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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큐라스

아파서 살았다 | 『에티카』가 들려준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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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심이 작성일17-10-10 09:50 조회2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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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 몸의 주인이 되자(2008~2017)

『에티카』가 들려준 복음​

오창희

 

후회의 진창에 빠져


힘들게 힘들게 을미년의 봄을 보내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온갖 망상들과 씨름하면서. 작년 가을 엎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이 고생을 안 할 텐데, 차라리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멍게를 안 드렸더라면……. 아무 쓸모없는 후회가 내 마음을 괴롭혔다. 슬그머니 원망도 올라오고. 지금 돌아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그런 마음이 들면 들수록 난 번뇌의 진창 속으로 빠져들었다.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마음은 심약해지고. 어쨌든 여기서 빠져나가야 내가 산다. 어머니의 말씀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그걸 믿고 싶었다. 한창 열이 나고 손발이 부어 병원에 가자고 말씀드렸을 때, 사람이 갈 때가 되면 누구나 열도 나고 손발도 붓고 갖가지 증세가 나타난다고. 지금 당신이 앓고 있는 병은 병원에 가서 나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던 그 말씀. 다만 내가 그걸 부정하고 싶었을 뿐. 어머니는 알고 계셨다. 이 모든 게 한 생명이 소멸해 가는 과정임을.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세상을 떠날 때는 누구나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앓거나 하는 과정을 겪게 마련이다. 아직 기력이 남아 있을 때는 나아서 일상에 복귀할 수 있겠지만, 기력이 임계점을 넘으면 복원력이 제로 상태가 되지 않을까.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도, 설사를 하신 것도, 그 상황들을 이길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해서 일어난 일인 것을. 평소의 어머니 같으면 그깟 멍게 따위를 먹었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일은 없다. 

 

어머니는 건강을 타고 나시기도 했고, 당신 스스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타고난 건강을 잘 유지하셨다. 백수를 누리시면서 한 번도 예방접종을 한 일이 없다. 자기 몸을 지키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는 게 지론이셨다. 전염병에 걸린 교사 부인들 간호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팔을 걷어붙이셨다. 아버지와 나는 음식의 신선도가 조금 떨어졌다 싶으면 먹질 않았다. 어머니는 그걸 먹으면서 꼭 덧붙였다. “사람 뱃속이 얼마나 뜨거운 줄 아나, 어지간한 거는 다 소독이 된다”라고. 예전에 닭을 잡아 보면 그 뱃속이 그렇게 뜨겁더란다. 그걸로 미루어 보아 사람의 속도 비슷하지 않겠냐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위생 관념이 강한 아버지와 나는 식중독으로 두드러기가 돋고 배탈이 나도 어머니는 끄떡없었다. 연세가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히 넘어져도 뼈에 금이 가는 일도 없고 어지간한 건 다 소화를 시키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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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어머니에게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들은 누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생로병사의 과정 중 소멸의 과정으로 가는 여정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어머니에게 일어난 것일 뿐.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거나 어머니가 조금 더 안 좋으시다는 말을 들으면 다시 그 혼란한 감정 속으로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필연성을 인식하는 자만이


그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가던 중, 『에티카』를 만났다. 대중지성 3학년 1학기 텍스트. 수학의 논증 형식을 띤 철학책. 수학, 특히 대수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더욱 더 낯설기만 한, 난수표 같은 형식의 책. 그런데 강의를 듣던 중, “필연성을 인식하는 자만이 자유롭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필연성을 인식하면 자유롭다고? 지금 이 상황이 필연적임을 인식하면 내가 자유로울 수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자연의 법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만가지 일들이 오만가지 양태로 일어난다고.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경험치 안에서만,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해서 인과를 구성하는 오류를 범한다. 태풍에 휩쓸려 수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하고, 그 중에서 누군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도 하고, 어제까지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 평생을 누워 지내기도 하고. 이런 모든 현상이나 사건들은 무수히 중첩된 인과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 그러니 그것이 어떤 일이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인식한다면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필연성 안에서는 그때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망상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건 우리 인간의 좁은 소견머리에서 헤아려질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어머니가 당한 이번의 사고와 수술 그리고 후유증에 시선을 고정시켰을 때는 좀처럼 평정심을 얻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일생으로 시야를 넓히자 현재를 전체적인 시간성 속에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이 시선을 우주 자연으로까지 확대시켜 주었다. 그 범위에 지금 어머니와 우리들 앞에 펼쳐진 이 상황을 위치시키자 같은 상황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특별한 나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한 생명체가 겪는 생로병사의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도 크게 위안을 얻은 일이 있다. 아버지가 여행지에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장례 기간에도 여전히 배가 고프고 잠이 오는 나를 보면서 ‘이래도 되나?’하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육체적 욕구 하나 제어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꽤 오래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인공 뫼르소가 자신의 변호사에게 “나에게는 육체적 욕구가 흔히 감정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해서 졸음이 왔었다”라고 말하는 구절을 읽고 이런 감정에서 좀 자유로워졌다.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에 회자되는 소설에서 그려 놓은 인간의 모습이라면 그건 보편적인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사람의 부모가 이런 상황이라면 보다 쉽게 납득이 갔을 거다. 그 정도 사셨으니 이제 생을 마감하시는 단계로 생각하라고 위로도 하면서. 그런데 내 어머니만은 그런 일을 겪지 않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번뇌를 일으킨다. 단순히 바람으로만 그친다면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 누구나 자기 혈육에게는 각별한 마음을 가지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니. 바람이 당위가 될 때 괴로움이 따른다. 바라는 것에는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어날 감정의 회오리를 감당하기가 두렵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인식하여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법칙 안에 우리가 살고 있고 그 법칙이 적용되는 범위를 무한대로 넓힌다면 그 안에는 인생사의 모든 것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스피노자를 잘못 이해했다 하더라도 당시 그건 내게 복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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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생신


그렇게 내 마음을 다독이며 중심을 잡으려 애쓰던 중, 어머니 생신이 다가왔다. 운전할 자신이 없어서 올케와 조카들을 따라 KTX를 타고 대구로 갔다. 어머니는 우리가 모두 모이자 그 힘으로 약간 생기를 내시는 것 같았다. 그 많던 살은 어디로 갔는지, 몸은 야윌 대로 야위어 있었다. 통화를 하면서 알고는 있었다. 어느 순간 열도 내리고 모든 부기가 빠졌다고. 그러나 눈앞에서 마주한 어머니의 모습은 참 낯설었다. 

침대에 누우신 어머니는 평온해보였다. 어머니 스스로 평온을 유지하고 계신다기보다는 어떤 생명의 불씨도 남아있지 않음에서 오는 고요함. 물체가 삭아서 소멸해갈 때 보이는 삭막한 고요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지난 3월에만 해도 어떻게든 해 볼 마음이 생길 만큼의 에너지는 있으셨다. 평소 좋아하시던 누룽지를 끓여 드리거나, 과일을 갈아 드리거나, 곶감 속을 긁어 드리면 조금씩 받아 드실 만큼.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마다하셨다. 겨우 한두 술을 뜰까 말까. 평소 어머니는 정말 식성이 좋으셨다. 1년 365일 삼시 세끼를 거르는 법이 없었고 규칙적이면서 양도 많은 편이었다. 물론 연세가 들면서 식사량이 줄기는 했지만 보통의 노인들보다는 잘 드셨다. 아흔 서넛쯤이었던 것 같다. 어느 해 여름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 동 몰따. 내가 다른 욕심은 별로 없는데 식탐이 좀 있제. 그걸 없애야 부처님이 데래(데려) 가실라는 동”이라고 하시며 일주일 정도 절식을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포기하신 적이 있을 만큼 식욕이 왕성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음식을 보고도 먹을 생각을 안 하시다니!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마저도 사라져버린 상태, 생명의 불씨가 꺼져버린, 물기라고는 없는 고목 같은 몸.

마른 몸과 반듯이 누운 모습이 측은하고 불편해 보였다. 어머니는 조금 높은 베개를 베고 늘 모로 누워 주무셨다. 반듯이 눕는 걸 불편해 하셨다. 그런데 살이 빠지고 기운이 없다 보니 모로 누운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욕창이 날까봐 뒤에 쿠션을 받치고 가끔 옆으로 눕히기는 하지만 다시 반듯이 누운 자세로 되돌아가곤 했다. “엄마, 이렇게 바로 누우면 힘들지 않아요?”라고 하자, “힘들면 눠(누워) 있어 내나? 안 힘드이께네 눠 있지.” 그런데도 내 맘은 불편했다. “엄마 살이 너무 빠졌네.” 다시 어머니가 대답하신다. “죽을 때 지 살 가주 가는 사람 없다.” 살아 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몸피를 그대로 유지한 채 죽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지금 어떤 여정에 있는지를 알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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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시간이 다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실 뿐 별 말씀이 없으시다. 내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자, 그제야 한 마디를 하셨다. “니도 하마(벌써) 가나?” 나는 하룻밤 자고 갈 줄 아셨던 모양이다. 눈시울이 뜨끈하다. 순간 망설여졌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혼자 서울까지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엄마, 갔다가 곧 또 올게요.” 작별을 하고 돌아서 오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조카와 올케에게 의지하며 진정시켰다.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도 꿋꿋하셨을까? 그 오랜 세월 내 간병을 하면서 내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도, 낙담을 하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을까? 내가 아는 한 나 때문에 상심해서 몸져누우신 일도 없었는데. 난 겨우 몇 달 간의 간병에 이렇게 지쳐 나가떨어지다니. 이게 정말 체력만의 문제일까? 내가 너무 어머니에게 감정적으로 매여 있었던 게 아닐까? 오랜 세월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정서적으로 어머니와 너무 밀착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어머니의 마음이 불편하면 내 마음도 따라서 불편해졌고, 그걸 해소해 드리려는 마음이 컸다. 내가 힘들고 외로웠을 때 어머니가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것처럼, 나도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가시는 날까지 편안하게 모시자는 생각을 하며. 

그러나 그건 욕심이었다. 어머니도 어머니가 감당하실 몫이 있는데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해 보려니 힘든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없는 일인데……. 내 생활이 온통 어머니한테로 쏠려 있었구나! 누워계신 어머니를 보며 나는 살아있는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의지로 육체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기도 했고, 평소 그렇게 자애롭던 어머니마저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게 되는지도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과정을 보면서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얼까를 생각하기도 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머니가 겪는 다양한 고통과 그것을 보는 나의 감정과 그것의 변전 과정은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어머니와 함께 고통을 오롯이 겪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담백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았다.  

2013년 여름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 당신이 막내딸인 나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하시며 “더 살면 니한테 짐만 되는데. 인제는 아무 꺼도 걸리는 게 없는데....”라고 하실 때, 그때의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엄마,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도 끝까지 살아내시는 걸 나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요”라고.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가 삶을 마무리하는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크나큰 축복처럼 느껴졌다. 물론 힘들기도 했고 순간순간 그걸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누구나 가야 할 길이라면 그 길이 어떤 길인지를 지켜보고 싶었고 힘든 그 길을 가는 어머니 곁에서 함께 해 드리고 싶었다. 그 길은 외로웠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그리고 그걸 감당하기에는 나약한 몸 때문에. 나도 그랬지만, 그 길을 가시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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