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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완`s 뉴욕일기 | [무술년 크크성 2기 두번째 에세이] 실크로드 1-정에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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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jsun0501 작성일18-07-12 15:48 조회2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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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1, 2018

<실크로드, 피터 프랭코판>

제1장~제5장

정에스

 

실크로드.

2015년에 영국의 역사학자가 과거 2,000년부터 현재까지의 세계사를 새로운 지정학적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다시 쓴 역사서이다. 

 

저자 프랭코판은 이 책의 서문에서기존의 세계 역사는 오로지 서양을 위주로한 승자의 관점이며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편견으로 이루어진 역사관이라고 이야기한다“고대 그리스는 로마를 낳았고 로마는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을 낳았고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은 르네상스를 낳았고 르네상스는 계몽주의를 낳았고 계몽주의 시대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을 낳았다이어 산업은 민주주의와 만나 미국을 낳고 생존권자유권행복 추구권을 구현했다.이것은 내가 내내 들어오던 이야기였다서유럽의 정치적문화적도덕적 승리라는 주문이었다그러나 이런 설명은 문제가 있었다역사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다바로 승자의 관점에서 본 역사가 아닌 다른 역사 말이다…(중략)…이 통로(실크로드)는 사람들과 장소를 이어주는 세계의 중추 신경계 노릇을 했다이 연결 부분을 알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하지만 이 지역은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주류 역사학에서 잊힌 존재였다이는 부분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 불리는 편견 때문이다동양은 서양보다 미개하고 열등하며 따라서 진지하게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편협하고 부정적인 관점이다.(실크로드, 10-11p, 14p)

 

세계사를 서양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바꿔 볼 필요가 있다는 그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동양인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특히 나처럼 중고등학교 시절에 역사 과목을 통해서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고대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리학적 위치 때문에 겪었던 수많았던 외세의 침략들을 그동안 어떻게 막아내왔으며 매 세기마다 얼마나 훌륭한 위인들이 나라를 빛냈고 그 와중에 어떻게 많은 문화적 유산들을 이루어냈는지를 배웠다면 말이다게다가 미국이나 유럽 같은 강대국에 이주해 온 후자신이 살던 나라의 존재조차 모르는 타민족들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의 주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본디 ‘오리엔탈리즘’이란 단어는 19세기 중엽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쓰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 의미가 동양을 연구한다든가 동양 문화를 모방하는 것 등을 지칭하는 단순한 말이었다고 한다그러다가20세기에 미국의 문학 평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을 발표하면서 그 의미가 달라졌는데그 이후로 동양 문화와  동양 사람에 대한 부정적이면서도 편향적인 해석을 뜻하는 말로 지칭되고 있다.(참조: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을 간략하면,근대 유럽의 정체성의 모태는 서양의 우월함과 동양의 열등함을 비교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8, 19세기에 서양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적극적으로 동양의 식민지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동양에 대한 그들의 침략을 서양의 수준 높은 문화와 종교로 동양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도덕적,종교적 사명으로 미화시키고 서양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주장함은 물론이요 오히려 동양의 뒤떨어지고 낙후된 문명을 개화시킨 역사적 공로로 치하하려는 교묘한 의도이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이다.)

 

실크로드라는 낱말을 인터넷으로 구글링해 보면 위키백과에“실크(Silk Road, 비단길)는 육상, 또는 통한근대이전의 동서교역로를가리키는 이다.”라고 정의한다통상적으로 실크로드라고 하면 중동 아시아를 중심으로 상업과 무역이 행해지던 길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일 것이다그러나 프랭코판의 말에 의하면 실크로드를 통해 흘러간 것은 단지 상품만이 아니라고 한다이 길을 통해  질병과 죽음사상이 함께 흘러 다녔음은 물론이고,새로운 문명이 탄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금의 거대 종교들이 태동한 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 나갔으며 또한,고대 열강의 제국들의 파멸과 탄생이 모두 실크로드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하면서 서양과 서양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기원을 서양이 아닌아시아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기를 모색한다

 

그러므로그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그의 저서 ‘실크로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기 전에이 지역을 중심으로 어떤 열강의 제국들과 왕조들이 어떻게 그 지역의 소유권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서 온 누구였는지 먼저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그러고 나서본격적으로 실크로드가 어떻게 세계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이 책의 저자인 피터 프랜코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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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한 열강의 제국들과 그 왕조들

 일단프랭코판이 그의 저서 ‘실크로드’에서 언급하는 지역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 지역들은 동방과 서방의 중간 지점즉 지중해 동해안과 흑해 연안에서 히말라야 산맥까지 펼쳐진 지역인 현재의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기스탄과 캅카스 지역 나라들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위치한 이슬람 문화권 지역그리고 일부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같은 나라들을 지칭한다이 지역들은 세계4대 문명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 문명그리고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를 포함하고 있는데 현재1장에서5장까지의 내용에 있어서는 특히,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실크로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프랭코판은 실크로드의 서막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배경으로 한 고대 페르시아에서 찾는다메소타미아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비옥한 초생달로 불리우는  넓은 평야로 인하여 물질 문명의 풍요로움을 이루어냈다또한 넓게 펼쳐진 평야 지대답게 개방적인 지리적 요건과 넘치는 생산량으로 인하여 상업과 교역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어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비옥한 평야지역을 서로 차지하려는 이민족의 침입 또한 매우 잦았다그로 인해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과 방식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개방적이었는데 이방의 풍습까지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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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메소포타미아 지역은 BC 6,000년 구석기 시대에 유목생활을 하던 인류가 최초로 모여 군락을 이루고 정착한 지역으로 보고되고 있다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따라 형성된 초승달 모양의 비옥한 토지를 중심으로 마을과 도시가 생겨났으며 하수도는 물론이고 강물을 빼거나 저장하는 관개 산업을 발달시켰고 풍부한 수확물로 인해 상업과 물물교환이 활발하였다비옥한 초승달 지역에는 BC 4000년 경의 최초의 도시국가 출현부터BC 330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멸망까지 이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고 사라져간 십여개가 넘는 왕조와 제국이 존재했었다.그 중에서도 특히영어 알파벳의 시조가 된 설형 문자(쐐기 문자)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60진법그리고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1년을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어 썼던 수메르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비롯해 지중해 북쪽까지 장악하고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하여 법치국가를 실현했던 고대 바빌로니아그리고 기원전6세기 경 에게해까지 뻗어나가고 이집트를 정복했으며 동쪽으로는 히말라야까지 확장하여 역대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생겨났었던 국가들 중 가장 큰 영토를 차지했었던 페르시아 제국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경그리스 반도의 최북방에 위치한 작은 왕국마케도니아에 동양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부유함문화와 사상에 매료된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알렉산더이다그는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증손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로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늘 갖고 다니며 읽을 정도로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였다또한,동방 원정길에 예술가지리학자측량기사,수로학자동식물 학자등을 대동했던 정황들을 비추어 볼 때그가 단순히 용맹한 장수로서의 위상만 갖춘 것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통합하려는 야망을 충분히 뒷받침할 치밀한 군사적 전략이나 전술까지갖추었음은 물론이고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 같은 전쟁 영웅들에 의해 그의 의식이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음은 자명해보인다스무 살의 이른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청년 알렉산더는 고대 세계의 최강국 페르시아 쪽으로 줄곧 시선을 고정시켰고기원전331년 드디어 이집트를 기습 공격하여 페르시아 총독들을 쫒아낸 후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총공격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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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우가멜라에서 페르시아군을 박살낸 후 동쪽으로 진군했다그가 경쟁자들이 지배하던 영토를 차례대로 접수해나가자 도시들은 자발적으로 항복했다믿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의 부와 아름다움을 지닌 곳들이 이 젊은 영웅의 수중에 떨어졌다바빌론이 항복했고 그 주민들은 이 거대 도시로 가는 길을 꽂과 화환으로 덮었다…오래지 않아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주요 도시를 잇는 페르시아 왕도 위의 모든 지점들과 소아시아 해안을중앙 아시아와 연결하는 교통망을 점령했다.(실크로드, 28p) 알렉산더는 정복자답게 정복한 영토와 신민들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저항하는 자에겐 죽음과 철저한 파괴로 응징하는 한편항복하는 자에겐 관용과 자비를 베풀어 현지의 종교적 믿음과 관습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태도를 취했으며 또한 그리스인들과 피정복인들과의 결혼을 장려하는 등 동서융합 정책을 썼다이는 동방과 서방의 문화가 서로 교류되어 전혀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초가 되었는데 그의 업적으로 괄목할만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원전323년에 그가 바빌론에서 서른 두살의 나이로 비명 횡사한 후,그가 이룬 영토는 너무 넓어서 왕국이 아니라 가히 제국이라 불릴만 했다갑작스런 그의 죽음으로 혼란과 내분이 일어났지만 그의 원정길에 함께 했던 지휘관들 중 한 사람이 새 영토 동쪽 절반인 티그리스 강에서 인더스 강에 이르는 지역의 지배자가 되어 셀레우코스 왕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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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코판이 말하는 진정한 실크로드는 중국이 서역오늘날의 신장으로 알려진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서역은 길이가900킬로미터에 이르는 통로인 하서주랑 너머에 있는 곳이다하서주랑은 중국 내륙과 타글라마칸 사막 끝에 있는 교통의 요지인 오아시스 도시 둔황을 연결한 후 다시 히말라야 산맥과 파미르 고원톈산 산맥힌두쿠시 산맥의 연결점에 자리잡고 있는 카슈가르로 통하게 된다“한나라 통치자들은 흉노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10여년의 전투 끝에 기원전119년 중국인들이 하서주랑의 지배권을 차지하면서 유목민들은 쫒겨났다서쪽에는 파미르 고원이 있었고 그 너머엔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중국은 대륙 횡단 네트워크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그것이 실크로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실크로드, 36p) 

 

한편이탈리아 서부 연안의 작은 도시로마가 해안의 도시 국가들을 차례로 탈취한 후에 서부 지중해 일대를 지배하게 되었다군대를 명예롭게 여기고 폭력과 살인에 갈채를 보내는 나라였던 로마는 오랫동안 이집트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마침내 기원전31년 로마의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를 상대로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하여 로마를 제국으로 이행해나가는 기틀을 만들었다“제국을 크게 만드는 것은 많은 도시 수였다도시는 과세 대상이 되는 수입을 많이 창출하는 곳이었다…로마를 새로운 시대로 이끈 것은 동부 지중해 지역과 그 너머로 시선을 돌린 일이었다.로마의 성공과 영광은 우선 이집트를 점령한 덕분이었고그 다음으로 동쪽,즉 아시아에 닻을 내린 결과였다.(실크로드, 40-41p)  

 

로마가 이집트의 조세 수입과 막대한 자원을 무자비하게 짜낸 결과로마는 호황의 불이 붙었고 돈이 넘쳐났다벽돌로 지어진 로마가 대리석의 도시로 바뀌었다.이집트를 점령한지 몇해 지나지 않아서 해마다 로마의 배120척이 홍해 서안의 미오스호르모스 항을 출발하여 인도로 향했다로마의 항아리램프거울신상주화 등이 파타남콜라푸르코임바토레 지역 등의 인도로 흘러들었으며 반대로 로마인들은 주석구리황옥 같은 값나가는 광물과 상아 같은 귀한 보석 및 향신료를 서부 인도로부터 가져갔다“그러나 로마 상인들이 주화로만 대금을 지불한 것이 아니었다.그들은 정교하게 가공한 유리금과 은홍해에서 나는 산호와 황옥아라비아산 유향을 주고 직물과 인디고 같은 염료를 사들이기도 했다이런 규모의 자금 유출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그중 하나는 교역로 주변의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 것이다장사가 번창하고 통신망과 교역망이 확장되어 더욱 긴밀히 연결되면서 마을은 소도시로,소도시는 대도시로 변모했다.(실크로드, 48-49p)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교역 중심지 역할을 했던 팔미라아라비아 반도와 지중해 지역의 도시들 사이의  교통로에 위치했던 현재 요르단의 페트라그리고 유프라테스 강 부근의 바트나이 같은 도시들은 부유한 상인들로 북적대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장터에 모여 인도와 중국에서 가져온 물건들과 육로와 해로를 통해 들여온 온갖 물건들을 거래했다로마의 놀랍도록 거대했던 구매력은 동아시아 깊숙한 곳의 주화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타림분지에서 중국인들에게 밀려난 월지족들은 그리스 계통의 왕조가 정권을 잡고 있던 그리스-박트리아를 차지한 후 쿠샨왕조를 세웠는데 오늘날의 북인도 지방인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서로는 파르티아,동으로 갠지스강서북으로 중국의 후한과 국경을 맞대고 로마와 활발한 무역활동을 전개하였다이들은 곧 로마의 것을 모방한 주화를 대량으로 주조하는 한편인도 전역과 중앙 아시아중국에서 온 물건들이 죄다 모여드는 커다란 시장들을 연결하는 주요 도시들과 교역로를 대거 장악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지금의 이란 동북부 파르티아 지역에는 셀레우코스 제국에 반기를 들어 건국된 나라 파르티아가 있었다파르티아는 페르시아에서 역사상 등장한 제국 중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손을 자처하였다.그들은2세기 말부터 강성해지기 시작하여 로마와 중국 사이에 위치한 입지를 활용하여 비단길의 중개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다그러나 로마 제국의 잦은 공격과 쿠샨 왕조의 위협에 곤란을 당하다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아르다시르1세에 의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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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을 목표로 일어난 민족 국가인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로마의 동방 정복 전쟁에 대한 심한 압력에 직면하면서 권력을 중앙에 집중하는 정치 개혁을 전격적으로 단행하였다상인과 시장을 통제하고 지역 및 장거리 교역으로부터 세금을 효율적으로 징수하는 한편 운송 수수료를 부과하였다이렇게 재원이 늘어나자 대규모 사회 기반 시설을 추진하고 티그리스 강 동쪽 기슭의 크테시폰을 새 수도로 변모시켰다.“또한 페르시아만의 카라케네 같은 항구들에 직접 투자하여 늘어나는 해상 수송 물량을 처리하는 일 등이 이어졌다…교역이 번성하면서 페르시아산 유약 도자기 산업이 성장하여 1~2세기에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로 수출되고 있었던 것이다…거의200년 동안 쿠샨에 복속되었던 도시와 영토가 다시 페르시아 본토로 편입된 것 역시 동방과 서방의 교역 증대를 촉진한 요인이었다.(실크로드, 53p, 55p)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부상과 더불어300년 무렵 북해에서 흑해까지캅카스 산맥에서 예맨 남단까지 이르는 동쪽 국경선 전체가 압박을 받고 있었던 로마는 급격히 흔들리고 있었다국경 방어 비용은 증가했지만 조세 수입은 나날이 감소하고 있었기때문이다.이러한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들이 전국 각지에 파견 되었고 덩굴과 과일 나무를 하나하나 세는 것은 물론이요 참께,쿠민고추냉이계피 같은 품목과 도금한 여성용 샌달부터 바빌론식 단화까지 적어도 스물 여섯 종류의 신발에 대해 상한가의 가격을 매겼다제국을 부흥시키려는 노력의 중압감이 극에 달했을 무렵행동을 취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그는 보스포루스 해변의 옛 도시 비잔티온 터에 지중해 해역과 동방을 연결하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였는데 후에 이 도시는 창건자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라는 뜻의 콘스탄티노플로 불리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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