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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 분노를 구성하는 이성, 어떻게 개념화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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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能今 작성일17-11-17 09:38 조회1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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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의 생리적 메커니즘 – 도담강의


분노를 구성하는 이성, 어떻게 개념화 할 것인가?

 

박윤미 정리

 

개념화된 이성
 지금부터 우리가 다룰 것은 후기의 분노다. 세네카에 의하면 그것은 ‘말’과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일시적인 광기’ 혹은 격정이다. 분노와 같은 격정이 이성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것을 환기하기 바란다. 말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이해가 가지만 이성이 격정을 만든다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런 감정들이 이성을 잃었을 때 불현듯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성은 세계를 해석하는 단 하나의 원리가 아니다. 주어진 경험을 어떤 식으로 개념화 하는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로운 이성이 탄생되며, 개념들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과 개념의 연쇄반응으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하나의 진리, 이런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이성이 탄생하게 된 배경들이 있죠. 원래 신화의 시대에서 자연의 탐구로 넘어갔을 때가 이성이 폭발했던 축의 시대 이렇게 보는 거고. 그래서 거기에서 소크라테스를 기점으로 인간중심, 이쪽으로 가고 이런 계보들이 있죠. 그런데 이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진리를 향해서 나아갔는데 이 진리를 전복하고 또 다른 진리로 나아가는 어떤 새로운 이성이 계속 생긴다는 거예요. 이해가 되시죠.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완벽한 원리가 아니라 개념화라는 거예요. 개념화는 뭐냐면 여러 가지 이 경험적인, 여기서도 나와 있죠. 여러 가지 관념들, 경험적인 것들, 흩어져 있는 어떤 뭐 신화의 세계라고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에서 공통과 보편을 찾아내서 하나의 원리로 만든다거나 추상해서 종합을 한다거나 이런 것들이 개념화라고 하는데 이성은 개념화의 작업을 거쳐야 이성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이성은 주어진 상황을 어떤 식으로 개념화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로운 이성으로 탄생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개념들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과 개념의 연쇄방응으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그래서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개념, 이성 안에서 이성이 나오지 못한다는 게 아닌 거예요. 이 이성이라는 것이 개념화의 작업인데 개념화의 작업을 할 때 욕망이 들러붙어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 말씀드릴게요. 욕망이 들러붙어서 거기에서 감정이 도출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례를 하나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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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주어진 상황을 어떤 식으로 개념화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로운 이성으로 탄생이 될 수 있다.

 


개념화에 덧붙여진 욕망

 사례 3) 59세인 C씨는 3대 독자인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두 분과 시아버지 형제 세 분을 40년간 모시고 살았다. 일이 너무 많았다. 1년에 제사가 10번이 넘는다. 거기다 밥하고 빨래하고 1남 4녀 키우느라 너무 힘들었다. 성격이 급해 이틀 일을 하루에 다한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칭찬한다. 그래서 효부상도 탔다. 아들도 효자다. 그런데 지금은 이 고생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 그녀는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었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젊어서는 일한다고 아픈 줄 몰랐는데, 이제 아파서 병원에 다닌다. 배에서 불 때는 것처럼 열이 난다. 그녀는 자신의 병이 화병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10년 전 술병으로 죽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너무 순진하고 잔정이 없었다.
우리가 아는 화병은 대개 남편이나 자식이나 뭐 그런 건데 지금은 특별히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화병은 아니죠. 그래서 왜 화병이 걸렸나 이걸 한 번 우리가 추적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C씨는 시부모와 그 형제들을 모시고 고생하며 살았던 자신의 삶을 ‘효부’라는 기호로 개념화했다. 나라에서 효부상을 받았으니까 자기가 효부임을 의미할 여지가 없죠. 그러니까 자기 안에 효부라는 어떤 상이 있는 거예요. 개념화 된 상. 그런데 C씨는 ‘효부’라는 개념화 작업 안에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효부’의 평균화된 뜻, 시부모에 대한 헌신과 봉사, 전통사회의 덕목, 이런 것만 따로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효부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높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망이나 훗날 더 좋은 삶이 펼쳐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등이 함께 연쇄되어 있기도 하다. 개념화 작업을 하면서 개념화된 이 개념 옆에 그런 어떤 욕망들이 들러붙어 있는 거예요. 이게 연쇄반응에 효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를 뭐라고 생각하냐면 효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효부라고 생각할 때 그냥 효부는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보상받아야 돼 라는 것까지 같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욕망과 기대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좌절과 허무, 불행과 억울함 등과 같은 효과들로 연쇄반응으로 또 일어나는 것이다. 줄줄이 사탕으로 일어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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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높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망이나 훗날

더 좋은 삶이 펼쳐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등이 함께 연쇄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개념화가 잘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난다 해도 전혀 다른 효과들이 반응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효부’라는 타이틀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효부상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그냥 하나의 이벤트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경우엔 개념화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죠. 내가 효부라고 생각을 안 해. 그러면 그 기호를 해석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개념화가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효부 때문에 들러붙어있는 어떤 욕망들이 당연히 없겠죠. 혹은 자신이 효부라고 생각할 수 는 있는데 인정을 하긴 하지만 그것과 어떤 삶의 보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반응이 연쇄될 수도 있다. 효부는 효부인데 내가 효부라고 나중에 그걸 덕을 봐야 돼? 이런 것이 연쇄될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다른 거예요. 효부라고 하는 것도 개개인마다 개념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거기 들러붙은 욕망들이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다 달라요. C씨의 경우엔 전자의 효과들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남편이 잔정은 없었지만 화병을 일으킬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고, 이제 우리가 설록홈즈처럼 추적을 해보는 거예요. 우리가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으니까 이 자료만 갖고. 자식들도 효자다. 그렇다면 그녀의 화병은 ‘효부’의 개념화를 통해 연쇄된 억울함 때문에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죠. 그리고 여기에 지금 이 고생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이런 단서도 있고. 이것은 개념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분명 이성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이 구성한 이 아우라 속에는 새로운 격정이 촉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라서 격정이 이성 안에서 탄생했다는 세네카의 발언은 일리가 있다. 그렇겠죠. 이성이라는 것이 감정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라고 하는 건 개념화의 작업이라고 했는데 개념화의 작업 안에서 욕망이 들러붙어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렇죠.

 

 


쾌락과 허무는 심열을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실천적 기법의 차원에서 중요하다. 이성은 개념화의 변화를 통해 우리가 다스릴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니까 분노를 이성이라고 하는 순간 그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거예요. 어떤 것을 통해서? 새로운 개념화를 통해서. 개입하기 어려운 초기 분노의 야생적 시기와는 다르다. 얼마든지 새로운 개념화의 아우라를 형성할 수 있고, 개념화의 아우라라는 것은 뭐냐면 개념화 거기에 들러 붙어있는 욕망까지 제가 아우라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따른 감정의 생산과 중단을 결정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만일 C씨가 후자 쪽으로 개념화가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효부라는 타이틀은 자신에게 별의미가 없고, 단지 자기는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을 즐겼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말이다. 이런 추측이 개인이 겪었을 숨겨진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니까 뭐냐면 이게 사실 제가 이 화병이라든지 이런 우울증이라든지 물론 남성분들도 굉장히 많지만 대개 여성들이 많은 질병들이기 때문에 화병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사실 함부로 판단하거나 진단하기가 참 어려운 지점이 분명히 있죠. 그래서 이것은 이런 것이요 라고 얘기하기도 그렇고 왜냐면 개개인의 사정도 있고. 그다음에 제가 남자이기 때문에 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하기 때문에 어려워요. 그런데 의역학적인 차원에서는 이런 추측이 일어날만한 단서가 있다. 바로 C씨가 급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성격이 급해서 이틀 일을 하루에 다하는 것은 일종의 ‘일중독’ 같은 것이다. 중독은 쾌락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중독은 상초에, 상초라는 것은 가슴 위쪽 부위. 열을 발생시키며 심장의 화기를 항진시킨다. 심장이 열 받으면 정신의 왜곡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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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그 중에서 쾌락과 허무를 주로 활성화시킨다. 일중독도 그렇다. 

 


  망상, 격정, 번민, 허무 그리고 쾌락 등이 심열(心熱)로 생성된다. 중독은 그 중에서 쾌락과 허무를 주로 활성화시킨다. 일중독도 그렇다. 일중독에 빠진 사람은 온 몸의 에너지를 골고루 쓰지 않는다. 주로 상초에 긴장감을 고도화시켜요. 그래서 일의 쾌락, 이 일은 일종에 고통이기도 한데 쾌락은 고통에서도 감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일에 쾌락을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을 할 때 일중독에 빠지신 분들은 대개 상초 쪽에 있는 혈관들이 좀 늘어나 있어요. 그래서 뭔가 일을 할 때 피가 확 몰려요. 그래서 이 상태가 되어야 일을 시작하거나 그러면 이쪽에 항상 피가 몰리니까 심열이 생기겠죠. 심열이 생기면 여러 가지 정신의 왜곡들이 생기는데 거기에서 이제 이상한 것들을 만약에 내가 활성화 시키면 일중독이 되지 않겠죠. 그렇잖아요. ‘아, 일을 많이 하면 힘들어.’ 그러면 좀 쉴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회로에 의해서 쾌락이 잡혔어요. 쾌락이 잡히면 중독이 되기 쉽다는 거예요. 쾌락은 반드시 허무를 동반하거든요. 그 두 개만 활성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막 일을 하다가 이게 쾌락이에요. 그러면 화를 쓰니까 상초를 막 그러니까 이제 어때요? 상초에서 화를 쓰면 에너지가 나가는지 어쩌는지 잘 분간을 못해요. 그래서 쓰러질 때까지 쾌락에 ‘조금만 더하다, 조금만 더하다’ 가 갑자기 쓰러집니다. 그러니까 이 40대 남성들이 돌연사하시는 분들 잘 보면요, 화기가 많아요. 절대 음기가 많거나 이러신 분들 돌연사 하지 않습니다. 그 분들은 느끼거든요. 심하게 안 해. 심하면 피곤해. 피곤해서 좀 쉬었다 하거나 뭔가 어디 사우나를 갔다 오거나 이렇게 하는데 이 양기가 올라가면 중독이 되기 시작하면 끊지를 못해요. 계속해야 돼. 한 번에 쫙 몰아서. 그래서 확 쓰려지잖아요. 그러면 허무감이 딱 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중독으로 가고. 이게 반복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상초의 화기는 오래지 않아 금방 식어버리기 때문에 온 몸의 통증과 함께 허무함이 찾아든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또 일을 통해 쾌락을 즐긴다. C씨가 만일 일과 쾌락 사이의 거래를 알고 있었다면, 그래서 효부의 개념화 작업에 자기가 겪은 고생에 대한 대가와 보상의 욕망을 연결시키지 않았다면 C씨는 얼마든지 후자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아까 얘기가. 그런데 어쨌든 이렇게 유추해 보건데 그럴 가능성이 분명 있다는 거예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여. 보상은 무슨.” 이런 마음이 일어나면 ‘효부, 효부는 미덕이여, 이것은 희생인거여, 그래서 보상이 있어야 돼’ 이런 계열화를 깰 수가 있는 거예요. 아시겠죠. 그리고 그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개념적 정의를 통해서 다른 운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가능한 경우의 수가 있다. 즉, C씨의 병증이 울증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 일중독의 경우 화기를 많이 사용하므로 나이가 들수록 몸이 많이 아프다. 그 때문에 병증을 ‘효부-희생’과 연결시키면 없던 울증도 생긴다. 그러니까 이건 원래 울증이 있어서 아픈 게 아니라 내가 화기를 많이 써서 아픈 건데 내가 이 일을 하느라고 뭔가 희생을 했는데 내가 여기서 알아주질 않잖아요. 그러면 이 병이 울증이 생겨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진짜 화병이 생겨버리는 거죠.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결국은 화병으로 와서 치료를 받는데 이 화병이라고 했을 때 울증과 화증이 같이 있다는 거잖아요. 이 울증에 옛날에 그 고생하면서 희생하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최근에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냥 화증에서 울증을 가진 화병으로 이행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성은 단순한 격정을 넘어서 한 질병의 시스템을 통째로 창조하기도 한다. 이성이 어떻게 개념화하느냐에 따라서 울증과 화증을 같이 가지고 있는 한 시스템을 완전히 만들 수도 있다는 거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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