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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로 가는 길

쿠바 리포트 | 친구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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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1-23 07:00 조회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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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이야기

김해완​

 

올해가 약 한 달 남았다. 어서 빨리 하루를 마치고 자고 싶다는 하루살이의 마음으로 살다가, 새삼스럽게 11월이 끝나가고 있음을 깨닫고 입이 떡, 벌어졌다. 2018 무술년. 올 한 해 1년은 내 인생 전체에서 4% 밖에 차지하지 않는 시간이었으나, 이 기간 동안 내 신상에 벌어진 변화는 숫자로 환원할 수 없을 만큼 격했다. 사건들이 어찌나 촘촘히 벌어졌는지 월 별로 썰을 풀 수도 있다. 1월에는 의대 진학을 결정했고, 2월에는 <뉴욕과 원고> 지성을 마무리했고, 3월에는 연애가 파탄났고......흠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돌이켜보니, 나의 쿠바 생활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작년 이 맘 때 즈음 나는 관광객 티를 아직 채 벗지 못하고 아바나 길거리를 어색하게 기웃거리고 있었다. 웃통 벗은 할아버지들이 도미노 놀이를 하는 모습이나 레게똥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똥 싼 바지를 입은 채 춤을 추는 젊은이들을 구경하다가, 이 풍경에 어떻게 섞여야 할 지 몰라서 서둘러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나의 주된 업무는 방에 틀어박혀 스페인어를 공부하거나 <뉴욕과 지성> 원고를 쓰는 것이었다. 혹은 같이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초대한 자리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나의 주소지는 아바나의 중심가였으나, 내가 실제로 살았던 곳은 쿠바의 변두리였다. 내 삶의 동선은 여타의 쿠바인들과 좀처럼 겹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을 알고 싶어서 틈틈이 곁눈질을 했지만, 글쎄, 주말마다 5성급 호텔 로비에 인터넷을 쓰러 가면서 진짜 쿠바를 느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더랬다.

쿠바인의 바다 속에서

그러나 지난 1년의 폭풍은 나를 쿠바의 중심부로 밀어 넣었다.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학생이라는 동일한 조건으로서, 돈으로 호의를 사는 관광객보다 조금 더 가난한 처지에서 쿠바인들의 삶을 보고 있다.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친구가 생겼다. 1년 전의 나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쿠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는 중이다. 쿠바 정착에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이런 상황을 바라면서도 또 바라지 않았다. 작년에 살짝 들여다 본 쿠바인들의 세계는 개성이 넘쳤으나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교방식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거리를 한 번에 없애버리는 힘이 있었다. 기분 좋을 때는 친근함의 표시라고 여기며 같이 웃었지만, 기분이 꿀꿀할 때는 그 틈새 없는 공간에 숨이 턱 막혀왔다. 문제는 여기서 다시 내가 원하는 만큼 거리를 벌리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외국인이었고 도망갈 틈이 많았던 뉴욕과 달리, 쿠바는 내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곳이 아니었다. 좌우전후 모두 쿠바인들뿐이니 어쩌겠는가? ‘쿠바인의 바다’에 풍덩 하고 빠지는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호텔에서 인터넷을 쓰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변두리 ‘외국인 대열’에 계속 머무르게 될 것이었다.

학교를 시작했던 9월은 내가 예상했던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시간이었다. 수업도 낯설었고 공간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낯설어서 나는 매 순간 집을 잘못 찾아온 손님처럼 어색해 했다. 언어적 장벽은 둘째 치고, 어떤 소재로 수다를 떨어야 적절한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나와 같은 18학번 의대생들은 2000년대생 출신이었고, 쿠바의 옛 세대보다 더 ‘세계화’ 되었다. 그래서 최소한 날 보며 대놓고 “치나, 치나(china : 중국 여자)”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감안해 베소(beso : 키스)로 인사하지도 않았고, 장난을 걸거나 농담을 할 때도 수위를 낮췄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배려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내가 쿠바인들의 일상을 모르는 만큼이나 이들은 외국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우리가 그 이상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무지로 점철된, 이를테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 택일하라면 무엇을 택할 것이냐’라던가 ‘중국은 사회주의가 승리했다는 증거 아니냐’와 같은 종류의 겉도는 주제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뉴욕에서 갈고 닦았던 사교술이 쿠바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뉴욕에서 사람을 잘 사귀려면 삼박자를 갖춰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능력, 나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타인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인내심. 이런 조건은 뉴욕의 사교가 ‘차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차이의 우정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느냐, 또 정치적, 인종적, 계급적 위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뉴욕은 원체 잡종의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그래서 뉴요커들은 접점이 없는 타인과 소통하는 데 익숙하다. 혹은 최소한 내 세계 바깥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감각을 잃지 않는다. 다른 세계에서 온 타인이 흥미롭다 싶으면 친구로 삼고, 그게 아니라면 특유의 무관심으로 재무장하며 서로를 타인의 공간에 남겨둔다. 쿨한 우정이다.

그러나 쿠바의 우정은 뜨겁고 또 뜨겁다. 손바닥만한 사우나에 여러 친구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맥반석 계란을 나눠먹는 것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 잠깐 사우나 밖으로 나가 찬바람을 쐬고 싶지만, 그 순간 그룹의 의리를 저버린 것으로 낙인 찍힐까봐 두려워서 엉덩이를 비비고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 누구는 단순하다고 좋아하고 또 누구는 쿨하지 못하다고 싫어할 관계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상대가 ‘다른 세계’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면 서로의 ‘차이’를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거다. 여기서 우정이 가능하려면 한 쪽이 다른 쪽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차이의 의미를 가르치려고 해도 이 또한 일단 상대의 세계를 수용한 후에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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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접점으로도 우정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쿠바에 온 ‘외국인’인 내가 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순리에 맞다. 그것이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장기간 버티는 것만큼 곤혹스러울 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석 달 간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의 세계가 상당히 작다는 것이다. 작다고 함은 스케일 자체가 작다는 뜻도 되고, 좁은 공동체의 영역에 강도 높게 집중한다는 뜻도 된다. 이들의 세상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개인’이 아니다. 가족, 이웃, 동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애인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대화 주제의 대다수는 가족의 안부를 묻고 가족 내에서 벌어진 일들을 공유하는 것의 반복이다. 또 이들은 아바나 내에서도 자기 동네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아바나의 버스 노선을 나보다도 더 모르기도 한다. 내가 이를 두고 ‘단순한 삶, 단순한 세상’이라고 표현했더니, 막 의대를 졸업한 말레이시아인 선배가 그건 아닐 거라고 답했다. 단지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특이해서 내가 아직 그 복잡한 디테일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긴, 잠시 잊고 있었다. 쿠바인들의 ‘가족 관계’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것을. 한 가정에 아빠가 두 명에 엄마가 세 명, 애인이 수시로 바뀌는 경우도 숱하다는 것을.......)

아, 과연 나는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삼 개월 전의 나라면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었다. 일단 나는 ‘좋은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이것은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최대한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척하는 게 아니라, 쿠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정말로 ‘단순 모드’에 진입하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 최소한의 접점에서 최대한 강렬한 소통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나는 친구들의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때 120%의 주의를 기울였고, 쿠바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법한 나의 가족 이야기도 공유했다. 학교에서 시험이 있을 때마다 모두에게 결과를 묻고 또 핀잔을 주고 다녔다. 공부 좀 하라고 말이다. 또, 누군가 나에게 실없는 농담을 하면 예전처럼 ‘이런 철없는 자식’이라는 표정을 짓고 조용히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런 철없는 자식”이라고 꼭 소리 내어서 크게 말해주었다. 사소한 몸짓들이지만, 이는 모두 늙은 외국인 학생이 2000년 생 쿠바 청소년들과 어울리기 위해 짜낸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들과 나 사이에 ‘우정’이라고 불릴만한 시간이 쌓이기 시작했다. 꼭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함께 있으면 모종의 연대감이 느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연대감도 더 커지리라. 이토록 우정은 신기한 것이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와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도, 웃음과 눈맞춤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는 아마도 우리의 우정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외에는 달리 바라지 않는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리라.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우정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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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의 차이

그렇지만 이 배움의 과정 속에서 나는 곧잘 시험에 빠진다. 나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가 ‘우정’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나는 결정해야만 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것이냐, 혹은 거부할 것이냐. 아니면 이해하되 수용하지 않을 것이냐, 이해하지 못함에도 수용할 것이냐. 여기에 정해진 답은 없다. 다만 ‘쿠바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나 스스로 원칙을 세울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쿠바인들은 밤늦게까지 놀다가 가까운 친구 집에 가서 하룻밤 묵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워낙 같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생활환경이기도 하고, 밤이 으슥해지면 곧바로 버스는커녕 택시도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 친구’의 경우 이런 분위기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쿠바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어리숙한 젊은이의 집이 당연히 땡기지 않겠는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자기 공간’에 목이 마른 쿠바 젊은이들의 경우, 아예 이곳을 정기적인 아지트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나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신중을 기한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고, 내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리고 결론을 낸다. 가령, 우리 집을 내어주는 경우에는 ‘이해하지만 수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개인 공간에 딱히 목숨 거는 타입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아직 쿠바인의 바다에서 빠져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한국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작은 도피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도피처를 사수해야만 한다. 그 대신 친구들이 술 마시는 장소를 필요로 할 경우, 우리 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 조건으로 공간을 제공하기로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해하고 또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므로.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이런 기준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지난 1년 간 이미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가령, 작년에 나는 쿠바의 전반적인 주거 환경에서 온수가 나오지 않는 까닭을 이해하고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집에서 그 조건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집값이 비싸더라도 반드시 온수가 나오는 집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나는 결국 온수의 부재를 수용했다. 내 저렴한 아파트는 수압이 낮을 뿐만 아니라 물도 차다. 나는 온수를 바라기는커녕, 물이 나오는 것에 감지덕지 하면서 샤워를 하고 있다. 여름에도 온수 샤워를 할 만큼 몸이 찼던 나였으나, 이틀에 한 번씩 행해지는 냉수 마찰 속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러니 누가 알겠는가. 6년 뒤에 내 우정의 멘탈리티가 어떻게 그 체질(?)을 바꾸게 될지 말이다.

 

각양각색 (또라이) 의대생들

이처럼 나의 학급 친구들은 ‘쿠바인’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역시 각양각색의 개성을 자랑한다. 좋게 말하면 개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똘기’다. 이들의 개성이 너무 튀어서 때로는 이런 의심도 든다. 정상적인 친구가 의대에서 공부를 하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 무지막지한 의학 공부를 감내하는 사람이 정상적일 리는 없지 않은가? 1학년은 공부할 애들과 안 할 애들을 가려내는 ‘걸러내기’ 기간이라던데, 내 생각에 2학년까지 살아남는 친구들은 확실히 똘기가 작렬할 것 같다.

가령, A군은 훤칠한 키에 잘생겼고 공부도 잘한다. 사람들에게 벙긋벙긋 웃으면서 인사도 잘하는 통에 인기가 많다. 그러나 입을 열면 모두 10분 만에 질리게 만든다. 말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 해맑은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염장을 지른다. (자기가 염장을 지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번은 생화학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5분 전, 나에게 공부를 많이 했느냐고 묻더니 갑자기 미니 강의를 시작했다. 조용히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 말이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후에, 내가 시험 문제 중 하나를 완전히 망쳐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가 뭐랬어, 외우지 말고 생각하라 그랬지? 생각해! 생각해!’라는 언사를 날렸다. 예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었지만, 주먹은 날리고 싶었다. A군은 여전히 자기처럼 훌륭한 학생이 왜 우리 반에서 친구가 없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불쌍한 것.

또, 말이 없으나 카리스마는 넘치는 B양은 공부의 기복이 심하다. 공부하면 만점을 찍고, 안 하면 바닥을 친다. 그녀가 꾸준히 하는 것은 음악 듣기인데, 쿠바 친구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힘든 문화적 소양을 자랑한다. 재즈부터 락, 살사, 힙합까지 두루 섭렵했다. 게다가 사진도 작품처럼 잘 찍고, 이것으로 아르바이트도 한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을 보면 의학이 아니라 사진을 전공하는 것 같다. 이렇게 재주 많은 B양의 꿈은 뇌수술을 하는 것이다. 메스를 쥘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고 한다. 에미넴의 욕설 담긴 영어 랩을 중얼거리면서 옆구리에 형태학 교과서를 끼고 어슬렁거리는 이 친구를 보면, 과연 미래에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C군은 우리 1학년 학생회장이다. 24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화학 전공으로 학위를 땄고 철학도 몇 년 공부한 교양인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그의 결심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데에 동의할 따름이다. 이처럼 명석한 그의 유일한 단점은 쉽게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조직학 중간고사를 보기 직전, 그는 시험장 앞에 앉아서 노트를 보며 덜덜 다리를 떨었다. 그리고 요즘 시도 때도 없이 오줌 쌀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가감없이 내뱉는 그의 솔직함에 감탄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과목에 5점 만점을 찍으며 무사히 명예의 전당에 들어섰다.

물론 남들의 눈으로 보면 나 역시 이 또라이 대열 중 하나일 것이다. 25살의 나이에 쿠바까지 와서 굳이 의대에 다니려고 하는, 매일 피곤한 얼굴로 벤치에서 낮잠을 자지만 술 마시자는 이야기에는 눈을 번뜩 뜨는, 늘 가방 양쪽에 보리차 한 병과 커피 한 병을 끼고 다니는 학교 내 유일한 아시아인 여학생 말이다. 부디 내가 또라이 기질을 십분 발휘하여 오랜 시간 이들과 무탈하게 함께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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