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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로 가는 길

쿠바 리포트 | 소소한 일탈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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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2-14 07:00 조회3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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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탈의 필요성

 



 

김해완


15분의 1


무술년이 끝나간다. 연말에 대한 감회보다는, 패닉 상태에 빠져서 분노의 괴성을 지르던 9월로부터 시간이 4개월이나 흘렀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사실 요즘 나는 달이 아니라 주를 세고 있다. 이번 주는 15주차이니까 파이널까지는 시간이 이 정도 남았고, 그러면 이걸 공부하면 되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는 거다. 6년 의대 과정 중에서 무려 4개월이나 끝낸 거다. 15분의 1이 지나갔다. 만세!

 

언젠가 한 번 이야기했지만, 의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의 생활은 오로지 ‘수업을 따라만 가자’라는 목표에 맞춰져 있다. 내 동선은 집-학교, 집-학교, 집-학교...이고, 내 일상은 읽기-정리하기-시험, 읽기-정리하기-시험...이다. 뭐, 이런 고충을 모르고 의대 진학을 결심한 것도 아니고, 이런 고생을 나만 겪는 것도 아니다. 이미 졸업한 선배들은 이런 감옥 생활이 철저히 ‘정상’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열일한 끝에 새로운 지식을 이해하게 되는 기쁨은 그간의 희생을 모두 보상하고도 남는다. 과학이라는 특수한 영역을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이 내게 찾아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쿠바라는 장소 덕분에 나는 값진 기회를 얻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DNA와 RNA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또 실패하는지 직접 공부할 때는 감동에 벅차기도 했다. 결국에는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다. 재미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명분이나 혜택 앞에서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역시 모범생은 못 될 팔자인가보다. 지금까지 쌓아온 공부 체력으로 근근이 버티고는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탈출을 기도하고픈 마음이 격하게 꿈틀댄다. 대단한 일탈을 꿈꾸는 게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싶고, 별 생각 없이 수다를 떨고 싶은 거다. 그러나 이렇게 꽉 짜인 스케줄 속에서는 사람 한 번 만나러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아직 끝내지 못한 ‘근육 세포’ 공부 분량이 내 발목을 잡는다. 결국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앞으로 남은 15분의 14를 잘 버텨나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교복을 고쳐라

 

그래서 최근에 나는 내 협소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일탈거리를 찾고 있다. 요즘 내가 시비를 거는 대상은 바로 교복이다. 공부하다 말고, 저 탈 많은 옷을 어떻게 하면 쓸 만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면서 구석에 개어진 교복을 노려보곤 한다. 나는 정말이지 이 교복이 싫다. 물론 교복 자체의 장점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공부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 의대생 같은 경우, 옷 걱정을 줄여주는 교복은 훌륭한 친구다. 또, 나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엄청 튀는 아시아계 외국인이기 때문에, 교복을 입으면 더 쉽게 쿠바 친구들 사이에 동화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학교의 교복은 재앙에 가깝다.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재질을 이야기하는 거다. 포대자루와 똑같은 재질이다. 신축성이라고는 1도 없다. 게다가 쿠바 청년들의 패션 센스에는 ‘넉넉함’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상의는 허리라인이 드러나야 하고, 모든 하의는 스키니진만큼 달라붙어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다. 조금이라도 벙벙한 바지를 입으면 광대 옷 같다며 대놓고 웃는다. 재봉사에게 가서 교복을 수선할 때 나는 분명 ‘편하게 맞춰 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온 결과는 역시 스키니진이었다. 진짜 스키니진은 재질이 쫙쫙 늘어나기라도 하지, 푸르딩딩한 나의 교복은 마치 감옥처럼 내 하체를 꽉꽉 조인다. 서 있을 때는 그나마 불편함이 덜한데, 수업시간에 의자에 앉아 있으면 골반의 좌우전후가 모두 아우성을 지른다. 숨 막혀! 앉아 있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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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친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불편한 교복을 입고 다니는 걸까? 시간이 흐르자 나는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학교가 준 교복을 그대로 입고 다니는 학생은 없었다. 다들 천차만별 다른 교복을 가지고 있었다. 기존 교복에서 사이즈를 바꾼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교복을 ‘발명한’ 거였다. 색깔이 비슷한 바지를 사서 입는다거나, 흰 천을 떼다가 단추가 없는 셔츠를 새로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변형의 정도가 너무 심하면 교수의 사나운 눈초리에 걸린다. 레깅스나 청바지는 수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허용치 내에서 최대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학생뿐만이 아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도 유니폼을 고쳐 입기는 마찬가지다. 흰 간호사 가운을 짧게 줄여서 블라우스처럼 입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길게 늘어뜨려서 원피스처럼 입고 다니기도 한다. 게다가 여자 간호사들이라면 다들 망사 스타킹인지 망사 레깅스인지 모를 것을 입고 다녔다. 검은 색일 때도 있고 흰 색일 때도 있었다. 젊은 간호사부터 할머니 간호사까지 다 입는 걸 보니, 젊은이들의 발칙한 도발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이것이 쿠바의 평범한 패션 센스인 것이다. 아하, 그렇다면 내가 내 교복을 조금 ‘광대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안 되지 않을까? 아예 이참에 쿠바 아이들에게 마음까지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개량 한복’의 미덕을 알려주는 게 어떨까?

 

내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인지, 지난 주 나는 한 친구에게 귀한 교복 선물을 받았다. 무려 고무줄 바지였다. 바지통도 엄청 컸다. 입어보니 이건 뭐, 그냥 추리닝이다. 6학년 인턴을 하던 아르헨티나 친구가 작년에 입던 교복인데, 병원 안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잠 들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교복을 이렇게 고쳤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교복이었다. 약간 슬픈 것은 이 옷의 전 주인인 아르헨티나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롱다리였다는 거다. 다리는 짧고 허리가 긴, 전형적인 아시아 체형인 내가 이 옷을 입으면 좀 우스워 보인다. 일단 아쉬운 대로 이것으로 버티다가, 쿠바를 뜨자마자 나만의 ‘추리닝 교복 바지’를 제작할 생각이다.

 

 

동갑내기 의사 친구

 

몇 주 전에는 내 무료한 일상에 또 다른 작은 일탈이 있었다. 막 학교를 졸업한 의사 친구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3월에 나는 여기 <쿠바 리포트>에 산타 클라라에 가서 엘람 선배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썼는데, 이 친구가 바로 그때 내가 만난 선배 중 한 명이다. 그 당시에 그는 마지막 학년인 6학년 인턴 과정을 밟고 있었으나, 이번 9월에 졸업하고 어엿한 의사가 되었다. 현재는 졸업장 서류가 처리되는 것을 기다리면서 쿠바 전역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학번으로 보면 한참 선배이긴 하지만 사실 나나 이 친구나 똑같이 93년생이다. 내가 십대 후반에 연구실에서 좌충우돌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쿠바로 직행했다. 쿠바에 인터넷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던 옛 시절이었다. 학교 기숙사 방에서 12명과 함께 자면서, 24명과 화장실 하나를 나눠 쓰면서, 바퀴벌레가 판을 치는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환경이었다. 그는 이 범상치 않은 나라에 뚝 떨어졌고, 버텼고, 의사가 되었다. 정열적인 남미 문화를 부담스러워했던 숫기 없는 십대 소년은 이제 남미 각국의 스페인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고 해도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자기 나라인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나라의 문을 두드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자기 나라에 돌아가도 옛날처럼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십대 +이십대를 보냈다는 동질감에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산타 클라라에서는 시종일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 친구에게 깜짝 놀랐었지만, 듣고 보니 그 회의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가 쿠바에서 7년간 겪은 고생담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이곳저곳 쏘다니다가 의과대학을 선택한 나의 무모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둘 다 서로를 ‘크레이지 93년생 닭띠’라고 깎아내렸지만, 사실 나는 그의 허세 없음과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나의 격의 없음에 놀라워했다.

 

친구는 곧 떠났고, 10일 후 나를 다시 찾아왔다.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학교 측에서 이 친구의 졸업장을 잃어버려서 이제는 재발급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재발급은 아바나에서만 가능했다. 학교가 학생의 졸업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참으로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는가. 여기는 쿠바인데. (속으로 나에게는 부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빌었다.) 그렇게 그는 우리 집에서 일주일 간 신세를 졌다. 졸업은 삼 개월 전에 했는데 왜 자기가 아직도 쿠바에 머물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그의 불행은 나와 현우의 행복이었다. 그가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그를 과외 선생으로 톡톡히 써먹었기 때문이다. 주로 해부학과 생화학을 질문했다. 쿠바에서는 보기 힘든 외제 교과서도 선물 받았고, 지난 6년의 자료가 다 담겨 있는 300GB나 되는 파일도 얻었다. 그 외에도 맥을 잡는 법과 혈압 재는 법을 익혔다.

 

일주일 동안 매일 같이 학교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싸우던 그는 마침내 졸업장을 얻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번역과 공증을 해야 한다며 다른 도시로 훌쩍 떠났다. 하는 꼴을 보아하니 올해가 끝나기 전까지 쿠바를 떠나지 못할 듯하다. 쯧쯧. 부디 이 백수 홈리스 의사의 앞길에 행운이 깃들기를.

 

 

룸메이트를 찾아서

 

의사 친구가 산타 클라라로 돌아간 후, 나는 내가 소소한 일탈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지 깨달았다. 나에게는 룸메이트가 필요하다. 손님을 맞이했던 일주일은 거꾸로 내가 조용한 집에 홀로 있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혼자 산 적은 이번이 최초다. 뉴욕에서는 남자친구와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고, 동네 친구들도 자주 찾아 와서 술을 핑계로 한 밤씩 자고 갔었다. 연구실 사람들도 자주 방문했었다. 그러니까 지붕 아래 내가 홀로 잠이 들었던 적이 내 26년 인생을 통틀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집 안에 사람을 들이면 되는 거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터였다.

 

지난주 일요일은 내 생일 하루 전이었다. 원래 생일을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생일을 핑계로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사실 연락하면 함께 어울릴 사람들이야 많았다. 그러나 이들에게 연락하면 쿠바식 파티에 끌려가게 될 게 뻔했다. 내 생일만큼은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친밀한 사람들과 소규모 그룹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때마침 나의 절친한 캐나다 친구 마라가 남자친구를 보러 쿠바에 와 있었다. 잘 되었다 싶었다. 마라의 남자친구도 나의 친한 친구이니, 이 둘과 조용히 만나 수다를 떨다가 자정을 맞이하면 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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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이 안 될려고 했던 것인지, 하필 그날 마라는 배탈이 나서 토사광란에 시달렸다. 자동적으로 약속은 캔슬되었다. 허탈해진 나는 갑자기 사케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다. 그러나 자주 마시지는 않는다. 사케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많이 없는 데다가, 나는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에서는 사케를 아껴놓았다가 특별한 날에 특별한 사람들과만 마시곤 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바로 이 특별한 선물을 주기로 했다. 나는 아바나의 한 고급 일본 식당에 가서 사케를 샀다.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런데 사케를 사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였다. 쫄딱 젖은 생쥐 꼴로 집에 도착해서, 급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샤워를 마치고 나와보니 이번에는 거실 바닥이 젖어 있었다. 부엌 옆에 작은 뜰이 있는데, 거기 하수구가 막혀서 물이 넘쳤고, 급기야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결국 우산도 없이 폭우를 맞아가며 작은 바가지로 뜰 안의 물을 모두 퍼냈다. 그리고 그 밤에 하수구를 청소했다. 덕분에 물은 더 이상 침입하지 않았지만, 비는 여전히 무서운 기세로 내리고 있었다. 다시 집 안으로 물이 밀려들어 온다면 이 짓을 또 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1층에 있는 위험한 가전제품을 싹 모아서 2층에 올려다 놓고, 나도 비가 그칠 때까지 2층에 있기로 했다.

 

몸은 다시 쫄딱 젖고,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고,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술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거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사케를 중탕해서 뜨끈하게 한 잔 마시고 그냥 자야겠다 싶었다. 헌데 이번에는 가스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홧김에 찬 사케를 들이켰다. 그 맛은 정말이지...... 정말이지 잊을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다. 이것은 사케라고 할 수도 없었고, 어디서 제작되었는지도 모를 싸구려 백주였다. 그리고 12시가 되었다. 제길! 참으로 잊히지 않을 생일날이구나.

 

빨리 새 집을 찾아서 룸메이트를 들여야겠다. 앞으로 남은 15분의 14의 의대 생활을 이렇게 홀로 할 수는 없다. 동지, 까마라다(camarada)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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