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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로 가는 길

크크성 시즌2 |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고미숙] 정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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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jsun0501 작성일19-03-24 14:48 조회2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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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고미숙

March 20, 19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나는 부분적 자립은 해보았지만 완벽한 자립은 해본 적은 없다는 것을 최근에야 비로소 깨달았다그렇다고 집으로부터 물리적, 경제적 독립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나는 17살이 되던 해부터 집안 사정으로 인해 타의적 대체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그때부터 내 생애 실질적 자립이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적 지원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다어머니가 함께 생활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해도 생활비를 계속 지원해 주셨으니 말이다. 내 아래로 어린 두 명의 동생들과 함께 생활했기에 부분적으로 어머니의 지원을 받았던 터였다그런대도 대학 시절에는 예술 대학을 다닌 탓에 과제가 나올 때마다 파트 타임을 하지 않으면 재료비 걱정을 해야 했다그러고서 얼마안가 졸업 후에는 결혼을 해버렸으니 완전한 독립은 마땅히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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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미국으로 이민을 온 초창기에 남편과 극도로 사이가 안 좋아져 이혼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물론여러가지 상황 중에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지만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 또한 이혼을 힘껏 밀어부치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이혼이란 순수 예술을 택할지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 예술을 이용해야 할지에 대한 기로에 놓인 것과 같았으니

 

혹여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이 남들 눈에는 고상한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도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서 취미를 전공으로 바꾸고 예술을 자신의 간판으로 달고 다니는 금수저 같은 그런 부류들에게나 어쩌면 가능한 일이리라경제적 고달픔이 따를지라도 예술가들이 그것을 기꺼이 감내하는 까닭은 자기 작업에 대한 열정과 작품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나는,작업 비용을 대기 위해 전공과는 무관한 일이나 육체적 허드렛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많은 동료 예술인들을 알고 있다나 또한 전공과 관계된 일거리는 물론이고식당세차장혹은 길거리에서 찌라시를 건네는 일이나 공장에서 박스 만드는 일또는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 감는 일 등등 작업 비용을 만들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일한다 해도 그것이 온전히 작품비로 쓰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일단 생계와 가족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더러는 그러한 이유로 혼자 사는 삶을 택하기도 한다혹은자신의 선택에 좌절하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경제적 요인은 많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순수 예술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상업 예술로 전향하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작품에 대한 가치를 인정 받아 고액의 돈을 벌어들이는 이들은 극소수에 그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예술가들이 상업 작품으로 많이 기울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미국 작가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에 올인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 지위가 이미 어느 정도 확보된나이가 지긋이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공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주력하는 젊은 작가들 또한 마찬가지이다관련 분야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던지 상업 사진과 예술 사진을 병행한든지아니면 바텐더로 일하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몸을 내던질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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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고를 기준으로 작품의 위대함을 따지기도 하는데 사실 그것은 어불성설이다자본주의는 물질 문명주의,혹은 물질 만능주의와 통한다나는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고의 차이가 작품의 질이나 수준과 특별한 상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오히려 시대적 트랜드와 매우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그 트랜드는 상류 사회의 트랜드와 일맥 상통한다 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물론 작가의 소셜 네트워크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부분이다단적인 예을 들자면예술가들이 살아 생전에는 작품에 대한 인정을 못 받다가 죽고 나서야 그 가치를 다시 재평가 받는 사례가 간혹 있다이는사후에 그의 작품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는 시점과 맞아 떨어진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예나 지금이나 예술을 소비하고 즐기는 이들은 일반 대중들이 아니라 그 사회의 소수 상위 그룹으로 매우 한정되어 있기는 매일반이다

그 시대의 예술 사조는 당대의 비평가 및  미술관 혹은 갤러리 관계자대학 교수 그리고 그들과 친분이 두터운 예술가 등등 및 그와 관련된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주도하에 있다그리고 그들이 상류 사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작품을 팔고 싶다면 그리고 유명해지고 싶다면 어떻게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적 신조를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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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대학 교수님으로부터 팔리는 작업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당시 진행 중인 작품들을 조금만 다듬으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 그분의 주장이었다초창기,작가로서의 길을 열어갈 때 나의 롤모델로서 삼았던평소에 존경하던 은사님이었는데 그 분에 대한 내 마음이 그 때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그 분 또한 대학 교수이자 예술가로 활동 중이신 분이었다당시에 그 분께서 내 작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점을 개선해야 할지 등에 대한작품 자체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면 참 좋았을텐데그분의 유명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처세술의 단면이 보이는 듯 하여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이 웬지 씁쓸했다

 

그리고한 번은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어떤 갤러리의 오너 및  비평가와 미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정말 가관이었다오너의 입장은 개인전을 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몇 점혹은 얼마의 수익을 낼 수 있는지 미리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그 말인즉슨나의 가족 혹은 지인들이 얼마치의 작품을 사줄 수 있는지 묻는 말이었고게다가 비평가라는 사람은 내 작업 의도와는 전혀 다른뜬금없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주관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 왔다당시 페미니즘이 한창 사회적 이슈라 그렇게 해야 주목을 받기 쉽다나!? 나는 그 해에 한국에서의 개인전을 결국 포기해 버렸다그 일을 계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술가들도 자의든 타의든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오롯이 실감하였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성공한 모든 예술가들이 자본주의에 편승하고 있다라는 뜻이 아니다그들 모두가 예술적 가치를 완전히 져버렸다는 의미 또한 아니다시대나 어떤 이즘을 막론하고 예술 그 자체로 위대함을 인정받는 대가들도 반드시 존재하니 말이다다만 보통의 예술가들이 경제적 자립이라는 장벽을 쉽게 넘지 못하는 예술계의 현실적인 단면을 지적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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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어쩌면 예술가들도 백수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경제 활동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이나 노동에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고자기가 원하는 일을자유롭게하고 싶을 때하기를 원하는 자소유보다는 작업을 중심으로 인생을 기획하고작품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동료친구들과의 우정의 네트워크가 있고시간에 쫒길 필요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예전에 동료들과 그런 식의 담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우리가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것은 참으로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복 중의 복이라는 이야기였다위에 나열한 바와 같이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들은 배움과 깨달음에 주목했었다각자의 모든 형이상학적철학적 고뇌들을 풀어내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작품이고 그러한 활동들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이 조금씩 성장한다는 사실을 모두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한 번 작가가 되면 마약처럼 작품 활동에 탐닉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자기 고백들어찌 보면 작품은 하나의 구실일뿐 궁극적으로는 내면 세계를 넓히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도 한동안거의7-8년간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이 때가 바로 내가 이혼을 생각하던 시기)물론 작품 비용을 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그 당시엔 경제적으로 자립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먹고 사는 것도 빠듯했으니지금은 특별히 일을 하지 않아도 남편의 경제 활동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이제서야 작품이 팔렸을 때나 부수적인 수입이 생겼을 때작품을 만드는 비용으로 백 퍼센트 온전히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몇몇 동료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조건에 있는 나를 부러워 하기도 한다먹고 사는 건 일단 해결이 되니 말이다완전한 경제적 자립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수의 작가들에게나 국한 된 일이어서 보통의 예술가들에겐 어찌 보면 꿈으로 밖에 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그래도 어찌하랴현실적 배고픔을 채우기 보다 영혼의 허기짐을 더 견디기 힘들어 하는 이들이 자진해서 선택한 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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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백수가 해야 할 가장 핵심적 활동이 독서라는 곰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선생님께서는 이 책에서배움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배움이라는 뜻일 것이다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행위인 읽기 책을 중심으로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읽고시간의 차이를 읽고공간의 차이를 읽고욕망의 흐름과 타인의 마음을나를 지키고 완성할 때까지 읽어내라는 말씀이것이야 말로 예술가들이 궁극적으로 해내야 할 읽기가 아닐런지나는 그것을 작품으로 뿐만 아니라 글로도 표현할 기회를 동시에 얻게 되었으니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오래도록 동료 예술인들과의 관계에 집중해 왔었다같은 계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작품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 등 영감을 나누기에 충분한 상대들이기 때문이었다반면에현실 지향적인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소통의 괴리감이 늘상 붙어 다녔다그러한 고정 관념의 틀 안에서 나는 항상 예술인이 아닌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책과 글배움의 장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라는 사실을 감이당을 통해서 깨달았다그런데 사실 거기에도 약간의 문제는 있었다태생적으로 단체나 조직에 귀속되는 것그리고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을 끔직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뉴욕 감이당이 부담스런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뉴욕 감이당에 끝까지 붙어 있으려는 이유는그곳에 배움과 깨달음을 함께 나눌 친구이자 스승이 있고 또한 그곳이 소통과 대화의 통로인 지성의 장이기 때문이다연암이 친구동료들과 어울리면서 배움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면서 느꼈을 법한 즐거움을 뉴욕 감이당을 통해서 나도 조금씩 맛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앞으로도 백수 예술가로서의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물론 골수 백수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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