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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 연극단 | 불편함을 우리의 동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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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씨앗 작성일18-01-17 08:18 조회33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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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필연 2기에 합류한 최소임입니다. 올해 두 번째 세미나는 저랑 지혜샘, 나영샘, 다윤샘 이렇게 4명이 함께 했어요. 지난주에는 다윤샘이 빠졌고 이번 주는 요한샘이 빠지고, 또 다음 주에는 다윤샘이 참석을 못하게 되어 완전체로 뭉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쉬웠어요. 모두가 참석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확인하면서 시간을 내고 마음을 모으는 과정 또한 공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주는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서 첫 작품인 「축복」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소설에 대해 우리가 공통으로 느낀 점은 ‘불편하다’는 것이에요. 소설을 읽으면 어느 인물(대부분은 주인공)에 감정 이입이 되고 그 인물의 관점을 따라가면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되잖아요. 근데 「축복」은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덜커덕 걸리는 부분이 생겨서 그 인물에 충분히 감정 몰입이 되지를 않아요. 아~ 그렇지, 그럴 수 있지. 이러면서 읽다가도 어느 지점에 가면,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편해지더라고요. 근데 대부분의 등장인물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거예요. 말하자면 독자가 마음 붙일 곳이 없다고 해야 하나. 왜 그럴까요? 이는 루쉰이 겨냥하고 있는 비판의 칼날이 등장인물 모두를 향하고 있으며 글을 읽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식인으로 나오는 화자가 주인공인 샹린댁의 존재와 죽음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쓰레기더미 속에 던져진 싫증 난 낡은 장난감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예전에는 몸뚱이를 쓰레기더미 속에서 드러내고 있었으니 재미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녀가 어째서 아직도 살려고 하는지 이상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상에 의해 아주 깨끗이 쓸려 버렸다. 영혼의 유무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그러나 현세에서 살아봤자 별수 없는 자가 죽는다는 것은 보기 싫던 자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남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모두 좋은 일이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렇게 매정하고 잔인해도 되는 거야. 일말의 배려나 연민도 없이. 샹린댁 죽음에 대한 책임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봐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 변명하는 태도 또한 너무나 비겁한 거 아닌가. 화자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다’라는 자기 위안이 깔려있어요. 근데 이것을 밀어 붙이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 계속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나 자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죠. 그래 나도 지하철역에서 노숙자들을 만나면 왠지 마음이 불편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샹린댁이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에 화자를 비난하다가 막상 나에게서 화자와 똑같은 모습을 발견하니 난감하고 혼란스러웠어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생겨나지만 선뜻 답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샹린댁이 비참하게 살다가 죽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마을에서 그녀의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그녀가 다른 삶을 살고 죽지 않으려면 그녀 자신을 포함해서 무엇이 달라져야할까? 모든 것이 서로 얽혀있고 어느 것 하나도 쉽사리 바뀌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지요. 오랜 습속에 연원한 무지. 그 무지로 인한 의식하지 못하고 행사하는 폭력 등. 무엇보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지고 맙니다.  
  우리가 각자 낭송을 하려고 고른 부분도 이런 것과 연결되어 있어요. 다윤샘과 지혜샘 이 낭송한 마지막 대목은 이런 불편함의 절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톡톡탁탁 폭죽소리와 함께 온 마을을 감싸 안은 눈송이, 나른함과 편안함, 축복의 공기, 무한한 행복. 이 모든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샹린댁의 죽음. 「축복」은 당당히 마주하기도 두렵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고 돌아서기도 어려운,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지점으로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루쉰이 노리는 전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전략은? 루쉰이 선사한 불편함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가는 것.         
 

 토론은 『루쉰, 길 없는 대지』의 1부 3장과 4장으로 이어졌어요. 루쉰이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 혁명으로서의 ‘자기 해부’와 ‘자기 몰락’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불편함을 길잡이 삼아 걸어가야 할 길인데 아직은 막막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몰락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어떻게 하면 몰락할 수 있을까? 정말 몰락하고 싶은 것일까? 

 

  또 각자의 올해 필연 활동에 대한 비전을 얘기를 했습니다. 나영샘은 ‘공부한 것을 나눈다’,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다윤샘은 ‘공부와 일상을 연결하기.’ 지혜샘은 ‘아프지 않게 몸을 챙기기.’ 저는 ‘몰락의 기예를 익히기.’ 자신이 비전을 향해 잘 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다음 주에 생각해오기로 했어요.   

 

  마지막으로 다음 주 과제를 의논했습니다. 우선 올해 필연 스케줄의 큰 그림을 그려봤어요. 4월에 짧은 분량의 첫 작품을 공연하고, 하반기에 좀 더 긴 분량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첫 공연 작품은 『외침』과 『방황』에서 선정하고, 그 다음 공연은 나머지 작품집에서 고르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처음은 소설을, 두 번째는 잡문을 연극으로 만드는 계획입니다. 루쉰의 잡문을 연극으로 만들다니...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4월 공연은 너무 시간이 촉박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근데 지혜샘이 작년에는 한 달 만에 공연을 올린적도 있다고 하네요. 경험한 사람의 자부심과 여유가 느껴지네요. 든든한 선배님만 믿고 따라 가겠습니다 ㅎㅎ. 1월말이나 2월초까지는 작품 선정이 완료되어야 하니까 다음 주까지 『방황』에 수록된 모든 작품을 읽어오기로 했습니다. 어떤 작품을 연극으로 만들고 싶은지도 고민해오고요.   

댓글목록

김삼봉님의 댓글

김삼봉 작성일

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소임쌤의 루쉰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에너지, 그리고 마음에 감화되고 힘을 얻고 있습니다^^
루쉰과의 교감도 있었지만 그보다 필연맴버들의 글을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감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샹린댁이 마을사람들의 축복의 제물같았다는 다윤이와 작품속의 화자의 불편함을 세심하게 느끼며 힘들어한 나영쌤, 문장과 단락 사이사이의 틈새공간을 탐사하는 소임쌤, 쓴것도 잊고있었던 과거 샹린댁에 대한 제 글에 대한 이야기까지..

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주에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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