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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쿠바 리포트 : 아바나의 한국인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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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6-08 07:00 조회4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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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한국인 트리오

 

 

 

김 해 완

 

 

 

  지금까지 쿠바에는 한국 학생이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남한 학생이 없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곳 쿠바에서는 아시아인이 너무 적어서 모두가 모두를 알기 때문이다. 올해 엘람(ELAM)을 졸업하는 말레이시아 학생도 한국인은 지난 6년 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바나의 한국인 네트워크를 봐도 다들 선교 활동을 하는 종교인이나 쿠바 정부의 규제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업인이지, 토종 한국인으로서 이곳에 공부를 하러 오겠다는 학생은 없다.


  그러나 2017~8년에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쿠바에서 공부하겠다는 한국인이 홀연히 세 명이나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모두 의학을, 또 모두 엘람을 선택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따로 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쿠바 의대’가 갑자기 붐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이 세 명은 모두 속으로 ‘쿠바에 공부하러 오겠다는 한국인은 정말 나 혼자 밖에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그러다가 아바나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내심 엄청 놀랐다고 한다. 역시 한국인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이 세 명의 한국 청년을 짤막하게 소개해보겠다.

인도의 자식, I


  I는 이 세 명 중에서 가장 험난하고 스펙타클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쿠바에 오기 전에 인도에서 7년을 보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나이도 많을 것이라고 짐작하겠지만, 실제로는 한국 나이로 22살 밖에 안 된 풋풋한 청년이다. 인생의 3분의 1을 집 떠나서 살고 있는 셈이다. 쿠바에서 의대를 졸업한다면 I는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한국 밖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될 것이다.


  I는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을 떠났다. 인도로 박사 학위를 공부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남중을 다녔는데, 선배들에게 까닭 없이 얻어맞는 게 너무 서러워서 어디든 여기보다 더 나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가 안겨준 시련은 만만치 않았다. 영어도 못 했던 이 철부지 중학생은 힌디어, 벵갈어, 영어를 동시에 배워야 했다. 게다가 인도 문화는 한국 문화와 접점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신세계였다. (불교가 미약한 연결고리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I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감수성 충만한 십대를 짖궂은 인도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I는 이 기나긴 시간을 놀라운 적응력과 타고난 개그 본능, 그리고 깊은 신앙으로 견뎌냈다.


  그렇게 7년을 보내고 나서, 이 청년은 한국물이 싹 빠지고 제3세계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인도의 델리는 제1세계의 어느 수도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만큼 발전했지만, I가 다닌 학교는 인도의 깡촌 시골에 있었다. 이 학교는 소속은 공립 학교지만 커리큘럼은 한국으로 치면 대안 학교에 가까웠다고 한다. 서구식 교육 방식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 아이들을 길러내는 인도의 정통 교육 방식을 택한 것이다.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근사하게 들리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흙 위에서 소와 함께 뒹굴면서 살았다는 소리다. 그래서 I는 입만 열면 흥분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왜 다들 쿠바를 싫어하세요? 인도에 비교하면 쿠바는 제3세계 축에도 못 껴요.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데요. 쿠바는 2세계, 아니 1.5세계에요! Viva Cuba!” 


  이런 이야기에 한국인 중 그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 공동체 생활을 오래했고, 뉴욕에서도 얇은 지갑을 들고 전전긍긍하던 유학생이었던 나조차도 공감할 수가 없다. I의 격한 쿠바 찬양을 멍 때리고 바라볼 뿐이다. 어...그래......그렇구나........(^^;;) 그래서 I의 큰 고민 중 하나는 한국인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한국인이건만, 정작 한국인 그룹 속에 껴 있으면 어색해서 죽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쿠바인들이 ‘인도에서 오래 산 한국 청년’이 갖는 정체성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쿠바인들에게는 인도든 한국이든 모두 은하계 하나를 통째로 가로질러야 도착할 수 있는 신세계니까. 정체성에 대한 I의 고민은 과연 어떻게 풀릴 것인가? 두고 봐야 할 일이다.


  I가 쿠바를 마음에 담았던 것은 고등학교 정치학 수업에서였다. 미국에 맞서서 오랫동안 경제봉쇄에 맞서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때 마침 그는 쿠바에 오면 의대에 무료로 갈 수 있다는 소문(사실은 헛소문)을 들었다. 그 후 의사의 꿈이 그의 가슴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사가 되면 가난한 커뮤니티에서 평생 봉사하면서 살 생각이었다. 작년,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I는 아버지와 함께 쿠바로 직행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외국인을 위한 장학금이 존재하긴 했지만, 한국인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I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정체성을 실감했다. 버릴 수도 껴안을 수도 없는 이 놈의 국적......)


  그렇지만 I는 의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렇게라도 인연이 닿았으니, 쿠바에서 끝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세 명의 한국인 중에서 가장 먼저 의대지망생이 되었다. 나머지 두 명의 한국인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도 못 하고, 또 다시 6년의 시간을 혼자서 외롭게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동차 박사, W


  그리고 W가 왔다. W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한국 학생이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착실히 졸업하고, 수능을 망치고, 사촌을 따라서 아바나에 놀러온 갓 20살 된 청년-소년이다. 그러나 이 친구의 가슴 속에서는 아바나를 방문하자마자 의학을 공부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정도의 ‘똘끼’가 숨어 있다. 아바나에서 이미 몇 개월을 살면서 스페인어 공부를 해본 사촌이 뜯어말려도 W는 듣지 않았다. 한국에서 예정되어 있었던 대학 입학도 포기하고, 다시 아바나로 되돌아와서 스스로 입학 과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W가 전혀 평범한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뭔가에 한 번 꽂히면 죽자사자 파는 타입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자동차에 꽂혔다고 했다. 자동차의 원리, 각 모델명, 그 스펙 등등을 훤히 꿰게 되었다. W는 이 정보를 재료 삼아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어린 나이에 금새 파워블로거가 되었다. 그 후로 현대나 기아에서 신제품 출품할 때면 이 친구에게도 초대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설마 자동차 파워블로거가 면허도 없는 ‘고딩’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결국 초대받은 사람들이 시승하는 시간이 되면, W만 시범 운전을 못 해보고 옆 자리에서 대리만족해야 했다.


  W는 수능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면허를 따기 시작했다. 일반자동차, 트럭, 오토바이...... 그러나 그의 마음을 정말로 빼앗았던 것은 아바나에 가득 차 있는 50년대 올드카였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차들이 모여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바나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다. 그 즈음 W는 아무리 자동차가 좋아도 이것을 취미 이상으로 파고들기에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고, 차를 고치는 것보다 사람을 고치는 쪽이 더 의미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아바나’와 ‘의대’라는 두 톱니바퀴가 적절한 시기에 딱 맞아떨어졌다.


  한 번도 외국생활을 해보지 않은 초보자지만 문제는 없을 것이다. W가 어린 나이에 자동차에 보여준 집념이라면 아바나 생활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보통의 영어 실력으로도 외국인과 겁 없이 대화하고, 고작 한 달 배운 짧디 짧은 스페인어로 여기저기 집을 구하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겁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이과생이라서 본과 수업에서는 문과생인 다른 두 한국인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 세 명의 한국인 중에서 가장 장래성이 촉망 받는 친구다!

 

 

깍이 학생, H


  다 아실 것이다. 이니셜을 쓸 필요도 없이, 이건 나다. 26살의 나이에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늦깍이 학생이다. 남미 문학을 공부하러 쿠바에 갔다가 갑자기 의대로 공부의 진로를 확 틀어버린 겁 없는 문과생이다.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생략하겠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지루하실 테니까.


  그건 그렇고, 요즘 어린 두 남동생을 좌우에 끼고 다니니까 내 나이가 확 실감난다. 십대 후반에 연구실 생활을 시작해서 늘 어리다는 사실에 익숙해 있었는데, 여기서는 엄청 늙은 학생이 되고 말았다. 이게 딱히 자의식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생을 거느리고 다니는 생활이 참 신선하다. I와 W에게 밥을 해주고, 그 대신 이들에게 설거지를 시키거나 오토바이 운전을 (W가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다닌다) 시키면서 내 삶도 한결 편해졌다. 쿠바에서는 밥 챙겨주는 ‘큰 누나’가 내 역할인가 보다.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처음에 의대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는 솔직히 정말 막막했다. 뉴욕에서는 한국 사람이라도 많았고, 최소한 인터넷이라도 잘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쿠바처럼 몇 십 년을 세상과 동 떨어진 채 보낸 섬나라에서, 몇 년씩이나 틀어박혀서 어려운 공부를 하는 게 과연 쉬울까?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을 때 기댈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어렵게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여기서도 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대에 가는 동지들이 벌써 세 명이나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도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역시 길을 가고 있으면, 동무가 생기는 모양이다.
  이 세 명의 한국 청년들이 아바나에서 어떤 드라마를 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이 드라마는 앞으로 6년 간 방영될 예정이다. 부디, 애청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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