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기 여성의 몸과 삶> 일상을 다시 보게 한 붕루 > 호모큐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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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生生) 동의보감 | <폐경기 여성의 몸과 삶> 일상을 다시 보게 한 붕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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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씨앗 작성일18-04-03 00:03 조회1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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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다시 보게 한 붕루

                                                                                                                                                                  권현숙

 몇 년 전, 40대 후반에 남들은 폐경기가 왔다 생리가 끊겼다고 하는데 나는 날이 갈수록 생리양이 많아졌다. 밤에는 수면패드를 가장 큰 사이즈로도 감당이 안 되는 날도 종종 있었고 생리기간도 일주일 이상 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면서부터 월경양이 많아서 좀 어지럽고 멍한 상태였다. 활동하던 단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순식간에 너무 많이 월경이 쏟아져서 방석 채 집으로 실려 간 적이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어질어질하고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그 상태로 119에 실려 가기 싫었다. 집에 먼저 가서 수습하고 병원에 가겠다는 생각에 남편을 급하게 호출했다. 그 상황에서도 붉은색 방석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안도했던 당혹감이란… 


  하혈이 멈출 때까지 며칠간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그 후 산부인과 검진과 한방치료로 그때처럼 순식간에 쏟아지는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생리양은 많고 빈혈도 심했다. 그 이후 5년 정도 지나서 작년부터 폐경이 시작되었다.


  폐경기는 흔히들 얘기하는 폐경 증상인 안면홍조나 식은땀, 심장 두근거림 등으로 시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폐경기를 공부하게 되면서 폐경전후에 오는 다양한 증상들을 통틀어 폐경기 증상이라고 한다는 걸 알았다. 수년전부터 나에게 찾아왔던 월경과다 출혈도 호르몬의 변화로 나타나는 폐경기 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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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 붕루
  『동의보감』을 공부하다가 내가 겪은 월경과다출혈과 똑같은 증상이 나와 있어 놀랐다. 월경을 할 때가 아닌데 피가 나오고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누하(漏下)라 하고, 갑자기 쏟아져 산(山)이 무너지는 듯한 것을 붕중(崩中)이라 한다. 이 둘은 양상과 정도만 다를 뿐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병증으로 보기 때문에 붙여서 붕루(崩漏)라고 한다. 산부인과에서는 월경과다출혈의 원인을 자궁근종이라고 진단하고, 힘들면 수술해서 제거하라고 했었다. 동의보감에서는 붕루의 원인을 어떻게 말할까?

붕루(崩漏)가 멎지 않는 것은 이전에 고귀한 신분에 있다가 세력이 떨어졌거나 전에는 부유했다가 빈궁해진 탓에 심기(心氣)가 부족하지만 심화(心火)가 몹시 치성해져서 혈맥 속으로 들어갔거나 … 이것은 병이 마음속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진찰이 잘 되지 않지만, 월경이 불시에 나오거나 혹은 나오자마자 멎기도 하며, 혹은 사납게 쏟아져서 멎지 않기도 한다.
                                                                                                                         허준,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454쪽

  우리 몸에는 기가 흐르는 길이 있다. 자동차가 운행하는 도로처럼 우리 몸을 순환하는 기의 도로를 경맥(經脈)이라고 한다. 여성의 순환과 긴밀한 경맥은 임맥(任脈)과 충맥(衝脈)이다. 임맥은 아랫입술 아래 승장혈(承漿穴)에서 몸의 앞면 정중앙을 지나 회음부까지 연결되는 맥이다. 충맥은 자궁에서 시작하여 사타구니를 돌아 척추를 따라 올라가고, 몸 앞쪽 중앙으로 올라가는 경맥이다. 혈해(血海)라고도 부르는 충맥은 오장육부의 기(氣)가 다 모이는 곳이다. 이렇게  매달 오장육부의 기혈(氣血)이 자궁으로 모여서 새로운 생명을 준비를 한다. 그래서 오장육부 기혈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붕루와 같은 증상이 생긴다. 


  신분과 부가 추락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일단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남루한 현실이 감당이 안 되어 슬프고 화나고, 억울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수많은 감정들이 오르락내리락하니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감정 상태는 심장의 화(火) 기운을 과하게 항진시킨다. 기(氣)가 망동을 하면 혈(血) 또한 제멋대로 움직이게 된다. 하여 월경이 불시에 나오기도 하고 나오다가 멎기도 하며, 갑자기 사납게 쏟아지는 등의 다양한 월경 불순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듯 월경은 일상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감정, 일, 생활 리듬이 월경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래서 월경의 문제는 삶을 돌아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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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루로 보게 된 삶의 패턴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서 붕루라는 증상이 왔을까? 갑자기 쏟아져 산이 무너진 듯하다, 라는 말이 가슴에 와서 콕 박힌다. 번 아웃이 될 때까지 나를 몰아붙이다가 결국 모든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삶의 방식이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런 방식의 시작은 10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대 때부터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공장에서 아주 긴 시간동안 매일 똑같은 단순노동을 수없이 반복하며 일해야 했다. 하루가 너무 길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루함을 견디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이런 생활에서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이 노조활동이었다. 노조활동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그 당시의 노조활동은 치열했고, 그 현장에서 나의 심장은 활활 타올랐다. 그런 격렬한 삶의 리듬은 나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나보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시작한 생활협동조합 활동에서도 심장의 화를 들끓게 만드는 방식으로 일을 했다. 새로운 일을 계속 벌이고 목표를 세워 밀어붙였다. 그것은 체력이 바닥나서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삶의 패턴은 일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독이란 우리가 좀체 포기하려 들지 않는 그 어떤 것이다.” 술, 마약, 음식뿐 아니라 일, 섹스, 관계 심지어 걱정까지 모두 중독의 대상이다. 중독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독은 우리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 우리가 우리 자신과의 접촉을 잃어버림에 따라 우리는 타인이나 세계와의 접촉 또한 잃어버린다.
                                                                                              앤 윌슨 섀프, 『중독사회』, 이상북스, 48~49쪽

 어떤 대상이나 일을 옳다고 생각하거나, 더 가치 있다고 꼬리표를 달아 놓기 시작하면부터 집착하기 시작한다. 좀 더 잘하기 위해서, 좀 더 완벽하게 하기위해 달려간다. 달려가다 보면 자신이 현실에서 실제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무시하게 된다. 일에 매달리느라 몸이 힘들거나 좀 아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괜찮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할 수가 없게 되니 관계는 꼬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욱 갈등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해결책 또한 ‘내가 뭔가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 라는 식이었다. 결국 중독이 깊어질 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 몸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했다. 월경 주기도 거의 몰랐고, 월경통과 월경 불순, 빈혈을 달고 살았는데도 여성들이 다 겪는 일이라 여기고 그냥 참고 살았다. 40대 중반부터 월경양이 많아지고 월경증후군이 심해지는 등 몸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무시했다.

  붕루는 내 삶에서 해소되지 못한 것들을 돌아보라는 적극적인 신호였다. 폐경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은 ‘우리 내면의 지혜가 호르몬 작용에 힘입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고 열정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노스럽,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한문화, 38쪽) 그래서 폐경기는 폐경 이후의 삶을 재정립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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