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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통신 | [우란의 별자리 이야기] 별을 보며 떠나는 '나를 찾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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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우란 작성일18-01-11 18:36 조회1,080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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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부하고 있는 사주 명리학을 통해 올해가 무술(戊戌)년임을 알았다. 변화의 의지가 솟아나는 해. 이는 서양의 점성술에서 보는 올해의 흐름과 유사하다. 카르마의 행성인 토성이 30년 만에 염소자리로 돌아와 기존 시스템을 점검하게 되고, 확장의 행성인 목성이 전갈자리로 들어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동양의 명리나 서양의 점성술에서 바라보는 올해는 기존의 틀을 무너뜨리고 변화를 시작하는 해이다.  내가 사는 카탈루니아 지역  독립선언도 별들의 힘을 얻어 더 기세를 부리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지난해 말부터 부쩍 내 주변에 이혼한다는 사람도 많고 직장을 옮기고 이사하는 사람도 꽤 있다.

언젠가부터 매년 이맘때면 새삼 지난 10년 동안 변화를 거듭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눈코 뜰 새 없는 변화의 물결을 탔던 내 인생이 놀랍기도 하고 새해에는 또 어떤 변화가 올지 궁금하다.


어느날  갑자기  깨어나다

2009년 봄, 우연히 가슴의 혹을 발견하고 별 생각 없이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2주일 후 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꺼냈다. 정밀 세포 검사 결과 '트리플 네가티브 유방암(Triple-Negative Breast Cancer)'이라는 진단이 나왔다며 유감이라 했다. 주름진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갑자기 받은 충격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 덤덤한 마음으로 물었다.
²암이란 말이죠? 혹 검진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나요?  '트리플 네가티브 유방암'은 뭔가요?" 
노련한 할아버지 의사는 숨을 길게 내쉬고는 그와 나 사이에 있던 진료 책상을 잡고 말했다. 
"자 이 책상 보이죠? 만일 이 책상의 다리 하나가 부러지면 나머지 세 다리로 책상은 서 있을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다리가 부러져도 남은 두다리로 버티며 책상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세 번째 다리가 부러지면 어떻게 될까요? 책상은 바로 무너집니다. 그게 바로 '트리플 네가티브 유방암 '입니다. 전이율이 높고 유방암 중에서 가장 미친 암입니다.  세포검사 오류일 가능성은 절대 없습니다. 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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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감기도 잘 걸리지 않던 나에게 암이라는 선고는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거기다 하필이면 5년 이내 생존 가능성이 3-15% 미만이라는 미친 암이라니. 친절한 의사가 기가 막히게 묘사한  '트리플 네가티브 유방암'은 마치 내가 당시 처해 있던 상황을 그린 듯했다. 
2년 전 어머니 부고를 받고 한다리가 휘청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을 때는 두번째  다리가 휘청한 느낌이었다. 그후 1년 동안 슬픔과 분노를 안고 온전치 못한 두 다리로 어정쩡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다 암 선고를 받고 세 번째 다리마저 부러진 나는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한 다리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상황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내가 죽는다는 건 내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는 37년 동안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나를 잡아 세우고 바닥으로 끄집어 내렸다. 어렸을때부터 '난 뭐든지 할수 있다'는 막연한 신념으로 살았다. 운이 따랐던지 원하는 건 대부분 이루었다. 평생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암 선고를 받고 나니 그 신념은 순식간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는 불안한 감정으로 대체되었다.
 집,  일,  돈,  여행∙·∙ 내가 죽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일단 살고 보자. 살고 나서 생각하자. 회사를 휴직하고 약물과 방사선 치료, 이어서 수술을 받았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넌 정상이 아니야."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몸에서는 전에 없던 강한 기운이 솟아 올라왔다. 생존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암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왔다. 인생을 리셋한 느낌이었다.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듯 가뿐한 몸은 날아갈 듯했다. 그러나 마음은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어설프고 불안하기만 했다.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10년여 일했던 마케팅 업무가 너무도 생소하게 느껴졌고, 큰 프로젝트를 맡아 유럽 곳곳을 출장 다니던 생활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도저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난 뭘 하고 싶지?' 라는 질문을 나에게 했다. 마흔을 앞두고 나를 정말로 행복하게 하는 일을 꿈꾼다는 것은 영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점성술로   '나를 찾는 여행 '을 시작하다

 '나를 찾자' 아니 '나를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이책 저책을 읽었다.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던 일상은 밥 먹고 책 읽고 산책하는 새로운 생활로 바뀌었다.  이전의 나라면 이런 일상을 단번에 '비능률적'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나 자신을 친구 삼아 그렇게 일년을 보냈다. 그러면서 융의 심리 분석 책에 빠져 들었다. 닥치는대로 그의  책을 읽었다. 그러다 접한 한 구절.

     우리의 인생은 무의식이 의식으로 변할때가지 무의식에 의해 행해지고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의식이 깨어나는 그 순간부터  내가
    주체가 되는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되고 내 운명 또한 바꿀수 있는 것이다.
                                       - 칼 구스타프 융, 『동시성의 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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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갈구하던 질문의 답을 얻은 듯했다. 알고 보니 융은 심리를 분석하는데 중요한 도구로써 점성술을 연구했고, 심지어 진료할 때 환자의 출생차트를 함께 놓고 보았다고 한다. 그는 점성술과 심리학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²점성술에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연구한 심리학 지식이 모두 반영되어 있다. 훌륭한 와인에는 그 원료인 포도가 생산된 해의 기후와 땅의 에너지가 반영되듯이,  인간은 그가 태어난 시간과  장소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점성술이다. ²

그는 출생챠트에서 개개인의 성격과 정신세계를 볼 수 있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집단 무의식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집단 무의식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르마, 즉 '업보'이다. 서양의 심리분석계 대가인 융이 동양의 미신적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카르마를 연구했다는 사실이 나는 무척 놀라웠다. 게다가 조상의 카르마가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니∙∙∙ 그의 주장이 신선하게 와 닿았다.
당시 융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스승인 프로이트와 함께 무의식을 연구하고 있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만을 수용했던 프로이트에게 융이 전생이니 카르마니 하는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자 프로이트는 그와 관계를 끊어 버렸다고 한다. 존경하던 스승에게 버림받은 융은 당시 학계의 동료들에게서도 외면당했다. 그 충격으로 한동안 우울증에 허덕였다고 한다.
융과 점성학은 신선한 충격으로 내 삶에 등장했고, 답답했던 마음에 한가닥 희망을 던져 주었다. 이렇게 점성술을 통해 '나를 찿는 여행'은 시작되었다. 


무의식에 휘둘렸던 내 인생

오직 미래만 생각하며 살았던 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현재도 반드시 변화해야 함을 알았다. 나는 어렸을 때 운동을 잘 했다. 힘도 엄청나게 세서 동네 골목대장으로 군림했지만 내면은 극도로 예민했다. 앨범을 보면 우는 사진밖에 없다. 넘어져서 울고 누가 무슨 말 한마디 했다고 울고,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큰소리로 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러다 여덟 살에 엄마와 떨어져 친할머니댁에 살면서 감수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마음을 몸에서 분리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버렸던 것 같다. 불안하고 무료했던 그 시절, 나는 현재에 등을 돌리고 모든 힘을 미래에 집중시켰다.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프다, 힘들다는 말은 약자들이나 하는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모든 일이 견딜 만했다.

엄마는 5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했고 일 년 뒤 부모님은 이혼했다. 나는 전남대학 교수로 발령받은 엄마를 따라 광주로 내려가 엄마와 둘이 살았다. 2년 동안 엄마와 꿈같은 생활을 하고 우리 모녀는 프랑스 이민을 결정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엄마의 취직이 뜻대로 되지 않아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나는 프랑스에 홀로 남았다. 그때 나이 열여섯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앞으로 나가야 하는 내 삶에 연민이란 사치스러운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미래 따로 현재 따로, 마음 따로 몸 따로. 로봇 같이 나는 그렇게 모든 게 분리된 삶을 당연한 듯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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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 분리된 나의 육체는 앞으로 앞으로 향하여 나아갔다. 결혼하여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터전을 옮기고 바르셀로나 삼성 지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현지인에게 눌리지 않기 위해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주말에는 혹사된 몸을 보살피기는커녕 여행이니 뭐니 놀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원래 건강한 몸이어서 쉴새 없이 혹사해도 끄떡 없어 보였다.
그렇게  10년을 달렸다. 그러다  맞닥뜨린 부모님의 죽음으로  그동안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걷잡을수 없이 나왔다. 그 후 암과의 투쟁은 처음으로 내 몸에 집중하고 돌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비로소 몸과 마음이 재회하게 된 것이다.
몸을 치유하기 위해 접한 대체의학을 섭렵하면서 아픈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다. 공부가 깊어지자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치료사가 되겠다는 의지가 솟아 나왔다. 그리하여 운명처럼 동양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직진하는 삶에서, 천천히 사유하는 지금의 나로 이끌어준 점성술과 동양의학에는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지혜가 담겨 있다.  
내 출생차트를 보면 내면의 갈등이 드러나 있다. 몸을 상징하는 행성인 '해'와 마음을 상징하는 행성인 '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해는 물기운을 가진 게자리에 속해 있고 달은 불기운을 가진 사수자리에 속해 있다. 서로 협조하며 살아야 하는 몸과 마음이 서로 불을 붙이고 물을 부어 대며 내 몸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는 격이다. 몸따로 마음 따로! 그러니 한시도 몸과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고 병이 든 건 당연한 흐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위태로웠던 나의 삶에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도 출생차트에 드러나 있다. 팽팽하게 대립하여 내면의 긴장을 일으켰던 해와 달이 죽음의 행성인 명왕성과 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명왕성의 에너지가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일어나 충을 이루고 있는 몸과 마음을 뒤집어엎어 버렸고, 그것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은 변화해야 한다'는 의식이 깨어난 것이다.


순환하며 사는 삶

이처럼 우리는 태어날 때 하늘에 그려진 별자리에 따라 고유한 성향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내면을 그린 지도가 출생차트이다.  출생차트는 원형 모양을 띠고 있다. 이는 바로  '순환한다'는 말이다.  우리 인생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따로 노는 직선적인 흐름이 아니다. 나의 현재는 미래와 과거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사건을 겪는 내 의식이 얼마나 성숙한지에 따라 같은 사건을 불행으로만 느낄 수도 있고  아니면 오히려 행복의  밑거름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오래 전에 감동 깊게 본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무덤덤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보는 주체인 자기의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알고 난 후 사는 인생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인생과는 다르다. 의식이 깨어나면 내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생차트란 이렇게 나를 볼 수 있는 내 삶의 지도이다. 힘들 때 꺼내 보며 인생의 난관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고, 겸손한 마음으로 중용을 지키게 하는 내 인생의 현명한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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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금박님의 댓글

장금박 작성일

별자리를 통한 출생챠트! 나를 탐구할 수 있는 지혜의 도구를 얻을 수 있다니 기쁘네요. 융이 별자리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조금은 눈치를 챘었는데 정말 그랬군요. 포도의 비유가 너무 적절하게 느껴지네요. 또\무의식의 행해짐이 운명이라는 말도 멋지네요. 융이 말하는 의식의 깨어남이란 무의식의 행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운명을 무의식과 연결해서 얘기하니 이해가 쏙쏙~ 앞으로 별자리로 나를 찾는 여행 기대할께요. ^^

김우란님의 댓글

김우란 댓글의 댓글 작성일

장금샘, 저도 포도주 마시면서 항상 생각합니다. 융은 점성가는 아니고 현대 점성술이 태어나는데 영감을준 현대 '인문학 점성술'의 스폰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과 치료를 하면서 출생챠트를 본다고 대선언을 했으니  이런 이유로 당시 과학자들한테 배척을 당하기도 했답니다.  융은 1900년도 유럽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지학의 주인공의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기존의 사상, 철학, 예술, 종교, 이념, 학문의 틀을 벗고 태어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현재 뉴에이지 물결에 한몫을 했지요. 저도 크리슈나무르티를 통해 대발견을 했지요...이처럼 현대의 사상이 서로 분야는 다르지만 기존과 다른 개념을 개척했다는게 조금은 의아하지만 정말 흥미롭습니다.

무심이님의 댓글

무심이 작성일

우란샘, 별자리 이야기 재미있어요.
무의식과 운명의 관계, 생각해 볼 점이 많네요.
작년에 별자리 공부에 입문은 했어요.
샘 이야기 들으니 복습이 되네요~~~^^

김우란님의 댓글

김우란 댓글의 댓글 작성일

무심쌤... 방가방가. 작년에 이곳 바닷가에서 아이처럼 노시던(?) 샘 생각이 나서 조금 웃었습니다. 현대 '인문학 점성술'에서 말하는 운명은 이미 정해진 미래가  아니라 별들의 움직임 즉 '하늘의 뜻'을 따라 내가 개척해 나가는 운명입니다. 사주명리에서 보는 인문학적 관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자리에서 무의식은 카르마와 연관되어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무의식에 의한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점성학에서는 물의 에너지와 연관이 되는데요.이런 점에서 동양의 역학과 시각이 비슷한게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무더운 지난여름 감이당과 갔던 레스토랑에 가면 항상 생각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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