온 격으로 《홍루몽》이 이미 집집마다 한 질씩 있고 부녀자와 아이들이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진지하게 집행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금서지정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당시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명확하게 반대를 하는 것이었다. 어떤 책방주인들은 관리들이 금서를 조사하러 올 걸 대비하여 《홍루몽》의 이름을 《금옥연》, 《대관원의 자질구레한 기록》, 《경환선기》등으로 바꿔서 계속해서 인쇄하여 판매하였다. 

 

1921년은 《홍루몽》의 전파와 그 연구에 관해 말하자면, 의심할 나위 없이 매우 기념할만한 해임이 분명하다. 이 해에, 호적의 《홍루몽고증》이라는 문장이 발표되는데, 이것은 새로운 홍학의 정립을 상징하고 있다. 이때로부터 홍학은 현대 학문의 한 줄기로서의 이론적 성격을 갖춘 전문적인 학문이 되었고, 학계의 중시를 받으며 그 후의 《홍루몽》연구에 심원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시 동아시아도서관(亞東圖書館)은 호적과 진독수 등의 도움 아래에서 왕원방이 교감하고 정리한 신식 구두점 본의 《홍루몽》을 선보인다. 이로써 《홍루몽》유통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었다. 이 해로부터 20세기의 80년대까지를 《홍루몽》전파의 제 3단계, 즉 정제된 인쇄(精印)단계로 본다. 정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시기부터 시작해서, 《홍루몽》의 발간에 있어 상업적인 목적 뿐 아니라, 학술적인 것이라는 의식이 비교적 뚜렷하게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경학연구사의 방법을 이용해 《홍루몽》을 교감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내용이 질적으로 높아졌다. 이러한 과학적이고 진지한 태도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동아시아도서관은 맨 처음에는 정갑본의 번각과 한 쌍으로 청선관본을 저본으로 하여 교감과 정리를 진행했다. 후에 호적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정을본을 빌려주어 동아시아도서관은 1927년에 또 이 판본을 저본으로 한 정리본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 역시 왕원방의 구두를 사용했다. 출판 이후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는데, 1948년까지 이 책은 16차례나 인쇄를 하였다. 이후 반세기동안 정을본은 독자가 제일 많고, 영향도 가장 큰 《홍루몽》의 독본이었다. 그 기간동안 지본(脂本) 역시 출판되었으나 영인본(影印本)의 방식으로 출판을 한 것이든, 유평백(兪平伯)이 정리하여 교열하고 구두점을 찍은 《홍루몽팔십회교본》(인민문학출판사 1963년판)이든, 모두 학술연구용으로 주로 제공되었으며 일반 독자가 읽고 감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동아시아도서관의 영향을 받아, 기타 출판기구에서도 분분히 자기들만의 정리본을 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1949년에 가서야 일단락되는데, 출판된 정리본이 총 10여종이 넘는다. 태도는 역시나 비교적 진지했다. 이런 이유로 이 시기부터 《홍루몽》을 교감하고 정리하는 것이 홍학연구의 중요한 한 가지 구성 부분이 되었고, 연구자들의 중시를 받았다.

 

20세기 80년대에 들어서자 《홍루몽》의 전파는 또 다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1982년, 중국예술연구원홍루몽연구소에서 교감하고 주해를 단 《홍루몽》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경진본을 저본으로 하였는데, 처음으로 《홍루몽》지본을 진지하게 교감하고 정리하여 널리 보급된 독본이다. 이것을 기점으로, 《홍루몽》의 전파는 제 4단계에 들어서게 되는데, 바로 다원(多元)단계이다. 다원이라고 칭한 것은 이 시기는 지본이건 정본이건, 또 교감정리한 것이건 영인출판한 것이건 간에, 정리출판한 동기, 목적, 형식 그리고 독자까지 모두 다원적(다방면)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이전에 한 가지만이 독주하며 성행하던 풍경과는 명확히 대비된다. 

 

이 시기에, 거의 모든 현존하는 《홍루몽》의 중요한 판본은 모두 다 영인출판이 되었다. 교감정리 할 때는 모두 각기 다른 고려로부터 저본을 선택했고, 정리하는 형식 역시 매우 다양했다. 기본적으로 각계각층의 독자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켰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홍루몽》은 다양한 소수민족의 문자로 번역이 되어 출판되는데, 모두 몽고문, 조선문, 장문(藏文), 카자흐문, 위구르문 등 5종 문자의 판본이다. 현대 독자들이 《홍루몽》을 읽는 조건은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도 낫다고 하겠다. 

 

 

(三)

 

 

중국의 본토에서 유통되는 것 외에도, 《홍루몽》은 국경을 넘어 세계의 범위에서 광범위하게 전파되었으며, 각국, 각 민족의 사랑을 받았고, 세계급의 문학명저가 되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홍루몽》이 해외에서 유통되는 것은 그 시기가 비교적 이르고, 영향력도 컸으며 매우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되었다. 홍학연구자의 무리 중에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해외역량이 포함되어 있다. 조설근은 중국의 문학에게 세계적 수준의 명예를 안겨주었다. 

 

《홍루몽》이 최초로 전파된 것은 일본과 조선, 베트남 등의 아시아의 이웃국가들이다. 기록에 의하면 《홍루몽》이 인쇄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1793년, 어느 상선이 절강성의 자푸(乍浦)에서 일본으로 일본으로 전파한 것인데, 가져간 작품의 적지 않다. 도합 9부 18세트이다. 그 후에 각종 《홍루몽》의 간본이 끊임없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 동시에, 일본 본토에서도 《홍루몽》의 인쇄가 이루어졌다. 1905년에는 일본 동경제국인쇄주식회사에서 《증평보도석두기增評補圖石頭記》를 번역인쇄하였다. 이로써 일본 독자들이 《홍루몽》에게 보인 애정의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홍루몽》은 전도사나 상인등의 족적을 따라 유럽, 미국 각 국가에 전달되었다. 예를 들면 도과 12년에 즉 1832년, 한 러시아의 종교사절단 단체가 매우 진귀한 《홍루몽》의 필사본 한 부를 북경에서 러시아로 가지고 갔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열장본(列藏本)’이다. 그것은 매우 연구 가치가 높은 필사 지본이다. 현재 일본, 러시아, 미국, 한국 등의 국가의 공사의 장서기구 안에는 모두 적지 않은 《홍루몽》의 귀중한 판본들이 소장되어 있다. 러시아의 저명한 한학가 리푸칭(李福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나라의 도서관에는 60여 종의 《홍루몽》과 그 속서 및 개편작품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의 여러 소장기구 역시 20여종의 《홍루몽》의 각종 판본을 소장하고 있다. 이 숫자들로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국가의 사람들이 《홍루몽》을 무척 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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