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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로 가는 길

쿠바 리포트 |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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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9-02-22 09:00 조회1,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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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이야기

 

 

 

                                                                                                                                                           김 해 완

                                      

1월 말에서 2월 초, 많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지난 편을 확인하시라) 그래도 2주라는 꿀 같은 방학을 얻었다. 이 귀하디 귀한 시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딱 세 가지였다.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날 것,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것, 드라마 <SKY 캐슬>을 정주행 할 것. 세 개 다 그럭저럭 했다. 만나려던 사람들을 다 만난 것도 아니었고, 읽으려고 했던 책을 다 읽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행복했다. 이 세 가지 계획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게으름 피우기’였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오직 순간 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이렇게 써 놓으니까 어딘가 근사해 보이지만, 실제로 했던 일은 맥주 마시기, 야채 구해오기,가구 배치 바꾸기, 살림용품 발명하기, 기타 등등 모두 사소한 것들 뿐이다) 그러니까 나의 방학은 완벽하게 ‘계획대로’ 흘러간 셈이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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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두 사진은 방학을 맞이해서 오랜만에 만난 중국 친구들

  

 

 

드디어 읽는다, 연구실 인기도서

 

이 게으른 방학을 맞이하여, 나는 연구실의 영원한 인기 도서를 드디어 처음으로 집어들 수 있었다. 바로 <여성의 몸,여성의 지혜>다. 연구실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어 온 책, 표지를 너무 자주 봐서내 책장에도 한 권은 꽂혀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주곤 했던 책, 뉴욕에 가기 전에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리기까지했던 책.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이 책의 첫 장을 열어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내가 아직 중년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이 별 효용성이 없다고 여겼다. 저자가 동원한 임상 사례들은 모두 40대에서 50대, 아무리 젊어봤자 30대인 여성들이었다. 10대 후반이었던 내가 몸에 대해서 무슨 고민거리가 있었겠는가. 심지어 생리통도 없을 만큼 자궁벽이 말랑말랑했을 때였다……. (그때가 그립다. 외국 생활 5년 만에 없던 생리통도 생겼다.)

 

​이 책이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것은 10년 사이에 내 신체 나이가 ‘중년’에 진입했기 때문은 아니다. (아…아직은 젊다…… 그렇게 믿고 싶다!) 어쩌다보니 의대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재미라고는 1도 찾아 볼 수 없는 전공 서적만 6개월 동안 파고 나니, 이 방대한 양의 정보를 과연 어떤 시선으로, 즉 어떤 철학을 기반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질문이 생겼다.그때야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가 오랜만에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오랫동안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책이라면, 분명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싱가폴 여행에서 고샘과 근아쌤, 석영쌤 편에 이 책을 전달받았다.쿠바로 돌아가면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쳅터 씩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었다.

 

​토네이도가 와서 전기가 끊긴 밤, 나는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서 책의 첫 장을 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여성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산부인과 질환을 각 부위 별로 쉽게 설명해놓은 책이었다.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도 용이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로서는 책을 이해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역으로 한국어 의학 용어를 스페인어로 다시 찾아봐야 한다는 에러 사항이 있었다. ㅋㅋ.)그러나 이 책의 진짜 핵심은 따로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저자는 곧바로 질병 파트에 돌입하지 않고, 첫 100쪽을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관점’을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그녀는 ‘좋은 엄마’와 ‘좋은 커리어우먼’이라는 이중 역할을 모두 잘 해내려고 애쓰다가 결국 유방염이 치명적으로 퍼져나갈 때까지 몸을 방치했었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끌어오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다른 사람의 몸을 돌보는 일에서는 만족감을 얻으면서 정작 나 자신과 내 아이들의 몸을 돌보는 일에서는 왜 그렇지 못한가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 왜 나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비록 할 일이 많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몰아줄 30분의 시간을 마련하는 데 왜 허덕여야 하는가? 왜 그러한 시간들이 낭비라고 느껴지는가?”(16쪽)

그녀는 말한다. “건강은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므로,“오랫동안 자신의 몸과 내면의 자아를 무시하며 살아” 온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사회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한 건강을 이룩할 수 없다. 즉, 우리에게는 치료를 넘어선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그냥 물질 덩어리가 아니고, 병 역시 그냥 찾아오는 불행이 아니다. 몸은 마음과 정신과 삶의 다양한 영역에 폭넓게 개입하고, 논리와 이성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직관의 세계에 연결되어 있으며,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런 몸에 ‘병’이 생겼다는 것은 병균이 침입한 것을 넘어서서 인생 전반이 균형을 잃은 것이다.혹은 몸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관념이 두텁게 쌓여서 족쇄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몸은 병을 통해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자고 말을 걸고 있는 셈이다. 저자가 유방염을 통해서 ‘왜 여성에게 사회적 성공이란 아이를 돌보려는 몸의 본능을 무시하라는 압력이나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죄책감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과 만난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 대한 메세지! 그러니까, 몸이 병을 통해 보내는 이 메세지를 환자가 해석하지 못하면 치료는 불가능하다. 약물 치료나 수술 같은 외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증상이 완화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근치는 안 된다. 같은 병이 재발하거나 다른 병이 생기기 쉽다. 그렇다면 이 메세지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저자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환자만이 이 메세지를 해석할 수 있다고, 의사는 환자가 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그 내적인 탐사를 도와줄 뿐이라고만 말한다.

 

일반 의사가 들었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내용이다. 내면의 탐사라니,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의 주관적인 사유 패턴에 빚 지고 있을 터인데, 이게 신체의 증상 완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까? 그렇지만 저자의 수많은 임상 사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환자들은 자신의 삶의 문제를 스스로 진단해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치유까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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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비에하에 갔다가 찍은 쿠바 애기들 사진 

 

 

 

 

환자의 삼박자 : 기억, 중독, 병

 

여기까지의 내용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더니, 병이 곧 몸의 메신저라는 이야기는 연구실에서 공부할 때 귀에 못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흠, 쬐끔 식상하군. (ㅋㅋ)

 

그런데 뒷통수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가한 부분은 따로있었다. 환자들은 모두 몸의 메세지를 탐사하는데 이정표를 활용했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었다. 과거의 어떤 기억이, 기억하기 싫어서 일부러 잊었거나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 덮어두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중요치 않다고 여겼던 하찮은 그기억의 파편들이, 갑자기 ‘이유 없이’ 되돌아오면서 병든 몸과 공명을 일으킨다. 기억의 회귀에 이유가 없을 리가 없다. 단지 그 이유를 모르고, 또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뿐이다. 즉, 결론은 명료하다. 이 기억들은 바로 삶의 문제가 ‘병’으로까지 진행되어 온 역사적 현장이다.

 

 

“믿음과 기억은 몸에 만들어진 생물학적 물질이다. 정신은 빙산에 비유된다. 그리하여 의식세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잠재의식의 세계가 훨씬 크다. 개인의 삶의 역사는 우리 몸에 축적된다. 수면 아래의 빙산처럼 몸 속에 축적된 정보들은 지적 능력만으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세포 하나하나는 자기만의 기억 창고를 갖고 있다.” (64쪽)

 

나는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 불빛을 들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한동안 책의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뭔가, 무슨 생각의 덩어리들이 마음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곧 나는 무엇이 내게  오고 있는지 알았다. 그것은 바로 작년에 끝을 본 4년 간의 연애에 대한 기억들이었다. 정말 생뚱맞게도 그 기억이 쏟아졌다. 와르르!

 

​이렇게 글로 쓰는 게 더 창피할 이야기다. 세상에 나만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사람을 만나면 헤어지게 된다. 심지어 관계를 정리한 지도 벌써 반 년이 넘었다. 꽤 오랫동안 만났지만, 뉴욕에서 의지가지 하면서 정도 들었었지만, 헤어질 때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진 탓에 마지막 순간은 칼 같이 찾아왔다. 그 후 나름 자기 반성도 하고 지난 시간에 의미 부여도 하면서 ‘계산’을 끝냈는데, 왜 이제 와서 이 기억이 불쑥 내 일상에 끼어든단 말인가? 헐~~. 게다가 이 기억들이 내 몸에 불러일으킨 반응은 로맨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옛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 남자친구를 상대하고 있는 ‘과거의 나’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의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창피함, 한심함, 분노, 피로감이느껴졌다. ‘나’의 모습은 익숙하고도 낯설었는데, 익숙했던 이유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 순간에 그렇게 행동했는지가 (나의 행동 패턴이) 너무 잘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낯설었던 이유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오로지 내 감정의 차원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 전 연애는 나쁘지 않았다. 전 남친과 많이 싸우기는 했지만,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한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이 기억들이 떠오른 것은 저자가 연애를 건강 진단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포함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산부인과 질환의 병인(病因)으로 삐뚤어진 남녀 관계를, 한 단계 더 나아가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를 강력하게 제시한다. 아, 이때 가부장이라는 단어를 ‘여자가 아픈 것은 다 남자 때문이다’라는 비난으로 해석하지 말자. 그것은 유치원생의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이다. 저자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가부장 문화를 중독증의 문화로 정의한다. 여기서 중독의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 뿐만 아니라 일 중독, 쇼핑 중독, 인터넷 중독, 음식 중독, 운동 중독처럼 말이다. 그런데 가부장 문화는 무엇 때문에 중독을 부추기는 것일까?“무엇인가에 중독되면 억압된 감정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독증은 우리가 절실히 깨닫고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마비시킨다.” (32) 그 말인즉, 중독이란 몸의 자연스러운 메시지를 차단시키는 모든 종류의 기제를 일컫는다. 그리고 중독증의 사회는 그것을 ‘성공’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신체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이 중독 시스템에 더 적응을 잘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결과는 양성 모두에게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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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일몰 사진 

 

 

 

중독증 중에서도 가장 널리 퍼져있는 것은 관계 중독이다. 관계 중독은 의존성이 만들어낸다. 나 스스로 채울 수 없는 감정적*정서적*영적 만족감을 상대방에게서 갈구하거나, 혹은 내가 조금만 못 해주면 상대가 나를 덜 사랑할 것 같은 조바심에 필요 이상으로 돌봐주거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해서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거나.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맺으면 관계에 집중할수록 삶이 풍요로워지는 게 아니라 거꾸로 속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중독이기 때문이다. 즉, 진짜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늘처럼 가슴을 콕콕 찔렀다. 그러니까, 흘려보냈다 생각했던 과거의 연애가 부메랑처럼 돌아온 것은, 내가 그 속에 ‘관계 중독’의 요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드디어 인정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하고 싶은 욕망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심장은 강철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밀물처럼 되돌아오는 기억들은 내가 그 관계에 ‘어떻게 의지했는가’를 보게 했다. 기억들에는 패턴이 있었다. 기억 속에서 나는 늘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고 고집을 부리는 남자친구 때문에 쩔쩔 매고 있다. 내 마음 속에는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이 피어오른다. 그렇지만 사실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어떻게든 관계가 계속 되도록 만들고 싶고, 그래서 결국 나는 내 의견을 포기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것까지도 상대방에게 맞춘다. 그렇게 불통(不通)의 절망감을 그 순간 관계가 잠시 좋아진 것에 대한 행복감으로 보상받는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있었다. 상대에게 집중하는 법이나, 내 고집을 꺾는 법이나, 기타 등등. 그러나 그게 패턴으로 고착화되면 안 되는 거였다. 게다가 돌이켜 보면 그때 관계가 아작났다고 해서 크게 잃을 것도 없었다.나를 깎아서 관계를 유지했는데, 관계가 끝나고 보니 오히려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입은 내상이 더 문제였다. 하지만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런 식으로 관계를 맺은 것은 다름 아닌 나였는데. 남자친구가 나보고 감정을 희생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었는데. 제길!

 

 

 

강산은 변하고 감정은 쌓인다

 

​기억, 중독, 병. 크리스티안 노스럽의 환자들은 모두 이 삼박자를 갖췄다. 그리고 이 삼박자를 하나로 꿰는 것은 감정이다. 기억이 저장하는 것은 감정의 동일한 패턴이고, 중독이 유도하는 것은 감정의 억압이며, 병이 발생하는 것은 반복적으로 무시당해 온 감정의 에너지의 폭발이다.

 

그렇게 기억의 해일 뒤에 감정의 해일이 찾아왔다. 그만‘뚜껑’이 열리고 만 것이다. 디오스 미오(díos mío)……. 기억들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더니, 그 다음에는 그 당시에 옆으로 치워 두었던 감정들이 기억의 뒤를 따라서 마음을 메웠다. 창 밖의 아바나 외곽에는 토네이도가 도착하고 있는데, 내 마음 속에서도 감정의 소용돌이가 별별 기억들을 뒤집고 헤집고 부수고 있었다.

 

​나는 ‘마인드 컨트롤’ 모드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그냥 기억과 감정이 날뛰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자 기억이 뉴욕과 연애라는 시공간을 지나쳐 더 먼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한국으로, 연구실로, 고등학교 시절로…. 그런데 흥미로웠던것은, 이 과거의 수면으로 떠오른 것 또한 비슷한 패턴의 기억과 감정이었다. 일방성 소통에 대한 절망감,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끝내 납득해야 할 때의 피로감,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그런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 기타 등등. 그러니까 내가 연애에서 감정적인 문제를 처리하던 그 방법의 기원이 사실은 더 먼 과거에까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몽땅 안에 누르고 있었으면서도 몰랐다니, 나 진짜 무식하게 살았구나…. 이렇게 무식하게 앞으로 10년을 더 살면 진짜로 병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 나오는 여러 환자들이 바로 내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 저자의 스타일대로 말한다면, 내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매년점점 심해지고 있는 나의 자궁 경련이 전해주고 있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학교 밖의 삶을 기웃거린지 벌써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시간 동안 내 감정은 똑같은 패턴으로만 쓰인 모양이다. 몸 속의 세포도 매일 같이 새롭게 세포분열을 하고 또 죽어가는 마당에, 그때 그 시절 감정이 정말로 내 몸 속에 실체로 남아 있을 리는 만무하다. 단지, 과거의 감정적 패턴이 현재에도 남아서 ‘그때 그 시절’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감정을 처리했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감정적으로 충돌이 일어나거나 섭섭한 일이 생겼을 때, 상대방이 어떤 감정의 회로를 구성하고 있는지 집중한다.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회로는 ‘언제나 옳은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이 옳든 그르든, 잘났든 못났든, 정당했든 실수했든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동의 여부와 상관 없이 상대방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리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이 방법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제3자가 보듯이 파악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감정을 처리하면 원망하는 마음은 남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문제는, 상황을 해결한 후에 ‘과연 나 자신은 그 순간에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생각하는 것에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상황이 문제 없이 흘러가는 것에만 무조건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문제해결 중독증?)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은 다르다. 이해했다고 해서 무조건 수용하란 법은 없다. 지금까지 나는 이 두 단어를 동일하게 여겨온 듯 하다. 솔직한 말로, 이는 내가 상황을 수용하기 위해서상대를 이해했던 탓이 크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를 자발적으로 이해하되,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너무나 잘 이해되어서 더욱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기억은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재구성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만약 기억이 그것을 재구성하는 ‘주체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누구도 그 사람의 기억에 개입할 수 없을 것이고,또 기억과 무관하게 사건은 객관적으로 존재했었다고 말한다면 기억은 기껏해야 한 개인의 분풀이, 개인적인 한(悢)풀이에 불과해진다. 그러나 의대생으로서, 그리고 크리스티안 노스럽의 팬으로서, 이제 내게 기억은 최고의 데이터다. 병과 치유가 동시에 벌어지는 현장이다. 그러니까 세포에 곪은 기억은 일단 꺼내야 한다. 가타부타 해석을 덧붙이기 전에, 무슨 감정이 거기 머물러 고여 있는지 봐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래야 한다’는 당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로 해내지 않으면,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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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 발명품 사진을 보냅니다. 사과박스로 만든 신발장!  

 

 

다음 생에는 쿠바인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이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곧바로 말씀하셨다. “네가 사주에서 식상이 고립이잖아. 식상을 극하는 인성이 과다이기도 하고. 그래서 감정 표현이 힘든 게 아닐까?” ㅋㅋㅋ……. 역시, 우리 모녀의 대화는 언제나 기-승-전-‘사주’다. 심지어 어머니는 며칠 뒤에도담쌤의 사주명리학 책에서 ‘축토’ 부분을 발췌해서 사진으로보내주셨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데 참고하라면서. (참고로 나는 일주가 을축이다. 꽁꽁 언 겨울 땅인 축토를 깔고 앉은 풀인 셈이다.) 

 

 

 

“느림은 소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토의 성향이기도 하다. (…)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 예컨대 처음에 몰랐는데 집에 가니 기분이 나쁜 경우가 종종 있다. 감정의 시간차라고나 할까. 토의 습성이 대개 그렇다. 그럴 때 축소는 몸속에 깊은 곳에 그 기억을 묻어두는 편이다. 그게 쌓이면 폭발하게 되는데 그러기 전에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더 그렇다.”

 

 

 

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수다스러운 성격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활달하다고만 생각하지만, (아마도 그건 축토를 제외한 나머지 지지가 모두 ‘쎈’ 글자인 왕자라는 점에 기인할 것이다) 사실 나는 남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에 있어서는 늘 머뭇거린다. 가령, 나는 일기를 못 쓴다. 글을 많이 써왔는데도 일기장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아무 검열 없이 감정을 쏟아낸다는 것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지지 때문이다.아, 이놈의 축토, 이놈의 인성 과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 다음 생에 식상 과다 팔자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그 기분을 알 수는 없으리라.

 

그때 창 밖에서 쿠바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싸우고 있다. 어차피 점심 메뉴나 화장실 변기 문제처럼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번뜩 뜨였다. 이건 게 바로 ‘감정 표현’ 아닐까? 지금 나는 식상 과다의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게 1만 있어도 곧바로 기관총에서 총알 나가는 것 같은 스페인어로 불평을 쏟아내는 게 쿠바인들이다. 이들에게 조증은 있어도 우울증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감정과 관련된 건강 문제를 덜 앓는 것일까? 갑자기 쿠바인들이 조금 부러워지려고 했다.

 

나는 나중에 선배 의사 언니를 만났을 때 이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쿠바에서 2년째 일반의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들려주었다. “네 추론은 일리가 있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쿠바인들의 감정 표현이 그들의 건강 상태를 딱히 호전시켜주는 것 같지는 않아. 감정 표현을 엄청하지만, 정작 자기 감정의 본질이 뭔지는 잘 모르거든. 속이 텅 빈 기분이 느껴지는 건 결국 같은 거지. 그러면 아프게 되어 있어.” 아, 정말로 사실이다. 밖으로 방출하든 속으로 삭히든,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 속에 들어 있는 메세지를 해석하는 작업인 것이다. 나는 다음 생에는 쿠바인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급속도로 취소했다. ㅋㅋㅋ……. 역시, 인생은 쉽지 않다. 인성 과다에게든식상 과다에게든.

 

 

 

사실 막다른 골목이란 없었다

 

폭풍과 함께 정말로 폭풍 같은 밤을 보내니, 마음이 시원해졌다. 마음이 시원해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실 막다른 골목이란 없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심정으로 견뎠던 때가 많았다. 정신적으로는 ‘리좀’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제도권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정작 일상의 국면에서 감정을 쓰는 법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셈이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그 누구도 내게 막다른 골목을 설치하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이 존재하는 곳은 내 마음이다. 내가 골목에 몰렸다는 심정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때, 사실은 그 방법 밖에는 몰랐을 뿐이고 그만큼 내 시야가 좁았을 따름이다.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괴롭겠지만, 그 또한 지나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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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완샘 동네 일몰 사진  

 

​초저녁,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길거리를 지나가는 쿠바인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간다. 이곳, 쿠바에서 나는 외계인 같은 이방인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세상 어디를 가든 ‘나’라는 이 이상한 존재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곳은 없다. 결국 나는 내 안에 머문다.그리고 내 안에는 수많은 타인들이 드글거린다. 이들과 살아가는데 잡음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이 ‘병’이라불린다면, 거기에는 치유의 길도 있을 것이다. 내 얼굴에 꽂히는 저 수많은 시선들 속에서도 내가 담담하게 반응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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