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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정치를 말하다 | 메이지 헌법의 구성과 신체성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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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4-18 07:00 조회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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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헌법의 구성과 신체성 - (1)

 

 

 

 

김태진

 

 

 

 

통치의 대권은 천황이 조종(祖宗)으로부터 받아 자손에게 전한다.
입법, 행정 백규(百揆)의 일은 무릇 국가가 임어해서 신민을 진무하는 것이고,
이는 하나로서 지존이 모두 그 강령을 쥐지 않음이 없다.
비유하자면 인신에 사지백해(四支百骸)가 있고 정신(精神)의 경락(經絡)은
 모두 그 본원을 수뇌(首腦)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교주(校註), 『헌법의해(憲法義解)』

 

 

 

 

 

 

메이지 헌법에서의 신체

동양에서의 ‘통치(統治)’ 개념은 무엇인가? 결국 다스린다는 것은 일종의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상정하며, 이는 단순히 폭력의 차원이 아닌 결국 사람들은 왜 다스림에 복종하는가라는 합법성 내지 정당성의 문제가 뒤따른다.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다스림의 논리는 어떠했는가? 그리고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에서 근대국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통치 개념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본 논문은 이를 근대 일본의 통치성을 기초한 텍스트인 메이지 헌법과 교육칙어, 군인칙유를 통해, 특히 그 신체정치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한다.

헌법(constitution)이란 단순히 법제를 의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정체를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다. 어원적으로 보자면 constitution은 헌법이라는 말 이외에 체질, 건강상태를 의미하기도 하는 말이었다. 푸코는 헌법(constitution)이 어떤 시기에 형성된 가시적 법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힘의 관계나 비율의 균형과 작용, 안정적인 비대칭성, 알맞은 불평등 같은 것을 의미하기도 했음을 지적한다. 이는 18세기의 의사들이 ‘체질(constitution)’이라는 말로 신체의 힘의 관계와 균형을 의미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네그리와 하트는 ‘constitution’을 ‘헌법’이라는 뜻으로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신체의 창출을 의미하는 ‘구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헌법은 구성적 힘의 한 양태일 뿐으로 단순히 고정화된 법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헌법은 국가적인 것을 구성함에 있어서 그 안의 내재하는 힘들을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 낼 것인가 ‘구성’해낸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메이지 헌법(대일본제국 헌법, 1889)은 어떤지 살펴보자.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2조는 “황위(皇位)는 황실전범이 정한 바에 따라 황남자손(皇男子孫)이 이를 계승한다”, 3조는 “천황은 신성(神聖)으로서 침범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대일본제국을 만세일계의 신성한 천황이 ‘통치’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통치성(governmetnality)을 통치(government)의 합리성(rationality)으로 풀고 있는 푸코의 논의를 참조해 본다면, 통치라는 것은 단순히 무엇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합리화 과정을 거쳐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조문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신성성에 대한 강조이다. 즉 근대 일본에서 천황의 권위는 만세일계로 이어져 내려오는 남성적 황통에 근거하며, 침범할 수 없는 신성에 의한 것임이 강조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천황은 법적인 ‘인격’(person)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아 있는 신’, 즉 ‘아라히토가미(現人神)’였다. 근대 서구에서 군주의 정당성은 초월적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국민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고지하는 헌법을 통해 부여된다. 즉 군주와 국민들 간의 묵시적 약속을 통해 법적 인격성을 부여받음으로써 통치의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반면 메이지 헌법에서 천황은 그 자체가 신화적 성격을 띤다. 즉 천황이 근대 독일의 세속화된 법체계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메이지헌법의 기초자들은 ‘세속화’라는 문제를 누락해버린다. 즉 신성성이 통치의 근거로서 가부장이 집을 다스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천황의 통치가 주어진 것으로서 파악된다. 

이처럼 명문화된 조문 속에서 메이지 헌법은 신성국가, 가족국가의 이미지는 잡히지만, 신체로서 국가 이미지는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메이지 헌법에 각주를 단 『헌법의해(1889)』가 실마리가 된다. 메이지 헌법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 이토 미요지(伊東巳代治), 가네코 긴타로(金子堅太郎)와 함께 헌법 기초에 착수해, 1888년 완성시킨 것이었다. 이 때 각 조문에 해설을 추가한 설명서를 이노우에 코와시가 작성한 것이 바로 『헌법의해』(1889)다. 이는 같은 해 이토 미요지에 의해 영역, Commentaries on the constitution of the empire of Japan로 출판되어 구미의 학자들에게 기증되기도 했다. 이처럼 『헌법의해』는 메이지 헌법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이드가 되어주는 텍스트였다.

 

 

국가는 신체다

먼저 제1조의 만세일계의 천황론에 대해서는 일본의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을 명시하며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고 있다. 

 
무릇 토지와 인민은 나라가 성립하는 바의 원질(原質)로서, 일정의 강토는 일정의 방국을 이루고, 일정의 헌장이 그 사이에서 행해진다. 고로 일국은 일개인과 같고, 일국의 강토는 일개인의 신체[軆軀]와 같다. 이로써 통일완전의 판도(版圖)를 이룬다

─伊藤博文, 宮沢俊義 校註, 『憲法義解』(東京: 岩波書店, 1989), 23∼24쪽


이에 해당하는 영역본은 “Territory and a people are the two elements out of which a State is constituted. A definite group of dominions constitute a definite State, and in it definite organic laws are found in operation. A State is like an individual, and its territories, resembling the limbs and parts of an individual, constitute an integral realm.”으로, 여기서 일국의 강토는 ‘일개인의 신체[體軀]’처럼 통일되고 완전한 한나라의 영역을 이룬다. 이처럼 국가를 신체에 의인화하는 표현은 동서양에서 공히 자주 사용되던 방식이었다. 『고사기』에서도 일본 영토를 하나의 신체로 비유하는 표현이 등장한다. 천부신인 이자나키노미코토(伊耶那岐命)와 지모신인 이자나미노미코토(伊耶那美命)가 결혼 하에 낳은 자식이 일본을 이루는 8개의 섬으로 이 나라를 오야시마구니(大八嶋國)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의해』에서 신체로 근대국가의 경계(boundary)를 설정한 점은 이와 다르다. 여기서 하나의 신체로 표현한 이유는 일본을 오야시마(大八島), 엔기시키(延喜式)에서 말하는 66국 및 각 섬과 북해도, 오키나와, 오가사와라섬(小笠原諸)을 포함하는 통일완전성, 즉 국토의 경계를 설정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변경(frontier)과는 다른 설정으로 이로써 어떤 특정 정치권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외부적 한계를 지워줌과 동시에 내부의 단일성을 획득하는 기제가 등장한다. 이리하여 국가는 구시대의 왕국처럼 중심은 명확하되 주변부는 애매한 영역성을 지닌 정치체가 아니라, 명확한 영역으로서 경계를 갖는 정치체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여기서 국토는 국가의 지배 대상일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국가의 ‘신체’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파악하기 위한 ‘매체’가 된다. 이처럼 영토는 하나의 신체로서 통일완전성을 갖게 되어 하나로 인식된다.

이 영토의 통일완전함에 대한 설명은 통치영역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4조에 대한 주해에서 조금 더 본격적인 신체 유비가 등장한다. 메이지 헌법 제4조에서는 ‘천황은 나라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해 이 헌법의 조규에 의거해 이를 행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 영어 번역문은 “The Emperor is the head of the Empire, combining in Himself the rights of sovereignty, and exercises them, according to the provisions of the present Constitution”로 천황이 제국의 원수(머리/head)로 주권(sovereignty)을 그 자신(Himself) 안에서 결합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신의 경락은 모두 수뇌로 돌아간다

『헌법의해』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통치의 대권은 천황이 조종으로부터 받아 자손에게 전한다. 입법, 행정 백규(百揆)의 일은 무릇 국가가 임어해서 신민을 진무하는 것이고, 이는 하나로서 지존이 모두 그 강령을 쥐지 않음이 없다. 비유하자면 인신에 사지백해(四支百骸)가 있고 정신(精神)의 경락(經絡)은 모두 그 본원을 수뇌(首腦)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고로 대정(大政)이 통일되어야 함은 흡사 인심(人心)이 둘 셋이 되지 말아야 함과 같다.

─이토 히로부미, 26~27쪽

인신의 ‘사지백해(四支百骸)’는 ‘정신(精神)의 경락(經絡)’을 통해 통치권의 본원인 ‘수뇌(首腦)’로 돌아간다. 따라서 인심(人心)이 둘 셋일 수 없는 것과 대정(大正)이 통일되어야 하는 문제가 동일해진다. 천황을 수뇌로서 규정하며 주권이 한 곳, 『헌법의해』 영어 번역본에서는 ‘근원(primitive source)’으로 돌아가 통일되어야 함이 강조된다. 이러한 생각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문부성이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번역한 『주권론』(1883)이나 프란츠의 『국가생리학입문』(1884)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들은 홉스나 프란츠에게서 보이는 주권의 분리불가능성을 강조하며, 루소 사회계약론의 번역인 『민약역해』(1882)나 스펜서의 번역본인 『사회조직론』(1882) 논의를 가지고 와서 국회 개설 논의를 주장한 민권파들을 반박하고자 했다.

이때 모든 정신의 경락이 두뇌로 돌아간다는 서구식의 신체에 대한 사고가 주권의 논의와 맞물려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신체유비는 그리스와 중국의 신체관의 차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때 그 의미가 두드러진다. 즉 서양에서는 신체에서도 단일한 지배자가 온몸의 과정을 다스린다는 관념이 핵심적이었다. 그리스의 해부학은 두뇌 혹은 심장과 같은 중심들이 주변, 즉 근육이나 동맥들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동양에서도 맥(脈)이 서양 해부학의 신경이나 혈관과 유사하게 부분들의 운명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신경이나 혈관과 달리, 맥은 어떤 지배적인 근원이 없이 원운동을 형성한다. 맥은 어떤 자리에서 출발해 돌아오는 순환으로, 어떤 근원적 동력(originating motor)이나 근원적 동자(prime mover)를 갖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중국의 신체관은 그리스와 근본적으로 갈라진다. 해부학이 대두하기 이전에도 몸에 관한 그리스의 사고는 ‘몸의 지배 원리(archē)와 지배기관(hegemonikon)’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들을 제기해왔다. 반면 전통적인 동양의 신체관에서는 그러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의 경락이 수뇌로 돌아간다는 근대 서양의 신체관이 주권을 하나의 근원으로 파악하는 방식의 논거로 사용되고 있음은 이 시기 정치담론에 투영된 새로운 논리였다. 가령 메이지 초기 츠다 마미치(津田真道)가 군주를 뇌로, 백관유사를 신경으로 비유하며, 뇌와 신경의 관계가 착란을 일으키면 풍전, 즉 간질의 상태에 이른다는 노리를 보여주는 것이 그렇다. 이처럼 신체에서의 괴질이 되듯이, 백관유사들이 군주를 어지럽히면 괴상한 나라[怪國]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관은 당시 일본에 수용되었던 갈레노스 식의 사유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서양의 중세의학을 대표하는 갈레노스는 몸의 모든 기관이 뇌의 주재를 받으며 뇌는 몸 전체의 신경근육을 관장하는 중심 기관으로서 감각의 원천으로 파악한다. 갈레노스(129〜199)는 최초로 신경과 힘줄, 인대를 확실히 구분한 인물이었으며, 신경과 척수의 여러 부분을 절단하여 마비를 일으키고 관찰함으로써 뇌와 척수, 말초신경 기능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이는 뇌가 감정과 정신력의 근원이라고 하는 최초의 실험이었다.


 하지만 동서양의 신체관과 그에 따른 정치사상의 차이를 단순한 이분법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다. 여기서 정신의 ‘경락(經絡)’이라는 전통적인 용어 속에서 근대적 신경을 나타내고 있음 역시 마찬가지로 사유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 이 글은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6권 1호(2017)에 실린 글입니다. 자세한 주석이나 참고문헌은 그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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