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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완`s 뉴욕일기 | [무술년 크크성 2기 두번째 에세이] 실크로드3-정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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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jsun0501 작성일18-09-18 22:26 조회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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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0, 2018

정에스

 

실크로드 세계사 

피터 프랭코판

11-15

 

 

실크로드를 통한 노예무역   

 

시대를 막론하고 실크로드를 따라 흘러간 그 많은 상품 중에서 단연코 가장 큰 돈벌이가 되었던 것은 인신매매였다통상적으로 우리는 노예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국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떠올리게 된다그러나 노예를 뜻하는 영어 슬레이브slave’의 어원의 뜻이 동유럽과 중앙 유럽그리고 남유럽의 발칸 반도에 넓게 분포된 슬라브족에서 기원한 것임을 볼 때,노예가 오직 흑인으로만 한정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특히9세기 경에는 슬라브인들이 러시아의 조상인 스칸디나비아 상인바이킹 루시에 의해 무자비하게 노예로 끌려갔었는데 너무나 많은 슬라브인들이 끌려가다보니 그 잡힌 사람들의 종족인 슬라브가 노예를 지칭하는 말인 슬레이브를 대신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슬라브인들은 금발은발의 하얀 피부에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서 남자들은 일꾼으로여자들은 몸종이나 성노리개로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이렇듯 노예 제도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고전적인 사회 방식의 한 종류로서 인류사에서 몇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아주 오래된 제도이다.사회 계급 제도로 신분이 규격화되었던 고대로부터 전쟁과 약탈을 통하여 얻은 노예들은 예로부터 왕족과 귀족들의 보편적 재산의 표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예 무역이 돈벌이의 가장 큰 원천으로 인식되면서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노예 무역 시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은 대략 9세기 경부터이다노예들은 유럽의 슬라브족뿐만 아니라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와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계 종족들에서도 잡혀왔다이 때 노예 무역에 깊이 관여했던 것은 바이킹 루시 뿐만이 아니었다이탈리아 반도 상업 도시들 중 하나인 베네치아,그리고 유대인 상인들 또한 노예 무역에 깊이 관여했다

 

이 당시 많은 노예 시장 중에서도 가장 수요가 많고 구매력이 큰 곳은 아틸이었다그곳에서 최종적으로 바그다드와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알안달루스 등이 무슬림 세계에 노예를 공급했다이 때의 교역의 규모는 로마 제국의 전성기 때와 비교해 보아도 안달루스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뻗은 아랍어권의 시장이 팔리는 노예의 수가 로마의 경우보다도 훨씬 컸었다. “한 기록에 따르면 무슬림의 칼리프와 그의 아내가 각기1000명의 여자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고다른 기록에는 적어도4000명은 된다고 적힌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어느 정도 상상해볼 수 있다무슬림 세계에서 노예는 로마와 마찬가지로 어디에나 있었다.”(실크로드, 206)

 

그들은 하자르나 볼가불가르(카스피해 북쪽 지역)에서 상인들에게 팔렸으며 상인들은 그들을 더 남쪽으로 데려갔다물론 포획자들이 여자 노예들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성관계를 가진 뒤에야 그들을 보냈다노예로 돈을 벌려는 욕망은 너무도 만연해 있었다이에 따라 일부 스칸디나비아인들은 현지 지배자들로부터 새로운 지역을 약탈하여 포로로 잡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고어떤 경우에는 서로를 노예로 잡는 일도 사슴지 않았다.”(실크로드, 204)

 

이러한 노예 무역이 크게 번창하며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14세기 말부터 시작된 신세계 탐험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데 이어 잇따라 나선 후발 주자들이 중앙 아메리카 및 남아메리카에 발을 디디면서 부터이다이 때 유럽의 의도는 동방으로 가는 무역 해상로를 만들어서 교역을 활성화 시키고 조세를 통해 부를 취하기 위함이었다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신개척지에서 생산되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양의 금과 은진주그리고 각종 보물 등을 손에 넣음과 동시에 노동의 원동력으로 쓰일 노예들을 마구잡이로 붙잡아 올 수 있는 엄청난 노다지를 얻게 된 셈이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처음 바다를 건너가 만난 사람들이 소극적이고 순진하다고 조언한 적이 있었다그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명령을 내려 일을 시키고 경작을 하게 하고 그밖에 무엇이든 필요한 일을 시키는데 적합하다그들에게 마을을 건설하게 하고 우리의 풍습을 가르쳐야 한다.’ 애초부터 현지 주민들은 노예로 삼을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되었다폭력은 금세 예삿일이 되었다.”(실크로드, 354)

 

또한 때를 같이 하여, 15세기에 들어와 식민지 개척에 나섰던 포루투갈에 의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처음에는 중요한 해로를 차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그들은 곧 총과 칼로 무장하고 그곳의 모든 부를 탈취하는 한편 원정 때마다 습격을 통하여 남자와 여자,그리고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잡아갔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포루투갈에서는 부자들의 집에 남녀 노예들이 넘쳐흐를 정도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이에 따라 소유주들은 노예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부를 창출하고 그 자본을 다시 다른 곳에 투자해서 더 큰 부를 이루었다이 시기포루투갈은 원정을 후원하고 허가를 내줌과 동시에 그리스도 기사단의 십자가가 들어간 깃발을 만들어 배마다 달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인신매매범들은 국왕 및 하느님과 한패가 되었다.일부 유럽인들이 노예들의 고통과 식민지로부터의 알랄한 수탈에 대해 괴로워 하였으나 이러한 양심들은 식민의 목적이 금과 은을 많이 얻거나사람들을 정착시키고 공장을 세우거나부를 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신앙을 찬미하고 영혼을 구제하는 것임이라는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이는 분명히 수백 년 전 남부 러시아와 중앙 아시아 스텝 지대의 급성장하고 있던 교역로와 정착지들을 따라 여행한 기독교 선교사들의 주장과 판박이었다이러한 습격은 언제나 종교적 동기에서 한 것처럼 꾸며졌다.(실크로드, 361, 363) “많은 사람들에게아메리카 대륙에서 나오는 무진장해 보이는 부가 하느님의 축복을 확인한 것이며원하시면 누구에게든지,어떤 방식으로든지 왕국을 주거나 빼앗으시는 하늘에 계신 주님이 정하신 것이라는 점은 그들에게 너무도 분명했다.” (실크로드, 364) 

 

이렇게16 세기 이후의 유럽은 더이상 변두리가 아닌 세계의 중심으로 급부상하며 찬란한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지식인들과 과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사상이 장려되고 예술가작가건축가들에 의해 사회 전반과 다양한 문화에 걸쳐 활기가 넘쳐흘렀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거대한 대성당과 화려한 미술그리고 그들이 향유했던 높은 생활 수준은 대양 건너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의 고혈과 비명그리고 깊고 모진 그들의 한을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이렇듯3세기 동안 이루어진 위와 같은 내용의 서양 노예 제도는 많은 기록들로 인하여 우리에게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그러나 유럽에 훨씬 앞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 무역을 장장 14세기 동안에 걸쳐 지속해 왔으며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사실상 변형된 모습으로 일부 지속되고 있는 무슬림의 노예 제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후무한 지경이다앞서 피터 프랭코판도 이미 언급했듯이 무함마드의 이슬람 탄생 이후노예 시장의 가장 큰 구매자는 단연코 알안달루스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뻗은 아랍어권의 무슬림들이었다또한 John Alembillah Azumah 또한 그의 저서인 아프리카에서 아랍-이슬람의 유산(The Legacy of Arab-Islam in Africa)’을 통하여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무슬림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특이한 외모와 이야깃거리로서 가치가 있는 수집품이었다좋은 노예를 고르는 법을 알려주는 후대의 안내서들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부유한 무슬림도 매한가지였다. 11세기의 한 작가는 이렇게 썼다. ‘모든 흑인 노예 중에서 누비아 여자가 가장 상냥하고 부드럽고 정중하다매끈한 피부를 가진 그들의 몸은 날씬하고 안정되고 균형이 잡혀 있다그들은 마치 시중을 들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듯이 주인을 공경한다베자족(오늘날의 수단에리트레아이집트 지역에 살던 사람들)여자들은 피부색이 금빛이고 얼굴이 아름답고 몸매가 갸날프고 피부가 매끄럽다그들은 어렸을 때 데려오면 즐거운 잠자리 상대가 될 수 있다.’” (실크로드, 206-207)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간 노예들은 노동 인력으로 쓰이기 위한 것으로서  남자2명에 여자1명이었던 것에 비해 아랍 지역으로 간 흑인 노예들은 남자1명에 여자2명으로 성적인 쾌락에 초점을 둔 것이 대조를 이룬다또한,유럽으로 잡혀간 노예들은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것이 허용되어 노예 해방이 된 오늘날에도 현지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아랍에서는 이와 매우 판이하다당시 이슬람에서 흑인들은 통제할 수 없는 성욕을 지녔다는 이유,그리고 무슬림은 노예가 될 수 없다는 꾸란에 근거하여그들의 개종을 의도적으로 막고 노예 부족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중동으로 간 남자 노예들은 대부분 거세되었으며 여자 노예에게서 난 아기들은 대부분 출생되자마자 살해되었다. “이 시기 아랍 자료들이 시사하듯이장거리 교역에 종사한 유대인 상인들 역시 내시는 물론 어린 소녀와 소년들의 매매에 깊숙이 관여하였다유럽에서 노예와 소년소녀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유대인 상인들이 맡았던 역할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그들은 젊은 남자들이 도착하면 거세 시술을 받게했다.” (실크로드, 209)

 

1800년 대에 들어와 유럽 여러 나라들과 미국이 점차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한 것과는 달리중동 지역에서는 노예제가 사실상 최근까지 합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유엔과 국제 인권 단체국제 사회의 등의 압력으로 인해 카타르는1952니제르는1960사우디아라비아와 예맨은1962아랍 에미리에이트는1964오만은1970,모리타니아는1981년이 되어서야 노예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하였다그러나 이들 국가들의 노예 폐지가 실제적인 처벌 조항이 없는 형식적인 것으로 알려져 얼마 전까지도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특히사우디아라비아는 모함마드가 했던 에 대하여 보다 철저하게 따르는 니파(Sunni)의 법학자들이 모함마드가 노예제도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예제도 폐지에 강력하게 반발함으로 늦어졌다

 

실제로 이슬람에서의 노예 제도 폐지가 쉽지 않은 것은 꾸란이 전쟁을 통해 모든 비무슬림들을 전리품으로 취하고 노예로 삼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서 기인한다이는 소위 아랍어로 지하드성스러운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비무슬림들을 강탈하고 살해하고 강간하고 정복하여 그들에게서 재산자유존엄을 박탈하는 것을 오히려 법으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사실상 니제르가2003년이 되어서야 처벌 조항을 만들었고 모리타니아는2007년에 들어서야 처벌 조항을 만들었을 정도라고 하며 그 중에서도 모리타니아는 지금도 일부 아랍 상류층에서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2014년에는 수니파 무장 세력인 이슬람 국가 IS가 노예 제도 부활을 선언하고 이교도를 노예로 삼고 그 여성들을 첩으로 삼는 것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서도 인정된 바라고 주장하였다. IS는 이어 이라크에 거주하는 기독교계 소수민족 야지디스족을 포로로 잡고 성노예로 삼은 것을 정당화하였다.이러한 무슬림 사회에 만연해 있는 노예제도에 대한 인식은 비단 중동에서 뿐만이 아니다이슬람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를 추진하고 있는 종교 단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북미 지역에서도 무슬림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그 중에서도 미국의 무슬림 중25%는 아랍 출신이고, 33%는 남아시아 출신이며 그 나머지의 대부분이 미국 태생이다또한 약260만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무슬림들은 미국 무슬림 중 성장하고 있는 한 부분이다. 2017년에는 미국의 명문 사립대인 조지 타운 대학 이슬람학과의 조나단 브라운 교수는 국제 이슬람 사상 연구소에서 가진 강연에서 남자가 여자와 성관계를 하기 위해 여자의 동의가 필요없고노예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전 지구상에 노예가 합법화 되어 있는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법으로 여러 가지 장치를 두고 규제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세계에는 노예에 버금가는 생활에 억눌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특별히 다른 곳을 찾아 볼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만도 납치 후 인신매매로 여러번 되팔려 사창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매춘 여성들과 사채나 불법 대부업체에 의한 부채 노예들그리고 얼마전 신안군의 소금 노예까지 그 종류나 규모 등이 꽤나 다양각색이다.

안타깝게도 노예제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너무도 깊게 고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그에 비해 민주주의의 역사는 너무나 짧고 아직도 정착하는 과정 중에 있으며 여성의 지위 또한 남성과 비교할 때 여전히 같은 가치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자 또한 가진 자 만큼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기가 어찌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악함을 증오하고 욕심에 치우치지 않는 인간상을 구현한다는 것이 인간에겐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까모든 현실을 알고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참으로 무겁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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