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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쿠바 리포트 : 엘람(ELAM)에 가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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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3-07 07:00 조회6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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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람(ELAM)에 가는 여정

 

​김 해 완

  의대를 가야겠다. 이 말을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4개월 동안 문학 공부를 할 거라고 말하고 다니던 애가 갑자기 진로를 틀었으니, 그것도 그냥 공부도 아니고 어렵다고 소문난 의학이니, 사람들이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룬핀도 당황했다. 12월부터 1월까지 한 달 동안 쿠바에 있으면서 나에게서 의학의 ‘의’자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얄궂게도 <뉴욕과 지성> 원고를 마무리하고 룬핀을 뉴욕으로 돌려보내고 나서야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그때 생각했다. 아하, 2017년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뉴욕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는 시간이었구나. 그러나 2018 년이 도래했고, 무술년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앞으로 남은 내 쿠바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된 것이다!

꼬레아나 로까(Coreana Loca)


  내가 새해에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스페인어는 다음과 같다. “세구라(Segura, 확실한 거야)?” “뽀르 께(Por qué, 왜)?” “빠라 께(Para qué, 무엇을 위해서)?” 친구 한 명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왜 이렇게 즉흥적이야? 그 전에는 의대에 갈 생각을 전혀 안 했다가 이렇게 갑자기 마음을 바꾸다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의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처음부터 쿠바에 안 오지 않았을까? 그냥 처음부터 의대에 가지 않았을까? 게다가 나는 언제나 내가 하는 결정의 51%는 내 마음에 달렸고, 나머지 49%는 내 몸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 달렸다고 믿는다. 내가 다른 곳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 쿠바에 있기 때문에 의학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여기까지 의견을 펼치면 친구들은 더 이상 내 의지를 시험하려 들지 않았다. 단지 마지막 말을 덧붙이고 대화를 종결할 뿐이었다. “뚜 에레스 로까(Tú eres loca, 넌 미쳤어).” (어머니도 한국말로 이 말을 친히 남겨주셨다. 새해 초부터 욕(?)을 많이 먹어서 올해는 건강하게 보낼 것 같다.)
  사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미쳤다는 말에 진심으로 동의가 되었다. 남들이 사는 대로 살지 않는다는 염려의 소리를 듣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좀 미친 것 같았다. 뭐하러 고생을 죽도록 할 게 뻔한 길을 일부러 골라 간단 말인가? 지금까지 철학과 문학을 열심히 공부해놓고서 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 앞으로 어떤 시련이 기다릴 줄 알고 손바닥 뒤집듯이 결정을 바꾼단 말인가? 만약 이 길을 선택하면 앞으로는 어떤 변명도 못할 텐데? 의대에 대한 마음을 다잡기까지 나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의 열탕과 냉탕을 오갔다. 밤에는 쓸데없는 잡생각이 내 잠으로 기어들어왔고, 아침에 부은 눈을 억지로 들어올릴 때면 한숨부터 나왔다. ‘이렇게 잠 자는 걸 좋아하는데 의대는 무슨 의대. 그냥 생긴대로 살자.’ 그렇지만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정신이 좀 돌아오면 또 야속하게도 내 마음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래도 의학을 공부해보고 싶은데......’
  이런 정신분열증적인 상태가 몇 주 지속되다가, 나는 마침내 내 마음의 시험을 끝냈다. 나는 의대에 가고 싶은 게 맞다. 26살이라는 자의식,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은 욕망, 룬핀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보다 의학이 훨씬 더 끌렸다. 앞으로 몇 년은 더 ‘꼬레아나 로까(Coreana loca, 미친 한국인)’로 살아야 할 모양이다.

왜 의학인가


  아버지는 왜라고 묻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하고 싶으면 해야지. 나도 동의한다. 사실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면 끝도 없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쿠바 사람들,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했던 뉴욕 시절, 쿠바에 대한 동경을 키웠던 남산강학원 시절, 그리고 귀동냥으로 의학 상식을 배웠던 감이당 시절까지 거슬러올라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불킥’ 하면서 보냈던 최근의 산만한 밤들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겠다.
  생각의 발단은 이랬다. 첫째는 전공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원래 나는 남미 문학을 전공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대학 준비 과정으로 문학 수업을 듣고 있다. 문제는 좋아하던 책마저 싫어하게 될 정도로 수업이 지루하다는 것이다. 연구실에서 다 함께 책을 읽고 치열하게 해석하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수업에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이런 수업을 앞으로 4년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다. 그러자 전공을 바꾸고 싶다는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했다. 이왕 싫어하는 학교로 공부하러 돌아왔으니, 학교 밖에서는 배울 수 없는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고 싶었다. 그렇다면 뭘 공부할 수 있을까? 인류학? 언론학? 심리학? 그러나 문제는 쿠바의 인문학 아카데미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리학 전공에서 첫 번째로 배우는 과목이 ‘레닌&맑스주의’였으니...... 그 커리큘럼을 보자 심리학에 대한 일말의 관심마저 싹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내 눈길은 ‘의학’이라는 위험지대로 향했다......
  둘째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었다. 연구실에서 글쓰기를 배우고 글로 작게나마 밥벌이를 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자 글쓰기에 대한 질문도 커졌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만약 평생 글을 쓴다면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내가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동기는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였다. (아, 당시 나는 십대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달라. 어지간히 정신머리가 복잡한 십대였던 모양이다.) 그 다음에는 글쓰기를 공부를 더 깊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든 간에 글쓰기가 도움이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에서 햇수로 4년을 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것,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 사건을 엮는다는 것은 언어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가 필요하다. 남의 인생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고, 남에게 이야기 되고 싶어 한다. 말해지지 않은 순간들이 언어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될 때, 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작가는 남에게 ‘말하고 쓰는 자’가 아니라 남을 ‘듣고 쓰는 자’인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현실에 더 밀착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단순히 글의 재료가 아니라 사람을 들여다보는 렌즈로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느 현장으로 들어가야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까? 무작정 길거리에 나가서 말을 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때 우리 집 할머니가 밥 먹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넸다. “해완, 정말로 의학 공부할 생각 없어?” (그녀는 사실 집에 머무는 모든 학생들에게 의대에 가라고 추천하는 습관이 있다.) 처음 듣는 말도 아니었는데, 하필 그때 머리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그렇게 ‘의대’는 내게 위험한 손짓을 보냈다......
  셋째는 내가 쿠바에 있다는 물리적인 조건이다. 만약 내가 미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저널리즘이나 인류학으로 방향을 틀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의료강국으로 지난 60년 간 꿋꿋이 한 길을 걸어온 쿠바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감히 ‘의대’를 생각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내가 또 언제 의학을 공부해 보겠는가? 생각할수록 연결고리가 보였다. 결국 내가 인문학을 공부한 것은 사람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 흥미롭다면 그 마음이 거처하는 몸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생각이 모이고 또 모여서 결론이 났다. 나는 어느 새 라틴아메리카 의대(Escuela de Latin America de la Medicina), 줄여서 엘람(ELAM)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전 세계 학생들이 모여서 6년 동안 지지고 볶으며 공부하는 곳. 가난한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의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 음, 여기에 한국인 한 명 더 추가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을까?

 

 

한국인인 게 서럽다


   “뽀르께 메 달라 가나(Porque me da la gana, 왜냐하면 그냥 끌리니까).” 나는 이 표현을 이반 일리히에게서 배웠다. 왜 뉴욕에서 푸에르토리코인들을 도왔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는 이 한 문장으로 답했다. 그때는 이게 굉장히 고상한 뜻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엄청 세속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는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끌리니까’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말에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는다. 이 말을 해야만 했던 일리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25년 간 뉴욕과 푸에르토리코인과 아무런 관계없이 살다가, 뉴욕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갑자기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 순간과 장소가 일리히에게 욕망을 준 것이다.
  나도 저렇게 대꾸하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굳이 쿠바에서 의학을 공부하려는 이유를 묻지 말라고. 단지 강렬하게 원할 뿐이라고. 메 달라 가나라고. 그러나 이런 멋들어진 대답은 엘람 접수처에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남한인’으로 인식할 뿐이다. 한국인, 아니 ‘남한인’이라는 게 이토록 서러운 일인 줄 몰랐다. 쿠바와 남한은 아직 수교를 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쿠바 대사관이 없고, 쿠바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다. 그래서 나는 종이 몇 장 공증 받으러 멕시코에 가야할 판이다. 장 당 10만원 씩 수수료를 내면서 말이다! 이 기막힌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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