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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이타카로 가는 길

청정한 공부터 | <청공터 에세이> '글'이라는 다양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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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곰 작성일19-01-02 20:47 조회1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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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다양체

 

고영주

 

천개의 고원과 접속하다

 

삶의 배치가 바뀌고 기존의 사유가 깨질 때 가 있다들뢰즈와 가타리는 이것을 사건이라고 말한다올해도 다양한 책들과 만나 쓰기도 했고말하기도 했고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그 중 천개의 고원과의 접속은 내 삶의 배치를 전환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작동되었다노동과 돈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께부터가 남다른 이 붉은 책을 나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난감했다책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고원에 나오는 개념어가 너무나 낯설었다. 8개월 동안 천개의 고원』 세미나도 했고참고서도 읽어봤지만 아직까지도 고원에 나오는 개념들은 어렵고 이해하기가 힘들다도대체 저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저자들은 이상하게도 기계라는 단어를 쓴다왜 기계일까기계는 작동되어야 하고 무엇인가 생산되어야 한다이런 점에서 천개의 고원은 책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내 삶을 작동시키고 내 삶에 무언가를 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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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 리좀적인 삶

 

다양그것을 만들어야 한다하지만 언제나 상위 차원을 덧붙임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가장 단순하게냉정하게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차원들의 층위에서언제나 n-1에서다양체를 만들어내야 한다면 유일(1’unique)을 빼고서 n-1에서 써라그런 체계를 리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천개의 고원, 2003, 새물결, p18)

 

 

리좀이란 뿌리줄기이다어떤 것에 고정시킬 수도 없고 어떤 지점이건 다른 지점이건 무엇과도 연결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질서 없이 마구 엉켜있는 뿌리줄기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그런데 저자들은 왜 리좀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왔을까그것은 서양의 수목적 사고를 비판하기 위해서이다수목은 나무이고뿌리이며 곁뿌리들이다저자들은 하나의 삶하나의 주체로 환원되는 것을 경계한다수목은 하나의 중심으로 뻗어가며고정하고규정하며하나의 목적만을 향해 간다천개의 고원 땅 밑줄기와 공기뿌리와 헛뿌리와 리좀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아름답지도 않고 정치적이지도 않다.”(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천개의 고원, 2003, 새물결, p35)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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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유일(1’unique)은 회사라는 메커니즘이었다취직’, ‘돈의 축적’, ‘승진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당연한 코스라고 생각했다왜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그것만이 라는 주체를 인정받을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취직하고 돈을 많이 벌고 사회에서 인정받으면 삶이 윤택해질 것이라 생각했고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활동이 회사생활이었다나의 욕망을 정규직이라는 하나의 틀에 고정시켜 사는 것은 편안하고 안락했다회사의 목표가 나의 목표인 것처럼 살면 되고돈의 축적이라는 중심을 향해 가기만 한다면 나는 불편할 것이 없었다수목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준다오히려 내가 수목에서 나오려고 하면 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내 주변 사람들이 불안해 할 것 같았다.

 

나의 수목적 삶이 오래된 탓이었을까. “너는 왜 항상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해?” 올해 같이 공부하는 조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이 말을 내가 듣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놀랐다저자들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코드를 규정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정규직은 맞는 삶백수는 틀린 삶으로그런데 과연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배치를 바꾼다고 해도 또 다른 규정이 생기는데 말이다공부와 글쓰기를 할 때도 관념이 깨지자마자 또 다른 관념이 만들어진다대체 어쩌란 말인가

 

천개의 고원을 읽으면서도 리좀은 좋은 것이고 수목은 나쁜 것처럼 느껴졌다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개념들이 이분법처럼 느껴졌다정착민과 유목민국가장치와 전쟁기계홈 패인 것과 매끄러운 것다수어와 소수어그런데 천개의 고원이 이분법적인 책이라면 좋고 나쁜 것만 구별하면 되지 않을까왜 어렵고 모호하게만 읽히는 것일까강의를 듣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천개의 고원의 나오는 언어들은 맞다’ ‘틀리다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개념들은 분명하게 이분법적이지만 그것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음을 말해준다리좀과 수목은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개념이다수목적 삶에서도 리좀적 삶이 가능하고리좀적 삶에서도 수목적 삶으로 빠질 수 있다따라서 정규직과 백수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모습일 뿐 맞고 틀린 삶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일을 빼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언급했듯이천개의 고원은 하나의 삶과 주체로 규정되는 것을 경계한다리좀적인 삶이란 하나의 규정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어떤 것과 신중하게 접속할 수 있느냐를 실험하는 삶이다. ‘취직돈의 축적승진이라는 유일을 뺐을 때나는 비로소 무엇과도 접속할 수 있는 다양체가 되는 것이다

 

 

왜 글쓰기여야 할까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건립되고 파산하는 모델끊임없이 확장되고 파괴되고 건립되는 과정이다이는 또 다른 이원론이 아니다글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어떤 것을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비()정확한(anexacte) 표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천개의 고원, 2003, 새물결, p46)

 

 

내가 천개의 고원이라는 기계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것은 이다글쓰기는 유일에서 싹튼 나의 관념과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왜냐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내 안의 자의식을 일깨우기 때문이다그런데 나를 깨우는 일은 수목형처럼 편안하고 익숙하지가 않았다왜냐하면 나의 꿀맛 같은 습관들을 고쳐야하기 때문이다퇴근 후 침대에 눕기보다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어야 하고점심에 낮잠 자는 시간을 포기하고 글을 고쳐야 했다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나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과정이었고글을 쓰는 것은 또 다른 나를 세우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글쓰기가 완벽히 나의 관념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책을 열심히 읽었어도 나의 현실과 접속이 되지 않는다면 글쓰기는 사건이 될 수 없다. “현실로 내려와서 써!”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튜터샘에게 듣는 말이다사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것도 있었지만 편하게 쓰고 싶었다편하게 쓰면 나의 민망한 습관이나 모습을 오래 보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그러다 보니 책을 촘촘히 읽지도 않았고글을 쓸 때면 좋아하는 인용문을 모조리 갖다 붙여가며 썼다정작 내 언어는 없었고 저자의 멋진 말들만이 가득했다.

 

사건의 발단은 튜터샘을 만나면서 일어났다예전에는 쓰고 싶을 때 쓰고쓰기 싫을 때는 쓰지 않았다가 몰아서 썼다그런데 올해는 매주 글을 써야 했다발제도 해야 했고씨앗 문장과 에세이 개요를 매주 써야 했다작년보다 글쓰기 숙제가 많아지면서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은 늘어났고 횟수도 많아졌다.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튜터샘에게 혼이 많이 났다냐하면 글을 편하게 쓰고 싶은 내 꼬라지(?)를 들키고 말았기 때문이다가족과 친구들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혼이나 본 적이 있었나혼나고고치고를 반복하면서 내가 책을 얼마나 성글게 읽는지현실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지 못한지를 알게 되었다내 꼬라지를 알고 나니 현실에서 쓸 만한 것이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튜터샘과의 만남으로 글쓰기가 숙제를 넘어 삶의 훈련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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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좀은 그와는 달리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그것은 사본이 아니라 지도이다지도를 만들어라그러나 사본은 만들지 말아라.(지도는 그자체로 리좀에 속한다지도는 열려있다지도는 모든 차원들 안에서 연결접속될 수 있다.(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천개의 고원, 2003, 새물결, p30)  

 

   

지도는 나만의 특이성을 가진 다양체가 아닐까솔직히 말해 올해 글쓰기 훈련이 참 힘들었다화가 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다왜 그랬을까그것은 답이 아닌 과정을 겪는 것이었기 때문이다계속해서 다시 써야 하는 과정읽은 부분을 또 읽어야 하는 과정이 결론에만 맞추며 살아왔던 나를 힘들게 했다내가 서있는 현실과 연결하여 글을 쓰는 것은 이상만을 꿈꾸며 글을 쓰던 나에게 가장 필요한 훈련이었다. 1학기부터 4학기까지 튜터샘의 코멘트조원들의 쓴소리를 듣고 예전과는 다른 글을 쓰려고 했다글쓰기 훈련이 없었으면 어땠을까아마도 나의 문제의식과 관련 없는 고원의 멋진 인용문만 가득한 글이 되었을 것이다그것은 사본이지 지도가 아니다.

천개의 고원은 이상을 꿈꾸게 해주는 책이 아니라 실제 내 삶을 재배치하도록 작동하는 책이다그리고 글이라는 다양체를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다기계는 고장날 수 있다고장이 나면 생산이 중단되기 때문에 수시로 점검을 해야 한다학기가 끝나갈 때쯤 내 마음 어딘가에 다른 고원을 가지고 글을 써보고 싶다하는 욕망이 올라왔다이 욕망의 소리가 누군가에게 들렸던 것일까내년 공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 천개의 고원을 가지고 글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내 마음을 들킨 거도 그랬지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난 것에 당황했다거기다가 튜터샘이 내년에 또 글을 봐주시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솔직히 나로서는 일이 좀 커져버렸다역시 일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지금까지 끈기와 오기로 글쓰기 훈련을 버텼고이제 조금 쉬어볼까 했는데 다음 훈련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아찔하다어쨌든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싹텄고 그러니 이젠 돌이킬 수가 없다내년에는 어떤 고원과 접속하여 내 삶의 배치가 바뀔지어떤 다양체가 생산될지 알 수 없지만바뀌는 배치와 생산되는 다양체가 삶을 정의하는 절대적 코드가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천개의 고원이 나의 사유에 균열을 내며 사건으로서 작동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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