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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쿠바 리포트 : 남한 여권 소지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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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3-21 07:00 조회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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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여권 소지자의 슬픔

 

 

김 해 완

 

 

  지난 주 수요일에 나는 ELAM에 입학하고 싶다는 신청서를 냈다. 그제야 어깨에 힘이 빠졌다. 한 줄로 요약되는 이 간단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얼마의 시간을 허비해야 했던가? 한 달 반이었다. 그 동안 방문한 장소만 해도 다섯 군데가 넘고, 또 한 번에 일이 처리되는 경우가 없어서 같은 장소에 몇 번씩 되돌아가야 했다. 보건복지부에 가면 쿠바 메디컬 서비스에 가라고 하고, 메디컬 서비스에서 가면 다시 보건복지부에 가라고 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제 관계를 주관하는 이깝에 가보라고 하고...... 그러나 내가 정말 필요한 정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내가 ELAM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거지?
  인터넷 검색과 전화 몇 통으로 정보를 얻는데 익숙한 한국인들은 이런 정보 수집을 위한 노고와 그에 따른 절망을 실감을 못할 것이다. 사실 일이 쓸데없이 복잡해진 데에는 내 탓(?)도 있었다. 내가 바로 한반도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반도의 남쪽 출신인 ‘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직원도 ‘남한 사람’이 ‘쿠바’에서 정식으로 공부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한국 대사관에 물어보는 게 제일 빨라요, 그쪽에 문의하세요” 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쿠바에는 ‘남한대사관’이 없단 말이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없다?


  첫 번째로 내가 확실하게 하고 싶었던 문제는 과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ELAM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전 세계 학생들이 무료로 의학공부를 합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누가, 어떤 자격으로, 어떤 조건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 뉴욕에서 지인의 부탁으로 ELAM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이 문구를 말 그대로 ‘누구나’ 열정만 있다면 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래서 의대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나 역시 장학금을 받고 ELAM에서 공부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학금을 받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ELAM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은 모두 국가장학금이었다. 쿠바 정부와 유학생의 출신 국가의 정부가 직접 계약을 맺는 형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학생들은 모두 본국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한 후에야 쿠바에 온다. 이 장학금을 쿠바 정부가 지출하는 것인지 아니면 유학생의 본국이 지불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다. (중국의 경우는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것이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쿠바 정부가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턱대고 쿠바에 온 나도 ELAM의 장학생이 될 수 있을까? 그럴 턱이 없다. 쿠바와 남한은 아직 수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문제였다. 장학금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과연 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ELAM의 입학과 관련된 정보는 대부분 대사관을 통해 전달되었고, 나는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쿠바에 나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애원했다. (보건복지부 본부의 데스크에 가서 질문을 했더니, 장관을 불러주었다. 헐...... 이렇게 장관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일까?) 내가 쿠바와 수교도 되지 않는 나라에서 왔고 또 내 나라가 쿠바보다 훨씬 부유한 것도 맞지만, 나는 정말로 의학을 통해 사회 봉사를 하고 싶어서 쿠바에 왔다고. ELAM의 다른 학생들처럼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고 싶다고. 그러자 장관은 나를 불쌍한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한 번 ‘이깝’에 가서 도전해보라고 일러주었다. 이깝은 국제 관계를 주관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교육부에 청원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길로 나는 이깝에 달려갔다. 이깝에서 동북아시아를 담당하는 관계자를 만나서 사정을 설명했고, 그는 친절하게도 교육부에 연락을 취해볼테니 한 번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ELAM의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남한 학생이 이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내가 처음부터 눈치채야 했을) 진실을 말했다. “국적은 상관 없어요. 스스로 돈을 내는 ‘셀프 펀드’ 학생이라면 말이에요.” 아니, ELAM은 순수한 장학 재단 학교가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에요. 여기 도표 보이죠? 이게 등록금 가격이에요. 그리고 이건 기숙사 가격이고요.”
  아하...... 그렇구나...... 그 순간 나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돈의 힘은 세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그건 마찬가지다. ㅠㅠ.

 

공증을 받을 수 있다, 없다?


  그렇다면 ‘셀프 펀드’ 학생은 ELAM에 어떤 절차를 거쳐서 입학해야 할까? 세 번의 방문과 두 번의 대화 끝에 나는 입학 정보가 담긴 문서 파일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파일도 담당자를 직접 만나서 USB로 얻어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입학 과정에 필요한 문서를 본국에 있는 쿠바 대사관을 통해서 공증을 받아야 했다. 본국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쿠바에 있는 본국 대사관을 통해서 공증을 받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둘 중 어떤 방법도 쓸 수 없었다. 쿠바에 남한 대사관이 없는 것처럼, 남한에도 쿠바 대사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Dios Mío!!!!)
  가장 중요한 문서는 내가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는 졸업증명서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잔머리를 굴렸다. 내게는 두 개의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다. 하나는 한국의 검정고시증이고, 또 하나는 미국의 검정고시증이다. 그렇다면 쿠바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공증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쿠바의 미국 대사관은 트럼프의 심술맞은 쿠바 정책 때문에 거의 문을 닫았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워싱턴D.C.에 있는 쿠바 대사관을 찾아가자니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2년 전에 이곳에 직접 방문했을 때, 이곳도 거의 제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국 무역 기관인 코트라에도 가보고, 아바나에 사업을 하러 온 한국인도 만나보고, 학교의 국제 관계 사무실도 방문하면서 결국 나는 답을 찾아냈다. 멕시코 시티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가야 했다. 그곳에서 원본 서류와 번역본 서류를 공증을 받고, 쿠바 대사관을 방문해서 다시 한 번 공증을 받아야 한다. (멕시코는 내 나라인 한국도, 내가 공부할 나라인 쿠바도 아닌 제3국이기 때문에 이렇게 두 번 공증을 받아야 한단다.) 그런데 문제는 쿠바 대사관에서 공증에 필요한 도장을 찍어줄 때마다 100불 씩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도장을 원본과 번역본에 각각 찍어준다고 한다. 이번에 내가 공증 받아야 할 문서는 총 세 쪽이다. 그렇다면? 600불이 도장 여섯 번에 날라간다는 소리다. 비행기표와 체류비도 들 테니, 이 모든 것을 합치면 100만원 이상 깨질 것이 자명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음을 되새겼다. 역시, 세상은 돈으로 돌아간다. 돈 욕심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가 더 심할 수 있다!!!

 

 

 

 

 

왜 쿠바에 왔니


  이렇게 발로 한참을 뛰어다닌 후에야, 나는 겨우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올해 언제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지, 언제 ELAM으로 돌아와야 하는지 스케줄도 확정할 수 있었다. 내 정보수집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정말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게 맞냐고. 나중에 또 몰랐던 사실이 튀어나오는 게 아니냐고. 사실 나도 확신할 수가 없다. 이러다가 막판에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하는 일이 생길까봐 조금 무섭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변수가 생기면 그때 가서 눈물을 머금고 처리하는 수밖에. 쿠바에서는 모든 정보를 알아낸 후에 행동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쿠바에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쿠바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한 친구는 내게 농담을 던졌다. 남한 여권을 가지면 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비자 없이 프리패스로 방문할 수 있는데, 왜 하필 그 특권이 전혀 통하지 않는 쿠바에 왔느냐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맞는 말이다. 미국의 51번째 앞잡이 주(?)로서 글로벌한 특혜를 받고 있는 남한에서 태어났으면서, 나는 미국을 징하게도 싫어하는 이 구석진 섬나라에 왔다. 덕분에 나는 국적 때문에 여행을 갈 수 없는 친구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부자가 아니라면 외국 여행을 위한 비자를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한 중국 친구들 같은 경우 말이다. (중국 친구들이 요즘 나를 얼마나 놀려먹는지 모른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 것은 올해 내가 ELAM에 입학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라는 것이다. 이 학교는 만 18살에서 24살까지의 학생만 받는다. 올해 나는 만 25살이 되지만, 다행히 생일이 12월이라서 9월에 ELAM에 입학할 때는 아직 24살이다. 그렇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이렇게 바보처럼 사방팔방을 헤매며 길을 찾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이게 무슨 대수겠는가. 멕시코에 가서 타코와 나초나 많이 먹고 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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