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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쿠바 리포트 : 안녕,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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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7-13 07:00 조회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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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쿠바

 

 

 

 

 

 

 

김해완

 

 

 

 

   며칠 전 한국에 들어왔다.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잠시 아바나에서 탈출한 것이다. 인천 공항에 발을 딛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뉴욕에서는 3년 반 동안 한 번도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고, 딱히 아쉽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바나에 있을 때에는 3개월째부터 한국 생각이 끊임없이 났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음식이었다. 그 다음에는 인터넷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터넷으로 24시간 감상할 수 있는 ‘실시간 라이브 유투브 동영상’이었다. 그 다음에는 5만원만 들고 가면 수없이 많은 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명동 다이소였고, 그 다음에는 언제나 정확한 배차 간격에 맞춰 운행되는 대중교통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 옷을 망가뜨리지 않는 좋은 세탁기, 건강을 해치지 않는 좋은 식용유, 서점에 깔린 좋은 공책 ……. 내 마음 속에서 한국은 어느 새 더 없이 ‘좋은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지 4일 만에 나는 ‘왜 이렇게 비싸’라는 말을 달고 살고 있다. 사회주의에서도 자본주의에서도 만족을 모르는 이 간사한 마음! ㅠㅠ.)

   그러나 쿠바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쿠바에 있었던 마지막 주는 그야말로 폭풍과 같았다. 폭풍 시험, 폭풍 파티, 폭풍 설사! 그 폭풍에 휩쓸려가지 않고 무사히 귀국한 것을 홀로 자축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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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능력 시험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엘람에 입학하기 위해 필요한 스페인어 능력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의대에 갈 계획을 세웠었다면, 엘람에서 예비 과정(El Curso Preparatorio)을 듣고 추가 시험 없이 자동으로 입학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바나 대학교에서 남미 문학을 공부할 생각이었던 나는 당연히 이 대학교에서 예비 과정을 밟았다. 현재 나는 코스를 무사히 마쳤지만, 아바나 대학교가 발급하는 수료증은 엘람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헛발질을 한 셈이다. (이처럼 나의 정인 고립은 인생의 길섶마다 내 앞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엘람에서 요구하는 스페인어 능력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이 시험은 예비 과정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내 주변에 이 시험을 본 사람이 없어서, 시험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시험에 대비해야 했지만 뭔가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난이도도 예상할 수 없었다. 스페인어로 이것저것 읽고, 쿠바 뉴스를 보고, 쿠바 친구를 억지로 불러내어 대화 상대를 부탁하면서 나는 그냥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험 당일 날, 긴장한 마음으로 나는 시험이 치러지는 학교로 향했다. 이것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백만 원 넘게 들여서 문서를 공증하는 등 입학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겨우 스페인어 시험에 떨어져서 의대를 못 가면 너무 쪽팔리지 않겠는가? 그러면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시험을 보는 장소는 엘람이 아니라 코히마르에 있는 또 다른 학교였다. P11 버스에 올라타면 우리 집에서 코히마르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버스를 타는 40분은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낮 12시에, 에어컨도 없는 버스에, 땀을 뻘뻘 흘리는 쿠바인들 사이에 꽉 끼어, 혹시라도 튀어나올지 모르는 소매치기에 대비해서 가방을 꽉 붙잡고 있는 것은 마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고행과 같았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린 후, 나는 땡볕 아래 그늘 한 점 없는 아스팔트 길을 비틀비틀 걸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시험 감독을 할 교수가 안 왔다는 것이다! 나는 이틀 전에 학교 사무실에 미리 전화를 해서 시간을 확정해 놓은 상태였다. (이 시험은 개인 시험이어서 스케줄을 미리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 후에 그 교수가 갑자기 참석해야 할 회의가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 사무실은, 여느 쿠바 사무실이 그렇듯이, 나에게 이 변동사항을 고지해주지 않았다. 내가 내 발로 찾아오자 그제야 진실을 말해주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솟았다. 내가 지금 어떤 지옥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지 아는가? 그런데 여기를 또 오라고? 그러나 이곳이 다른 곳도 아닌 쿠바인 것을 알았으므로, 나는 진상 손님(?)처럼 책상을 뒤엎고 나오지 못했다. 다시 지옥과 같은 P11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세 시간 동안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도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삭히지 못한 분노는 투지로 바뀌었다. 반드시 이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고 만다! 내가 다시 P11을 타고 코히마르를 가면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이 학교를 두 번째로 찾았을 때 나는 가뿐히 시험을 통과했다.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내 시험 감독을 맡은 교수들을 감동시키기까지 했다. 그들은 반드시 시험을 통과하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가 참 뜨겁다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P11 때문이라는 것은 몰랐다. 여하튼 이제 나는 9월부터 의대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지면을 빌려, P11 버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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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찾기

 

두 번째 과제는 8월에 돌아오면 살 집을 미리 찾는 것이었다. 엘람은 아바나 시내에서 20k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바라꼬아(Baracoa)다. 바라꼬아는 작은 바닷가 마을인데, 이 작은 마을을 방문하는 외지인은 둘 중 하나다. 이곳의 손바닥만한 해변에서 피서를 즐기러 오는 아바네로들이거나, 엘람에 다니는 학생들이거나. 8월 말이 되면 이 마을에서 값싼 하숙집을 찾는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5월부터 바라꼬아를 찾았다. 이왕 쿠바에 있는 거, 미리 좋은 집을 선점해 놓으려는 생각이었다.

 

나는 곧 내가 단단히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라꼬아에서 집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마을은 작고, 집은 적고, 학생들은 많았다. 엘람에서 이미 공부하고 있는 선배들이 벌써 하숙집을 모조리 선점해놓은 상태였다. 그들은 방학 때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도 집세를 내고 집을 비우지 않았다. 바라꼬아에서 집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 방문했을 때, 나는 빈 집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혹시라도 집이 비면 연락을 달라고 말하며 집주인들에게 내 연락처를 뿌리고 다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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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바라꼬아를 다시 방문했을 때, 내게 두 개의 연락이 왔다. 잔뜩 기대를 했다. 그러나 둘 다 꽝이었다. 첫 번째 집은 시골 마을 바라꼬아 안에서도 정말 구석에 있었다. 흙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는 닭과 염소와 개가 점령했다. 인터넷을 쓰려고 해도 공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10분은 가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 주인이 월 300쿡을 불렀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300쿡이 웬 말인가? 나는 이 집을 리스트에서 바로 제외했다. 두 번째 집은 120쿡으로 정말 쌌고, 인터넷 공원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았다. 원룸이었고 공간 자체는 작았지만 내가 혼자 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집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었다. 쿠바 날씨에 에어컨 없는 방에서 산다고?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은 P11 버스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반쯤 지어진 새 집을 찾았다. 집의 형태는 갖췄지만 아직 화장실과 부엌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한 달에 200쿡 밖에 안 하는데다가, 방 두 칸에 거실이 딸린 널찍한 아파트여서 이만한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은 내게 큰소리를 떵떵 쳤다. 8월 말에 내가 쿠바로 돌아오기 전까지 반드시 공사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약간 불안감을 느꼈다. 쿠바에서 약속이라는 것은 바람 불면 날아가는 나뭇잎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므로. 아니나 다를까,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연락을 받았다.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생겨서 11월에나 완공될 것 같다는 것이다. 결국 이 집도 내 집이 아니었다!

 

이 집주인은 내게 미안했는지 자기 친구 집을 소개시켜주었다. 거실이 없는 반쪽짜리 아파트였다. 대문을 열자마자 길쭉한 부엌이 곧장 튀어나오고, 부엌 구석에 방문이 있고, 방 안에 화장실이 있는 희한한 구조였다. 방도 크지 않아서 짐을 다 풀면 좀 좁을 성싶었다.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더 이상 재고 따지지 않았다. 10분 도보 거리에 인터넷 공원이 있고, 에어컨이 있고, 집 앞에 닭과 개가 없다. 그러면 되었다. 충분히 호화스럽다. 최소한 P11 버스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렇게 나는 얼렁뚱땅 엘람 라이프를 시작할 보금자리를 찾았다.

 

 

 

 

 

 


친구맞이와 식중독

 

이 바쁜 와중에 나의 절친한 친구가 쿠바에 왔다. 2014년 뉴욕에서 만난 콜롬비아 아가씨 다니엘라였다. 2016년에 우리는 그녀를 보러 콜롬비아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그녀는 남자친구인 세바스티안을 데리고 아바나를 찾았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실비오 로드리게스라는 쿠바 가수인데, 그의 공연도 보고 나도 볼 요량으로 겸사겸사 휴가를 냈다는 것이다.

 

다니엘라의 방문은 갑작스러웠다. 나는 그녀가 오기 일주일 전에 통보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다니엘라의 남자친구가 깜짝 선물로 준비한 여행이라고 했다. 나는 다니엘라를 오랜만에 볼 마음에 뛸 듯이 기뻤지만, 세바스티안에게는 약간의 원망의 마음이 들었다. 왜 하필 내가 바쁠 때로 일정을 잡아서는 ……. 그렇지만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내 집에서 머물 수 있겠느냐는 다니엘라의 부탁에 나는 내 아파트를 통째로 내주었다. 세 명이 함께 부대끼기에는 집이 좁은 탓이었다. 그리고 빈 방이 있는 한국 언니들 집에 가서 며칠 신세를 졌다. 아침에는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낮에는 다니엘라와 세바스티안과 아바나 시내를 돌아다니고, 밤에는 내 집에 돌아가서 한국 갈 짐을 싼 후에 언니네 집으로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다니엘라와 남자친구가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공연을 보러 간 날, 한국 언니네 집에서 파티가 열렸다. 나는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술을 마셨다. 피로함을 잊기 위해서였다. 수다를 떨고, 웃고, 춤을 추는 사이 어느새 나의 스트레스도 풀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파티가 끝나갈 무렵, 내 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뭔가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사실은 일주일 전에 쿠바 친구들과 바닷가로 캠핑을 갔을 때 음식을 잘못 먹어서 크게 탈이 났었다. 이미 약해져 있는 장이 또 다시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점심 때 먹은 음식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원래 여름이면 쿠바에서는 식중독 환자가 급증한다. 냉장고도 많이 없고 음식 환경이 위생적이지 않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마침내 쿠바에 여름이 왔음을, 나는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쿠바를 떠나기 이틀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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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1시간 동안 남의 집 화장실을 독점했다. 그것도 파티 중에 말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내 장을 쥐어짜는 듯한 기분이었다. 식은땀이 나고, 손발이 차지고, 나중에는 다리가 떨렸다. 설사든 뭐든 일단 내보내야겠는데, 똥마저도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온수 샤워를 하고 배를 마사지 해가며 나는 겨우 나의 속을 달랬다. 마침내 큰일을 본 나는 그날 밤 언니들 집에서 탈진 상태로 잠이 들었다.

 

역시, 다사다난한 쿠바.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설사가 시작되지 않은 게 어디인가? 쿠바는 긍정적 마인드를 키우는데 역시 최고의 환경이다. 그러니까 잠시 안녕, 쿠바. 한국에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서 8월에 다시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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