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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기리 | 오니기리조 5월 12일 토요일 후기 "사유를 위한 실험명령으로서의 삶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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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그런은희 작성일18-05-14 18:15 조회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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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 크로스 오니기리조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니체가 말했던 “사유를 위한 실험명령으로서의 삶이란 무엇일까?”


❉일시:5월 12일 토 아침 10시
❉참석자: 최혜정(점심당번으로 30분 참가), 박소담, 추승연, 김지혜, 정태미, 이유정, 정은희, 김민지(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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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마지막 주 오니기리조 모임에서 『니체 그의 삶과 철학』(홀링데이 지음)을 끝내고, 한 주 방학 후 오늘은 새로운 책을 시작했다. 앞으로 2달여간 만날 책은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꿈결 출판사)이다.

지혜샘이 책 한권 끝낸 기념으로 맛난 간식을 준비해오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또 태미샘이 맛있는 주스들을 가져오셔서 다들 나누어서 맛있게 마셨습니다. 토요일 점심은 태미샘이 사주셔서 감사하게 먹었습니다.

오늘은 1장과 2장을 각자 읽고 씨앗문장을 하나 뽑아서 적고 그 부분을 자기의 언어로 바꾸고, 질문이 있으면 달아오기로 했었다.
 

최혜정샘과 추승연샘의 씨앗문장 부분이 같아서 두 분이 뽑아온 부분부터 시작했다.

 

“현재의 체험이 장차 쓰일 이야기의 관점에서 관찰되는 것이다. 흘러가는 삶을 굳게 붙들고, 현재적인 것을 미래적인 의미의 빛 아래서 빛나게 하는 셈이다. (…) 누구나가 자기 삶에 관해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니체는 생각할 만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종류의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사유를 위한 실험명령으로서의 삶, 생의 형식으로서의 에세이주의”

『니체 그의 사상과 전기』, 30쪽, 퓌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꿈결 출판사

 


“니체는 삶부터 글쓰기를 위한 삶을 연습하고 살아가고 있더라. 이렇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데, 니체가 자신을 관찰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가 궁금했다.
 한 선생님이 경우 자신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는 그것을 관찰하지 못하고 그 사건 속에 있게 되지만, 곧이어 이것은 나중에 한번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곤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봐야지 했던 사건을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미루다가 그 사건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잊어버리곤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또 다른 선생님의 경우는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 속에 있는 자신을 관찰할 때, 자기한테 유리한 방식으로만 보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려고 하기 때문에 합리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나중에 그 사건을 함께 있었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고 있던 그때의 자신은 오로지 자신이 본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특히나 자신이 그 사건으로 인한 감정이 올라와있을 때는 더욱이 자기 시선으로만 사건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정샘은 일요일 수업에 영화 시놉시스 쓰기를 하는데, 자신을 제 3자로 놓고 시놉시스로 쓴다. 스놉시스를 쓰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관계에서 실패를 했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의 피해자는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그 관계에서 도망쳤다고 생각했었다. 시놉시스를 쓰면서 그 관계를 계속 파고 파 보았다. 그 관계에서 자신이 욕망했던 것은 진짜 무엇인지? 그러다보니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그 관계의 장을 떠난 것은 그 사람을 질투하고 있기 때문에 그 관계 속에 있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이전에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시선이 나오더라.

 아마 니체는 자신의 현재 진행형의 삶에서 자신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을 끊임없이 하고 그것을 글쓰기로 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하셨다. 이미 지나간 관계이지만 다시 한번 다른 시선으로 그 관계를 보고 나니, 이제 또 다른 새로운 관계에 들어갈 때 내가 보는 시선이 정말 옳은가하는 질문이 살짝 떠올라서 그 사람을 막 판단하지는 않게 되더라….

 

다음으로 지혜샘의 씨앗문장과 은희샘의 씨앗문장 비슷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에는 자유로운 의지가 표명되고 있는데, 이 의지는 비록 결정론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이 전체 세계에 거리를 취할 수 있을 만큼은 자유롭다. 자유롭게 풀려난 이 의식에 대해 세계는 거대한 타자로, 즉 결정론의 우주로 나타난다. 니체는 이를 운명이라 부른다.“
“자유로운 의식은 이 세계를 저항으로 경험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유희 공간을 얻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그렇게 해서 스스로를 자유로운 의지로 경험한다. 물론 이 의지는 오로지 의식의 자기지각에서만 자유롭다. 유희 공간을 지닌 이런 인간을 니체는 후일 확정되지 않은 동물이라 부르는데, 이 동물은 확정된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진리’라 부른다. 이때의 ‘진리’란 행위를 구속하는 도덕으로 이해된 ‘진리’이며, 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자연과 역사 내의 법칙성에 대한 인식으로 이해된 ‘진리’이다.

『니체 그의 사상과 전기』, 41~42쪽, 뤼디거 자프란스키지음,

꿈결출판사.

 

​'운명과 자유'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승연샘이 자유란 우리가 막 편하게 생각하듯이 그렇게 무한하게 아무런 구속도 없이 무조건 주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소담샘은 니코스카찬스키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에게 한계가 무엇인지 먼저 규정해야 자신이 추구할 자유 속으로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혜샘은 그리스의 사람들이 공연장에 모여 비극을 보면서 삶에 대한 간접경험을 했고, 그 비극의 과정이 바로 자신이 겪을 운명으로 느끼곤 했다. 비극을 보면서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이 세상의 엄청난 힘을 간접경험하고, 그 힘에 우리 모두가 규정받는 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규정받는 그 괴로움을 함께 하는 사이에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공감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도 한 것 같다.
한 선생님은 자신이 특정한 사건이나 타자를 마주칠 때, 그들을 만나는 자신의 패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패턴에 따라 자신이 행동하고 대응하고 있는 것도 운명이지 않을까? 나의 기질 그것이 바로 운명이 아닐까? 자신의 패턴과 사건을 겪는 방식이 자신의 운명이라면, 사건과 마주칠 때 자기 패턴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자유의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패턴과 그 패턴을 다르게 하려는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그 사이의 공간이 바로 자유가 아닐까?
태미샘은 자신이 가진 기존 관념이 있는데, 이것이 내가 가진 패턴이고 자신의 이러한 기존관념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자유’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마지막으로 태미샘의 씨앗문장을 토론했다.

 

“언어는 사유보다 훨씬 더 신속하고 기민하다. 경쾌한 그의 언어가 그 자신을 움직이며, 자신에게서 언어가 창출하는 것을 지켜보는 그로선 경탄의 마음을 키울 뿐이다. 그리하여 니체에게는 자신의 개성, 즉 ‘분할될 수 있는 개체’가 내면세계사의 무대가 되며, 이 세계사를 면밀히 탐구하는 사람은 니체와 더불어 ‘인간’이라 불리는 저 내면세계탐험가이자 항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니체 그의 사상과 전기』, 32쪽, 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꿈결출판사

 

태미샘은 언어로써 표현되는 세계를 먼저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세계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언어는 변화하는 기운 속에 있는 것도 고정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때문에 언어가 그 상황 속에서의 기운을 표현하지 못하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니체처럼 언어자체로 내면 세계를 탐험하려면 언어를 먼저 확실하게 잡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한 선생님이 질문하셨다.
`언어를 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언어가 사유보다 신속하고 기민하다는 니체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는데 언어를 창출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이 바뀌신 것인지?`
`언어라는 것이 그물이기 때문에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니체의 말을 듣고 언어가 창출하는 것을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가 기운과 상황을 왜곡하기는 하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자신 안에 기운으로 있는 것을 표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뭉쳐 있는 것의 실타래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뭉친 것을 언어로 표현하려 할 때, 자신 안에 뭉친 것을 언어를 통해서 끄집어낼 수도 있지 않은가? 언어로가 다 표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것은 내 안에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닐까?

 

토론을 마치고 다음주 3,4장을 읽고 씨앗문장을 뽑아오기로 했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것을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모여서 이야기하며 더듬더듬 찾아가보는 이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는 소중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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