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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쿠바 리포트 : 세상과 인생의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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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2-23 07:00 조회63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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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인생의 로터리

 

 

 

김 해 완

 

 

 

 

 

 

 

도시는 로터리다


  뉴욕에 있을 당시에 한 친구가 말했다. 내가 뉴욕 다음에 쿠바로 향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미쳤다(crazy)’고 말하지만, 자기가 보기에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고. 원래 뉴욕은 세상과 인생의 로터리 같은 곳이라서 늘 변화가 일어난다고.
  그 친구의 마음씀씀이보다도 표현력에 충격을 받았다. ‘세상과 인생의 로터리’라니,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뉴욕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고 또 간다. 온 사람들 중에서 과연 누가 언제까지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남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뉴욕에 올 때와 ‘같은 사람’으로 남아있는 경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온 세계가 비정상적으로 압축되어 있는 이 도시는 정신없이 사람을 뒤흔들다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인생을 이끈다. 그 덕분에 나도 엉겁결에 쿠바로 튀게 된 것 아닌가. 이 역동성에 항상 감탄하면서도 숨이 막혔다. 그래서 쿠바행 짐을 쌀 때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휴우, 드디어 이 미친 도시를 떠나서 좀 조용하게 쉴 수 있겠구나.
  그때 내가 아직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아바나는 뉴욕과 또 다른 의미로 ‘세상과 인생의 로터리’였다. 아바나에 막 도착한 사람은 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세계가 모이는 중심지가 아니라, 반대로 모든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지구촌의 달동네이기 때문이다. 뉴욕보다 삶의 속도가 훨씬 느리고, 사람이 북적거리지도 않으며, 자유시간에도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렇게 조용한 곳이 아바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석진 섬나라까지 굳이 기어들어오는 소수의 외국인이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야말로 정말로 ‘미쳤다(crazy)!’ (나도 여기에 포함되므로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겠다.) 사람과 제대로 마주친다면 세계관과 인생이 방향을 틀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아바나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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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사람이 특이하지 않은 곳


  내가 아바나에서 만난 인간군상은 뉴요커들과 또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독기’와 ‘똘기’의 차이다. 뉴욕은 독종들의 도시였다. 이 자본주의의 심장은 생활 강도를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높였고, 사람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 역량 내에서 (혹은 그 역량을 억지로 넓혀가면서) 최대한 변신을 꿰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 평범한 몸부림을, 그 와중에도 존재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는 그 창의적인 전투를 사랑했다. 그것은 처절하면서도 흥미진진한 휴먼드라마였다.
  그렇지만 이곳 아바나를 찾은 이방인들에게 이런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뉴요커들에 비하면 거의 한량에 가까웠다. 집에서 늘어져라 낮잠을 잤고, 언제든지 유연하게 계획을 바꿨으며, 노는 걸 좋아했다. 돈을 버는 생활인이 아닌 여행객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는 다들 한결같이 개성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의 ‘똘기‘는 격도 높았다. 자신의 기질을 어느 순간에 굽혀야 하는지, 또 어떻게 남을 배려해야 하는지, 다들 각자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아바나의 외국인 커뮤니티의 첫 번째 특징은 마음이 열려 있고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뉴욕에서는 내 친구들 대부분이 동아시아인이었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골라 사귄 게 아니라, 뉴욕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인종과 국적을 따라서 커뮤니티가 나누어지는 탓이었다. 그러나 현재 나는 뉴욕에서 어울렸던 친구들보다 더 다국적인 그룹에서 놀고 있다. 이곳의 외국인들은 타문화와 타인종과 섞이고 배우는데 거리낌이 없다. 한국인만 모여 있는 홈 파티에 말레이시아 청년이나 노르웨이 소녀가 와서 즐기다 가는 일이 다반사다. 뉴욕에서는 그토록 애를 써도 넘기 힘들었던 인종의 장벽이 이곳에서는 너무 쉽게 허물어져서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마음가짐은 언어에서도 드러났다. 쿠바에 오기 전에 나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영어도 힘겹게 배웠는데, 스페인어는 언제 또 배울까?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언어를 세 개씩이나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배우기 이전에 이미 최소 3개의 언어를 머릿 속에 탑재하고 있었다. ‘광동어+중국어+영어,’ ‘중국어+독일어+영어,’ ‘노르웨이어+독일어+영어,’ ‘노르웨이어+프랑스어+영어,’ ‘한국어+힌두어+벵갈어+영어’...... ㅎㅎㅎ. 이들 사이에 있으면 영어를 하는 것은 전혀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입 다물고 스페인어나 열심히 공부하기로 했다.
  뉴요커들에게 내가 탄복했던 것은 생활의 힘이었다. 그러나 아바나의 ‘똘기’ 충만한 친구들에게 내가 감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면의 힘이다. 깊든 얕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단순하든 복잡하든, 다들 자기만의 생각의 길을 내면서 살고 있었다. 쿠바에서는 한량처럼 살고 있지만,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인생을 만들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쿠바까지 발걸음을 옮긴 데에는 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다. 매번 실없는 농담이나 하면서 어울렸지만, 이들의 세계관은 어느 새 내 안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평생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소년. 제3세계가 전 세계에 얼마나 아낌없이 베풀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쿠바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청년. 자신은 이 나이 먹도록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며 거리낌없이 고민을 고백하는 중년. 뉴욕에서라면 이런 소망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바람 한 번만 불어도 흩어질 연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혹은 철없고 속없는 고민 상담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바나에서 이런 내면의 말들은 뼈와 살을 지닌 채 살아 움직인다. 이 구석진 섬나라에는 별 게 없지만, 내면을 탐사할 시간은 넘쳐나는 것이다.

 

 

 

 

 

 

 

 

일상이 로맨스


  그렇다고 해서 아바나 외국인들에게 근사한 이미지를 덧씌울 필요는 없다. 사실 이들의 내면의 주 관심사는 바로 가장 세속적이고 우주적인 욕망, 연애니까. 나는 아바나에서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로맨스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감상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쿠바에 왔다가 건강한 쿠바 남녀와 눈이 맞아서 격정에 휩쓸리고, 중년들은 새로운 인연을 찾아서 일부러 쿠바를 찾아온다. 혹은 외국인들끼리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사랑을 싹 틔운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뭐야, 연애나 하러 쿠바까지 온 거야? 그렇지만 지난 몇 달 간 그들이 펼치는 드라마를 옆에서 감상하면서 나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오호라...... 사랑(이든 정욕이든 타이밍이든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앞에서는 원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것이로구나. 이것은 정말로 원초적인 힘이다. 이 힘은 쿠바에서 특히나 더 강하게 발산된다. 우리 중 누구도 아직도 쿠바에서는 어떻게 연애를 해야 잘 하는 것인지 가이드라인을 찾지 못했다. 양다리나 삼다리 걸치는 일은 다반사이고, 질투와 욕정은 몇 배는 더 격정적이며, 성(性)적 표현은 더 직설적이다.
  이런 땅의 기질(?)은 외국인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들은 한 명 한 명씩 누군가에게 반했다. 그리고 그 반한 마음을 숨기지도 않고 직진을 했다. 상대방에게 애인이 이미 있는 경우에는 그 주위를 맴돌면서 애타게 바라만 보았다. 헐...... 로맨스 영화를 현실에서 실제로 찍는 게 가능하다니! 영화 <비포 선 셋>이나 왕가위 영화 <2046>을 볼 때나 느꼈던 인연의 성사와 엇갈림, 그 안타까움과 아름다움을 현실에서 직접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 집 할머니가 지난 13년 동안 외국인 학생들과 만나면서 수집한 연애 이야기도 만만치 않게 버라이어티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영화가 아니라 뗄레노벨라(Telenovela : 남미의 아침드라마)로 막을 내리기도 했지만......
  뉴욕에 비하면 아바나는 정말 할 게 없는 조용한 도시다. 그래서 더욱더 사람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모양이다. 역시 사람 사이에 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젊다는 것


  지난 주말에 학급 친구들과 2박 3일 동안 여행을 갔다 왔다. 장소는 아바나에서 200km 떨어져 있는 쁠라야 히론(Playa Giron)이었다. 12월 말에 룬핀과 방문했던 쁠라야 라르가와 굉장히 가까운 곳인데, 그 바다가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갔다 오기로 했다.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운전도 했다. 핸들을 똑바로 잡고 있는데 차가 똑바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처럼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다녀왔다. 바다도 보고 석양도 보니 운전하면서 지옥을 오갔던 내 마음도 평화를 되찾았다.
  마지막 밤, 나는 가장 어린 친구 둘을 데리고 별을 보러 공터에 나갔다. (그때까지 잠이 들지 않은 유일한 애들이었다.) 공터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는 내가 젊다고 느낀 것이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지난 시간 가운데에서 오히려 지금이 가장 젊다고 느껴졌다.
  괜한 감상주의에 빠진 것일까? 그렇지만 이 느낌은 여행이 끝나자 점점 강해졌다. 그제야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까지 내가 ‘젊음’과 결부시켰던 감정은 불안이었다. 공부를 통해서 제도권을 따르지 않는 삶의 방식에 대한 불안은 없앨 수 있었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한 불안까지는 해결할 수는 없었다. 무능해서 불안했고, 길을 몰라서 불안했고, 인연이 흔들려서 불안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불안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내 몸 고유의 힘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시골 마을의 별은 참 아름다워서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과연 이 순간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 곧바로 든 생각은, 사실 자격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원래 생명은 세상이 아무 의미 없이 토해낸 물질덩어리가 아닌가. 나는 인연에 빚을 지고, 쿠바에 빚을 지고, 지구에 빚을 져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격이 아니라 방향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나를 통과해서 흐른다. 단점도 많고 실수도 잦은 나지만, 이 시간의 파도 속에서 방향을 바꾸고 나아갈 힘은 있다.
  여행이 끝나자 생각도 끝났다.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 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이것을 설명하려고 든다면 또 다른 글을 한 편 써야 한다. (최근 한 달 간 나는 이 결정을 두고 친구들과 수없이 설전(舌戰)을 치렀다.) 지난 5개월 간 내가 만났던 사람, 들었던 이야기, 머물렀던 장소가 다 함께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마음을 정하고 보니까 그렇게 생뚱맞은 결정도 아니다. 글을 쓰면서 내 내면을 계속 두드리지 않았다면 이곳 쿠바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나 자신과 타인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글을 계속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이를 26살이나 먹어도 여전히 공부 밖에는 할 줄 모르는 무능한 나지만, 이번만큼은 이 길에서 타인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걸고 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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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esc님의 댓글

소담esc 작성일

의학... 해완샘... 어느 날 문득...
전쟁 속... 국경없는 의사회... 에서 일하는거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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