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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프로젝트

루쉰과 청년 | 인트로 – 정처 없는 길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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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5-27 09:00 조회5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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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 정처 없는 길을 나서며

 

 

 

 

문탁 

 

 

아이들의 소가 된다구?

 

 

運交華蓋欲何求,未敢翻身已碰頭.

破帽遮顏過鬧市,漏船載酒泛中流.

橫眉冷對千夫指,俯首甘為孺子牛.

躲進小樓成一統,管他冬夏與春秋.

 

                화개운이 씌웠으니 무엇을 바라겠소만, 팔자 고치지도 못했는데 벌써 머리를 찧었소. 

                 헤진 모자로 얼굴 가린 채 떠들썩한 저자 지나고, 구멍 뚫린 배에 술을 싣고서 강물을 떠다닌다오.

                 사람들 손가락질에 사나운 눈초리로 째려보지만, 고개 숙여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어 주려오.

                 좁은 다락에 숨어 있어도 마음은 한결같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슨 상관있겠소.

 

 

  1932년 루쉰이 쓴 <자조(自調)>라는 제목의 구체시이다. 난 2016년 여름, ‘루쉰 온 더 로드’ 프로젝트 때문에 베이징 루쉰기념관에 갔다가 이 시 전문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기념관 안에서 마주친 ‘민족혼(民族魂)’이라는 거대한 액자만큼이나 입구 대리석 벽면에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이 시에 뜨악했다. 이거 도대체 뭐지? 왜 루쉰을 이런 식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시는 베이징 루쉰기념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샤오싱 루쉰기념관에는 거대한 루쉰동상과 함께 황금빛으로 새겨져 있고, 항저우고급중학교 안 루쉰기념관에도 빨간 색으로 쓰여 있었다. 중국 최고 대학이라는 베이징의 칭화대학에도, 변방의 귀주대학에도 이 글자는 커다란 상징물로 조성되어 있다. 심지어 루쉰의 다양한 ‘굿즈’에도 이 시는 단골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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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으로부터 베이징 루쉰기념관, 샤오싱 루쉰기념관, 항저우 루쉰기념관

 



  이 <자조>라는 시, 특히 “橫眉冷對千夫指, 俯首甘為孺子牛(사람들 손가락질에 사나운 눈초리로 째려보지만, 고개 숙여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어 주려오)”라는 열네 글자는 마오가 공산당원이 가져야 하는 태도로 거론한 이래 아주 유명해졌는데, 아이와 젊은이에 대한 루쉰의 헌신적인 사랑과 적에 대한 루신의 가차 없는 투쟁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니까 위의 열네 글자 혹은 줄여서 ‘孺子牛(아이들의 소)’라는 세 글자는 중국에서는 ‘격물치지(格物致知)’나 ‘천하위공(天下爲公)’만큼이나 중국정신을 상징하는 유명한 글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지 않는가, 이런 해석은. 루쉰 자신은 생전에 자신은 위대한 사상이나 선전할 만한 무슨 주의(主義)를 갖고 있지 않다고, 결코 자신은 ‘전사’나 ‘혁명가’가 아니라고 누누이 말해왔었는데 말이다. 

  난 차라리 이 시를, 1932년 1월28일 상하이 사변이 나자 가족을 데리고 우치야마 서점 다락방으로 급히 피난을 떠났고, 아들은 아팠고 (그때 아들 하이잉은 홍역에 걸려서 한바탕 앓았다), 엄중한 정세였으나 자신은 아들을 등에 태우고 달래는 것(孺子牛)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루쉰이, 자신의 궁색한 처지와 처량한 심사를, 예의 그 해학을 섞어 읊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럼 너무 불경스러워질까?

 

 

 

루쉰은 청년을 사랑했을까?

 

  1927년 4월12일 장제스가 백색쿠데타를 일으켰다. 세상이 갑자기 살벌해졌고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루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여름 스유헝(時有恒)이라는 젊은이가 루쉰에게 공개적인 질문을 한다. 루쉰 선생님 왜 침묵하십니까? 이런 상황일수록 ‘아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라고. 얼마 후 루쉰은 유헝에게 답글을 쓰면서 자신의 침묵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포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공포는 무엇보다 청년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노인들이 청년을 살육한다고 생각했는데, 장제스의 쿠데타를 목격하면서 청년을 살육하는 사람은 오히려 청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둘째는 자신의 글이 청년의 정신을 예민하게 만들고, 그만큼 그들의 고통도 심하게 만들고, 그만큼 청년을 살육하는 자들의 변태적 쾌감을 증대시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청년에게 실망했다는 고백, 또 한편으로 청년들을 미친 살육의 전쟁으로 밀어 넣는 짓은 더 이상 안 하겠다는 다짐. ‘아이를 구하자’ 같은 구호는 이제 헛소리가 되었다는 좌절과 냉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앞으로는 뭔가 써보겠다는 작은 의욕. 이 짧은 글에서 루쉰은 청년에 대해서도 글쓰기에 대해서도 복잡한 심사를 드러낸다. (1927.9.4. 「유헝 선생에게 답함」, 『이이집)

  그런데 사실 청년에 대한 실망이 처음은 아니었다. 베이징 시절, 루쉰은 청년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잡지를 만들고 싶어 했고, 주변의 청년들과 의기투합했고, 1925년 잡지 『망원(莽原)』을 창간한다. 가호창홍(高長虹)도 그 시절 루쉰이 아끼고 돌봐주던 청년 중의 한 명이었다. 2년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두 사람이 100번도 넘게 만났다고 하니 두 사람의 우정은 상당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루쉰이 베이징을 떠나고 1년쯤 후 가호창홍은 느닷없이 루쉰을 공개적으로 비난한다. 루쉰은 권위적이고, 『망원』을 사유화하고 있으며, ‘사상계의 권위자’라는 허울 밑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어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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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베이징에서 창간된 <망원>, 루쉰 가호창홍 등이 동인으로 참여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랬다. 루쉰을 존경하고 루쉰에게 편지를 보내고 루쉰에게 도움을 청하는 청년들은 자주 미욱한 행동을 하거나(샤오싱의 『월탁일보』청년들) 얍삽한 제안(베이징 시절 궁주신宮竹心같은 청년)을 해왔었고, 때로는 루쉰을 뒷방 늙은이, 시대의 낙오자, 흐리멍덩한 꼰대라고 비판하고 조롱했다(1928년 상하이의 혁명문학논쟁시의 창조파 청년들). 루쉰은 어떻게 했을까? 실망하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했고, 때로는 ‘끝’을 보면서 싸우기도 했다. 

  루쉰이 청년을 사랑했나? 아마도. 제자들에게 헌신적이었고 젊은이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 이상으로 청년들에게 자주 실망했다. 그러니 루쉰이 청년을 사랑했다면, 그건 그들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였을 것이다. 자신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쉰은 오늘날 청년들과도 조우할 수 있을까?

 

  루쉰의 글은 어렵다. 잡문(雜文)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소설들도 쉽게 읽히진 않는다. 그의 글은 복잡다단한 중국현대사와 얽히고설켜 있고, 단순화시키기 힘든 어떤 실존적 태도를 담지하고 있으며,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말하는 순간조차 중국 인문학의 오랜 전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루쉰의 그런 복합적이고 밀도 높은 글을, 어른들도 읽어내기 어려워하는 글을 지금 젊은이들이 읽을 수 있을까?  

  문탁에서는 2년 전 <파지스쿨>(문탁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대안학교)에서 처음으로 청소년들과 루쉰을 읽었다. 그 때 아이들의 질문 수준은 “복귤이 뭐예요?” “지전가게는 뭔가요?” “대구를 맞춘다는 게 무슨 말이죠?” 정도였다. 루쉰의 정신을 이해시키기는커녕 루쉰의 말귀라도 알아듣게 하려면 루쉰-단어장이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런데 대 반전. 한 학기가 끝나고 공부한 것을 발표하는 날. 한 친구가 루쉰의 「작은 사건」이라는 글 전문을 암송했는데 난 정말 깜짝 놀랐다. 낭송하는 목소리, 단어나 문장 사이의 작은 숨소리만으로도 그 아이가 루쉰의 그 글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복귤’이나 ‘지전가게’ 따위를 몰라도 루쉰과 접속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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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는 파지스쿨의 발표회에서의 <작은사건>암송 / 아래는 <루쉰액팅스쿨>의 쿵이지 공연 

 

 

 

  그 경험이 나를 고무시켰다. 루쉰을 많이 읽는 게 아니라 강렬하게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단 한 편의 글이라도 몸으로 읽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암송-여행-연극으로 루쉰을 읽는 <루쉰 액팅스쿨>을 열었다. 신기하게 이번에도 여러 십대들이 결합했다. 루쉰에 끌렸을 리는 만무하고 여행과 연극이 청년들의 구미를 당겼을 것이다.

  첫 날, 탐색 겸 재미삼아 골든벨 퀴즈를 진행했을 때 이 젊은이들의 수준은 다음과 같았다.^^ 루쉰이 살았던 시대는?→17세기, 루쉰이 살았던 왕조는?→명나라, 1868년 일본에서 일어난 유신은?→10월 유신, 1911년 중국혁명의 이름은?→인권혁명. 가히 오답의 향연이었다.

  그런데 반전은 이번에도 일어났다. 한 친구는 루쉰이 청년들에게 했던 말, "우선 생존하고, 두 번째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셋째는 발전하라"(1925.5.8 「베이징 통신」, 『화개집』)는 말 중 생존한다는 것이 결코 구차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루쉰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정신의 마취에서 깨어나 구차하지 않게 살기! 루쉰의 그 말이 자신을 자극한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루쉰을 통해 평화는 좋은 것, 싸움은 나쁜 것이라는 평상시 생각에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싸움을 싫어하는 것은 평화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나대다’가 자기가 ‘당할 것’을 걱정해서인 듯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배틀’을 마다하지 않는 루쉰이 멋지다고 했다.

  요즘 청년들이 결코 ‘토닥토닥 쓰담쓰담’ 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거라고 짐작한 건 정말 내 착각이었다. 청년들은 루쉰이 불편해서, 죽비로 얻어맞는 것 같아서, 그것이 요즘엔 너무나 희귀한 경험이어서 오히려 끌리고 있었다. 루쉰은 지금-여기의 청년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꼰대’였다. 

 

 

 

난 무엇을 쓰고 싶은 것일까?

 

  사사키 아타루는 『야전과 영원』의 서문에서 책을 쓴다는 것은 그 시간의 정처 없음을 견디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머릿속의 구상도 있고 어느 정도 자료도 있겠지만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연성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도 했다. 하여 알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할 것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망연자실해지는 것이란다. 심지어 갈피를 잡지 못해 손가락은 마비되고 심장은 고동치고 몸에선 신음소리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바로 ‘쓴다는 것’의 본질이라고 했다.

  지금 내가 그렇다. ‘루쉰과 청년’으로 뭔가 써보지 않겠냐는 고미숙샘의 제안을 덥석 물었고 바로 후회했지만 다시 물릴 수는 없었고 그 이후 계속 ‘망연자실’한 채로 있었다. 난 도대체 뭘 쓰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난 오랫동안 문탁에서 청(소)년 사업을 해왔다. 청년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었지만 성과는 늘 소소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한 짓의 90%는 ‘뻘 짓’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문탁의 친구들은 그 이유가 내가 아이들을 예뻐해서란다. 음, 내가 아이들을 예뻐하는 것은 맞지만, 그건 ‘오면 예쁘고 가면 더 예쁘다’는 할머니 심정 같은 것에 불과하다. 그럼 왜? 때로는 사명감. 더 많이는 부득이함!

  그리고 얼마 전 나는 또다시 청년들과 <길드;다(多)>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앞으로 몇 년 간도 난 싸부, 물주,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꼰대와 스승 사이 그 언저리를 어슬렁거릴 것이다. 하루 빨리 퇴출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난 또다시 루쉰을 생각한다. 혹시, 루쉰도 이랬던 것은 아닐까? 

  루쉰과 청년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루쉰이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졌다거나 루쉰이 청년을 사랑했다거나 루쉰이 약자에 대해 연민을 가졌다는 말만으로 설명되기 힘들다. 난 오히려 그것들을 하나씩 다 지우고도 남는 것, 그 마지막 마침표 같은 ‘뿐(而已)’이야말로 루쉰과 청년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 말고 루쉰이 살 수 있었던 방법은 없지 않았을까, 라는 조심스러운 짐작. 하여 그것을 탐색해보고 싶은 열망! 

  요점이 뭐냐고? 나도 내가 뭘 쓸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청년 루쉰의 삶?(그런데 루쉰에게 청춘이 있기는 했었나? ㅋ) 어쩌면 청년에 대한 루쉰의 복잡한 감정? 그것도 아니면 루쉰이 청년들에게 보낸 메시지? 어떤 것도 아니거나 그 모든 것! 그 막막한 길로 기어이 첫 발을 내딛는다.

  

  돌이켜보면 수유너머 시절의 루쉰 독서는 거의 의무처럼 이뤄졌고 고백하건데, 그 때 난 루쉰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문탁에서 다케우치 요시미의 중역본이 아닌  우리나라 루쉰 전공자들의 번역본으로 루쉰을 다시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루쉰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그 때 비로소 루쉰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쉰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심지어 루쉰에게 이해받는다고 까지 느꼈다. 그 만남은 ‘루쉰 온 더 로드’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얼마 전 루쉰전집이 완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리나케 그 마지막 출판본들을 주문했는데 이 글을 쓰는 딱 이 순간, 루쉰의 일기와 편지들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운명처럼. ‘루쉰과 청년’이라는 정처 없는 글쓰기를 빙자해서 다시 루쉰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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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MVQ님에 의해 2018-09-17 11:54:36 글쓰기의 달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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