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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집이야기 | 뻔뻔(fun)한 서울 유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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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랑소 작성일15-09-13 00:08 조회1,0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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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fun)한 서울 유학기

  

강민주(전주출신)

 


너 왜 왔니?

나는 7월 8월 풀집에 게스트로 살았다. ‘저 아이는 왜 이곳에 왔을까? 오래 머물 것 처럼 생기진 않았군...’ 희정 언니가 나에 대해 느낀 첫 인상이라고 한다. 순간 뜨끔 했다. 내 얼굴에 ‘공부와는 거리가 멈’이라고 쓰여 있나 보다. 심지어 은민 언니도 날 처음 보고는 ‘서울로 나들이 왔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내 얼굴에 ‘노는거 좋아함’이라고 쓰여 있나 보다. (실은 다들 나를 아주 정확히 파악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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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공부하러 온거 맞니?"

 

   나는 평소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타당한 것과 타당하지 않은 것의 기준을 세우지 못해 가치 판단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혼동이 왔다. 때문에 중심 없이 극단적인 사고를 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무심해져라’ 라는 말을 듣고 무심해지려고 노력했던 것이 알고 보니 무관심으로 흘러가있지 않나, ‘사람이든 사물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라는 말을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있는 그대로’의 뜻을 고민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나를 보며 자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혼자 끙끙대다 더 심각한 상태가 되기 전에 이곳에 와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공부를 하며 배우고 싶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또 이곳에 오지 않으면 방학동안의 내 생활이 너무 뻔히 보였다. 알바를 하고 돈을 모아 여행을 갈 거라고 큰 소리 뻥뻥 쳤지만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알바를 하지 않고 집에서 뒹굴뒹굴 스마트폰과 연애를 하고 있을 내 모습이 뻔히 보였다. 때문에 나는 서울행을 결정했다.

 

 

나 뭐 했지?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니..! 공동체 생활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드라이기 소리가 방해가 되진 않았나, 너무 오래 씻진 않았나, 같이 있을 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등등 사소한 행동까지 신경이 쓰였다. 낯선 공기가 어색해 괜히 일찍 들어가 자기도 하고 더 늦게 일어나기도 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이제 좀 적응된 듯 싶다. 저녁엔 거실에 누워 한라랑 희정 언니랑 시연 쌤이랑 은민 언니랑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월요일에 등산 갔다 오면 씻지도 않고 거실에 대자로 누워 쿨쿨 자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용하지 않았던 카페도 이제는 애용하고 있다. 사주 얘기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던 나도 이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느낌은 알겠다. 적어도 내가 경금이고 8년마다 대운이 바뀐다는거, 식상이 하나고 인성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밥 당번을 하면서, 월요일에 등반을 하면서 알게 된 쌤들과도 이제 농담을 주고받는다. 영대 쌤하고는 디스전을 펼치기도 했고 병철 쌤과 한라랑은 귀신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영대 쌤은 내가 해준 귀신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는 산에서 넘어질 뻔 했다. (본인은 어이없어서 그런 거라고 하시지만 나는 무서워서 넘어질 뻔 했다고 믿고 있다.) 노트북 화면에 입가에 웃음이 번져있는 내가 보인다. 장면 하나하나가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몸이 말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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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생활 2달째, 많이 익숙해졌다

  

   풀집에서는 한라와 룸메이트를 했다. 동갑이자 같이 풀집에 살고, 그것도 같은 방을 쓰고, 나는 백수다 팀에 있다는 무려 네 가지의 유대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이곳 지식 공동체에서 한라와는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가 많다. 한라가 알바를 가지 않는 날이면 밥 먹고 산책을 하며 우리 또래가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내가 고민을 말하면 한라는 맹자마냥 자연스러운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래서 맹한라 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같이 남산에 올라가 야경을 보며 컵라면을 먹었고, 잠자기 전 수다를 떨다 잠에 들기도 했고, 출입금지라 써있던 남산 한옥마을 풀밭에 들어가 우리 세상마냥 거닐다 집에 들어갔고, 등산을 하면서 노래 개사를 하고 킥킥 거리기도 했다. 오히려 몇 년씩 알고 지내던 친구들 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시연 쌤, 은민 언니, 희정 언니, 한라와 더 많은 추억을 남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앞으로도 시간이 많으니 차차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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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한라와 즐겁게 산책 중^^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뻔(fun)했던 순간은 실은 산책하는 시간이다. 가장 많이 배우는 시간이며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이기도하다. 밥을 먹고 나면 시성 쌤과 혜경 쌤, 관식 쌤과 한라와 같이 남산 산책로를 걷는다. 다리가 아프네 어깨가 아프네 피곤하네 하며 맨날  꾀병을 부리곤 한다. 하지만 실은 ‘다리가 아파도! 어깨가 아파도! 아무리 피곤해도! 나는 산책을 가겠습니다!!’ 라는 애정표현이다. 책을 읽으면서, 세미나를 하면서 들었던 의문점들, 삶에 대한 의문점들을 물어보면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내 편견이나 고정관념, 거기서 오는 혼란 등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덕분에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걸 깨닫는데 그 때 ‘OH!!’하며 느끼는 희열이 통쾌하고 재밌다. 아직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말이 있다. 시성 쌤이 얘기해주신 ’오십 보 백 보는 방향성의 문제지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과 ’선과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과 아직 선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 그리고 혜경 쌤의 디오게네스 일화이다.

 

 

흔적을 남겼다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이곳에서 지켜야 할 윤리이다. 때문에 밥을 먹고 나서 빵으로 그릇을 닦아 먹어야 하며 밥그릇과 간식 그릇의 설거지도 본인이 해야 한다. 풀집에서는 머리카락 버리기, 쓴 물건 제자리에 놓기, 보일러와 불끄기 등이 있다. 또 청소 당번을 정해 매일 청소를 한다. TG에서도 사람이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청소를 한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만 하면 되지 무슨 청소를 매일 하냐며 불만이 가득했다. 사실 내 방 청소도 아주 가끔 한다. (실은 거의 안한다가 맞겠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영어공부를 하고 중구난방이 끝나면 TG로 와 쉴 틈도 없이 걸레질을 하는 게 힘들었다. 청소가 생활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실성 하나는 자부하는 나이기에 힘들어도 열심히 닦았다. 처음 걸레질을 시작할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웃었다. 얘 청소 한 번도 안 해본거 티 난다고. 사실 좀 억울하기도 하다. 집에서는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빨래도 개는 나름 청소란걸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걸레질 한 기억이라곤 학창시절 칠판 닦기 밖에 없는 나에게 걸레질 임무가 주어졌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바닥을 박박 닦을 수 있는지 혜경 쌤의 명강을 듣고 지금은 걸레질의 달인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 번 더 뒤를 돌아봤고 청소도 열심히 한 덕분인지 나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는 흔적을 좀 남겨야겠다. 두 달 동안 공부하고 생활한 이곳에서 훌쩍 떠나기가 싫었다. 배울 수 있게 해준, 먹고 잘 수 있게 해준,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곳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감사인사를 할까 고민하던 중 ‘증여’가 생각났다. ‘다 읽자 인문학’ 세미나에서 읽은 책에는 매번 ‘증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증여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증여를 통해 흔적을 남기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한 증여는 김장하기다. 관식 쌤을 따라 김장을 도와주러 갔고 할머니 댁에서 김장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열심히 소금을 쳤다. 리듬을 타며 무와 배추를 다듬고 씻었다. 김장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역시 나는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단순 반복 작업이 참 좋다. 이제 내 손을 거쳐 완성된 김치는 몸속으로 들어가 흔적을 남길 것이다. 풀집 식구들에게는 생필품을 증여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LTE 속도로 떨어지는 화장지와 치약 그리고 칫솔이나 세면도구들을 증여하기로 했다. 풀집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TG와 백수다 식구들에게는 군것질 거리를 증여하기로 했다. 마가렛트는 사온지 몇 시간 만에 털렸고 오늘 사왔던 오렌지 주스는 내일이면 쓰레기통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 희정언니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각종 빵과 견과류는 며칠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항상 배고픈 백수들이다. 그러니 내가 먹을거 말고 떠오르는게 없는 것이다. 같이 땀을 흘리고 맛집을 찾아 다녔던 월등반 식구들에게는 설빙으로 증여를 했다. 이제 블루베리와 인절미가 지방산으로 분해되어 몸속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남산강학원, 감이당 식구들에게는 쌀을 증여하기로 했다. 주방에 뭐가 필요하냐는 물음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쌀이 필요하다는 영대 쌤의 반응은 정말 쌀이 시급한 듯 보였다. 이제 그 쌀은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흔적을 남길 것이다. 이로써 성공적인 ‘흔적 남기기’ 프로젝트, 부제로는 ‘증여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몸속에 흔적을 남긴다는게 조금 오싹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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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로 했던 증여 '김장'

 

    흔적을 남기지 말라던 이곳도 나에게 흔적을 남겼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모기와 개미가 합공해 73번이나 나를 물고 갔다. 아주 강력한 흔적을 남겨 손등만 봐도 이곳을 그리워 할 수 있겠다. 희정언니와 한라가 열심히 홍보하는 버물리 자운고를 사러 가야겠다.

 

 

그리고 떠난다!

    맨날 놀고 자고 먹기만 했던 나도 배운 게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상태가 안 좋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이 원인이고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모르는 답답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극복 할 수 있는지 말이다. 통념에 쌓여 항상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느라 바빴고 내 논리가 없었다. 백날 혼자 생각하고 있어봐야 답을 얻거나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는 것, 때문에 몸과 책을 통한 쿵푸가 필요함도 깨달았다. 이걸 깨달은 것만 해도 나는 큰 수확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야 배울 수 있다는 공부에 대한 환상도 조금 깨졌다. 맨날 놀고 자고 먹기만 했던 나도 배웠으니 말이다. 

    맨날 청소를 하는 이유도 알았다. 이제는 하루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공간이 더러워지는게 눈에 보인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또 청소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아침체조와도 같았다. 청소를 함으로써 공간과 신체적인 교류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성 쌤은 그 과정을 통해 공간의 주인이 되는거라고 말씀하셨다. 빨래 세재를 어디에 넣어야 하냐며 한라에게 전화로 물어보던 나는 빨래와 걸레질의 달인이 되어 게스트 생활을 마무리 짓는다. 두 달 동안의 백수 생활을 청산하며 백수 참...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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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달간의 백수 생활도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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