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설근 평전](2)1.친화이강의 풍류가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네 > 동방신기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양력 2018/11/20 화요일
음력 2018/10/13

절기

동방신기

『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 평전](2)1.친화이강의 풍류가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흰나비 작성일18-02-12 00:48 조회635회 댓글0건

본문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장의 제목이 7글자로 되어있어 7언절구의 시구로 보여 그렇게 번역을 해보았다. 홍루몽을 읽을 때, 시가 많이 나오길래 얼렁뚱땅 흉내를 내어 엉터리로라도 분위기를 잡아본 것이니, 이 제목 해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된다.(^^) __ 김희진

 

 

 

1. 친화이강의 풍류가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네  秦淮1风月忆繁华  

  -조설근의 가세 

 

 

 

고대중국에서 한 사람에 대해 조명할 때, 맨 먼저 언급하는 것은 그의 가족과 출신이다. 이것은 유구한 역사이래 이어져 온 신조와 관념에 따른 것이기도 하고, 현실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인은 보통 친척들이 한 곳에 모여서 살았고, 가문과 혈연으로 형성된 집단 내에서 생활했다. 가족과 출신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때문에 그것은 한 사람의 성장환경과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의 전도와 명운까지도 결정한다. 권문세가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남다른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자격 조건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꿈 꿔도 도달할 수 없는 몽상이 된다. 

 

조설근의 일생과 문학창작에 관한 연구도 자연스럽고 예외없이 그의 가문과 출신성분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관례대로 하는 상투적 스타일을 따른 것이 아니고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조씨 가문의 상전벽해와 같은 운명은 조설근의 운명도 바꾸어 놓는 동시에, 그 부침이 바로 이 위대한 작가를 탄생켰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환경이 사람을 바꾸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조설근은 가문에 대해 갖고 있는 자기의 인식과 정서를 모두 그의 작품에 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 중 매우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 작품을 분명한 자전적인 색채를 띠게 만들었다. 이런 특징은 이전의 통속소설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것으로서, 일종의 예술적 혁신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가문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바로 이 작품을 읽는 데에 있어 중요한 일환이 될 수 있고, 작품 독해의 열쇠와 핵심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루몽>>을 연구하든, 조설근을 연구하든 모두 조씨 가문의 상전벽해의 변천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장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전설적 색채를 띠는 가문의 영고성쇠를 목도하게 한다. 

 

 

(一)

 

가문에 대한 긍지를 위해서 적지 않은 중국인들은 자기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명한 인물을 시조로 찾을 때까지 가서야 멈춘다. 조설근 가계를 연구할때도 연구자들은 이런 방법을 써서, 어떤 이들은 그가 삼국시기의 저명한 정치가 조조의 후손이라고 말하며, 또 어떤 이들은 북송시대의 장군 조빈의 자손이라고도 한다. 이런 가문의 긍지는 자료가 부족해 그것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둘째치고,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조설근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지도 못한다. 본인이 알았다고도 할 수 없고 어쨌든 시대가 너무나 떨어져있지 않은가. 가문의 변화가 정말로 조설근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때라면 바로 명대 중후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때를 시점으로 삼아서 조씨 가문의 백년동안의 상전벽해를 회고하기로 한다.  

 

명나라 초, 조준(曹俊)이라는 사람이 요양땅에 왔다. 그는 지휘사라는 직책을 맡았는데 이것은 무장의 직위이며 자손에게 세습이 되었다. 조준은 이때부터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후손들은 이 직위를 이어받았고 대대손손 이곳에서 번성하여 뻗어나가 점차 이 지역에서 명망있는 집안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명대 중후기에 이르러 만족의 정권과 명나라 왕조사이에 전쟁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 조씨집안의 평화로운 일상과 부귀는 모두 무너져내렸다. 이 전쟁이 이 집안의 명운을 철저하게 바꾸어 놓게 된 것이다. 

 

서기 1621년 누르하치가 병사를 이끌고 요양을 공격했다. 당시에 이 곳에 주둔하여 성을 지키던 사람이 바로 조설근의 고조 조진언(曹振彦)과 그의 부친 조세선(曹世選)이다. 그들은 전투에서 패한 뒤 청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만주족에 편입 되었으며 황실의 노비가 되었다. 만주어로 이를 포의(包衣 : 만어 包衣阿哈의 준말)라고 부른다. 바로 이렇게 조씨가문에 매우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한족에서 만족으로, 그리고 장군의 가문에서 황실의 노비가 된 것이다.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명운을 겪었다. 병마와 군사가 어지러이 날뛰는 시대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조설근의 고조 조진언은 후에 청병을 따라서 산해관 안으로 진입했다. 그는 앞장서서 적진으로 들어가 용감히 싸웠고 많은 공로를 세웠다. 이로 인해 그는 부단히 지위가 올라서 몇 번의 지방관원에 임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 직위도 무관직에서 문관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많은 관원들이 조진언의 상황과 비슷했다. 조씨 가문의 진정한 번성은 바로 그의 아들 때부터 시작된다. 

 

조진언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중 큰 아들이 조새(曹璽)이고 그가 조설근의 증조부이다. 그의 부친과 비교해봤을 때, 조새는 황제로부터 훨씬 더 큰 신임을 받았고 중용되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주요하게 두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그의 개인적 재능이고, 두 번째는 황제와의 특수한 관계이다. 조새의 재능은 적지않은 자료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르기를 그는 무공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문학적 재능도 갖추었다고 되어있다. 물론 한 사람이 재능만 있다고 해서 조새와 같이 그렇게 좋은 운을 겪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와 황제와의 특수한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래 조새의 부인 손씨는 강희황제가 어렸을 때 그의 보모를 했던 사람이다. 청대에는 황제가 후대에 대한 교육과 보살핌에 관한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들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배치되는데 일상생활을 뒷바라지 하거나, 기초적인 교육을 시키게 된다. 손씨는 이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이 직위는 비록 화려하다고 말 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하루 종일 황제의 아이와 함께 지내며 빈번히 접촉하게 되고 이 황제의 아이가 커서 새로운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자기를 보살피며 키워준 사람들에게 보답을 하는 것이다.

 

이런 보답은 매우 빨리 찾아왔다. 강희황제가 즉위한지 2년 째 되는 해에 손씨의 집안에 매우 좋은 직위를 부여하게 되는데 바로 그의 남편인 조새가 강녕직조​2에 임하게 된다. 

 

강녕직조란 무슨 직위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황제의 의복과 장신구, 비단과 공단, 포목 등의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일을 하며, 또 비단과 공단, 포목들을 직조하는 것을 관리 감독하는 일이다. 이 직위는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서 청대에 와서 그대로 계승한 제도이다. 당송이래로 강남지역은 자연물산이 풍부하고 전쟁의 피해가 비교적 덜 미치는 이유로 점차 전국적인 경제의 중심 지역이 되었다. 황제의 수많은 생활용품과 소비재는 모두 이곳에서 마련하게 되었다. 이런 직위는 강남에만 모두 세 개였는데 강녕직조, 소주직조, 그리고 항주직조이다. 조설근과 관련이 밀접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저 강녕직조만 말하기로 한다. 

 

강녕직조의 등급이 비록 높은 것은 아니고 봉록도 많다고 할 수 없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 직위를 매우 좋아했다. 그 이유 중 가장 뚜렷한 것은 황제에게 물품을 구매해줄 때, 거기에는 엄청나게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직위가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것이고 또, 직접 황제를 알현하여 상주하면서 여러 상황들을 직접 설명하게 되므로 황제가 중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시대에 이런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조새가 강녕직조로 임명된 것은 매우 큰 행운이었다. 바로 이렇게 조씨가문은 요양에서 북경으로 옮겼다가, 또 북경에서 남경으로 옮기게 되었다. 조손(祖孫) 3대의 4명이 강녕직조를 역임했으며 남경에서 60년을 이어서 살았다. 

  

1 秦淮:남경 안을 흐르는 작은 강 

2 江寧織造 강녕:남경의 옛 이름, 직조:직물을 만들다

 

 

 

6a1b4643c95c5682c93ba12ab1050e06_151836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