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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쿠바 리포트 : 멕시코시티, 나를 시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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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05-11 07:00 조회2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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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나를 시험하다

 

 

 

 

 

김 해 완

 

 

 

 

반짝 여행, 멕시코


  벌써 이 주 전이다. 멕시코에 갔다 온 지가 말이다. 쿠바에서는 4월마다 4월 15일이 끼어 있는 한 주를 통째로 쉬는데, 혁명 직후 쿠바 남쪽으로 몰래 침입해 들어온 미군을 물리친 플라야 히론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때를 틈 타, 나는 짧은 외도를 했다. 목적은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한국대사관과 쿠바대사관에서 서류를 공증 받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증 받아야 할 서류를 맨 마지막에 가까스로 챙길 정도로, 내 정신은 딴 데 팔려 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한인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미역, 참치, 스팸...... 아! 드디어 (일주일이지만) 쿠바를 떠난다!


  쿠바에 있다가 남미 여행을 하고 다시 쿠바로 돌아온 한국인 오빠 동생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쿠바에 몇 달 밖에 안 살았는데, 밖에 나가보니 그 사이에 ‘촌놈’이 되어 있었다고.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쥐고서 눈물을 쏟을 뻔했다고. 그리고 내게 경고했다. 멕시코시티에 가서 ‘촌년’처럼 돌아다니지 말라고.


  그 심정이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과장된 이야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바깥세상과 비교했을 때 쿠바에 물건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스타벅스 커피가 없어도, 맥도날드 햄버거가 없어도,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없어도 일상은 돌아간다. 게다가 우리가 쿠바에 살았으면 또 얼마나 오래 살았다고, 눈물을 쏟고 말고 한단 말인가? 쿠바의 일상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 아닌가?

 

월마트가 무너뜨린 마음의 평정


  나는 내가 다를 것이라고 믿었고,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옳았음을 섣불리 확신했다. 내 마음에는 그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세븐일레븐에서 샌드위치를 샀고, 심카드를 구매했으며, 구글맵을 켰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심지어 내가 묵었던 숙소 근처의 일식당에 갔을 때도 내 마음은 평온했다. 그래,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나는 당당히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아바나에서나 멕시코시티에서나 똑같은 김해완이라고!


  그러나 이 자신감은 하루 만에 박살났다. 청바지를 하나 살까 싶어서 H&M에 들렸을 때였다. H&M은 거대한 쇼핑몰에 있었고, 나는 쇼핑몰에 온 김에 필요한 물건을 다 사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세 시간을 보낸 후 나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내 마음의 평정을 무너뜨렸던 것은 구찌도, 바디샵도, 나이키도 아니었다. 바로 백화점에 딸려 있는 월마트의 풍경이었다. 마트에 들어서자 진열대마다 가득 찬 물건이 나를 압도했다. 그 풍경이 어찌나 낯설어 보였던지, 나 자신이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트에 와 본 사람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물건이 많아도 되는 거야? 게다가 이 도시에 이런 대형마트가 수십 개는 있을 텐데, 너무 한 거 아냐? 나는 물건들에 기가 죽은 채 조심스레 쇼핑 카드를 몰았다. 그리고 곧 충격과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내 마음에 불을 지핀 주인공은 바로 길쭉한 라이터, 세제, 그리고 바가지였다. 이 물건들을 보고 나서야 나는 진실로 깨달았던 것이다. ‘이곳’ 한 장소에서 내가 필요한 모든 물건을 찾을 수 있구나! 이 얼마나 마법 같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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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한 장소에서 내가 필요한 모든 물건을 찾을 수 있구나! 이 얼마나 마법 같은 일인가!


  물건이 넘쳐나는 한국에서는 라이터, 세제, 바가지가 하찮은 물건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물건에 흥분하는 내가 참으로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쿠바에서 이 각각의 물건들과 기구한 연을 맺었다. 일단 라이터. 쿠바의 모든 집이 그렇듯이 우리 집에는 ‘온수’가 없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려면 가스를 켜서 물탱크 전체를 데워야 한다. 문제는 이 가스통이 스스로 점화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스 벨브를 열고, 내가 성냥으로 직접 불을 붙여야 한다. 쿠바에서는 가스레인지도 이렇게 사용하기 때문에 나는 성냥을 다루는 데 꽤 익숙해졌다. 그러나 물탱크용 가스는 가스레인지보다 훨씬 더 화력이 셌고, 어느 날 불이 점화되자마자 가스통 밖으로 새어나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게 이 불은 내 오른손을 그대로 먹어버렸다. 나는 급하게 집 근처 병원으로 뛰어가야 했고, 병원에서는 소독약 처리를 한 후에 2도 화상일 뿐이니 약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처방전을 받았다 하더라도 약국에 약이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내가 멕시코에 갔을 때까지도 내 오른손은 파충류의 피부처럼 딱딱하고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화상을 입은 후, 나는 곧바로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왜 나에게 라이터를 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이사했을 때 그는 분명히 라이터를 구해다 주겠다고 말했었는데, 그 뒤로 삼 주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나 집주인은 웃으면서 (나는 지금 아파 죽겠는데......!) 대꾸했다. 아바나를 다 뒤져보라고. 지금은 어디를 가도 라이터를 발견할 수가 없다고. 혹시라도 네가 보게 되거든 자기 몫까지 두 개 사 놓으라고..... 나는 더 이상 어떤 말을 하든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멕시코시티 월마트에 갔을 때 라이터 두 개를 샀고, 아바나에 와서 집주인에게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집주인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이후로 내 인생 역시 너무나 편해졌다. 더 이상 성냥을 들고 손을 벌벌 떨며 가슴을 졸이지 않는다. 당당하게 라이터를 사용하고, 원이 풀릴 때까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세제와 바가지는 라이터처럼 드라마틱한 사연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단지 쿠바에서 사용하는 세제가 화학무기처럼 독하다는 것이 문제다. (친환경 세제, 이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딱 봐도 몸에 해로워 보이고, 실제로도 옷을 이 세제로 빤 후에 입으면 몸이 가렵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월마트에서 ‘아기용 순한 세제’를 집어 들었다. 또, 바가지는 내가 아바나에 왔을 때부터 사고 싶어 했던 물건이었다. 작은 목욕용 바가지는 구했는데, 아직도 넓적한 빨래용 바가지를 못 구해서 손빨래할 때 애를 먹고 있다. 물론 아바나의 마켓을 ‘샅샅히’ 뒤진다면 이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넓기만 넓고, 교통 체계는 부실한 이 아바나를 언제 다 돌아본단 말인가. 학교 갔다 오면 마트는 이미 문 닫을 시간인데 말이다. 나는 아직 아바나 생활인들만큼 부지런해지지 못했나 보다.


  여하튼, 이렇게 월마트 구석구석을 돌면서 모든 물건 구경을 마친 후, 나는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졌다. 택시가 마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택시가, 택시가......손님을 기다리다니.......그것도 미터기 달린 택시여서 가격을 흥정하지 않아도 되다니...... 기쁘면서도 서글펐다. 빈 택시가 외국인 손님만 골라 태우고, 아시아인이라고 가격을 몇 배는 더 받으려는 택시 기사와 싸우며 설움을 느꼈던 지난날이 갑자기 와르르르 떠올랐다.


  집에 와서 나는 조용히 한탄했다. 아, 멕시코에 괜히 왔다. 이제는 쿠바에 가도 똑같은 마음일 수 없겠구나. 인도에서 7년을 살았던 친구와 말레이시아 산골에서 자랐던 친구가 종종 나를 비판했던 것처럼, 나는 사실 ‘제1세계’ 출신이 맞았던 것이다!

 

 

비판과 수용, 그 사이에서


  사실 나는 지금까지 쿠바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주변 친구들이 실컷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무의식적으로 불평과 비판을 차단하기도 했다. 어차피 쿠바에서 오래 살 처지인데, 이러쿵저러쿵 불평해봤자 나만 힘들어진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멕시코에 와서 쿠바와 한 발짝 거리를 두자, 지금까지 살살 다스려왔던 스트레스가 갑자기 폭발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쿠바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쉽지 않겠구나. (뉴욕과 아바나에 살면서 알게 되었는데, 나는 ‘힘들다’는 감정을 꽤 늦게 깨닫는 편이다.) 


  쿠바 생활의 고충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의 속도를 바꾸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쿠바에서는 모든 일처리가 느리다. 열대지방 특성상 사람들이 여유롭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느린 게 나쁘고, 빠른 게 좋다는 게 아니다. 단지 26년 평생 동안 내가 온몸으로 익혀 온 삶의 속도를 바꿔야 한다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90년대 생인 내가 평생을 경험한 한국과 20대 초에 잠시 살아본 뉴욕에서는 모든 것이 속도전이었다. 이 속도가 우리네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참 비판도 많이 했지만, 그때 나는 정말로 모든 것이 느린 삶이 어떠할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쿠바에 와서야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느린 삶’을 외칠 때 정말로 바라는 것은 여유를 가지고 스케줄을 조정하는 삶, 자신이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는 삶이다. 이곳처럼 굴러가지 않는 시스템이 굴러가기를 무기한으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삶이 아닌 것이다. 


  둘째는 기대의 몰락과 그에 따른 실망이었다. 쿠바가 살기 불편한 나라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단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에콜로지 철학을 실천하는 길의 일부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 환상은 7개월 만에 박살났다. 혁명은 그림자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스템은 명분과 의도는 좋았지만, 쿠바 정부에는 실제로 이 시스템을 돌릴만한 자금력과 실천력이 없다. 무엇보다 현 시스템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미래를 꿈꾸게 할 만한 가능성이 없다. 일상과 시스템 사이의 괴리는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할 몫으로 돌아간다. 특히나 가족의 일상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의 몫으로 돌아간다. 10km 떨어진 직장에 가는데 교통편이 없어서 한 시간 반이 걸리고,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서 시장을 보려고 하니 가게에는 양파와 고구마밖에 남아 있지 않고, 집에 와서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한 달에 4만원이 안 된다. 이 돈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가 없어서 제2의 직장을 찾아야만 한다.


  쿠바가 일어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관광업 때문이다. 관광업으로는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할 돈을 모을 수 있지만, 관광업에 사람이 몰릴수록 다른 업종에는 노동력이 비게 되기 때문에 뒤틀린 경제구조를 바로 잡을 수 없다. (쿠바는 역사적으로 ‘설탕’에 치우쳐진 기형적인 경제구조에 고통 받아 왔다. 현재 ‘설탕’은 ‘관광’으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점점 많은 아버지들은 딸들이 대학에 가고 직장을 갖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해도 어차피 의미 있는 액수의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 동안 부인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그 탓에 남미 문화의 특성인 남성주의가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또,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의 삶에 진정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직장을 다니는 쿠바인들은 얼마나 피곤하게 사는지 모른다. 교통편을 이용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세제 한 통을 사러 몇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마이애미에서 친척이 보내주는 돈으로 먹고 살거나, 관광업을 하는 몇 명의 가족구성원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이런 불평을 하는 것도 내가 여전히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의 ‘쿠바’와 실제 쿠바의 현실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이 충돌이 계속 되면서 내 머릿속의 모든 기대와 희망이 깨지고 나면, 언젠가는 쿠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나는 내가 비로소 ‘쿠바나(cubana)’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끼리는 한국을 욕하면서, 외국인이 한국을 비판하면 괜히 짜증이 나는 이유는 꼭 민족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 살지도 않는 사람이, 이 땅의 역사와 그로 인한 고난을 겪지도 않는 사람이 괜히 이러쿵저러쿵 떠들 자격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오만한 외국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고 있는 중이다. 공정하게 바라보았을 때, 최소한 쿠바는 도미니칸 공화국이나 푸에르토리코, 니콰라과가 겪은 피 말리는 비극은 겪지 않았다. 또, 미래에 절망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쿠바인뿐만 아니라 카리브해 어느 나라를 가나 찾을 수 있다.


  어디까지를 수용하고, 어디까지를 비판해야 할까? 지금의 나는 적절한 ‘정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입을 다무는 편을 택한다. 쿠바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질문을 할 뿐, 내 의견을 내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계속 살아가다보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모든 것을 비판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현재 내가 느끼는 격렬한 감정도, 내 몸과 마음이 나날이 쿠바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 역시 모든 일에 웃으면서 쿠바인들의 입버릇처럼 “세상에 쉬운 건 없어(no es facil)”라고 말하는 내공을 갖추게 되리라.

 

 

의학은 운명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내가 분통만 터뜨렸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잔뜩 들떠서 갱단으로 가득 차서 참 위험하다는 이 도시를 잘만 쏘다녔다. (아, 도시 공기!) 특히나, 인류학 박물관에 갔다가 나는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는 충격을 받았다. 이 도시는 내가 몰랐던 아즈텍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멕시코란 중남미 지역에서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땅이었던 것이다. 이 오래된 문명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이 나라가 갑자기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때 어떤 생각이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의학을 선택하지 않고 계속 문학을 공부했더라면, 나는 십중팔구 다른 남미 국가로 튀었겠구나. 그 중에서도 쿠바의 옆 나라인 멕시코로 튀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러자 내가 쿠바에서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바에 대한 내 기대가 무너지고 나서도, 쿠바에 오래 머물러야만 하는 나 자신의 이유를 찾은 것이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쿠바를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좋고 싫고를 따지지 말고 최선을 다해 직진하기로. 멕시코시티로의 반짝 여행은 내 마음을 시험하는 작은 쉼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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