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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벼리 작성일15-09-16 23:06 조회2,4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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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조와 소통(疏通)

 

김민경 

 

 

   일 년 동안 했던 활동보조 일을 마무리 지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달 뒤면 이 일을 완전히 그만둔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활동 보조 일을 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적어본다. 1년 동안 여러 명의 이용자들을 만났다. 정기적으로 만났던 이용자들도 있었고, 대타로 일을 하며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이용자를 옮기기 위해 힘을 써야 할 때도, 배뇨 문제를 도와드릴 때도 아니었다. 상대와 소통하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가장 큰 피로감을 느꼈다. 활동보조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상대와의 교류가 중요하다. 물론 여타 서비스업도 상대방과의 관계가 중요하긴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서비스업종들은 손님을 응대하는 매뉴얼이 일정 부분 정해져 있다. 대부분은 매뉴얼대로 시행하되 가끔 예외상황이 발생할 뿐이다. 그러나 활동보조 일은 예외상황 투성이다. 이 일은 농사를 짓는 것과 비슷하다. 농부에게는 해야 할 일의 목록들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날의 토질과 날씨와 바람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수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단일한 매뉴얼에 따라 시행되지 않는다. 활동보조 역시 해야 할 일과 기본적인 규칙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같지는 않다. 이것은 철저히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그날 몸 상태, 기분, 전날 먹었던 것들 같은 구체적인 상황들에 따라 서로의 감정도, 해야 할 일들도 바뀌곤 한다. 

   때문에 활동보조의 일은 이용자와 대화하면서 결정된다. 밥 먹는 것 하나, 옷 고르는 것 하나도 서로 말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통’은 이 일의 주 키워드다. 그러나 나는 활동보조를 하면서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종종 느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도 여러 경우가 있다. 상대와 취향이나 코드가 전혀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문자 그대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낯선 언어를 쓰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 그렇다. 전혀 낯선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소리가 해독불가일 때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고 소통불가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가 바로 이렇다. 지금은 인기가 좀 식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 전체가 ‘소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때 소통에 관한 책과 강사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말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해야 한다고. 대화를 통해서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라고. 그러나 그들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에서는 어떻게 소통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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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토요일에 활동보조를 하고 있는 이용자 분은 말씀을 하지 못하신다. 지적장애도 아니고, 문자도 잘 알고 계신다. 그렇다고 청각장애인도 아니다.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소리는 낼 수 있으시지만, 그 소리를 한국어 발음으로 잘 구현해내지 못한다. 그분이 내실 수 있는 소리는 “아”, “어”, “우”, “으” 같은 모음 몇 개 뿐이다. 그래서 소리가 마치 어린아이가 단어를 익히기 전과 같다. 그래서 우리 사이는 눈치껏 이루어지는 지시와 손짓으로 이루어진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휴대폰 메모기능을 통해 필담(?)을 나누곤 한다. 이렇다 보니 옷 하나를 찾는데도,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데도 남들의 몇 배는 시간이 걸리곤 한다.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들만 하고 있다.   

   여름쯤에 일했던 이용자 역시 말을 하지 못했다. 이용자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지적장애 친구였다. 이 친구의 인식능력은 1,2살 정도라 그 나이 또래들처럼 단어나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 종종 그 친구는 정체 불명의 소리를 질렀다. 기분이 좋을 때도 그랬고, 때로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혹은 나를 만만하게 볼 때도 그랬다. 마치 아이들이 기쁠 때나 화날 때, 떼쓸 때 그러하듯 말이다. 그 모습이 귀여울 때도 가끔 있었지만, 그 친구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의 신체는 사춘기 끝물을 향해가고 있는 어엿한 청소년이었다. 이렇게 또래인데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니. 이런 사람이랑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 맺을 수 있나. 처음에는 상당히 말도 걸어보고 노력해봤지만, 헛수고라는 생각에 곧 그만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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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通하지 않는 소통? 

 

 

   두 이용자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들은 어떤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언어가 아니라는 점이 나를 답답하게 하지만 말이다. 토요일 이용자는 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나 혹은 내가 말을 알아들었을 때도 종종 탄식 같은 것을 내뱉으신다. 그 탄식은 감탄사가 아니다. 진짜 낯선 어떤 ‘소리’다. 그래서 그 소리를 지면에 옮길 수가 없다. 그 소리는 내가 들어봤던 그 어떤 언어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힘이 들었다. 그들의 소리가 다분히 과장스럽고 철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어린 아이가 칭얼대는 것처럼 느껴져서 피로했다. 어린아이라면 귀엽게 봐 줄 수도 있겠지만, 이용자들은 다 큰 성인이었다. 나에게는 성인이라면 모두 정상적이고 체계적인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 극히 정상이며, 그런 사람들과만 소통할 수 있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소리가 단순히 소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소리는 분명히 어떤 ‘말’이었다. ‘말’이 무엇인가. 의미를 담고 있는 소리가 바로 말이다. 이들이 내는 소리는 분명히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금 네가 가져오는 옷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어제 늦게 들어와서 피곤하다.” “라면을 끓여줘.” “오늘은 날씨가 흐리네.” “이거 재밌어” 등등. 단지 이 소리들은 체계적으로 언어화되지 않은 소리들이었을 뿐이다. 활동보조를 하는 내내 이런 소리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소통을 가로막은 것은 이용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용자의 소리를 ‘말’로 듣지 못한 내 불찰 탓이었다. 오직 정상적이고 체계적인 언어로만 소통가능하다고 믿었던, 소통하려는 의지를 내지 않았던 내 오만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제야 소통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결국 말이 같아야만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우리는 같은 말을 쓰는 사람끼리도 소통이 되지 않음을 느낀다. 우리는 평소 하던 대로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의 말도 습관적으로 이해한다. 그 사람의 말에 최선을 다하여 귀를 기울인 적은 아마 극히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습관적으로 대화해도 딱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동보조를 하면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습관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통이란 완전히 낯선 말을 하는 상대와도 가능한 것이다. 전혀 해독할 수 없는 소리에서 의미를 건져내려고 애쓸 때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고자 부단히 애쓸 수 밖에 없다. 전면적으로 상대를 읽고, 느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같은 소리를 내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동물과도, 식물과도, 세상과도 소통 가능하다. 서로가 서로의 소리에서 진정 말하고 싶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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