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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공부터 | <청공터 에세이> 양명로드에서 만난 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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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정미 작성일19-01-07 10:26 조회3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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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로드에서 만난 양지

 

한정미

2학기 감이당 수요대중지성 학인들과 함께 간 여행, ‘양명로드’는 매번 사건이 터지면? 또? (마이 당했다이가! 고마해라!)하고 실성을 한 것처럼 웃거나, 어이가 없어 웃거나, 기가 차서 웃거나 하다가 나중에는 진짜로 하하하 웃게 되었다. 여행길 내내 여기저기서 웃은 기억이 제일 또렷하다. 특히 입을 한껏 벌리고 세상 재밌다고 환하게 웃던 정샘이 기억 난다. 


그러나, 처음부터 웃기만 했나? 그건 아니다. 처음 김포 공항에서 임샘의 여권이 구여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나는 아! 아무리 내가 준비를 열심히 해도 터질 것은 터지기 마련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건이 있어야 여행이지!

양명로드의 서사는 영희샘이 ‘자알’ 시작해 주었다. 무지막지 재미있을?^^;; 여행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감이 왔다. 이전의 나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너무 놀라 당황해서 인상을 쓰면서 온갖 자책, 걱정을 혼자 다하고 소심의 극치모드로!


그런데 사실은, 사건이 터졌을 때 동요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의논하고 결정을 행동에 옮기면 되는 것이다. 그 동안의 여러 여행을 통해서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익혀본지라 예전과 다르게 침착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정성껏 했다. 그리고 마음으로 일이 잘 풀리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영희샘은 이번 여행과는 인연이 없었는가 보다. 영희샘의 말에 의하면 엄마가 이번 여행을 가지 않았으면 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우리는 구여권을 가져와서 여행을 함께 떠나지 못하는 영희샘과 안타까운 이별을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상하이로 떠났다.

난 여전히 사건 앞에서는 초보 파도타기 선수, 비행기 좌석에서 두근거리는 맘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육징이 물었다. 고요한 때는 생각이 그런 대로 괜찮다고 느끼다가도 일을 만나자마자 같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은 한갖 고요한 가운데서 수양할 줄만 알고 극기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으면 일에 부딪혔을 때 곧 무너지게 된다. 사람은 반드시 일에서 연마해야만 비로소 확고하게 일어설 수 있으며, 비로소 “고요해도 안정되고, 움직여도 안정될 수 있다.”

-왕양명지음, 정인재·한정길 역주, 『전습록 1』, 청계, 146쪽

우리는 사건을 만날 때나 큰일이 생겼을 때 정말로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찌해야 할 줄 모른다. 경거망동하다 일이 더 커지게 된다. 그래서 양명 선생은 반드시 일상에서 자신을 연마해야 흔들리지 않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양지 찾아 삼만리

시차 때문인지 1시간 만에 상해 홍차오 공항에 잘 도착했다. 이번 양명로드에는 소중한 보석 같은 존재가 있다. 우리 여행의 통역, 코디를 맡아주었던 청공3기 구가혜, 가혜는 상해에서 고등학교까지 자랐고 대학을 한국에서 다녔다고 한다. 원어민 가혜 덕분에 소통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리고 여행을 함께 한 수성 양명로드의 주인공들은 보건담당 최샘, 웃음담당 정샘, 멘탈담당 조샘, 간식담당 이샘, 보조가이드 및 사진담당 지성(이샘 아들), 여행일정담당 및 총괄은 나와 경원샘이다. 모두들 제각각 역할을 맡았다. 


상해공항에서 유심칩도 바꾸고 홍차오기차역도 공항이랑 지하철 2~3정거장이라 마음이 여유로웠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좀 전의 여유로움과 달리 기차역은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잠실운동장?보다 더 넓은 기차역에 명절 귀향길을 방불케 하는 사람들,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안내센터에 여러번 물어가며 가혜랑 나는 미리 예약했던 기차표를 받으려고 길고 긴 줄을 섰다. 발권창구에서 영희샘의 표를 취소하고 우리 표를 다시 발권받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 그 많던 시간이 13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지하1층에서 2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는 가파르면서도 어찌나 길던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한 이상한 풍경을 연출했고 5분 남짓 남았을 때 검색대 앞에 도착했다. 역시나 줄이 엄청난 검색대를 통과했을 때 소흥으로 떠나는 기차는 우리를 남겨둔 채 저 멀리 휭하니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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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힘이 풀렸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영희샘이 아침에 액땜을 잘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미안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그득한 얼굴로 우리 수성 식구들 얼굴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터벅터벅 피곤에 지친 걸음으로 힘이 빠져 앉아서 회의 할 곳을 찾아보았다. 가까스로 한적한 식당을 찾아 자리에 앉아 급하게 중국에 사시는 지인에게도 연락해보고 인터넷숙소 사이트를 찾아가며 4km 근방의 숙소를 구했다. 택시 2대로 나누어서 타고 가기로 하고 택시 정거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건 또 뭐지? 택시를 기다리는 줄이 엄청 길었다. 기다린 지 거의 40분정도 되었던가? 이제 우리 차례지 하고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바깥에는 또 다시 100미터 이상의 줄이 떡 하니 나타났다. 모두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실소가 절로 나왔다. 아이고야! 오늘 하루 동안 벌써 여행에서 겪을 걸 다 겪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산. 여행 내내 경원샘이 촘촘하게 짜 놓았던 계획들은 사정에 따라 하나씩 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가혜가 열심히 검색해서 봐둔 식당은 겨우 오후 2시인데도 브레이크 타임이라 못 들어갔고 소흥 양명고거(양명이 어린시절 살던 집)를 갈 때는 기상예보에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비가 쏟아져서 우산을 산다고 차로 그 주변 일대를 한참 돌았다. 귀국 이틀 전에는 예약해 두었던 와이탄 근처 상해숙소에 저녁을 먹고 늦게 도착했더니 예약이 자동으로 취소되어 있었다. 내가 전화를 못 받은 탓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여행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했다. 사건을 하나 넘기면 또 나타나고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중국은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양명을 찾아가는 길은 왜 이토록 험한지!

양지를 찾아서 가는 길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즐거움이 마음의 본체라 하셨는데 (중략)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 반드시 크게 한 번 통곡해야만 비로소 즐거우며, 통곡하지 않으면 즐겁지 않다. 비록 통곡할지라도 이 마음이 편안한 곳이 바로 즐거움이다. 본체는 움직인 적이 없다.

-『전습록 2』, 앞의 책 772쪽

 

하지만 우리 일행은 고난에 굴하지 않았다. 사건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함께 웃었다. 언제 끝날까? 하며 하하하하 웃었다. 사건을 만나도 매번 즐거웠던 이유는 여행 첫날 영희샘의 구여권 사건이 우리를 먼저 크게 통곡?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이후로 우리는 일어나는 사건에 얽매이지 않고 좌우지간 웃고, 떠들고, 밥도 맛나게 먹고 산전수전을 함께 겪은 역전의 용사들이 되어갔다. 자, 다시 꼭두새벽 5시에 일어나 기차를 탈 채비를 했다. 오전 7시에 기차를 탔고 1시간 30분쯤 지나서 소흥북역에 도착했다. 


소흥북역은 상해홍차오 기차역 인파와 달리 사람도 적고 차분하고 규모도 작았다. 그곳에서 반갑게 인상 좋은 렌트카 기사님을 만났고 소흥 루쉰고리 근처 숙소로 향했다. 아기자기하고 오래된 골목을 지나 숙소인 소흥국제유스호스텔에 오전 9시 넘어 도착했다. 중국의 베니스라 불릴만한 것이 큰 길이든 작은 길이든 그 옆에는 수로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 숙소 앞에도 소담스런 작은 수로가 있었다. 밤이 되면 귀여운 반짝이 조명이 물을 비추고 있었다. 촌스럽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 그제서야 여행을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수로 위의 작은 다리 위에 잠깐 앉아서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소흥을 느껴보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곧바로 양명이 태어난 곳 여요로 출발했다. 햇살은 따뜻하게 차 창문에 비쳤다. 순간 스르륵 잠이 들었다. 맛있는 꿀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여요에 도착했다. 


서운루, “구름아이”(양명의 어릴적 이름 운雲)가 태어난 곳이다. 그의 태몽처럼 파란 여요의 하늘은 “상서로운 구름이 찬란히 흐르듯” 했다. 따뜻하고 여유롭고 온화한 여요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양명을 읽기 전에는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랐던 여요가 나의 마음속으로 오랜 친구처럼 들어왔다. 서운루를 돌아나오는 길에 어린 “구름아이”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할아버지를 따라 금산사에 갔다가 할아버지 가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시를 지으려고 할때 적당한 구절을 찾지 못하고 있자, 어린 "구름아이가"가 할아버지 대신 시를 한 수 읊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 동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귀를 쫑긋하며 그의 시 「금산사金山寺」를 상상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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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기념관 맞은편은 용천산이다.

 “용천각에서 그는 절벽 아래로 쏟아져 밤낮으로 맑은 구름으로 자유롭게 흐르는 용천산의 폭포에 부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구름에게 작별을 고한 이래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종종 산에 내리는 비를 꿈꾼다고 말한다.”

-뚜웨이밍 저, 권미숙 옮김,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 통나무, 134쪽 주석

​이렇듯, 양명은 용천산을 무척이나 사랑했나 보다.

꿈속에서조차 용천산을 그리워하고 산에 내리는 비를 꿈꾸었다고 할 정도로.
문득, 우리가 양명고거에서 갑작스레 만난 비雨,

당신을 만나러 먼 길을 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던 것인가!

양명의 무덤 앞에서

​ “그는 관직생활이 쓰러지는 잡초와 같았다고 인정한다.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친구를 따라 작은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앞의 책, 134쪽 주석  

 이런 생각을 한 그를 보면 거문고를 타는 공자의 제자, 광자狂者라 불리는 증점을 닮고 싶었을까?

“양명의 증조부 왕 지에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는 제자들의 기억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학생이 쩡 띠엔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으면, 어디를 가든 활기와 자족을 느낄 것이다.'”

-앞의 책131쪽  

​ “활기와 자족” 이 말은 감이당 식으로 말하면 “유머와 자립” 이다. 나는 2016년 감이당 인문학캠프에서 “노처녀가”를 낭송했던 기억이 난다. 얼굴도 얽고 눈도 애꾸, 귀도 안 들리는, 왼손과 왼쪽다리는 불구인 “노처녀”가 유머로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잘 이겨내고 건넛마을 김도령과 혼인하여 옥동자를 낳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내용이다. 그때 나는 그 “노처녀”에게 불행을 행운으로 바꾸는 “유머”를 한 수 배우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6개월 후 감이당으로 올라오면서 인생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었다. 그 때부터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양명은 달밤(월야)이라는 시에서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었던 증점을 노래하고 있다. 그 부분만 잠깐 옮기자면

 

 “거문고를 내려놓은 쩡띠엔이 있으니 아직도 바람결에 그 음이 떨고 있구나 오, 그는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나 내 마음은 그로 기쁘다.”

-앞의 책 134쪽

자유롭다. 이 시만 읽어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거문고의 음처럼 자유롭다. 의무감이 아니라 참다운 감정을 자각하는 것. 어린아이처럼 기쁘고 활기 넘치고 어디서든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것, 누구와도 관계 맺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유인가?

​ “인간적인 사람은 차별없이 모든 사물과 한 몸을 이룬다”

-앞의 책151쪽 

​이번 수성 양명로드에서도 예기치 않은 불행을 “유머”로 바꾸는 멋진 학우들에 대해 나는 감탄했다. 학우들은 어디를 데려가도 맛있게 먹고, 어디든 기쁘게 따라가고, 사건이 생기면 함께 의논하고, 서로를 도와주고 이해하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무릇 성인의 마음은 천지 만물을 한몸으로 삼으니, 세상 사람을 보는 데 안과 밖, 멀고 가까움의 구별이 없다. 혈기가 있는 모든 것은 모두 그의 형제나 자식의 친속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그들을 가르치고 길러서 만물일체의 염원을 완수하고자 한다.

- 『전습록1』, 420쪽 

​함께 하는 동안 우리는 각자 시시때때로 자기가 죽고 자기가 부활한다. 그러니 나의 윤리도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그래서 나와 너가 있는 지금 이 순간, 함께 리듬을 타는 것이다. “활기와 자족” 또한 나와 너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양명이 말하는 친민親民일까? 우리는 여행에서 매번 사건이 벌어져도 옹졸하지 않았다. 고독하지 않았다. 함께 있었고,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했다. 겨우 4킬로 가기 위해 1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우리는 낄낄거리며 웃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얘기했다. 각자의 삶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속도로 잘 살아가기를 응원했다. 상대를 온 마음으로 공감했을 때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것이다. 


양명의 무덤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것을 느꼈다. 바로 지금 내 옆의 사람에게 관심을 주는 것. 그 마음이 바로 친민親民이다. 오후의 햇빛은 우리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홍계 가까이 억새풀들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넘실거렸다. 우리는 웃으며 걸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친구 사이에서부터 산천·귀신·조수·초목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그것들   을 친하지 않음이 없어야 나의 한몸으로 여기는 어짊을 달성하고, 그런 뒤에야 나의 밝은 덕이   비로소 밝혀지지 않음이 없으며, 참으로 천지 만물을 한몸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전습록2』,    9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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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 귀주에서 매일 석관 앞에 앉아있던 양명, 그는 매번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새로 태어나는 경험을 했던 것일까? 양명의 무덤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떠서 앞을 보았다. 새 소리, 청명한 공기, 따뜻한 햇살, 그곳에 서 있는 우리들이 보였다. 양명의 양지는 여기 자유롭게 흐르는 홍계와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저 들판에 무수히 그냥 살아가는 들풀과 억새, 나무와 바람과 비와 구름 그리고 온화한 햇빛이 있는 이 곳,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이 세상에서 마주치는 상대 또는 사물에게 공감하며 살아가는 마음이다.

여행에서 매번 서로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사건을 만났을 때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려 노력했다. 너는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되어 활기찬 여행의 시간들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낮에서 저녁으로 가는 길목의 시간, 양명의 무덤에도 어느덧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작은 등불이 반짝 하고 켜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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