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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계보학 | 자연주의와 계보학 (7) - 현재 컨셉의 위험 : 유발 원인과 거짓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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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1-23 13:37 조회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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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계보학 (7)

 

 

 

 

_Christopher Janaway

니체 자신은 그러한 원칙을 따르는가? 초기 사상 몇 개를 살펴보자. 첫 번째로, 만약 니체가 그것을 따랐다면,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자신의 주요 목표와 관계없는 형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도덕적 가치의 인과론적 기원을 발견하는 작업을 실행하기 위해 그에 맞는 적절한 글쓰기 방법을 사용했다.

 

두 번째는 계보학적 탐사에 있어서 참된 주제를 구별해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목표로 설정된 설명주제들이 나의 도덕적 가치이고, 나의 도덕적 가치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나의 특정 개인적 정동이 본질적 요소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내가 갖는 가치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나의 정동이 설명적임을 그리고 그것이 문화적-심리학적 선사시대를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 나의 정동이 갖는 이러한 특성을 인정하려면 나는 나의 정동이 무엇인지 인지해야 한다. 나의 정동을 인지하기 위해 나는 먼저 그것을 의식적으로 느껴야 한다. 여기서 논거는 우리가 특정한 정동을 느끼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것에게 어떤 설명적 역할을 부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세 번째 고려사항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도덕의 본질과 기원을 탐구할 때, 합리화하는 습관은 자신의 정동이 갖는 역할을 인정 못 하게 할 수 있다. 니체가 우리를 도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학습된 태도와 개념에 의지하려 할 수 있고, 우리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연민, 평등, 겸손 등등이 “옳다”고 유혹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연민, 평등, 겸손 등의 가치를 한 세트의 긍정적 가치로 변환시키며 그것이 합리적이고, 비인격적이고, 사심 없는 것이라며 우리 자신을 속이면서 우리의 가치로 정당화 하게 된다. 

 

니체가 종종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 한 탐구자가 자기 자신의 정동이 갖는 설명적 역할을 무시한다면, 그 탐구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도덕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애착의 근본인 상속된 정동을 내가 느끼고 내가 관계를 맺어야만 탐구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을 것을 느끼게끔 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과적 사실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 또는 니체의 유명한 말처럼, “우리가 한 사태에 대해 좀 더 많은 정서로 하여금 말하게 하면 할수록, 이러한 사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나 ‘객관성’은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도덕의 계보』 III. 12)

 

 

 

6. 현재 컨셉의 위험 : 유발 원인(Causa Fiendi)과 거짓 통합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과 레의 방법 사이에 있는 대비 점은 『도덕의 계보』 II 논문 12와 13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니체는 형벌의 역사에 관련된 방법론적 논평을 한다. 그는 “기존의 도덕의 계보학자들”은 “형벌에서 예를 들면 복수나 위협이라든가 하는 어떤 ‘목적’을 찾아내고, 그다음에는 순진하게 이러한 목적을 형벌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여겨 그 시초에 붙(『도덕의 계보』 II. 12)”이고 있다고 한다. 

 

복수를 형벌의 시초에 두는 계보학자는 오이겐 뒤링(Eugen Duhring)인데, 나는 그에 관해 여기에서 논의하지 않겠다. 반면에 형벌이 나타나도록 하는 원인으로 제지(deterrence)를 제시하는 계보학자는 레이다. 니체가 보기에 레가 저지른 실수는, 그가 어떤 제도에서 당대에 적용되는 단 하나의 목적이나 의미를 발견한 후 그것을 유발 원인, 그 제도가 실존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상정한 것이다. 

 

레는 형벌이 그의 시대에 유용한 제지 작용을 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제지물, 즉 이기주의에 대한 제지물에서 비롯되었다는 거짓 전제하에서 주장을 이어간다. 그러나 니체가 논증하듯이, 한 행동이 이기적인 것이었는지 즉, 한 행위자가 그런 행동을 안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인류 역사에서 형벌 제도 보다 훨씬 나중에 나타난다. 

 

레는 당대에 사용되고 있는 도덕적 개념-이기주의적인 것을 제지하는 “형벌”, 비이기주의 적인 것을 찬양하는 “선함”–을 도덕의 기원에 놓는다. 그러면서 비이기적인 것이 왜 찬양과 연관되어있는지에 대해서 단지 침울하고 김빠지는 이야기만을 제시한다. 무사무욕을 최고 도덕의 특징으로 설명하는 레의 기원-이야기는 현재에 지배적인 개념을 강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 비이기적인 것을 칭찬하고 이기적인 것을 저지하는 관행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유발 원인이 갖는 오류는 우리 자신이 현재 사용하는 개념에 유일하고 바로 적용 가능한 의미가 있다고 추정하게 하는 것에 있다. 니체는 한 개념에 하나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용도”, “목적”, 또는 “의미”는 유동적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종류의 처벌적 행위는 얼마든지 수없이 재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용도와 목적의 역사는 우리가 물려받은 개념에 압축되어 그것을 풍부하게는 하지만 문제적으로 만든다. 

 

“오늘날 도대체 왜 사람들이 형벌을 받는지를 명확히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니체는 심오하게 말한다. “과정 전체가 기호학적으로 그 안에 요약되어 있는 개념들은 모두 정의하기가 어렵다.” (『도덕의 계보』 II. 13) 오늘날 우리의 개념에 너무나 많은 역사가 축적되어 있기에 그것은 믿음직스러운 단 하나의 의미나 정의를 갖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역사적 결정화가 초래한 “일종의 통일체”일 뿐이며 결정(크리스털)처럼 하나의 개념은 이제 너무 경화되어 한때 유동적이었던 요소들을 이제는 “용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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