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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로 가는 길

스페인 통신 | [우란의 스페인 이야기] 변화의 달인의 씁쓸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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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7-03-24 20:44 조회1,515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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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동안 4번 변한 나의 인생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처음으로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나이가 12살이었던 것 같다.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강과 산뿐 아니라 나의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와있을 거라는 말이라고 이해했다. 어렸을 땐 그 말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이른 지금, 이 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온통 변화 덩어리이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와  16살까지 살다가, 프랑스에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스페인에서 결혼하고 지금까지  있으니, 무려 4개국에서 살았다. 내가 외교관 자녀도 아니고, 돈 많은 재벌의 자식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3형제 중 유일하게 장기간 외국생활을 하는 걸 보면 아마도내 사주의 역마살이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이런 변화에 대한 나의 무의식적인 갈망은 4번이나 바꿨던  이름에도 나타난다. 내 본명은 김우란(金宇欄) 이다. 시인 구상 선생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나는  부모님이 하와이에서 유학하실 때 태어났다 우리 이웃집에 우연히도 구상 선생님이 거주하고 계셨고 덕분에 그분에게 이름을 얻었다.


우란.
이 독특한 이름은 어린 나에겐 부끄럽고 짜증 나는 이름이었다.  새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담임 선생님이 처음으로 출석을 부를때, 내 이름은 아이들의 웃음거리였다.  오랑우탄, 우렁이, 우랄산맥, 레슬러 김우라 등등 아이들의 킥킥거리는 웃음과  “누구야? “ 하며 한꺼번에 몰아 붙는 시선으로 홍당무가 된 얼굴을 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프랑스에 가자마자 그곳 사람들에게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붙인다는 핑계로 얼른 이름을 아멜리(Amélie)로 바꾸어 버렸다. 나의  카톨릭  세례명이다.  그 이름으로 27살에 남편이 사는 스페인에 왔다. 당시 유행하던 아멜리(Amélie)라는 영화때문에  내 소개할 때마다 자꾸 그 얘기 듣는 게 거북해서 아멜리(Amélie)의 스페인명인 아멜리아 (Amelia)로 바꾸어 버렸다.  그러다 2009년 몸이 아팠다. 그때부터 내 몸은 내가 관리하자는 생각으로10년이 넘게 하던 마케팅 직업을 때려 치우고 한의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버림받은 옛날 이름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김우란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 45년 동안 나의 이름과 거주지는 4번이나 바뀌었다.

 

 


글로벌화로 사라져버린 바르셀로나의 옛모습


요즘 바르셀로나를 보면서 이 말을 새삼 실감한다.

우리부부는  2013년 빌라사르데 마르에 오기  전  15년동안  고딕지구 (Barrio Gótico)에 서 살았다.    

고딕지구는 5세기부터 시작된 옛 바르셀로나 중세시대의  상업.역사.문화의 중심지이다.  고딕이란 이름은 13세기때 프랑스에서  전수하여  지은  고딕건축물들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19세기까지 고딕 구조를 대부분 보존하였고,  비록 20세기에 관광산업 확장을 의도로 재건된 가짜  고딕 건축물이 부분적으로 있다는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거리를 걸어 다니면 마치 중세기 시대의 한 거리에 있는 것처럼 그 당시 분위기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있다.  


문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관광수요를 뒷받침 하기위해  도입된 글로벌화에 있다.  160만 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서울의 6분의 1 정도 크기)에  매년 호텔에 등록된 관광객만  8백만 명이 넘다 하니,  가히 관광으로 먹고사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관광객 수요를 감당하기위해 이들의 주요 방문  관심지역인 고딕구역에 엄청난 수의 호텔과 레스토랑및  글로벌 가게들이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고딕 구역에 살던 주민들과 작은 상점들은 관광객들에게 차츰 자리를 물려줄 수 밖게 없게 된것이다.  


10년전 우리부부가 살던 때만해도,  '라 보케리아 (La Boqueria) '에서  장을보고, 150년 된 동네  천 가게 '엘 인디오(El Indio) ' 에서 내복과 침구용품을 샀으며,  140년이된 빵 가게에서 생일 케잌을 샀다.  또 프낙(la fnac) 같은 큰 서점에서 찿을 수 없는 책은 동네 중고 책방에 가면 쉽게 찿을수 있었다. 중고 장난감가게에서 옛날 장난감을 사는 것도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지금  라 보케리아는 관광 상품이 되어 사진기를 맨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도 없다.

   100년 된 옷가게는 자라(Zara)등의 대기업들에 자리를 내주고, 150년 된 빵집은 하루사이 6배가 넘게 오른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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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개장 당시  '라 보케리아(la boque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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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라 보케리아(la boque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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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에 개장된 침구전문가게' 엘 인디오(El Ind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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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에 개장된 빵집' 파르가'(Far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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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 개업한 중고 장난품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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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에 문을  중고 책방' 산 죠르디 '(Sant Jordi)



그때만 해도 주변 레스토랑에 괜찮은 지역 음식을 하던 레스토랑도 상당했고, 아마추어 보헤미안 음악가들이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를 듣는 맛도 상당했었다.
지금은 대부분 레스토랑에서  외국 이민자들을 값싼 가격에 고용하여 스페인 전통음식인  빠에야(paella) 와 샹그릴라(sangría)를 교육도 안시키고 만들게 한다.  차마 입에도 대지 못하는 음식과 알콜농도만 높은 상그리아를 내놓고 있고 , 심지어 옛날부터  예술가들이  행위예술을 하던  '라 람블라스(La Ramblas)'거리에서도 관광객들을 겨냥한 저질 예술가만 부글거린다. 특히나 람블라스 거리는 전통적으로  바르셀로나 주민들의 가족 산책길로하며 사랑을 받았지만 현재는 술취한 관광객과  사진찍기에 바쁜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탐하는 조직화된 도둑들로 가득차 모두들 발길을 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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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산책길로 사랑받던 '라 람블라스(La Ramblas)'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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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과 도둑들로 발디딜 틈없는 현재 '라 람블라스(La Ramblas)'거리

 

 이뿐만이 아니다. 주말에 가족끼리 공짜로 들어가던 교회나 미술관들이  어느날부터 모두 입장료를 무지막지하게 받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도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변화의 달인이었던, 이름과 거주국까지  네 번이나 바꾸었던 김우란도 이제 옛날 사람 대열에 든 것일까?    

변화된 바르셀로나가 참으로 아쉽다.



 

   

댓글목록

반야님의 댓글

반야 작성일

역마 작용이 활발하신가 봐요. 부럽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60년 넘게 서울에 삽니다. 서울이 급팽창하던 시기여서 그런지 서울의 10년은 강산이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아요. 전차가 댕댕거리던 종로, 세검정의 자두 밭, 한강 철교, 기차의 기적소리 등등은 호랑이 담배 피던 옛날이야기 같아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망명자라고 생각하지만 낯선 거리의 경험이 많겠네요. 스페인 소식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밝은 햇살과  파란 지중해를 마음대로 상상해봅니다.

김우란님의 댓글

김우란 댓글의 댓글 작성일

서울이야말로 시간의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살았던듯합니다. 너무나 빠른 변화속에서 엉겁결에 잃어버린 것도 많았으리라는 생각도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망명자라는것 절대동감입니다.스페인 얘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가슴 뿌듯합니다...

파랑소님의 댓글

파랑소 댓글의 댓글 작성일

망명자! 저희 수요대중지성반에서 요즘 읽고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생각나네요...
이타카 프로젝트 게시판은 여기저기 좀 더 활발하게(?) 망명하시는 분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재미나요!
반야님은 '역마살'이 없으신가봐요^^ 반야님의 서울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파랑소님의 댓글

파랑소 작성일

우와, 선생님 하와이에서 태어나셨구나~ 정말 출생부터 글로벌 하시네욤!ㅎㅎㅎ
돌고돌아 다시 우란샘으로...^^ 선생님, 사진은 직접 찍으신거에요? 잡지 사진 같아요!

공작관곰돌이푸님의 댓글

공작관곰돌이푸 작성일

변화의 달인 우란샘~^^
곧 글쓰기의 달인 이 되실것 같네요
누군가는 자신의 주변 속에서 방관자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그곳의 일부로 살고 계신듯 합니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그 공간에서 함께 살아 가시네요~
오늘 스페인 통신이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있던 저를
더욱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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