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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쿠바 리포트 : 학교 히론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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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0-12 07:00 조회2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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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히론을 소개합니다

  

 

김해완


드디어 학교 이야기다. 현재 나는 ‘아바나 의과 대학교(La Universidad de la Ciencia de Medicina)’에, 그 중에서도 특별히 ‘빅토리아 데 히론(Victoria de Girón)’이라는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 이 학교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아디오스, 엘람> 편에서 이미 간단히 소개를 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아직도 학교 학생증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아, 내가 정말 쿠바에서 의학 공부를 하기는 하는구나…….

  


히론의 승리


일단 헷갈리실 테니, 쿠바의 의대 시스템을 먼저 설명하겠다. 쿠바의 모든 대학은 공립이다. 커리큘럼부터 직원 고용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이 정부 산하에 놓여 있다. 쿠바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의과 대학교야 말할 것도 없다. 쿠바 정부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의대생들을 교육시킨다. 의대에 가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로 배정되며, (한국의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떠올리면 쉽다.) 삼 학년 때부터는 다른 학교 출신들과 구분 없이 섞이면서 병원에서 실습수업을 하게 된다. 이때 나 같은 외국인들은 아예 다른 지방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환경에서는 한국이나 미국처럼 의대의 네임 벨류가 크게 의미가 없다. 어느 학교를 가든 결국 동일한 의대 시스템 속에서 공부하게 될 테니까.

 

그러나 빅토리아 데 히론은 이런 평준화된 환경 속에서도 자기만의 네임 벨류를 지켜온 상위권 학교다. 공부를 빡세게 시키기로 유명해서다. ‘아바나 의과 대학’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히론을 떠올릴 정도다. 아바나 의과 대학은 아바나의 유일한 의대지만 사실상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바나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분점(?) 같은 여러 캠퍼스들의 네트워크의 총체를 지칭하는 이름일 뿐이다. 이 네트워크 속에서 히론은 본점 같은 역할을 한다. 나처럼 사적으로 돈을 지불하는 장학생(autofinanciado)들의 입학 과정을 처리하는 사무실이 있는 곳도 바로 히론이다.

 

물론 내가 히론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런 배경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입학 서류를 들고 처음으로 히론을 찾아갔을 때, 나는 엘람에서 공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막 전해 듣고 멘탈 붕괴에 빠져 있었다. 나를 이리저리 굴리는 SMC의 만행에 유체이탈하기 직전이었다. 어디라도 좋으니 어서 빨리 준비해 온 서류를 제출하고 집에 가서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사무실 직원이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여기, 히론’이라고 답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어느 곳도 가고 싶지 않았다. 산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멕시코에서 힘겹게 공증 받아온 서류를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마음을 졸이며,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는 짓은 사양하고 싶었다. 내 눈 앞에서 당장 서류가 통과되는 것을 봐야만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이 학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훌륭했다. 학교 건물은 내가 작년에 공부했던 아바나 대학교보다도 훨씬 더 고풍스러웠다. 교수들은 모두 현직에 있는 의사였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쿠바 내에서 책을 출판하거나 외국에서 초청을 받는 등 화려한 커리어의 소유자였다. (물론 교수의 유명세가 수업의 질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다.) 책이 귀한 쿠바라지만 교과서 사정도 생각보다 나았다. 스무 권도 넘는 교과서를 무료로 대여해주었고, 그 중에서 일부는 PDF 형식의 E-book 파일로 제공하기도 했다. 스페인어가 아직 부족한 나로서는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아이패드에서는 PDF 문서가 자동으로 사전 기능과 연동되기 때문이다. 터치 한 번만 하면 단어 뜻이 뜰 때의 그 쾌감이란! (요새 나는 의학 용어 뜻만 찾다가 하루를 통째로 다 보내곤 한다. 인터넷 없이 공부를 하는 게 이렇게 괴로울 줄 몰랐다. 도대체 구한말에 서양으로 유학 간 조선 엘리트들은 공부를 어떻게 한 걸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엘람의 공부 환경은 이곳 히론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선택권이 있는 비장학생들은 대부분 히론으로 온다. 나는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어쩌다보니 대다수의 선택을 따르고 있었다. 참나, 내가 이러려고 플라야 히론을 뻔질나게 다녔나, 라는 싱거운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빅토리아 데 히론이라는 우리 학교 이름은 이 바닷가 이름을 따온 것이다. 1962년에 미국이 카스트로 혁명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곳을 침공했는데, 쪽팔리게도 삼 일만에 쿠바군에게 격퇴당했다. 쿠바인들은 이 승리를 무지막지하게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매년 4월 19일이 낀 주를 통째로 국경일로 지정하고, 또 아바나에서 최고인 의대의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끊임없이 그때의 영광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처럼, 나는 반 세기도 더 전에 벌어진 자랑스러운 전투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전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쿠바에서 방심한다는 것은 아직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히론 대학교는 그 후로도 나를 몇 번이고 놀래켰고, 입을 떡 벌리고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교복


첫 번째 충격은 교복이었다. 의대생들은 교복 착용이 의무다. 쿠바의 어떤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지 않지만, 의대생과 간호대생만 예외다. (흰색 셔츠에 파란 바지나 치마를 입었으면 의대생, 갈색 바지나 치마를 입었으면 간호대생이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 중 오 일 동안 교복을 입고 산다. 이십대 후반에 교복을 입게 될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국에서 십대로 살 때도 피해갔던 교복 착용을 쿠바에서 강요당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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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쩌면 더 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옷차림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공부에만 매진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또, 교복을 입고 공식적인 학생이 되면 쿠바 상인들에게 ‘호갱’ 취급 당할 일도 줄어들겠다는 실리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막상 교복을 살 때는 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디자인도 단순하고 재질도 안 좋은, 교복 답지도 않은 교복은 생각보다 비쌌다. 바지 두 개, 치마 하나, 셔츠 두 개를 합쳐서 8만원을 지불했다. 그리고 입은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단추가 떨어졌고 주머니가 찢어졌다. 교복을 판매하던 교직원이 학기 중에 교복이 또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했는데, 이제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사이즈였다. 교복 크기가 너무나 컸던 것이다. 알맞은 사이즈가 몽땅 나갔다고, 그나마 이게 가장 작은 사이즈라고 건네준 옷을 입어보니 포대자루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치마는 종아리 절반까지 내려왔고, 바지는 광대 옷 같았다. 걸을 수조차 없었다. (고샘은 포대자루 같은 교복을 입고 꼭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는데, 그새 까먹었다. ㅎㅎ.) 하는 수 없이 처음 며칠은 아래는 그나마 색깔이 비슷한 청바지를 입고, 위에는 오버사이즈 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다. 그랬더니 그런 옷차림으로는 강의실에 들어올 수 없다며 교수에게 입장 금지 조치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젠장, 하루라도 빨리 교복 사이즈를 줄여야 했다!

 

하지만 심지어 재봉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할 즈음 나는 이사 때문에 정신이 쏙 빠져있었다. 새로운 학교에 새로운 동네, 이 바닥에서 또 어떻게 재봉사를 찾아낼지 눈앞이 깜깜했다. (이곳은 인터넷도 안 되고 간판 없는 가게도 수두룩한 곳이다.) 그때 내 쿠바 친구가 나섰다. 작년부터 나에게서 한국어를 배우는 아바나 대학교 학생이었다. 그 친구는 자기 동네에 자기가 잘 아는 재봉사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내가 그때 몰랐던 것은 그녀가 아바나 외곽 중에서도 한참 외곽에 산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마을 버스로 가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덕분에 나는 새로운 버스 노선도를 외우면서 먼 여행을 두 번이나 했다. 옷을 맡길 때 한 번, 찾을 때 또 한 번. 아, 참으로 귀한 교복이 아닌가.

  


권위

 

교복 다음으로 나를 경악시켰던 것이 있다. 바로 경례다. 교수가 들어오면 학생들은 무조건 두 발로 서서 존경을 표해야 한다. 처음 이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런 권위적인 풍경이라니! 중고등학교는 대안학교를 다니고, 대학 대신 연구실에서 공부한 나로서는 공부와 권위를 직통으로 연결시키는 이런 모습이 낯설었다. 심지어 뉴욕에서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녔을 때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쿠바 교수들은 이것을 권위라고 부르지 않았다. ‘에두까도(educado)’라고, 즉 교육 받은 자가 마땅히 보여야 할 태도라고 칭했다. 그들의 눈은 결연했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타협할 여지가 없었다.

 

한 편으로는 교수들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엘리트의 특권이라는 게 거의 없고 택시 기사가 교수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나라이니, 이렇게라도 존경의 표시를 하는 게 옳은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교수들의 권위 행사는 이 정도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조직학 수업을 듣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서 학생들이 줄줄이 강의실을 나서는데, 맨 뒤에서 팔짱을 끼고 수업을 참관하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남자애들 몇 명을 색출해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조직학 전체를 담당하는 학과장이었다. 그리고 이 분은 상냥하지만 타협의 여지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남자인데도 머리가 길구나. 자르는 게 좋겠다. 의사가 될 사람들이 깔끔해야 하지 않겠니?”

 

세상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지적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이 말을 할 때 기반하고 있는 ‘상식’이 나의 상식과는 한참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 남학생들이 헤비메탈 로커처럼 머리를 기른 것도 아니었다. 어깨에 살짝 닿게 길러서 묶고 있었고, 이 정도 머리길이를 한 남학생들을 나는 아바나 대학교에서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다름 아닌 ‘의대’이고, 우리는 누구도 아닌 ‘의대생’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우리에게 괜히 교복을 입힌 게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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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는 생각은, 쿠바에서 의사란 군대, 혹은 공무원 집단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쿠바 의사들이 짊어지고 있는 의무는 한 개인의 직업인으로서 감당하는 의무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의사가 없다면 말 그대로 쿠바는 무너질 것이다. 외화벌이를 해올 사람도 없을 것이고, 커뮤니티를 돌보며 국가 행정의 빈틈을 메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쿠바 의학의 명성을 기반으로 쿠바가 맺어온 국제적인 관계도 약해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쿠바 의사들은 국가를 지키는 특수 군인이자, 국가 행정을 수행하는 가장 지적인 공무원이다. 공무원-의사, 혹은 의사의 공무원화. 이 모습이 나로서는 그저 매 순간 새로울 따름이다.

 

그리하여, 교수들은 상급 공무원으로서 당당하게 권위를 행사한다. 그리고 우리 하급 공무원들은 그 권위에 복종하는 ‘척’하면서 여러 숨 쉴 구멍을 찾아낸다. 교복 사이즈를 줄여 입는다거나, 똑같은 색깔의 레깅스를 구해서 입고 다닌다거나, 벼락치기로 시험을 통과하고 논다든가......

  


식당

 

나를 또 한 번 경악시켰던 것은 학교 식당의 사정이었다. 일단 가격이 20원밖에 안 한다. 엄청 싼 거다. 그러나 밥도 20원 값어치를 한다. 형편없다는 뜻이다. 밥, 쨈, 쿠키만 주는 날도 있었고, 쿠키에 시커먼 숯검댕이가 묻어 나와서 아예 쿠키를 못 먹기도 했다. 어느 날은 수박을 줬는데 맛이 달지 않고 끔찍하게 시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신 맛의 수박을 재배할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식당의 구역화였다. 식당에 들어가면 메뉴판이 두 개가 보인다. 하나는 쿠바 학생용, 또 하나는 외국인 학생용이다. 외국인 학생용 식단은 쿠바 학생용의 끔찍한 식단보다 양은 두 배로 더 많고, 질은 세 배로 더 낫다. 쿠바 학생들은 외국인 구역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없다. 세상에, 아무리 외국인 학생들이 학교에 돈을 지불한다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도록 대놓고 차이를 두다니. 먹는 것 가지고 차별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짓 아닌가.

 

그래서 나와 현우(함께 의대에 들어온 한국 동생)는 쿠바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우리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20원쯤이야 돈도 아니라면서 우리에게 매일 밥을 사주는 한 쿠바 친구 때문이다. 오늘도 똥 같은 식단을 보며 한숨을 내쉬면서 슬그머니 외국인 학생용 줄에 서노라면, 그는 어김없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우리 손에 점심 티켓을 쥐어준다. 물론 쿠바 학생용 티켓이다. 어찌 그의 호의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외국인이 자기 나라에 와서 고생한다고 물심양면으로 챙겨주는 이 고마운 친구의 마음을 어찌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쿠바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우정을 얻고 밥을 잃은 셈이다. 흑.

  


2000년생 쿠바 동생들과 함께


그러나 이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은 나와 같이 공부하는 동급생들의 존재감이다. 이들은 2000년생들이다. 첫 밀레니엄 세대들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두들 쿠바인들이다. 나와 현우는 쿠바인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외롭게 떨어진 두 물방울이다.

 

내가 외국인이 많이 모여 있는 엘람에 가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쿠바인들과 직접 섞이기 전까지 시간을 더 벌고 싶어서였다. 쿠바에서 일 년을 살아본 결과, 내가 쿠바인들의 커뮤니티에 완전히 들어가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까지 쿠바인들과 소통을 할 때면 지치거나 답답한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는 쿠바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 제1세계 밖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 또 쿠바가 외부와 고립되어 자기만의 특수한 환경을 발전시켜 온 나라라는 것 등등 여러 요인이 얽혀있다는 것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쿠바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더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시기가 올 때 쿠바인들과 만나고 싶었다. 한 이 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나 운명은 이런 나의 알량한 계산법을 무산시켰다. 그리고 쿠바인들 속으로 내 등을 무작정 떠밀었다.

 

지금 쿠바 친구들은 나에게 상당히 잘 대해준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은 쿠바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라, 젊은 세대는 한국에 큰 관심을 보인다. (살면서 BTS에게 감사할 날이 올 줄이야.) 쿠바인이 ‘한국인’과 ‘중국인’을 헷갈려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어린 친구들은 여전히 어버버거리는 나와 현우를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 나름대로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쿠바는커녕 아바나조차 벗어나 본 일이 거의 없고, 나보다도 마을버스 노선을 적게 알고, 세상이 아직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되어 있는 줄 알고 사는 이 친구들의 좁고 소박한 세계가 나는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접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나의 세계와 이들의 세계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뤄보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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