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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활보! | 우리 친구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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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순2 작성일15-10-01 13:45 조회2,674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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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요?

 

 

능금 (헐투어 인턴사원)

 

 

 

 

3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다니던 일자리를 그만두게 되었다. 병을 핑계로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감이당 공식일자리(?)인 활보(장애인활동보조의 줄인 말이다)를 하게 되었다. 장애인활동보조란 말 그대로 중증장애인들의 일상생활(활동)의 모든 일들을 돕는(보조) 일이다. 작년에는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일을 했지만 올부터는 형편상 본격적으로 생계형 마인드로 일을 해야 했다.(^^;;;) 이런 고민을 할 때 쯤 이 사람을 만났다. 이용자(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H’이다. 올 2월부터 주 6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함께 한다. 현재 집에 있는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고 있다.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 준 이 사람을 지금부터 소개하겠다.

 

 

 

 H 를 소개합니다!

 

H는 30대 초반의 미모의 여성이다. 장애가 시작된 건 20대 중반 호주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였다. 졸업을 10주 남겨놓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등 뒤로 참을 수 없는 통증과 함께 왼손 두 번째 손가락부터 마비 증상이 나타나더란다. 그러더니 30분 만에 목을 제외하고 전신으로 퍼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척수에 염증을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급성횡단성척수염’이란 진단을 받고 H는 순식간에 장애인이 되었다. H처럼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을 중도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는 10%이며, 나머지 90%가 중도장애인이라고 한다.

평소 H와 같이 생활하다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인다. 6년 전에는 목 밖에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꾸준한 재활운동을 통해 어깨와 팔까지 움직일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장점 덕분이다. H는 지금 장애인식개선 강사와 인권 강사 그리고 안양시 장애인 수영대표 선수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또 손가락은 움직일 수는 없지만 손목과 손바닥을 이용해서 핸드브레이크로 운전도 잘한다. 그래서 강의가 있는 날이면 이곳저곳으로 나를 태우고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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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교육에 대해 강의하는 H

 

 

 

그녀를 만나기 전 보통 이런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누구나 그때를 떠올리며 상처 속에서 살아가던지, 아니면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살아가던지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H는 그 기억을 유머로 바꿔버리는 재주가 있다. H에게 그 기억은 상처나 아픔이 아닌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중에 한 부분이라는 듯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으로 볼 수 있기에 마지막에 분위기를 전환하는 센스까지 보여준다. 강의 때 이야기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이상해 병원에 가려고 했어요. 짜파게티를 끓였죠. 아침으로 먹으려고. 제가 짜파게티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하하. 그런데 등이 너무 아픈 거예요. 누가 때린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래서 침대로 가서 겨우 누워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죠. 아프다고 하니까 엄마는 잠을 잘못 자서 그런 것 같다고 우선 끊어보라고 하는데 손에 마비가 시작돼서 전화를 끊을 수 없는 거예요. 엄마가 전화를 끊고 호주에 살고 있던 지인한테 전화를 해서 구급차가 도착했어요. 저보고 일어나 앉아보라고 하는데 움직이질 못하니까 바로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주더군요. 그런데 그 상황에 계속 웃음이 나오는 거예요. 이게 뭐지 라는 생각에. 그런 저를 보고 간호사는 10분에 한 번씩 물어봤어요. 이름이 뭔지,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를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궁금하지 않아요? 제가 짜파게티를 다 끊였는지 못 끊였는지? 등이 아파서 울면서 끝까지 짜파게티를 다 끊였다는 사실! 아쉽게 한 젓가락도 먹지는 못했지만요. 하하하”

 

물론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가진 H에게도 힘든 시간은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휠체어를 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때문에 3년이라는 시간을 집안에서 보내야 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장애인복지에 관심이 생겼고 그 후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다. 앞으로 장애인복지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H는 오늘도 부지런히 공부 중이다.

 

H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냐고 묻는 말이다.(장애를 갖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을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극복은 무슨 극복…. 그냥 하루하루가 지나가다 보니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거죠!” 라고.

 

 

 

 

 

H는 작년 가을부터 엄마와 떨어져 옆 아파트로 독립을 했다. 아직은 많은 부분을 엄마한테 의존하지만 완전한 자립을 위해 노력 중이다. 도움이 필요한 몸으로 독립을 결심하기까지는 아마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H는 웃으며 말한다. “손가락 한 개만이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생활의 질이 확 달라질 텐데 말이에요.” 이 말은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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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와 이용자 친구 그리고 나

 

 

H는 작년 재활상담사 교육에서 알게 된 2살 위의 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이 언니 또한 척수장애를 갖고 있는 중도장애인이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걸을 수도 있고 한쪽 팔을 움직일 수 있다. (한 팔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똑순이다.) 그래서 낮에는 활보인 내가, 저녁에는 언니와 함께 홀로서기를 연습 중이다. 아마 자립 중에 제일 큰 부분은 경제적인 부분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H는 3년 전부터 장애인식 강사와 인권 강사로 활동 중이다. 아직은 한 달에 많아야 6-7번의 강의 다니며 받는 강사료가 수입의 전부다. 이 돈으로 생활하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알뜰하게 살림을 해나간다.

 

H와 함께 일한지도 8개월이 흘렀다.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또 장애인식개선 강사들과 인권강사들 (여기서 활보활보를 쓴 정경미 쌤과 친분이 있는 분도 만났다.^^) 그리고 다양한 활동가들과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 등 H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관계가 아닌 이 다양한 관계를 함께 친구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하니 마치 갑을관계(?)로만 느껴져 힘들던 일들이 조금씩 편안해져 갔다. 사실 이런 편안한 마음은 자주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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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을 위해 공부를 하는 이용자와 친구들

 

 

하지만 비겁(사주명리에서 형제, 자매나 친구를 뜻함)이 아주 약한 나에게 이런 만남들이야 말로 다양한 비겁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다른 입장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상황들을 좌충우돌 해쳐나가는 모습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하고 싶다.

 

 

댓글목록

파랑소님의 댓글

파랑소 작성일

우와! 활보활보글이 몇개월 만인지~ 다시 능금언니가 스타트를 끊었군요ㅎㅎㅎ 언니 아버님의 출근길을 책임지더니 이제 새로운 이용자를 만났구나~ 능금언니 이용자언니랑, 이용자 친구분이랑 왜이렇게 잘어울리는거 ;-) 언니가 즐거워보이니 보기 좋다! 언니 앞으로 연재 기대할게요~

시연님의 댓글

시연 작성일

히야오~~~언니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활보글을 올리다니 무척 감격스럽구먼~ 이제 시작은 했으니깐 꾸준히만 하면 되겠당. 추카추카혀요. 언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관계가 아닌 ' 친구 사이로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능금 홧띵!!

만수님의 댓글

만수 작성일

“극복은 무슨 극복…. 그냥 하루하루가 지나가다 보니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거죠!”
우왓! 이부분이 확 다가오네요.
능금샘의 데뷔(!) 축하드려요~~~ ㅋㅋ

jeanlee님의 댓글

jeanlee 작성일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저도 "극복은 무슨 극복......"이란 말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걸요. H샘도 능금샘도 모두들 화이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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