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한(恨)'의 정서 > 호모큐라스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양력 2018/5/24 목요일
음력 2018/4/10

절기

호모큐라스

화병,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 만들어진 '한(恨)'의 정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能今 작성일18-01-05 10:11 조회479회 댓글0건

본문

 

​화병의 생리적 메커니즘 – 도담강의

 

 

만들어진 ‘한(恨)’의 정서


 

박윤미 정리

 

 

은유로서의 질병
  또 하나, 우리가 신화를 통해서 봐야 할 것이 뭐냐면 질병 자체를 신화화 하는 것이 있어요. 『은유로써의 질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수전 손택이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질병을 은유(메타포)로부터 분리시키라고 이야기 한다. 19세기 대표적인 질병이 ‘결핵’이거든요. 특히 ‘폐결핵’ ‘결핵’에는 항상 낭만적인 이미지가 덧붙여졌다. 결핵은 시인과 예술가, 그리고 태양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보헤미안의 병이었다. 우리도 1930년대 시인들, 소설가들이 대개 폐병으로 죽어가잖아요. 그래서 뭔가 얼굴도 허옇고, 얼굴이 시커멓고 그러면 대개 덜 낭만적이었을 거 아니에요. 폐병 걸리면 뭔가 더 비애에 젖어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 피도 토하고 그래서 폐병에 안 걸리면 왠지 좀 시가 안 젖은 것 같고 이런 느낌들이 있어요. 그런데 암에는 이런 고상한 메타포가 없다. 결핵이 주로 신체의 위쪽에 생기는, 이것도 위계적인 거죠. 이 위쪽에 생긴다는 것도. 그런데 암은 자궁, 대장, 전립선등 부끄러운 부위에서도 많이 발발한다. 그래서 20세기의 대표 불치병인 암은 끔찍하고 더러운 이미지가 드리워져 있다.

 

 

77c4c0a767ce0cfe40e91cfec3e2300d_1515114
 특히 은유는 일종의 이미지다. 의학적 치료는 동서를 막론하고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질병을 신화화한 것이다. 질병을 개념화하는 과정에서 신화화가 진행되면 질병을 보는 관점이 협소해지고 치료의 다양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겠죠. 왜냐면 질병이 신화화 됐다는 것은 새로운 개념화하기 어렵다는 거잖아요. 질병은 중요합니다. 개념화의 이 변형들이 중요한 거예요. 왜냐하면 질병을 보는 관점이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치료법이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질병은 늘 새롭게 개념화해야 돼요. 그런데 질병을 신화화하는 순간 그런 어떤 열려진 것이 닫혀져 버린다는 거죠. 특히 은유는 일종의 이미지다. 의학적 치료는 동서를 막론하고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한의학도 그래요. 한의학의 논리가 보다 직관적, 그래서 직관적 논리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직관적이긴 하지만 은유로서 질병을 관찰하진 않는다. 항상 이치가 있어요. ‘오늘 너의 느낌은 감기야’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요.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아요. 내가 눈이 어떻고, 지금 상태가 어떻고, 열이 어떻고 그래서 감기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오진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은유를 사용하지 않는다. 질병과 은유를 분리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질병은 순수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이것도 수잔 손택의 ‘질병을 순순하게 바라봐야 한다.’ 시점은 어찌 보면 서양 의학적 시선이에요. 왜냐면 서양의학은 질병을 어떤 관계성에서 분리한 채 그것만 놓고 보거든요. 그래야지 여기에서 어떤 수치가 드러나죠. 그래서 수치를 잴 때 밥 먹고 오지 말라고 하잖아요. 이게 뭐냐면 어떤 관계에서 분리 된 채로 존재해야지 서양의학에서 개입을 할 수 있다고요.  이 수잔 손택도 그런 것을 염두에 둔 것인데 한의학에서의 질병은 항상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어떤 관계에 놓여 있냐가 중요한 진단에 척도가 됩니다. 그래서 질병은 사회적 관계, 시대적 배경과 연결되어 있다. 그 관계성을 인식할 때 더 적절하고 다양한 치법이 열린다. 물론 질병을 언제든 새롭게 개념화할 수 있도록 열어두어야 한다. 치법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은유를 걷어내야 한다. 은유는 과도한 상상력과 환상을 조장한다.

 

 

 

 

 

‘한(恨)’ 우리의 고유한 정서?
자, 그러면 우리가 이제 하고 있는 것이 화병이니까 화병 안에는 어떠한 은유적인 것들이 붙어 있는지 좀 봐야 되겠죠. 화병에는 대개 ‘한(恨)’이라는 은유가 들어가 있어요. ‘한’이라는 정서. 그래서 우리가 보통 대개 화병이 한에 의해서 생긴다, 이런 말을 많이 하고 화병과 관련된 대부분의 책에서도 화병의 원인을 ‘한(恨)’에서 찾고 있다. 왜냐면 화병이 미국 정신의학회에 공식적으로 등재 되어 있고 그다음에 한국에만 존재하는 문화관련증후군으로 소개되어 있다. 지금 어느 분이 이제는 아니라고 하셨죠. 그래서 화병의 원인을 한민족 고유의 정서인 ‘한’에서 찾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의 정서는 울증을 유발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한의 정서를 대변하는 슬픔, 비애, 숙명, 희생 등의 감정과 행동들이 고스란히 화병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고유의 정서가 된 것은 1920년대에 야나기 무네요시라고 하는 일본 학자의 주장으로부터다. 마치 ‘한’의 정서가 우리 민족이 전통으로 이어온 고유한 정서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사람이 만든 거라는 거예요. 그는 식민지 시절 일본의 미학자였다. 삼일 운동 이후 조선의 식민정책을 비판하는 우리 편이었어요. 일제의 문화동화정책과 광화문 철거, 석굴암 수리 등에 반대했다. 그래서 석굴암을 일본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과학적이지, 그러면서 이제 한번 보다가 다 망가트렸죠. 그는 조선사람 보다 더 조선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조선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70년대 한일교류를 시작하면서 우리 정부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로를 높이 샀다. 84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애정과 함께 학문적 주장도 비판 없이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77c4c0a767ce0cfe40e91cfec3e2300d_1515114

야나기 무네요시의 석굴암 탐방 사진 

 

 

  

  무네요시는 한국의 미를 ‘애상(哀傷)’로 소개를 한 것이다. 보통 애상할 때 ‘상’자를 서로 상자를 쓰는데 이거는 뭐냐면 슬픈 상처 이런 거죠. 뭐라고 해야 하나 트라우마 이런. 한국의 미를 ‘트라우마에 찬 자연미’ 이런 거예요.  그는 고려자기를 보면서도 “그 예술을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때가 없다” (야나기 무네요시, 이길진 옮김, 『조선과 그 예술』, 신구, 24쪽) 이게 미학자가 비평할 수 있는 언어입니까? 고 고백했다. 그의 비평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조선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이렇게 얘기를 해요. “당신들의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과 슬픔이나 하소연이 거기에 담겨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거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원한과 슬픔과 동경이 얼마나 은은하게 그 선을 타고 흘러내렸을 것인가” 선이라는 것이 뭐냐면 청자의 어떤, 백자의 어떤 선, 이런 걸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선을 보고 뭔가 미학적으로 비평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개인적으로 쓸쓸한 감정을 가지고 조선과 그 예술을 평가한 거예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스스로 조선에 관해 자기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학식이 없다고 이 책에 써있어요. 『조선과 그 예술』 이라는 책에. 거 좀 알고 쓰지 그 책을 한 권 쓰면서. 그러니까 개인의 느낌만으로 조선과 조선의 예술에 자기의 슬픔과 애상, 원한과 하소연을 투사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병에 드리워진 ‘한’의 정서는 날조된 은유, 과장된 메타포일 뿐이다.

 

 

 


존재에 대한 온전한 긍정 ‘노처녀가’

 물론 ‘한(恨)’과 유사한 정서가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대표적인 정서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런 감정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또한 그와 반대되는 정서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8세기 조선에 ‘노처녀가’ 마흔이 넘도록 출가하지 못한 이 처녀는 곰보에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데다 귀까지 먹었다. 거기다 왼쪽 다리와 팔을 잘 쓰지 못한다. 그런데 ‘한’이 있을 것 같은 ‘한’은 커녕 너무도 당당하다. 다같이 읽어 볼게요.
 
  “내 얼굴 얽다 마소 얽은 구멍에 슬기 들고” “한편 눈이 멀었으나 한편 눈은 밝아 있네 /
   바늘귀를 능히 꿰니 버선 볼을 못 박으며 / 귀먹다 나무라나 크게 하면 알아듣고 / 천둥
   소리 능히 듣네 / 오른손으로 밥 먹으니 왼손하여 무엇 할꼬 / 왼편 다리 병신이나 뒷간
   출입 능히 하고” “엉덩뼈가 너르기는 해산 잘할 장본이오” “목이 비록 옴쳤으나 만져 보면
   없을쏜가. (고미숙. 『연애의 시대』, 북드라망, 191쪽)
 
  원한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 존재에 대한 온전한 긍정이 가득 차 있다. 물론 이 여성의 생명력 또한 조선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조선에 대한 어떤 이미지들이 있다. 그런 대표적인 이미지 중에서 비련에 찬 조선의 한 여인을 마음속에서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그런 것이 우리의 어떤 정서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거죠. 
 

77c4c0a767ce0cfe40e91cfec3e2300d_1515114

원한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 존재에 대한 온전한 긍정이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화병이 유독 한국의 문화적 증후군이라는 것은 이 땅에 어떤 특이한 집단적 스트레스 요인이 관련되어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수많은 전쟁을 겪고 식민지 통치 하에서 억울함을 적체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침략 전쟁에 의한 이러한 박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사실 더 심각한 홀로코스트나 이런 게 많죠.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식민 지배를 비롯해서 아우슈비츠의 살상 등.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가 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그 책을 보면 실상을 낱낱이... 세계 역사 속에서 수 없이 많은 트라우마의 현장을 목도할 수 있다. 또한 문화관련증후군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라틴계 민족에게 잘 나타나는 ‘빌리스(billis and colera)’ 이것은 심각한 분노가 신체에 어떤 균형을 초래해서 균형을 혼란시켜서 신경증 두통이 나타나거나 이런 것이 있고요. 중국에서는 신경쇠약과 신휴(腎虧)라는 증후군이 있고, 일본에서는 대인공포증, 이런 것이 문화관련증후군에 공식적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들 증후군은 증상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공통되는 부분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화병을 과도하게 지역적으로 한정시킨다거나 여기에 어떤 ‘한’에 정서를 덧씌운다거나 이런 것들이 좋은 분류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