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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활보! | 짧은 만남과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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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벼리 작성일15-09-16 23:18 조회2,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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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이별

 

 

박시연(감이당)

 

   나의 이용자는 올 초 신촌 세○○병원에서 한달새 두차례 척추수술을 받았다. 목 앞과 뒤에 철심을 박아서 비뚤어진 척추를 잡아주는 수술이었다. 엉덩이뼈와 골반뼈를 깎아내서 철심과 척추가 붙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언니 몸에는 총 네군데의 수술자국이 생겼다. 수술을 마친 언니의 몸에는 피고름이 뭉치지 않도록 밖으로 빼낸 호스와 오줌 줄, 몇 개의 링거, 목지지대 등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똑바로 누워있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했다. 잘 먹지도 못해 몸은 비쩍 말라갔다. 하루 세끼 먹은 밥보다 약이 더 많아보였다. 다크서클은 점점 더 짙어졌다. 힘들어 하는 언니를 보면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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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 수술을 받은 후, 이용자는 많이 힘들어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서 신경외과에서 재활의학과로 이사를 했다.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언니의 몸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컨디션을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는 듯 언니의 몸은 나날이 좋아졌다. 소화도 잘 되는지 챙겨주는대로 잘 먹어 하루하루 기력을 회복했다. 항상 숙이고 있던 목을 똑바로 펴고 앉더니, 양반다리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혀 일어서지도 못했던 언니는 잡아주면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숟가락도 못 잡던 언니가 혼자서 밥을 먹었다. 2월 10일이면 퇴원을 해서 통원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된 언니는 무척 기뻐했다. 나도 좋았다. 뇌병변 1급 장애의 몸으로 무시무시한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가마니처럼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하는 그 긴 시간을 잘 견뎌주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한편 언니가 자유로워진만큼 활동보조의 일도 좀 편해질테니 좋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입원하기 전, 수술하고 몸이 좋아지면 같이 인권강의 교육을 받아서 돈도 벌자고 했던 계획도 곧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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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언니는 기력을 회복했고, 언니도 나도 기뻤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게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가보다. 그동안 쌓아왔던 언니와의 관계도, 글로 밥을 벌어먹을 때까지 활보로 생계를 꾸려나가겠다는 계획도 물거품처럼 날아가버렸다. 퇴원을 이틀 앞둔 일요일 밤, 이용자 언니의 친언니가 활보를 그만 둬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천청벽력같은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활보가 이렇게 불안정한 직업이었나. 사람과의 관계가 “오늘까지만 나오라”는 명령으로 뚝 끊어질 수 있다니 놀라웠다. 큰언니는 현재 세명의 활보가 돌아가면서 언니를 돌봐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활보 두명정도가 전담해서 그녀를 돌봐주기를 원했고, 그 두명은 살림살이에 능숙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마침 그런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뭐, 부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원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이 섭섭했다. 이용가치로만 따진다면 그동안 우리가 나눈 시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활보와 이용자의 관계는 효용성을 따지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 몸 구석구석을 만지고, 씻겨주고,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여주고, 똥을 싸면 나오는 치루를 밀어 올려주는 일까지 은밀한 신변처리 등을 하면서 이용자와 활보의 몸은 골고루 섞인다. 내 몸인 듯, 네 손인 듯, 내 침인 듯, 네 밥인 듯 나누고 섞이는 과정에서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이성적 판단에 앞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는데는 어눌한 언니의 말투도 한 몫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일상의 대부분은 말이 필요 없었다. 말보다 몸이 먼저 필요한 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말은 농담을 하거나 옛날 이야기를 들려줄 때, 누구를 흉볼 때 필요했다. 그래서 절대 빠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천천히, 씹듯이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니의 더듬거리는 말은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필요를 넘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란 친구를 말한다. 언니와 만난 6개월은 낯선 친구를 사귀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활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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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와 이용자의 관계는 효용성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맞다. 좀 그런 것 같다. 나는 활보를 통해 돈도 벌고,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재미까지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그 쏠쏠한 관계를 놓치게 된게 못내 아쉽고 섭섭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의 섭섭함 때문에, 그동안 언니 덕분에 내가 누리게 된 기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마음은 그동안 내가 누리던 감정과 돈벌이 둘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누리던 복이니 내 것이고, 앞으로도 그것은 내 것이어야 한다는 이기심 말이다. 

   우연하게 만난 것처럼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인연이다. 속은 쓰리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 그것은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투덜거리는, 내 몸만 상하게 할 짓은 오늘까지만 해야겠다. 활보 첫 글이 ‘이별’이라니 무척 뜻 깊다. 이용자 언니가 건강해진 몸으로 일도 하고 돈도 버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덕분에 나의 자립도 위태로워졌지만, 이별의 충격이 좀 가시고 나면 새로운 일이 나타날 거라고 믿는다. 이용자 언니 역시 나 없이도 잘 살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이 예정된 일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이별도 이미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찾아온 이별에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해야겠다. 그것으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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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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