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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아플까? | 몸, 얽혀 있는 하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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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6-04-14 00:30 조회2,35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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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얽혀 있는 하나의 세계

 

 

신근영(남산 강학원)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그린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어릴 때 악마의 열매인 ‘고무 열매’를 우연히 먹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루피의 고무처럼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몸은 정말 유용한 무기가 됩니다. 고무고무 총을 외치며 팔을 쭈우욱 늘려 멀리 떨어진 적들에게 주먹을 날리기도 하고, 고무처럼 늘어난 다리를 채찍처럼 휘두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두 손으로 기둥을 꼭 붙잡고 팔을 늘려서는 고무고무 로켓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한답니다.

 

만화 『원피스』에는 루피 같은 능력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한 명이 ‘광대 버기 해적’입니다. 광대 버기 해적 또한 악마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 열매의 이름은 ‘동강 열매’. 루피의 몸이 고무처럼 늘어난다면, 광대 버기 해적의 몸은 팔이나 다리가 동강 끊어져 멀리 있는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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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와 '광대 버기 해적'


루피와 광대 버기 해적은 서로 다른 열매를 먹고, 서로 다른 능력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둘의 능력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몸의 각 부분이 따로따로 논다는 것입니다. 팔만, 또는 다리만 따로 늘리거나 떼어내 이용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요. 멀리 있는 물건을 집을 때 팔만 동강 떨어뜨려 잡아 오거나, 다리만 쫙 늘려 높은 데에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악마의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는 귀찮아도 떨어진 물건을 잡으려면 온몸을 움직여야 하고, 한 발 한 발 계단을 밟고 올라야 높은 곳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루피나 광대 버기 해적 같은 몸을 갖지 못했다는 건, 우리가 그저 좀 귀찮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하니까 말입니다.

 

 

두 발로 선 인간 

지금으로부터 1,000만 년 전, 지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답니다. 아시아 대륙에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이 생겨난 겁니다. 이 높디높은 산맥은 지구 대기의 흐름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적도의 따뜻한 공기가 산맥에 막혀 북쪽으로 올라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산맥 위쪽의 기온이 떨어지고 북쪽에는 빙하들이 생기는 바람에, 전 지구적으로 차고 건조한 기후가 되었답니다.

 

이런 기후는 아프리카의 숲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산맥이 생기기 전 습하고 따뜻한 기후에서 울창했던 숲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무들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초원이 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숲의 변화는 나무에서 살고 있던 한 동물에게 새로운 삶의 선택을 안겨주었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을 활보하는 새로운 생명체가 생겨난 겁니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두 발로 성큼성큼 걷는 동물, 바로 인간입니다.

 

허리를 똑바로 펴는 직립자세와 두 발 보행은 초원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선 허리를 곧추세우게 되니, 나무가 드문 초원에서 더 멀리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두 발 보행은, 네 발로 걷는 것보다 에너지가 덜 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더 멀리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 자유로워진 두 손은 두 발 보행이 준 가장 큰 이점이었습니다. 두 발 보행은 항상적으로 자유로운 두 손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이 덕분에 인간은 수많은 도구를 만들 수 있었고, 그런 기술들의 발전이 뇌의 발전들을 자극하게 되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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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자세와 두 발 보행을 하게 된 인간


하지만 직립과 두 발 보행은 이런 장점만큼이나 큰 문제들을 야기했답니다. 우선 똑바로 선 척추는 중력을 분산시킬 수 없었습니다. 네발로 움직일 때의 누워있는 척추는 중력을 골고루 받을 수 있지만, 직립에서의 척추는 한 곳에서 모든 중력을 견뎌야 했던 겁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허리통증이나 디스크 같은 척추 관련 질환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몸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발 보행은 좀 더 심각한 문제를 유발했습니다. 루피였다면, 상체만 쭉 피면 끝났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네 발로 걸을 때의 골반을 가지고는 두 발 보행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네발 보행은 위아래로 길쭉한 골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골반을 가지고 두 발로 걸으면 침팬지처럼 뒤뚱거리는 어설픈 걸음걸이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기에 두 발로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골반 또한 바뀌어야 했습니다. 위아래가 짧고 평평한 골반으로요. 광대 버기 해적이었다면, 두 다리를 동강 떼어내 아래쪽에 붙였겠지만, 인간은 다리뿐만 아니라, 이것과 연결된 골반 부분 또한 변해야 했던 겁니다.

 

짧고 평평한 골반으로 똑바로 선 상체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니, 우리 몸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되나요? 이런 상태에서 척추와 허리, 그리고 골반까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답니다. 짧아진 골반으로 인해, 출산 시 태아가 나오는 길인 ‘산도’가 좁아져 버린 겁니다. 더욱이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머리가 큰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더 좁은 길을 통과해서 태어나야 한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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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산도를 통과해야 하는 큰~ 머리

 

 

좁은 산도는 큰 머리의 인간에게 그 어떤 동물보다도 힘든 출산을 안겨주었습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알려진 침팬지는 네발 보행을 하기에 골반이 좁지 않습니다. 그래서 침팬지 새끼는 곧바로 산도를 통과해 비교적 수월하게 세상에 나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태아는 좁은 길을 빠져나오기 위해,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몸을 뒤틀어야 한답니다. 한 마디로 엄마도 아기도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겁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출산은 크나큰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출산 시 엄마나 영아 모두 사망할 확률도 굉장히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허리와 척추, 그리고 골반 쪽의 통증들, 또 크나큰 위험을 감수하며 이루어지는 고통스러운 출산. 이 모두는 우리가 루피나 광대 버기 해적 같은 몸을 갖지 못했기에 생기는 아픔이랍니다. 루피나 광대 버기 해적은 몸의 각 부분이 따로 변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가 변하면 이에 맞춰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요컨대, 우리 몸은 서로서로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몸의 한 부분에서 일어난 좋은 변화가, 다른 부분에서는 크나큰 부담을 주는 변화로 이어져 아픔을 주게 되는 겁니다.

 

 

얽힌 몸, 전 체계로서 생명 

서로 얽혀 있는 우리 몸의 모습은 진화라는 긴 시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지금 우리 가까이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요. 바로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던 한기범 선수나 배구선수 김병태 선수가 그렇습니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2m가 넘는 키에 남들보다 긴 팔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농구와 배구에 안성맞춤인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두 선수는 이런 신체조건을 이용해 코트의 중심에서 맹활약을 펼쳐 보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병태 선수는 22살의 나이에 심장 대동맥 파열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한기범 선수는 두 번이나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실 두 선수는 ‘마르판 증후군’이었습니다. 마르판 증후군의 경우, 마른 몸에 큰 키, 그리고 유난히 긴 팔다리를 갖지만, 이와 함께 심장 혈관에 이상이 동반됩니다. 키나 팔다리가 심장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지만, 두 부분은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 얽혀 있습니다. 키와 팔다리가 만들어지는데 관련된 유전자가 심장과도 연관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엄마 뱃속에서 처음 우리 몸이 만들어질 때, 이 둘은 서로 얽혀서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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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판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마른 몸에 큰 키, 유난히 긴 팔다리를 가지고 있다.

 

마르판 증후군처럼 하나의 유전자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형질들을 발생시키는 것을 ‘다면발현’이라고 합니다. 다면발현은 우리 몸 깊은 곳에서 어떻게 우리 몸이 서로 얽혀서 발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런 다면발현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가진 특징입니다. 초파리는 날개와 수명이 함께 가고, 닭은 깃털과 생식능력이 관련되며, 고양이나 인간의 경우에는 멜라닌과 같은 색소 형성이 청력과 연결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판다도 마찬가지랍니다. 판다는 식성에 적응해서 손목뼈가 늘어난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손목뼈가 늘어나자 덩달아 발목뼈가 함께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판다의 발에는 발가락처럼 생긴 것이 뽈록 튀어나와 있습니다. 물론 이 가짜 발가락은 별다른 용도가 없습니다. 단지 손목뼈가 늘어났기 때문에 생긴 것일 뿐이죠. 환경에 적응한 손목뼈 한 편에는 이처럼 적응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생물학자인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생명체의 이런 특징을 ‘전 체계’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모든 생명체의 몸은 단순히 부분들이 모여 이루어진 ‘집합체’가 아니라, 서로가 얽혀 있는 하나의 ‘전 체계’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의 변화는 다른 쪽의 변화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한 부분만의 변화만을 똑 떼어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직립보행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자 하면 척추와 출산의 고통을 함께 받아 안아야 하는 것처럼요. 하나를 선택하면 그와 얽혀 있는 또 다른 것들이 함께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이 생명은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전 체계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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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체계로서의 생명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전 체계로서 생명에게 아픔 없는 완전한 몸이란 불가능합니다. 살기에 적합하게 한쪽을 변화시키면, 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생기거나, 오히려 사는 데 불리한 것이 생겨버리곤 한답니다.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이 틀어져 버린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런 틀어짐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똑바로 서서 두 발로 걷는데 골반이 좁아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뒤뚱거리며 어색하고 힘들게 걸어야 했을 겁니다. 또 판다가 거추장스러운 발가락이 싫다고 손가락이 생기는 것을 막았다면, 아마도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해 무척이나 고생했을 겁니다. 그리고 한기범 선수와 김병태 선수. 만약 그분들의 아픔이 없었다면, 우리는 큰 키를 이용한 덩크슛이나 스파이크 대신에 다른 모습으로 활약하는 두 선수를 만났을 겁니다.

 

하나의 전 체계를 이룬 얽힌 몸에게 아픔이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픔이 싫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어떤 능력을 포기한다면, 그로 인해 또 다른 아픔이 생겨날 테니까요.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어떤’ 아픔을 겪을 것인가입니다. 물론 그 아픔의 선택은 삶에 유리한 능력을 선택하는 과정이기도 할 겁니다.

 

이처럼 생명이란 얽힌 몸을 가진 전 체계입니다. 한 생명체는 하나의 세계이고, 그 세계에서 나에게 유리한 한 부분만을 똑 떼어내 가질 수 있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루피와 광대 버기 해적은 말 그대로 만화에서나 가능한 것이지요. 그런데 잠깐, 왜 『원피스』의 주인공들이 먹은 열매에 ‘악마의 열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까요? 그건 생명이라면 불가능하다는 의미였을까요. 혹 그건 서로 얽힌 이 세계에서 오직 한 부분만을 갖고자 하는 그 마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댓글목록

애독자님의 댓글

애독자 작성일

생명은 하나로 얽힌 전 체계이다. 그래서 나에게 유리한 한 부분만을 똑 떼어 가질 수 없다. 살기에 적합하게 한쪽을 변화시키면 다른 쪽에 불리한 것이 생겨난다. 하나의 전 체계를 이룬 얽힌 몸에서 아픔이란 피할 수 없다. 우리 몸은 생존에 유리한 어떤 선택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다른 불리한 몸의 상태-아픔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난 주먹이 세다. 그러면 주먹으로 끝장 보려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게 얼마나 反생명적인, 어리석은 탐욕인지 알겠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주먹만 강화시키는 동안 어그러지는 삶의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 신체의 다른 부분은 병들게 된다는 것. 신체의 어떤 한 부분을 특권화시키는 것을 좋은 것처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군요. 그런 점에서 보면 천재와 미녀는 <극단적으로 치우친 신체>가 아닐까요? 엄청난 부작용과 후유증이 뒤따르는. 전 체계인 얽힌 몸의 조화와 균형이 완전히 깨진 상태. 후유... 특별하게 잘하는 게 없어서 나는 얼마나 다행인지, 다행인지!

송씨님의 댓글

송씨 작성일

글을 읽는데도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어요.^^ 심지어 손범수씨 목소리 환청까지 들렸다는ㅋㅋ  몸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 연재되어 너무 즐겁습니다! 글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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