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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집이야기 | 입동 신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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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랑소 작성일15-09-13 08:19 조회1,1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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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신고식

 

효진(필동2가 풀집Two 거주)

 

남산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겨울이다. 2012년 겨울에는 해방촌 집과 필동 연구실을 오가느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남산을 넘었다. 왕복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오가느라 자연스럽게 체력이 길러졌다. 덕분에 추운 줄 모르고 겨울을 났다. 작년에는 연구실 근처에 풀집이 생겨 편안하게 겨울을 지냈다. 걸어서 십 분이면 뜨끈뜨끈한 방으로 돌아와 쉴 수 있어서 몸은 편했지만, 운동이 안 됐다. 그래서 이듬해 봄에 위장병으로 고생을 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겨울에 일부러 땀을 내면 안 된다지만,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사단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그때 체험했다.

   얼마 전 입동이 지났다. 올 해는 겨울이 되기 전부터 유난을 떨었다. 이사 온 집이 꼭대기 층이라 우풍이 심할 거라는 이야길 듣고 내복을 진즉에 다 꺼냈다. 박스 깊숙이 숨겨져 있던 털장갑, 목도리, 모자를 꺼내 좀 이르긴 해도 하나 둘 쓰기 시작했다. 보온물주머니는 나와 한 몸이 된 지 오래고. 집에 있든 밖에 나가든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겹쳐 입는 건 기본이었다. 춥다는 핑계로 꽁꽁 싸매고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반면 식욕은 점점 더 좋아졌다. 살도 눈에 띄게 찌고, 여기저기 붓고 아프고 결리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여야 되는데… 말만 앞서고 행동은 뒷전이었다. 마침 정화스님 멘토링 차담 자리에서 스님께 여쭤볼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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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대로 옷을 겹쳐입는 나^^:

밖엔 너무 춥단말이지ㅠㅠ

  

 

효진. “겨울이 되니까 오히려 몸을 더 안 움직이게 되요. 운동을 해야 되는 건 알겠는데 잘 안 돼요. 어떻게 하죠?”

 

스님. “요즘 여성분들 평균 수명이 85세거든요? 나는 오 년 빨리 죽겠다 생각하면 돼요. 으허허. 그리고 다른 사람은 안 아픈데 난 좀 아프겠구나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돼요. 허허허. 운동을 하는 신체 리듬을 만들 때까지는 고통스러운데 그렇게 해 놓으면 아플 확률이 떨어지고 오래 살 확률이 좀 늘어나는 거죠. 그렇게 안 해서 나중에 신체가 아프다고 말할 때는 아픈 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죠.”

  

   너무 쿨~하게 말씀하시는 스님 말 한 마디로 그간의 고민이 해결되었다. 운동을 하는 신체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겼다. 다음 날부터 당장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실행하기 어려우니 사람들의 도움을 빌리기로 했다. 마침 풀집1 처자들- 시연언니, 한라, 희정이가 한다는 운동모임에 들어가기로 했다.

   100일 동안 새벽6시부터 한 시간 동안 남산타워 찍고 오기. 일주일에 한 번은 미리 이야기하고 쉴 수 있고, 그 외에 무단으로 나오지 않으면 벌금 만원!! 내가 참여 의사를 밝히니 웬일인지 사람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특히 시연언니는 벌금 많이 모이겠다며 좋아했다. 같은 방을 쓰는 다영이한테도 동참할 생각 있냐고 했더니, 으흐흐 웃기만 했다.

   새벽 6시. 겨울이 길어져서 밖은 어두웠다. 이불 속에 있는 식구들을 뒤로하고 풀집1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은 있었지만 대체로 골목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저 멀리 옷을 껴입어 덩치가 ‘산’만해진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시연언니와 한라였다.(희정이는 공식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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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6시, 불타는 언니들

 

 

   우리는 말없이 남산을 올랐다. 그들은 스피드를 점점 내더니 어느 순간부터 뒤통수도 보이질 않게 되었다. 2주 동안 빼놓지 않고 매일 나왔다고 하더니 역시 그 위력이 대단하다 싶었다. 나도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처음엔 몸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지고 뱃속이 편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불편함도 가라앉았고 몸이 좀 적응이 되었다. 두 사람은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지. 너 도로 집에 간 줄 알았다. 꺄하하. 원래 우린 남산 정도는 올 스톱으로 가.” 

   오랜만에 땀을 흘리니 기분이 상쾌했다. 일출이 참 아름다웠다. 한껏 들뜬 우리는 모임 명을 ‘정마니(※정을 많이 만들자는 의미 by시연)’로 하자는 둥, ‘정순이(※정을 순환시키겠다는 의미 by효진)’를 하겠다는 둥, ‘정끌이(※정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미 by한라)’가 좋다는 둥, JJ엔터테인먼트 어떠냐는 둥(시연), 자기는 서태지 세대가 아니라며 JJ엔터는 촌스럽다는 둥(한라) 바보 같은 농담들을 연달아 날리며 하산했다. 물론 공부하는 사람들답게 학술적인 이야기도 덧붙였다.

 

 

시연: “그 사람 누구지? 왜 힘세고, 전장에서 죽은 애 있잖아. 자로 맞지?” 

한라: “자로가 누구요? 돈 좋아하는 사람이요?” 

시연: “아니 그 사람 말고….”

한라: “돈 좋아하는 사람 맞는디….”

효진: “….”

시연: “논어 박사인 희정이가 왔었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배꼽 잡으며 웃었나보다. 운동을 시작하기를 참 잘 했다 싶었다. 같이 하니 운동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올 겨울은 어쩐지 상큼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산에서 내려와서도 괜히 실실 쪼갰다. 그런데 의역학 시간에 배웠었다. 기쁨도 과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고.

   같은 날 나는 극과 극의 상황에 처했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기쁘더라도 中을 지키는 게 참 어렵다는 것을 그날 체감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졸다가 가방을 통째로 두고 내렸던 것. 그 바람에 그 안에 있던 모든 물건- 얼마 전에 장만했던 노트북(!)과 핸드폰, 출근단말기, 안경 등등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으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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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방을 통째로 두고 내리다니...

  

   물건들을 찾지 못할 것이란 것이 확실해지자 반나절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어떻게 그렇게 방심할 수 있나 자책이 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시절인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하니. 끝난 인연인데 다시 잡을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란 얘기도 들었다. 그만하니 다행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질책과 위로 덕에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 겨울 3개월 동안 초심을 유지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해 나가야겠다고. 몸을 움직이되, 지나치게 정을 소모하지 않도록 주의하자고. 덕지덕지 붙은 욕심을 버리고, 지나간 인연엔 미련두지 말자고. 모든 사건 사고엔 배울 거리가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나는 여느 때보다 화끈하게 입동 신고식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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