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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정치를 말하다 | 후쿠자와 유키치와 일본이라는 신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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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7-09-06 07:00 조회2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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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 일본이라는 신체 - (2)

​김태진

 

생각건대 정부의 기능은 외과수술과 같고
 학자의 이론은 양생법과 같다.
 그 쓰임에 늦고 빠름, 완만하고 급함이 있으나,
 둘 다 사람의 몸을 위해 불가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

외과수술과 양생법

그렇다면 후쿠자와에게 건강한 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 후쿠자와에게 정부와 인민 사이의 균형이라는 문제의식은 1876년의 「학자안심론(學者安心論)」, 1885년의 「학문의 독립」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후쿠자와는 학자들이 모두 정부에 들어가려고 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했으며, 이는 위로부터의 통치를 만능으로 여기는 유교적 치국평천하 사상의 일종이라고 보았다. 후쿠자와는 정치로부터 독립해 중론을 변혁시키는 것이 학자의 직분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는 메이로쿠 잡지의 학자직분론 논쟁에 대한 답변격인 「학자안심론(學者安心論)」이란 글에서 ‘평민의 정(政)’과 ‘정부의 정(政)’을 구별한다. 후쿠자와는 정(政)이라는 글자가 정부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평민의 정’, ‘인민의 정’이 ‘정부의 정’에 비해 몇 배나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민권론자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일국의 문명은 ‘정부의 정’과 ‘인민의 정’ 양자로부터 그 마땅함을 얻어 서로 도와주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는 것”이라는 발상인데 이는 앞서 본 정부와 인민 간의 균형이라는 시선이 연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쿠자와에게 이것이 하나가 되는 순간, 즉 지식인이 정부의 통치로 매몰되는 순간 수평적 관계는 이뤄질 수 없다. 따라서 적당히 소원한 관계가 필요한데, 이때 소원함은 서로 적대시하거나 경원하는 관계와 다르다. “정부와 인민이 서로 소원해지면 기맥(氣脈)이 통하지 못해 반드시 불화를 낳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필경 생각이 미치지 못한 논의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소원함이란 서로 원격해 적시함을 말하는 것이나 경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소원함은 가까이하는 술(術)이고, 떨어졌다 합하는 방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상은 국가라는 신체가 걸린 질병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다른 지점을 보인다.


생각건대 정부의 기능은 외과수술[外科の術]과 같고 학자의 이론은 양생법[養生の法]과 같다. 그 공용(功用)에 지속완급(遲速緩急)이 있으나, 공히 인신(人身)을 위해 불가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부와 학자의 공용이 한 쪽은 현재와 관련되고 또 한 쪽은 미래와 관련된다고는 하지만, 그 공용이 크고 나라를 위해서 불가결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다만 일대 긴요한 점은 이들이 서로의 기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돕고, 서로 자극하며 격려하면서 문명의 진보에 티끌만한 장해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1962, 『문명론의 개략』, 88쪽


‘외과수술’과 ‘양생’의 유비는 후쿠자와에게 줄곧 반복되는데, 여기서 현재를 위한 치료법으로 당장의 외과수술과 미래를 위한 치료법으로 양생술이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돕고 서로 자극하고 격려하며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으로 설정된다. 이는 후쿠자와가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을 구별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그는 술꾼이 말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이 병의 원인이 낙마라 해서 허리에 고약을 붙이고 오직 타박상에 대한 치료법만 쓴다면 그를 졸렬한 의사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낙마는 다만 그 병의 근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다년간의 음주로 건강을 돌보지 않아 이미 척추가 쇠약하고 그 증상이 막 생기려고 하던 터에 공교롭게도 낙마해 전신에 충격을 받아 반신불수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병을 치료하는 법은 우선 술을 금하고 병의 원인이 된 척추의 쇠약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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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인(近因)’과 ‘원인(遠因)


이는 문명과 국가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신체관을 크게 근대적 건강법과 전통적 양생술의 차이로 구별해 본다면, 외과수술보다 양생이, 눈앞의 치료보다는 근본적인 병의 치료가 그의 논리 속에서 강조되고 있다. 균형으로 건강을 이야기하고, 불완전한 문명을 논하며, 병의 근본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 것 속에서 그의 논리가 동일하게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쿠자와는 『학문의 독립(學問之獨立)(1885)이라는 글에서 이 논의를 좀 더 진전시키고 있다. 학자의 역할을 양생의 도리로, 정치가의 역할을 의사의 치료로 보고 있는 부분이다. 앞서 내양과 외자가 이 글에서는 ‘섭생’과 ‘치료’로 변주되어 전개됨을 알 수 있다.


학문도 정치도 그 목적을 찾는다면 공히 일국(一國)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해도, 학문은 정치가 아니고 학자는 정치가와 다르다. 다른 까닭은 무엇인가. 학자의 일은 사회(社會) 금일의 실제에서 멀리 떨어지고, 정치가의 일은 일상 인사(人事)의 충(衝)에 맞서는 것이다. 이를 비유하면 일국은 일인의 신체(身體)와 같은 것으로, 학자와 정치가 공히 이를 지켜, 정치가는 병에 맞서 치료에 힘을 쓰고, 학자는 평생의 섭생법을 주는 것과 같다. 개벽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덕(智德)이 공히 불완전한 인간사회는 일인의 신체 중 어느 부분이든 반드시 아픈 곳이 있다. 치료에 임하는 정치가의 번망(繁忙)함은 이전부터 알 만하다. 그러나 학자가 평생 양생의 법을 말해 사회를 경고한다면 혹 그 병을 미연에 방지하고, 혹은 가령 발병에 이르러도 큰 병에 이르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 1958,  『후쿠자와 유키치 전집(福澤諭吉全集)』5권, 岩波書店, 369쪽


앞서 『문명론의 개략』에서 ‘십전건강’과 ‘대환건강’을 구별했듯이 이 글에서 역시 인간의 신체는 불완전해 어느 부분이 아플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때 건강을 지키는 법은 크게 ‘치료’와 ‘섭생’ 두 가지로 이것이 학자와 정치가의 역할에 비유된다. 둘 다 일국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목적을 같이 하지만 둘이 구분되는 지점은 정치가가 병에 맞서 즉각적인 치료에 힘쓴다면, 학자는 평생에 걸친 양생법으로 병이 나기 전에 예방한다. 후쿠자와는 개국 초 양이론으로 가득한 때 양학자들이 서양제국의 사정을 이야기한 것은 일본인의 개국에 양생법을 준 것으로, 이러한 양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결국 일본은 ‘쇄국양이병’에 폐사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학문의 효력이 이처럼 크다 해도 현실의 당면한 문제에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후쿠자와는 이를 섭생학 전문의가 병의 치료에 적절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 말한다. 따라서 학문과 정치의 쓰임새는 전적으로 분리해 서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즉 병에 걸렸을 때 필요한 것이 정치가라면 평생 지켜야 할 양생법을 제공하는 사람은 학자라는 것이다.

후쿠자와는 국가라는 새로운 정치적 신체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는 기존의 황통만이 존재하는 신체도 아니며, 단순히 인민이나 정부 어느 한 쪽에만 쏠리는 신체도 아니었다. 후쿠자와의 정치적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중(偏重)의 병’에 빠지지 않기 위한 균형이었으며, 그는 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동안 부재했던 외부의 자극을 강조했다. 그가 양생의 비유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평생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학자가 담당해야 하는 외부의 비판이라는 직분이었다. 그는 적절한 자극이 있을 때 신체는 더 건강해진다고 믿었고, 이는 후쿠자와의 개인적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1870년 후쿠자와는 발진티푸스, 흔히 장질부사, 염병에 걸렸는데 이는 그의 생에 중 큰 병으로 기억되어 자서전 최후에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의사 이야기를 들어도 별 소용없이 2~3년 치료되지 않았고, 생각을 바꿔 소년시대와 같이 일부러 춥게 생활하는 등 생활습관을 바꾸니 몸이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병의 근본 원인을 살피고, 이를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체험한 그에게 지식인의 역할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새롭게 착상된 것일지 모른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을 치료를 하는 ‘개업의’가 아니라 병을 진단만 하는 ‘진찰의’라고 말한다. 후쿠자와에게 건강은 전통적 의미에서 기를 보존해야 한다는 양생론적 차원이 형태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노출시키는 적극적 형태로 변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단순히 외과수술적인 방식으로 눈앞의 병의 증상만을 고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건강이란 내부와 외부의 균형을 이루어 병의 근본원인을 고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단순히 민권론이냐 국권론이냐의 이분법적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균형이라는 세계관 자체야말로 그의 사고의 핵심적인 축을 이루는 것이었다.


 
균형으로서의 국가

그렇다면 후쿠자와의 국가관은 흔히 이야기되듯 강한 국가의 상이라기보다는 균형 국가의 상으로 볼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후쿠자와에게 강한 국가란 균형 잡힌 국가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후쿠자와의 이러한 균형에 대한 강조는 이후 글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절충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운동’과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균형은 무게중심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균형을 잡는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한 중심점이 될 수도 없다. 이는 역동적인 힘의 움직임을 느껴가며 그 속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계속적으로 미묘한 줄타기를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이때의 균형이란 ‘산술적’인 의미의 동등함과 달리 ‘관계적’인 의미의 공평함과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어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고정된 상태라기보다 오히려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과정 자체로서의 생명의 논리와 닮아있다. 이 때 건강이란 ‘진동하는 균형’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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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힘의 움직임을 느껴가며 그 속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계속적으로 미묘한 줄타기를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흔히 후쿠자와의 사상이 변했다고 평가되는 부분은 어쩌면 이 감각의 문제에서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균형감은 시세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후쿠자와의 사상은 권력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현실주의라기보다 고착화된 이념주의에 반대되는 의미의 ‘현실주의(realpolitik)’에 가깝다. 그는 시기에 따라 민권을 강조할 때도 있고, 반대로 민권이 힘을 얻은 시기에는 오히려 국권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국권이나 민권 그 자체를 중요시해서는 아니다.

 

즉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해서 국권론의 입장에 섰다거나, 인민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해서 민권론의 입장에 섰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균형이 국가라는 신체에 건강을 담보할 수 있는 일차적 조건이었고, 주어진 외적 환경 속에서 어느 한 면을 강조함으로써 균형을 달성하고자 했다. 따라서 후쿠자와가 처음부터 국권론적 입장에 서서 민권론을 말했다고 평가하거나, 민권론에서 국권론으로 돌아섰다는 전향의 낙인을 찍는 것은 이분법적 이해에 빠져 그의 균형적 사고를 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다른 국가와의 균형이라는 사고가 그의 시야에 들어오면서 정부와 인민, 정치가와 학자 사이의 내부적 균형은 깨져 버린다. 이때 외부의 국가에 대한 관계에서는 인민이 외부의 자극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국가 자체와 동일시하는 관계로 들어가 버린다. 이는 실질적으로 국권론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 그런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바깥과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 또 다른 균형을 찾는 작업이 이어지는 것이라 보아야 할지 모른다.

※ 이 글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건강’을 읽는다: 메이지 일본의 정치사상과 신체관」,

  『한국일어일문학회』 제100집, 2017년 3월에 실린 글입니다. 참고문헌이나 각주는 원글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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