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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정치를 말하다 | ‘관품(官品)’으로서의 사회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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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2-07 07:00 조회3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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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품(官品)’ 으로서의 사회 - (2)

 

 

 

김태진

 

 

 

이른바 군(群)이라는 것은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부분에 정밀하지 못하면 전체를 볼 수 없다.
 하나의 군[一群], 한 나라[一國]의 성립 역시
 체용공능(體用功能)이 생물의 한 몸[一體]과 다름이 없어
 크기의 차이는 있어도 기관의 다스림[官治]은 서로 준한다.
 고로 인학(人學)은 군학(群學)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옌푸(嚴復), 「원강(原强)」(1895)

 

 

 

 

 

 

‘관(官)’의 의미
 
이는 스펜서의 ‘organism’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인 것처럼 보인다. 스펜서에게 유기체의 핵심은 단순히 부분이나 기관들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보다 생명 그 자체의 특성인 성장한다는 점, 성장하면서 복잡해진다는 점, 복잡해지면서 부분들은 더욱 상호의존적이 된다는 점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옌푸가 ‘관품’이라는 번역어를 선택해 생명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은 스펜서에 대한 바른 이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기체로서 국가를 사유하는 사고가 중국에서도 이미 요순시대 이래로 익숙한 것이었다고 옌푸가 말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으로 기이하게도 서양에서는 진화론이 흥성한 이후에 이러한 원리의 의미가 크게 밝혀졌지만, 우리 중국에서는 요순시대 이래로 누구나 모두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충량한 신하가 충성을 다하고 현명한 군주가 좋은 정치를 펼친다는 노래를 읽어보면 원수라 말하고 고굉(股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영추와 소문을 읽어보면 황제 이래로 사람의 신체 내부를 장부(藏府)라 불렀습니다. 장부는 정부의 한 부서이며, 우리 몸에 있는 것과 동일한 명칭입니다. 그밖에도 목과 혀[喉舌] 혹은 가슴과 등뼈[心膂]의 비유나 국토와 전야를 분할하여 다스린다는 이야기[體國經野] 같은 것이 있습니다. 중국의 옛 사람들의 지식에는 국가를 유기체 혹은 관품으로 간주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옌푸, 양일모 역,『정치학이란 무엇인가』, 66-67쪽

『시경』의 ‘원수’와 ‘고굉’, 『 황제내경』의 ‘장부(藏府)’, ‘후설(喉舌)’과 ‘심려(心膂)’ 등의 신체의 기관이 정치적 비유로 쓰인 일들을 볼 때 중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국가를 유기체 혹은 관품으로 간주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옌푸가 유기체의 번역어로서 ‘관품’을 선택한 것과도 관련될지 모른다. 원래 ‘관품’이라는 말은 관직의 품제, 등급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옌푸는 ‘관(官)’의 신체적 의미를 가지고 와서 기관을 가진 생물이라는 뜻의 ‘organization’의 번역어로 새롭게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관(官)’이라는 말은 정부나 관직을 의미하는 것 이외에도 기관, 관능(官能)을 의미하기도 했다. 『맹자』 「고자상」편에 “소인(小人)은 이목지관(耳目之官)을 따라 살고, 대인(大人)은 심지관(心之官)을 따라 산다”라는 말에서 ‘이목지관’, ‘심지관’과 같은 용례가 그것이다. 주자는 이에 대해 관(官)이란 말을 ‘맡는다[司]’는 뜻으로 푼다. 즉 “귀는 듣는 것을 맡고 눈은 보는 것을 맡아서, 각기 맡는 것이 있으나 생각하지는 못한다(耳司聽, 目司視, 各有所職而不能思)”는 것이다. 또한 ‘오관(五官)’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의학에서도 ‘관’이란 말은 많이 쓰였다. 가령 『황제내경』에서 황제가 오관에 대해 묻자 기백이 답하길, “코는 폐의 관(官)이고, 눈은 간의 관이며, 입술은 비장[脾]의 관이고, 혀는 심의 관이고, 귀는 신장[腎]의 관”이라 하였는데, 이때 관은 신체의 기관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그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기관이라는 의미의 관을 사용해 유기체를 번역한 것은 서양의 유기체론을 전통적 사고 속에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전통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서양과 동양의 개념들 사이의 공통성을 통해 이해를 높이고자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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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옌푸가 근대 서양의 유기체적 논의를 전통적 신체유비와 동일하게 파악한다면 적어도 그것은 스펜서식의 유기체적 발상과는 멀어진다. 스펜서의 유기체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국가와 신체를 동일한 차원에서 놓고 사유했다는 점에만 있지는 않다. 오히려 유기체란 진화의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는 점이 더 핵심적이다. 어쩌면 옌푸는 전통적 국가유비에는 진화론적 발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중국의 전통적 논의에도 서양의 유기체설과 같은 논의가 있음을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차이를 눈감아 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량치차오의 부회론적 태도, 가령 서양의 의회제도를 『서경』이나 『맹자』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논의에 대해 옌푸가 강하게 비판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동서양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조화로서의 유기체

그렇다면 이때 유기체의 모습은 어떠한지, 거기에서 드러나는 내재적 논리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옌푸는 진화의 단계가 높은 사회에서는 사회의 각 부분이 매우 분화되어 있고 각각 전문적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질서가 분명한 것은 예이며 화동하고 합작하는 것은 악(樂)”이라는 전통의 논리에 기대 설명한다. 스펜서의 기능에 따른 분화로서의 유기체가 옌푸에게는 전통적 ‘조화’의 논리로 치환된다. 그는 국가나 조정에서뿐만 아니라 향이나 읍, 마을이나 성, 은행이나 한척의 병선에서도 이와 같은 조직과 부서를 갖고 있음을 추가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서양에서는 Organization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무기체[無機之體]에 기관[機]을 주는 것으로, 즉 관이 없는 물건[無官之品]에 관(官)을 부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물체와 조직은 생명과 형기(形氣)를 가졌다고 할 수 있으며, 안으로는 자립하며 밖으로는 외환을 막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 물체는 생리 기능이 발달하게 되고 일을 처리하면서 진화[天演]의 세계 속에서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후에 만들어진 단체는 인간의 신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나의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아픔이 손가락에 있다고 말해야 하며, 백성이 기아와 고통에 빠져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국가에 기아와 고통이 있어 국민이 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사회가 형성되는 의미[合群之義]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명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에 부딪히면 다만 장정(章程)을 정립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기관을 조직하는 것과 장정을 정립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며,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옌푸, 양일모 역,『정치학이란 무엇인가』, 68쪽

Organize한다는 것은 기관을 부여한다는 것으로, 이로써 물체와 조직은 생명과 형기를 갖게 되어 안으로 자립하고 밖으로 외환을 막을 수 있게 되어 진화의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옌푸는 이를 플라톤의 신체 유비를 가지고 와서 설명한다. 이는 『정치강의』라는 번역본의 원저자 실리의 원문에 나와 있는 바다. 실리는 국가에서 특정한 기능을 할당하는 것이 신체에서 기관이 분화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유기체의 특징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플라톤의 신체은유와 중세의 신체은유에서 나타나는 것과 동일하게 파악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서 볼 바가 있다. 왜냐하면 스펜서는 The Social Organism에서 플라톤의 신체유비를 비판하며 이는 유기체의 핵심을 못 본 것이라 비판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스펜서는 국가를 신체에 비유했다는 점은 플라톤과 유기체설이 유사한 듯이 보이지만 실제 그 논리를 따지고 들어가면 플라톤이 신체를 유비한 것은 정신의 조화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솝우화에서 나타나는 신체유비 역시 전체를 위한 조화의 관점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는 진화론에서 말하는 기능론적 신체로서의 유기체와는 다른 방식이며, 스펜서가 기반하는 세포론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유기체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옌푸는 실리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비슷한 신체유비를 동양의 전통 속에서도 찾아내어 모든 신체 유비를 동일한 뜻으로 파악하고 있다. 옌푸에게 유기체가 갖는 의미는 결국 분업을 통해 형성되는 조화로운 하나의 신체였다. 그렇게 보자면 스펜서적 유기체보다 플라톤이나 중세의 신체유비처럼 조화로운 상태로서 하나임이 강조되는 신체가 옌푸가 생각하는 유기체상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 이 글은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15권 2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자세한 주석이나 참고문헌은 그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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