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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로 가는 길

쿠바 리포트 | 병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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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1-09 07:00 조회11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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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이야기

 

 

  김해완

 

병원도 의대도 모두 국유화일 때의 장점은 무엇일까? 병원을 교육의 장으로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쿠바 의대생들은 1학년 때부터 병원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거린다. 음, 그렇게 들락날락거리는 게 전부다. 아직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병원에 가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유익한 수업이 제공될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바쁘게 일하는 간호사와 의사가 우리를 자리에 앉혀놓고 뭔가를 가르칠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한쪽에서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시간을 죽이다 보면, 조금씩 이 장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인다.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도 감이 잡힌다. 언제 끼고 또 빠져야 민폐가 안 되는지, 환자들이 들고 온 처방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간호사가 우리를 신뢰하는지, 뭐 그런 사소한 디테일들 말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간호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한다. 그들의 눈에는 학생들의 사소한 변화가 모두 캐치되는 걸까?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나는 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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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 시간에 해골 가지고 노는 제 동급생들입니다... 

 

 

병원의 종류

 

병원이라고 퉁 쳐서 말하면 잘 이해가 안 될 테다. 여기에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쿠바의 병원들은 여러 유형으로 나뉘는데, 각각마다 치료의 단계가 다르다. 꼰술또리오(Consultorio), 번역하면 ‘의사의 사무실’을 뜻하는 이 장소는 동네 구역마다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가정의 한 명과 간호사 한 명이 일한다. 이들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쿠바 주민들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아프면 일단 꼰술또리오부터 간다. 꼰술또리오의 의사는 환자들을 상담하고 그 이후 방침을 결정한다. 간단한 치료법을 알려주거나, 약국에 가져갈 처방전을 써주거나, 증상이 심상치 않은 경우에는 자세한 지침과 함께 뽈리끌리니꼬로 보낸다.

 

꼰술또리오의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정기적인 가정 방문이다. 동네 주민이 직접 병원을 찾아오지 않으면 의사가 대신 발 벗고 나서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가정 방문의 주목적은 그 동안 가족 내에서 벌어진 변화들을 체크하는 것이다. 체크 항목에는 건강 상태 뿐만 아니라 집 청결 상태, 재정 상태, 가족 관계, 이웃 관계까지 포함된다. 흰 가운을 입고 나타난 ‘동네 해결사’의 질문을 거부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덕분에 같은 꼰술또리오에서 십 몇 년째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는 이웃의 숟가락 개수부터 아침드라마에 나올 법한 치정사까지 훤히 꿰고 있다. 각 꼰술또리오마다 2~300가구, 약 800명의 인구가 배치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기억력은 구글의 검색 능력에 비교해도 좋을 만큼 뛰어나다. (예전에는 100가구씩 배치되었지만, 수많은 쿠바 의사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쿠바를 떠난 후로는 그 숫자가 두 세 배가 늘었다고 한다. 덕분에 최근 가정의는 기피 직업 1위가 되어가고 있다. 과로사 할지도 모를 만큼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그 다음 병원은 뽈리끌리니꼬(Policlínico), 즉 종합클리닉이다. 뽈리끌리니꼬에는 두 명의 간호사와 두 명의 일반의가 24시간 상시 대기하고 있다. 동네 응급실인 셈이다. 또, 낮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의들이 출근을 해서 꼰술또리오에서 보낸 환자들을 치료한다. 꼰술또리오보다 상위의 병원이기 때문에,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거나 견학 갈 학생들을 미리 교육시키는 등등 꼰술또리오와 긴밀하게 협력한다. 한 개의 뽈리끌리니꼬에는 약 스무 개의 꼰술또리오가 배치된다.

 

그 다음 병원은 오스삐딸(Hospital), 우리가 ‘병원’이라고 하면 으레 가장 먼저 떠올리는 종합 병원이 있다. 꼰술또리오와 뽈리끌리니꼬가 지역(무닌시삐오 : munincipio) 단계의 병원이라면, 오스삐딸은 지방(쁘로빈시아 : provincia) 단계의 병원이다. 더 윗단계인 것이다. 오스삐딸보다 더 윗단계에 있는 병원은 병세가 아주 심각하거나 희귀병을 앓는 환자들만 취급하는 국립 병원이 있다.

 


병원에서의 특별한 수업—MGI와 과르디아

 

우리 의대생들은 3학년부터 오스삐딸에 매일 같이 출근하게 될 것이다. 처음 이 년 동안 머릿속에 잔뜩 쑤셔 넣은 의학 지식을 직접 실험해보러 말이다. 그러나 아직 1학년 밖에 되지 않은 우리는 꼰술또리오와 뽈리끌리니꼬에만 갈 수 있다.

꼰술또리오에서 실행되는 견학은 MGI(Medicina General Integral), 즉 ‘일반 종합 의학’이라고 불린다. 쿠바 의료와 주민들의 삶이 만나는 현장을 보는 게 주목적이다. 꼰술또리오의 1차 목표인 APS(Atención Primaria de Salud), 즉 ‘건강에 대한 일차적 주의’가 예방 의학의 원칙으로서 어떻게 실천되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MGI 교수가 칠판에다 할 법한 설명이고, 실제로 꼰술또리오에 가면 별 거 없다. 할머니 의사와 동네 주민들이 수다 한 판을 벌이는 ‘아침 마당’을 구경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프다는 하소연, 의사의 잔소리와 환자의 고집, 끝없이 묻는 가족의 안부...... 이 모든 것이 쿠바식 스페인어에 실려서 폭포처럼 쏟아진다. (놀랍게도 의사는 이 수다의 바다 속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쏙쏙 빼낸다.) 슬픈 것은 내가 이들이 하는 말의 절반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들의 아침드라마를 라이브로 방청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뽈리끌리니꼬에 가는 활동은 ‘과르디아(Guardia)’라고 불린다. 이 주에 한 번씩이고, 전문의들이 모두 퇴근한 오후 5시부터 밤 9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간호사들에게 소소한 기술들을 배운다. 처방전 읽는 법, 약물 구분하는 법, 환자를 달래는 법, 기타 등등. 이런 실습에 익숙해지면 간호사들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 이들이 바쁠 때 대신 환자를 접수할 수 있고, 간단한 조치도 취할 수 있다.

 

MGI가 공식 수업이라면 과르디아는 수업 이외에 하는 추가 활동이다. 그래서일까, 수업을 받는다는 느낌보다는 간호사들과 같이 근무를 선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 학생들은 과르디아에서 사고만 치는 애물단지다. 그렇지만 이들이 3학년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써먹을 만한 고급 인력으로 변한다. 늘 의료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쿠바 정부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의대생들을 빨리 키워서 빨리 써 먹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실리주의(?)에 기반한 제도가 쿠바 의대의 강점이 되고 말았다. 쿠바 출신 의대생들은 경험이 몹시 풍부해서 졸업하자마자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는 소문이 국제적으로 퍼진 것이다. 음...... 사실이긴 하다. 이렇게 6년 내내 과르디아를 하면 봉합 시술이나 응급 처치는 일도 아니게 생겼다. 밤늦게까지 술 마시다가 술병을 깨고 손을 베인 젊은이들이 종종 피칠갑을 하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쿠바 의대는 6년의 공부 과정과 2년의 레지던트 시절을 6년 커리큘럼 속에 합쳐버렸다. 빡세게 공부해서 빨리 의사가 되라는 것이다. 속전속결로 의사를 키워내는 실용주의! 모든 의료 인프라를 교육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실리주의! 진정한 의료 선진국, 비바 쿠바!

 


주사기의 로망

 

1학년들 사이에는 은근한 경쟁이 있다. 네가 과르디아에서 해본 것을 나도 과르디아에서 반드시 해 봐야 한다는 식이다. 첫 번째 달의 경쟁 항목은 간단했다. 혈압 재기, 온도 재기, 아에로졸(기관지 환자가 받는 약물 치료) 약물 만들기였다. 그러나 두 번째 달부터는 더 까다로운 항목이 추가되었다. 주사 놓기, 피 뽑기, 혈관 약물 투여다. 이는 모두 주사기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현재 남들보다 한 번이라도 더 주사기를 잡아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의학을 익히는 것은 보통의 지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지만, 의술을 익히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피 보기를 두려워하거나 뾰족한 바늘을 잡기 싫어한다면 아무래도 곤란하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나와 현우는 피에도 바늘에도 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현우는 과르디아에서 처음으로 친구의 피를 뽑아보더니 몹시 즐거워하면서 자기는 의사가 될 팔자인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주사기를 보면 두려움은커녕 가슴이 콩콩 뛴다. 어렸을 때부터 감이당에서 침을 놓곤 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체하면 내 손을 따주던 할머니를 보고 자라서 그런 걸까?

 

실제로 나는 바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뉴욕에서 살았을 때, 하루는 집에 혼자 있는데 급체를 했다. 침을 놓고 찜질을 해도 체기는 내려가지 않았다. 너무 괴로웠던 나머지 나는 결국 직접 내 열 손가락을 몽땅 땄다. 바늘을 가스레인지에 소독해서는 피가 나올 때까지 손톱 밑 피부를 쑤셔댔다. 이때의 무자비한 경험은 훗날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되었다. 작년에 쿠바에서 알게 된 한국 동생이 급체를 해서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바늘을 가스레인지에 소독해서 동생의 열 손가락을 모두 따는 것이었다. 동생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고, 피가 잘 안 나와서 같은 손가락을 두 세 번씩 찔러야 할 때도 있었으나, 나는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나 피가 나오지 않았던 마지막 엄지손가락이 최대 고비였다. 그런데 손가락에 한 방울 검은 피가 맺히자 그와 동시에 기적처럼 트름이 나왔다! 그리고 체기가 천천히 내려갔다. 오, 조상님의 놀라운 지혜여.

 

현재 나는 새로운 ‘바늘’을 실험해보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다. 그러나 과르디아에서 주사기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사를 놓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엉덩이를 네 조각으로 나눠서 위쪽 바깥쪽 부분에 아무데나 놓으면 된다. 만약 핏줄을 건드렸다면, 새로운 데 다시 놓으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1학년 학생이 주삿바늘을 잡으면 환자들이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내가 환자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고령의 노인이나 병원만 오면 울어대는 아이들, 혹은 주사기에 벌벌 떠는 겁 많은 사람들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실습이 필요한 1학년들을 배려할 줄 아는 차분한 중년들이 실험 대상으로 제격이다. 이렇게 적당한 환자들을 고르다보면, 한 번 과르디아를 할 때 학생이 주사기를 놓을 기회는 한두 번밖에 없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 1학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다. 간호사에게 알랑방귀를 뀌기도 하고, 환자가 들고 온 처방전을 낚아채서 잽싸게 달려가서 미리 주사기를 준비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환자에게 주사를 두 번 놓았다. 아직 한 번도 주사기를 잡아보지 못한 1학년들이 수두룩한 것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진도가 빠른 편이다. 이는 K-드라마와 K팝에 빠진 뽈리끌리니꼬의 한 30대 간호사가 내게 아낌없는 호의를 베풀기 때문이다. (지면을 빌려 BTS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나는 과르디아 내내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을 적는데, 이 모습이 학구적으로 보여서 간호사들 사이에서 가산점이 된 모양이다. (사실 수첩에 적힌 것은 붕대, 솜, 반창고 같은 단순한 스페인어 단어들 뿐이다.) 여하튼, K팝 팬 간호사가 주사기를 건네주었을 때 나는 내게 찾아온 기회를 절대로 거부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 첫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희생자는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깡마른 중년 아저씨였다. 그는 조용히 엉덩이를 까고, 누가 주사를 놓을지 모른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중년 아저씨의 엉덩이에 주사바늘을 꼽았다. 퍽. 그리고 생각보다 강력한 엉덩이 살의 압력을 밀어내며, 천천히,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약물을 주입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주삿바늘이 살 속에 오래 박혀 있을수록 고통도 오래가는데.

 

이 모든 과정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진행되었고, 주사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야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너무나 기뻤던 나머지 환자에게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밖에서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환자의 부인에게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중년 부부는 웃음을 터뜨리며 뽈리끌리니꼬를 떠났다. 이상한 억양으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의대생이, 환자에게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고마워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겠지.

 

현재 나의 목표는 피를 뽑아보는 것이다. 환자가 없을 때는 의대생들끼리 피 뽑기 실습을 할 수 있다는데, 나의 2000년생 동급생들은 어떻게 서로 피를 뽑냐고 무섭다고 손사래를 친다. 풋내기 녀석들. 매일 골수에서 생성되는 게 피인데, 젊을 때 피 몇 ml 잃어버리는 게 무슨 대수라고. 주사기를 더 만져볼 수만 있다면 내 피를 내주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고마운 환자 선생님

 

꼰술또리오와 뽈리끌리니꼬에서 만난 의사들은 나를 여러모로 놀라게 했다. 그들의 비권위적인 모습에 놀랐고, 학생을 가르치려는 열정에 놀랐고, 환자에 대한 마음씀씀이에 놀랐다. 의사 앞에서는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고 은연중에 한국 사회에서 학습해 온 나로서는, 나의 멍청한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하는 이들의 소탈한 모습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사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쿠바 환자들의 능동적인 태도였다. 쿠바인들은 기본적으로 의학 지식이 많다. 자기가 복용하는 약물의 이름은 물론이고, 병의 진행 상황이나 발생 원인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다. 의사와 새로운 처방전에 대해 토론할 정도다. 이럴 때 나는 쿠바가 이룩했다는 ‘의료의 사회화’를 진심으로 실감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자기들도 의료 교육에 동참하는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의식이 있다. 자신의 몸은 자기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의사들을 길러내는 사회의 것이기도 하다는 태도 말이다. 이런 태도의 반은 체념이고 반은 기쁨이다. 쿠바의 의료 시스템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실습용으로 내주어야 한다는 생각과, 내 병든 몸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데에서 오는 뿌듯함의 조합이다. 내가 보기에 소탈한 의사보다 이런 능동적인 환자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과르디아를 하는 1학년 학생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은 간호사도 의사도 아닌 환자다. 신경 조직에 문제가 생겨서 손을 들어 올릴 수 없는 할머니는 약물 투여를 받으면서 우리들에게 신경병에 대한 미니 강의를 해주었고, 딸의 천식이 재발해서 뽈리끌리니꼬를 찾은 엄마는 천식이 발생하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들이 의사다. 이들보다도 의학지식이 부족한 우리 1학년들은 환자-의사의 이야기에 귀를 활짝 열 수밖에 없다.

 

하루는 간호사가 한 1학년 학생에게 약물 주입 실습을 시켰다. 그 주사기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크고 굵었다. 바늘은 간호사가 꽂았고, 1학년 친구는 이제 천천히 약물을 주입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친구는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아니면 주사기가 손에 익지 않아서인지, 바늘을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 그 굵은 바늘로 정맥을 쑤시니 환자로서는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환자는 침착했다. 다른 손으로 학생의 손 위치를 바꿔주면서 이렇게 하면 주입하기가 더 쉬울 거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학생이 어느 정도 익숙하게 주입을 하자, 이 환자는 심지어 기념 촬영까지 하는 게 아닌가! 스마트폰으로 비디오를 찍으면서, 나래이션도 넣어가면서. “자, 1학년 학생이 내 손목에 약물을 투여 하고 있습니다.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잘 하고 있지요. 나중에는 더 잘할 겁니다......” 그날 과르디아에 온 모든 1학년 학생들이 둥그렇게 서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나중에는 간호사들도 왔다. 마침내 약물 투여가 끝났을 때,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다. 환자까지도 말이다. 엉겁결에 과르디아의 주인공이 된 학생은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부끄러워하는 학생, 의기양양한 환자, 유쾌하게 웃는 간호사. 나는 그날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공부에 지치고 무기력에 빠질 때마다 종종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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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1학년 학생이 내 손목에 약물을 투여 하고 있습니다.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잘 하고 있지요.

나중에는 더 잘할 겁니다......”

 

 

댓글목록

오켜니님의 댓글

오켜니 작성일

우리나라에서도 환자가 의대생의 실습대상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인데,,,새로운 인턴이 투입되는 3월(?)에는 종합병원에 입원하면 안된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도 종종 들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알면서 모른척하는 일들을 기꺼이 수용하여 어린 친구들의 성숙을 돕는 쿠바의 문화가 멋있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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