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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로 가는 길

스페인 통신 | [우란의 스페인 이야기] 친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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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우란 작성일17-07-09 16:14 조회1,51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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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부부는 얼마전 산탄데르(Santander)에 살고 있는 친구 니꼬의 부인 아나(Ana)에게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니꼬(Nico)의 50세 생일을 기념하여, 남편 몰래 생일 파티를 준비했으니 꼭 와달라는 간곡한 당부를 담은 초대였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건 15년 전 바로 그들이 거주하는 도시를 방문했을 때. 당시 그들은 결혼한지 2년만에 내어난 어여쁜 딸 베아(Bea)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작고 인형같던 아기 베아가 어느덧 15세 가 되었으니… 그렇다. 15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니꼬는 우리 부부의 20년지기 친구인데,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처음 정착헸던 2000년에 바르셀로나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그를  지인에게 소개 받았다. 역동적이고도 모험적인 그의 에너지는 단번에 우리를 사로잡았고 우정을 맺었다.

 

190cm를 훌쩍 넘는 키에 어렸을때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을 소유한 그였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같고 낙천적인 성격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올만큼 역동 그 자체였다. “니꼬가 움직이면 마치 달리는 고속기차를 보는 것 같아.” 

 

그를 보며 내가 항상 했던 말이다.  당시 나는 스페인어를 처음 배우고 있었기에 언어 소통이 자유롭지 않아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주는 이미지를 많이 느끼곤 했다. 그만큼 그의 육체와 정신은 마치 로마시대 스파르타쿠스(Spartacus)처럼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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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스파르타쿠스 니꼬(사진 왼쪽)와 동생 까를로스(사진 오른쪽)의 모습
 

 

스파르타쿠스 같은 그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는 스무 살에 발병한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었다. 그때 그의 말로는  ‘다발성 경화증’는 신경성 자가면역 불치병이고 , ‘나이가 들면‘ 휠체어에 않아야 하고 '더 나이 들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에 의존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20대였던 우리는 ‘나이가 들면‘ 이란, 멀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전제로 자신의 병을 아무렇지도 않게 줄줄이 털어 놓는 그를 보고 그냥 하염없이 웃었다. 그의 병이 우스웠던 게 아니라 역동적인 니꼬가 나이가 들면 휠체어에 않아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는 소리가 술김에 하는 농담 같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의 순간적으로 굳어진 표정을 보고 언뜻 그 병의 심각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가 들면‘이란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올줄 아무도 몰랐다. 생일 초대를 하며 전화로 아내 아나가 언급한 바로는 니꼬는 결혼 후 하루가 다르게 쇠퇴해가는 다리의 힘을 기르기 위해 매일 5km를 달렸다고 한다 .

 

폴란드에 가서 다발성신경증 최고 전문의한테 뇌신경 수술도 몇 차례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뇌신경의 쇠퇴로 인한 근육 무력증은 운동으로 강화되지 않는다. 5년 전부터 근육무력증은 급격하게 심해졌고 결국 지난달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고 한다. 니꼬가 사는 산탄데르행 비행기 안에서 15년 만의 재회에 대한 감격과 예전의 그를 볼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우울해졌다.

 

깜짝파티가 열릴 산딴데르 바닷가 앞 호텔에서 베아와 함께 감격스러운 재회를 했다. 일찍 도착한 우리 부부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아나를 도우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파티 참가자들은 모두 50명 정도. 대부분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친지와 지인들이고 우리처럼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도 몇 명 있는데 대부분이 우리처럼 니꼬를 본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혹시 니꼬가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아나는 사실 니꼬의 생일은 지난주였고, 이미 생일파티를 가족끼리 조촐하게 치렀으니 전혀 상상도 못 하고 있을 거라 했다. 행사가 열리는 호텔의 주인이 니꼬 친척인데 니꼬에게는 가족동반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고 한다.

 

파티 시작 시간인 오후 8시가 가까워져 오자 초대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하며 50평 남짓한 홀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불울 끄고 모두 숨을 죽이며 그를 기다렸다.

 

드디어 휠체어를 끄는 딸 베아의 손을 잡고 홀에 들어선 니꼬가 등장했다. 그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믿기지 않은 듯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하나둘 지인들 얼굴을 알아차리고는 비로소 깜짝파티임을 알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참 뒤에 우리부부를 발견했을 때는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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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파티에서 니꼬의 모습, 첫번째 사진에는 딸 베아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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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에 만난 니꼬(사진 오른쪽)와 남편 빠찌(사진 중간) 그리고 동생 까를로스(사진 왼쪽)가 재회의 감동으로 기뻐하고 있다.

 

 

그는 익숙하게 휠체어를 끌며 감동적인 연설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 오늘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직 나만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왔다는 게 정말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나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한 달 전부터 휠체어를 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병과 나와의 관계는 어느덧 30년이 넘어 갑니다. 물론 이렇게 급격히 나빠져서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 건 5년 남짓 하지만 30년 지기 이 친구와는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지요.  

이 친구가 나에게 준 교훈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절대로 ‘좋은 날’을 쓸데없이 보내지 않습니다. 매순간 삶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즐기려 노력합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햇빛도 쐬고 우체국에 가서 편지도 붙이고 시장에서 장도 보고 가족을 위해 요리도 해 봅니다. 왜냐하면 다음날 일어 났을때 내 몸이 어떤 상태일지 모르거든요.  '나쁜 날'에는 온종일 침대에서 못 일어나고 누워 있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둘째,  ‘좋은 날’에는 아무리 좋아도 한계를 넘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좋은 날에는 나쁜 날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 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그다음 날은 반드시 침대에서 꼼짝 못 하고 누워 톡톡한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어떨 땐 이삼일 내내 침대에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셋째,  ‘좋은 날’이든‘나쁜 날’이든 내가 절대로 다시 할 수 없는 일들을 인정하고 대신 새롭게 할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운동선수가 될 만큼 강한 육체와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 불릴 만큼 신통한 기억력을 가졌었지요. 어렸을 때부터 나는 끊임없이 내 정신적. 육체적 한계에 도전하며 매번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는 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모습은 다릅니다. 오늘 내가 아침에 머리를 감았는지 감지 않았는지, 강아지한테 밥을 줬는지 안 줬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목표가 머리에 스쳐 지날 때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정신적인 피로에 눈이 침침해지고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장으로 느껴집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도 조금만 움직이면 폭포처럼 흐르는 땀과 올라간 체온을 주체하지 못해 도저히 시작할 엄두가 안 납니다. 이런 나 자신의 모습이 정말 바보 같아 흐르는 눈물을 감추는 게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입이다.

 

하지만 친구들이여, 나와 나의 병은 미운정 고운정 다들어버린 30년 지기 친구입니다. 저는 내 친구가 인생의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옛날에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했죠.  

'인생에서 유일한 한계는 내가 나에게 부여하는 한계'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의 한계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나의 새로운 현실 안에서 새로운 목표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나의 한계를 무덤덤하게 관찰하고 내 주변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10년 뒤의 나의 모습은 어떨지 모릅니다. 하지만 매번 변하는 현실에 맞추어 나의 몸과 마음의 한계 안에서 작지만 진실한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합니다. “

 

그의 진솔하고 담담한 연설이 끝나자 행사장은 울음과 박수로 한참을 들썩였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발성 신경증 환자로서 쇠퇴해가는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그 순간부터 자신의 새로운 현실 안에서 창조적인 삶을 찾으려 한 그 순간부터 그는 삶의 새로운 맛을 보게 된 게 아닐까?

 

그렇다. 삶에서 현실이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매 순간 변화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건 건강한 사람이건 부자건 가난하건, 인생은 우리에게 매 순간 변화의 스릴을 만끽시켜 준다. 들판에 무심코 태어난 잡초와도 같이, 땅을 치고 일어난 그 순간부터 꽃을 피우고 다시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변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

 

니꼬에게 다녀와서 새삼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나도 항상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묵묵히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댓글목록

은민쏭♪님의 댓글

은민쏭♪ 작성일

15년만의 만남, 깜짝 파티까지! 감회가 남달랐을 것같아요... 그리고 30년 동안 함께 한 병을 친구로 삼고, 그를 통해 배운 3가지는 구구절절~ 철학자의 말이 따로 없네요. 감동이에요ㅠ

김우란님의 댓글

김우란 댓글의 댓글 작성일

요즘은 사람 오랜만에 만나면 다 10년에서 15년만에 만나게 되네요. 병이란게 그런거 같아요. 사람을 철저하게 혼자있게하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울 기회도 준다는거. 물론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가진건 아니지만. 나와의 싸움이 최후의 싸움인거 같습니다. 나의 욕망, 나의 두려움...인생의 마지막 장면에 들어가면 마주쳐야 하는 필연적인 욕망 감정들. 그런면에서 니꼬는 인생선배. 소민샘 스페인어 조금씩 공부하세요?

은민쏭♪님의 댓글

은민쏭♪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러게요. 저 은민이에요^^
스페인어는 아직.. 쓸일이 있어야 배우게 되는데 말이죱ㅎㅎ

장금박님의 댓글

장금박 작성일

니코의 연설이 감동적이네요. 건강하면 하루를 막 살잖아요.
매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오버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삶을 사는 것.
30년 동안 병과 함께 살아온 노하우를 이렇게 날로 알게 되다니. 삶의 멘토가 따로 없네요.
니코가 글을 쓴다니 기대되네요. 그의 노하우가 많은 사람에게 지혜가 될 것 같아요.
요즘 서울은 너무 더워서 힘을 못 쓰고 있었는데 니코의 노하우를 적용해야 겠어요. 감사~^^

김우란님의 댓글

김우란 댓글의 댓글 작성일

네 장금샘. 파티내내 무덤덤한 니꼬의 표정을 보고 사실은 가슴이 아팠지요. 물론 병자체에서 오는 무표정일 수도 있지만, 정말 인생의 모든 상황을 무덤덤하게 받아 들일 수 밖게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을 보고 아기같이 웃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고독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느꼈지요. 이곳 스페인도 이상기온 현상으로 남쪽은 47도까지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테리와 트리스탄(친구2)이 미국에서 놀러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한국에도 일때문에 여러번 방문한 테리는 저로부터 감이당 얘기를 듣고 아주 흥미로워 했습니다. 장금샘 잘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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