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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쿠바 리포트 : 한 달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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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7-11-03 10:30 조회62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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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한 달 반

김 해 완



통신
  통신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인터넷과 제 컴퓨터가 아예 연결되지 않는 상태가 며칠 지속되면서 패닉상태가 되었는데, 이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이 침통한 이야기는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아바나 전체에는 아직 익숙해지지는 않았고, 저희 집 근처와 학교 근처인 베다도는 꿰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건 100% 생활인의 입장입니다. 돈 없을 때 가는 카페, 돈 있을 때 가는 카페, 인터넷이 잘 터지는 호텔, 외국인 병원의 위치, 어렵사리 구한 비공식 버스노선도와 (뉴욕 지하철보다 더 지옥 같은) 버스 타는 법, 합승택시와 개인택시를 구분해서 이용하는 법, 그리고 쿠바에서는 금싸라기 같은 화장지와 샴푸를 파는 곳 등등. A부터 Z까지 모든 게 다른 쿠바인지라 여기까지 알아내는데도 열 명 이상의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직도 알아낼 게 산더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은 누가 와도 어느 관광 장소 하나 그럴 듯하게 가이드해줄 수가 없네요. 음......쿠바에서는 어디서 화장지를 파는지 보러 가실래요? ㅋㅋㅋ.


잃어버린 수세미를 찾아서
  쿠바에 온 지 정확히 한 달 반이 지났다. 이는 내가 수세미 하나를 구하기까지 한 달 반이 지났다는 뜻이다.
  쿠바에 오자마자 내가 사야겠다고 생각한 물건은 청소도구였다. 낯선 곳에서 일상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청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청소기처럼 거창한 걸 사겠다는 건 아니었고, 화장실 청소를 할 때 수세미와 고무장갑, 플라스틱 바가지처럼 아주 간단한 도구를 구할 생각이었다. 뉴욕에서는 이런 생활용품은 큰 마트 한 코너에서 팔거나 길거리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팔았다. 그래서 여기서도 길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내 철저한 오산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나는 수세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내게는 별 필요도 없는 조잡한 미니 빨래판과 마주쳤는데, 그 가격이 무려 만 이천원이나 했다. ‘모든 걸’ 다 판다는 쇼핑몰 까를로스 떼르세르(Carlos III)에도 가봤는데, 대못 몇 개와 경칩 몇 개를 유리진열장 안에 소중하게 하나씩 놓고 팔고 있는 걸 보았다. 그 쇼핑몰에 존재하는 못과 경칩을 다 긁어모아도 잭슨하이츠의 철물점 한 개가 가지고 있는 양보다 더 적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머무르는 카사가 쿠바에서 꽤나 잘 사는 축에 드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청소할 때 고무장갑을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쿠바에 있구나. 이곳에서는 모든 물건이 귀하구나. 
  작은 방을 쓸 때는 손걸레와 빗자루만으로 그럭저럭 화장실을 청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큰 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 방에는 욕조가 딸린 널찍한 화장실이 있었다. 그러자 더 이상 화장실 청소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욕조가 너무 더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수세미 없어 어떻게 떼에 찌든 욕조를 구제한단 말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수세미 비스무리한 것은 노란 이태리 떼수건 하나 뿐이었다. 나는 떼수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 친구의 운명에 대해 고민했다. 한국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이 귀한 아이를 희생시켜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 떼수건을 희생하면 쿠바에서는 절대로 다른 떼수건을 구하지 못할 텐데? 한쪽은 내 피부를 위해서, 다른 한쪽은 욕조를 위해서 사이놓게 나눠 써볼까? 
  떼수건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을 미뤄두고, 나는 머리를 식힐 겸 산책에 나섰다. 그리고 근처에 사는 한국 동생을 불러서 옷 가게를 구경한 후, 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내 떼수건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다가 내게 말했다. 며칠 전에 ‘물과 비누(Agua y Habon)’라는 가게에 (이 얼마나 성스러운 이름인가) 갔는데, 그곳에서 수세미를 본 기억이 난다고.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뉴욕 5번가의 예쁜 신발가게에서 일하는 친구가 내게 50% 할인을 제안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흥분되었다. 우리는 그 길로 ‘물과 비누’ 가게에 갔고, 환호성을 질렀다. 태풍 어마 이후로 다 떨어졌던 물건들이 다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수세미 외에도 샴푸, 바디샴푸, 중성세제를 소중하게 골랐다. 심지어 참으로 귀한 고무장갑과 물티슈까지 구할 수 있었다. 삼 만원이라는 거금을 썼지만 단 한 푼도 아깝지 않았다.
  그 길로 집에 돌아가서 화장실 바닥에 쇼핑한 물건을 나란히 늘어놓았다. 마음이 그득해졌다. 이제야 아바나에서 관광객이 아니라 생활인이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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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산다는 것
  없는 물건이 겨우 수세미 정도라면 웃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으리으리한 대학교 건물에 창문이 깨져도 새로 갈 유리가 없어서 방치해야 한다면, 보수공사를 할 수 없어서 아파트 건물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면, 전압 때문에 끊어진 케이블을 새로 갈 수가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족한 물자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쿠바의 교육이 무상인 것은 대단하다고 말하자 내 쿠바 친구는 날카롭게 받아친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공짜 등록금이 의미 있는 건 어디까지나 학교가 운영될 때의 이야기야. 그러려면 누군가는 전기를 돌려야 하고 유리를 갈아야 하고 선풍기를 사야 해. 그런데 지금 그걸 누가 하고 있지?”
  쿠바의 어려운 상황은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내 삶은 쿠바에서는 귀하디 귀한 공산품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이 물건이 어떻게 나에게까지 왔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유리 한 조각이 만들어지려면 원재료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가공할 공장과 공장을 돌릴 노동시장, 그리고 유리를 유통할 판매시장이 있어야 한다. 이 거대한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 특히나 원재료가 거의 없다시피한 한국이라는 땅에서는 더 이상한 일이었다. 물건이 없는 쿠바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렇게 물건이 넘쳐나는 상태가 더 이상한 게 아닐까? 요즘 도시 아이들은 감자와 당근과 사과가 슈퍼마켓에서 자라는 줄 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막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꼴이었다. 몇 년 전에 밀양 송전탑 문제를 공부하면서 내가 당연히 쓰는 전기가 여러 지역의 희생을 통해서만 내게 도달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이 놀란 반응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산품’에 적용되어야 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처럼 고급 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포스트잇, 볼펜, 수세미, 플라스틱 바가지, 심지어 머리 고무줄과 책받침까지 전부 다 말이다.
  <몰락선진국 쿠바>의 책을 읽었을 때는 쿠바가 이 물자부족의 대안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효율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근대적 삶의 방식을 버리고,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한 달 반 동안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아바나의 모습은 이 책의 비전과 많이 달랐다. (사실 이 책을 쿠바에서 다시 읽을 때 나는 작가에 대해 약간의 불신을 품었다. 책의 첫 장부터 아바나의 10만원짜리 호텔에 머물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쿠바에서 10만원의 가치가 무엇인지 안다.) 우리 이제 근대의 삶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도시에서 사람들의 삶은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근대적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돗물을 쓰고, 전기를 쓰고, 변기물을 내리며, 마켓에 가고, 키친타올을 쓴다. 그래서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그런 경우가 잦다) 일상도 멈춘다. 
  나도 이 위험한 순간을 경험했다. 내가 머무는 카사는 넓지는 않지만, 쿠바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잘 관리된 축에 속한다. 까리와 빠삐(나는 우리 집 할머니 할아버지를 이렇게 부른다)는 프로답게 집을 관리한다. 그렇지만 이런 장소마저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나는 샤워하다가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크게 신경쓰지 않고 계속 샤워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터졌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려면 순간온수기를 써야 하는데, 고압의 전기를 견디지 못하고 케이블이 불에 타버린 것이다.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불꽃이 일고, 수돗물과 재가 함께 섞여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다행히 감전되지도 않았고 화상을 입지도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끊어진 케이블이 전기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는 것을 보자 다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십중팔구 새 케이블을 구하지 못한 것일 테다. 그 후로 나는 콧물이 나와도 냉수로 샤워한다. 
  어디까지 바라고, 또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아바나가 도시라서 이런 걸까? 아바나 밖의 상황은 또 다를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에 한 달 반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해결책은 있다?
  내 과외선생님은 쿠바인들은 농담의 달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인생에는 언제나 해결책이 있거든. 너무 심각해지지마.” 그렇다. 언제나 해결책은 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으면 테이블 냅킨을 쓰면 된다. 온수가 없으면 냉수로 씻으면 된다. 학교가 막장이면 혼자 공부하면 된다. 10년은 된 것 같은 내 방 매트리스는 울퉁불퉁한데, 그래서 나는 자다가 꼭 한 번씩 깨서 바닥으로 내려간다. (바닥에 까는 요가 없어서 바닥에서만 자면 너무 딱딱하다.) 그러면 푹 잘 수는 없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요통은 좀 덜 하다. 또, 빠삐는 집 보수 공사를 혼자 다 하는데, 고무장갑이 없어서 맨 손으로 시멘트를 만지고 페인트칠을 한다. 그러면 밤새 화학약품에 노출된 손가락 통증에 시달려야 하지만 찜질을 하면 좀 나아진다.
  쿠바인들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강인한 생존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것은 대안적 삶이 아니라, 아직은 버티고 있는 삶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여기에 낭만을 덧씌우지는 않으련다. 나는 요통 없이 푹 잠을 자고 싶고, 빠삐는 손에 통증 없이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싶다. 영어와 일본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내 쿠바친구는 능력에 걸맞는 직업을 갖고 싶고, 쿠바의 아이들은 인력 부족으로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중고등학교 교육을 탈출하고 싶다. 이를 두고 ‘대안’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빵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 했던 마리 앙뚜아네뜨만큼 속 없는 말일 것이다. 변화의 기로에 서서, 쿠바인들은 아직 무엇이 합당한 변화의 길인지 모색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수세미를 볼 때마다 나는 내심 깨닫는다. 정신의 상상력보다 생활의 상상력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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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친구가 집으로 초대해 브샤브를 대접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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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언제나 해결책이 있다. 아시아 음식이 금싸라기 만큼 귀한 쿠바이지만, 
우리는 아내를 위해 늘 요리하는 훌륭한 남편인 중국친구에게 빌붙어 음식을 얻어먹었다. 
너무 대접을 잘해줘서 다음번에는 우리가 요리를 해야하게 생겼다. 상부상조! 살기 위하여!"



 

댓글목록

kjsun0501님의 댓글

kjsun0501 작성일

ㅎㅎ
글과는 다르게 사진 속 해완씨 얼굴은 아주 활짝 피었네요~
그 푸르디 푸른 젊음과 청춘이 부럽습니다!

소담님의 댓글

소담 작성일

글에서 느껴지는 삶은 빠듯하지만 사진 속 해완샘의 모습은 여유만만!
소비가 넘쳐나는 뉴욕에 있다 쿠바로 가서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진듯해요.
때수건 스토리는 정말... 빵터졌어요. 쿠바에 간다면 '물과 비누' 샵 구경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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