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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어설픈 이과생이 된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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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8-12-28 07:00 조회5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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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이과생이 된 소감

김 해 완

 

엑소 쿠바

오늘부터 방학이다. 쿠바 의대에는 겨울 방학이라는 것이 따로 없지만, 크리스마스를 낀 연말 연휴에는 2주 정도 수업이 없다. 그리고 1월이 되면? 기말 고사가 기다리고 있다. 기말 고사의 범위는 9월 첫째 주부터 시험 보기 전 마지막 주에 공부한 부분까지, 즉 중간 고사가 커버한 범위까지 ‘몽땅’ 포함이다. 이즈음 되면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다. 참으로 잔인한 처사다. 방학 때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하고 공부만 하란 말인가?

그렇지만 우리 학생들은 엄살이 많다. 실제로는 방학을 맞이하여 띵가띵가 놀 것이다. 그리고 방학 끝나기 전 삼 일 정도 책을 들춰본 후, ‘공부를 정말 많이 했는데도 잘 모르겠다’고 우는 소리를 하겠지. 그래서 나는 이번에 대놓고 변명 하지 않는 날라리 학생이 되기로 했다.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쿠바를 튀기로 계획한 것이다. 이 계획에는 연구실의 싱가폴 여행이 엮여 있다. 고샘을 비롯한 몇몇 멤버들이 싱가폴로 이사 간 형태쌤을 방문하기로 했고, 나도 거기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누가 들으면 쿠바가 싱가폴 옆 동네에 있는 줄 알겠다. 실제로는 가는 데만 48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상관없다. ‘소소한 일탈’이 절실하게 필요한 참이었으므로. 이 글도 비행기 안에서 쓰는 중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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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학생의 날을 맞이하여 행진한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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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학생의 날을 맞이하여 행진한 사진2

 

 

철학에서 의학으로

잠시 숨 쉴 구멍이 생긴 지금, 지난 4개월이 어땠는지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내가 정신줄을 반 쯤 놓고 쓴 ‘쿠바 리포트’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는데, 어째 징징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사실 공부 자체가 힘들었다기보다는, 내가 완전히 미지의 공부 세계로 진입한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항시 긴장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새로운 공부’가 한 주라도 밀리면 도미노처럼 다 무너질 거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깔려 죽을 만큼 많은 양이 아니었다. 난이도 역시 책을 꼼꼼히 읽으면 따라갈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극복해야 할 두 가지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물론 언어였다. 아직도 스페인어가 수월하게 나오지 않고 막힐 때가 많은데, 매일 읽어야 하는 책의 양이나 수업에서 해내야 하는 발표 시간이 부담스러웠다. 두 번째 문제는 과학에 대한 나의 사전 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도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었다. 과학 자체가 내게는 이미 또 다른 외국어였다. 이렇게 매일 몇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서 ‘이중 외국어’와 씨름하다 보면 결과는 늘 둘 중 하나였다. 다리에 쥐가 나거나, 머리에 쥐가 나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그렇게 얼렁뚱땅 의학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난 현재, 나는 내가 몰랐던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첫 번째는 겁먹었던 것처럼 의학 공부가 철학 공부와 엄~청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지의 용어로 가득한 형태학(morphology) 교과서를 처음 펼쳤을 때 내가 떠올렸던 것은 나의 십대, 막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서 책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졸던 9년 전 그때 그 시절이었다.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로다, 라는 절망감이 들었더랬다. 그 책들은 친절하게 한국으로 번역까지 되어 있었는데도 그랬다. 문제는 각 문장마다 묵직하게 눌러 앉아 있는 수많은 개념들이었다. 나는 그 개념들이 만들어진 배경은 물론이고 저자가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싸움을 걸려는 대상이나 꾸며내는 말장난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나의 철학 공부는 내용들을 순서대로 착착 이해하는 안전한 과정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언젠가 수영하는 법을 익힐 수 있기를 바랐던 시간이었다.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 백지 상태에서 과학을 공부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과학은 모든 개념에 명명백백한 정의를 제시한다는 것이지만, 그 정의 역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개념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이것들은 미리 알아야만 하는 기본 개념들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을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다. 단백질을 공부할 때도 ‘산’과 ‘염기’가 정확히 뭔지를 이해하는 데 우선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여기에 겁먹으면 안 된다. 암호처럼 보이는 문장을 해부하고, 무슨 개념이 나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 규정하고, 가능한 모든 사전과 책과 (필요하다면) 인터넷을 동원하여 그 개념을 추적한다. 그러면 그게 뭔지 ‘대충’ 감을 잡게 된다. 내가 지난 4개월 동안 확신하게 된 것은, 만약 이것이 중요한 개념이라면 다른 과목에서 또 다시 마주칠 것이고, 그때는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게다가 내 자신감을 더 북돋아주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철학책과는 달리 과학책은 문장을 꼬지 않는다. 내 형태학 교과서는 푸코의 <말과 사물>보다 훨씬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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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을 공부하는 자료1

두 번째로 내가 이해한 사실은 의학이 순수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학은 생물학도 생화학도 아니다. 이 학문은 오로지 ‘인간의 병든 몸을 치료한다’는 특수한 목적 아래 설립되었다. 그래서 넓은 영역을 다루긴 해도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인간의 몸과 치료에 관련된 부분만 다룬다. 처음 이 년 간 우리가 순수 이론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들을 남은 사 년 간 병원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목적이 분명하니, 수많은 정보 속에서 핵심 정보를 걸러내는 기준도 분명해진다. 시험을 치자마자 뇌를 리셋하고 모든 암기 내용을 까먹는 우리 학생들도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자질만 있으면 누구나 의학 공부(이론 파트)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의지력, 성실함, 그리고 정보를 시스템화할 줄 아는 공부 요령.

아직 나는 공부하는 요령이 부족하다. 꼼꼼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정작 중요한 핵심 정보를 놓치는가 하면, 철학을 공부할 때처럼 ‘행간을 읽는’ 습관이 튀어나와서 괜히 복잡하게 꼬아서 생각하기도 한다. 행간이라니, 의학 이론에 그런 게 어디 있나. 물론 당연히 있겠지만 (의학 역시 인간이 발명해낸 학문이고, 인간의 특수한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로울 리 없을 테니까), 아직 신체 부위의 이름들조차 다 알지 못하는 의대생 1학년이 그걸 알아챌 안목이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은 무조건 교수가 시키는 대로 외우는 수밖에 없다. 이 지루한 과정은 생각보다 괜찮다. 뼈, 피, DNA처럼 익숙한 이름들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을 때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기쁨이 있다. 뼈 한 조각, 피 한 방울, DNA 한 줄에 얼마나 정교한 구조가 담겨 있는지 알게 된다면 누구도 몸을 천대할 수 없을 것이다.

병든 인간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철학과, 환자의 병을 보며 ‘에러’를 분석하는 과학 사이의 간극이 아직은 드넓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계속 공부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물질과 의식 사이에 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므로.

 

몸, 소우주의 풍경

공부를 할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각기 다른 과목에서 따로 따로 외웠던 정보들이 아귀가 딱 맞물리는 순간이다. 아귀가 맞물리는 장소는 물론 몸이다. 그 순간 ‘몸’은 수많은 물질 구조들이 겹치고, 부딪히고, 생동하면서 폭발적인 드라마를 자아내는 무대가 된다. 이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뭐랄까, 이렇게 존재하는 몸을 어디에 빗대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움직이는 로봇도 아니요, 여러 구조들이 상하 관계로 짜인 조직체도 아니다. 몸의 조각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서로 호흡을 함께 하는 ‘소우주’라는 표현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최근에 내가 꽂혀 있는 ‘몸의 풍경’은 바로 근육이다. 이는 해부학 때문이다. 요새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근육 부위를 시험 보느라 똥줄이 타는 중이다. 근육을 공부할 때는 다섯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이름, 모양, 근육 양끝이 연결되어 있는 위치(뼈), 근육 섬유의 방향, 그리고 기능. 어떤 근육이든 그 기능은 결국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움직임의 원리는 수축과 이완이다. 근육 섬유가 일정한 방향으로 수축하면서 뼈를 잡아당기면 그 부위가 움직이고, 이완되면 뼈는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 이렇게만 보면 참 간단한데, 실제로 디테일을 외우려고 하면 머리가 터진다. 우리들은 해부학 수업 전날만 되면 바보들처럼 약수터 체조를 하면서 중얼중얼 암기를 한다. (“등세모근의 위쪽 근육 섬유가 날개뼈에 고정된 채 수축하면? 머리가 뒤로 젖혀지지...... 반대로 뒤통수에 고정된 채 수축하면? 날개뼈가 올라가지......”)

그런데 바로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근육은 어쩌다가 이렇게 환상적인 능력을 갖게 된 걸까? 내가 ‘목이 마르네’라고 의식적으로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내 팔은 선반 위에 물컵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어깨에 위치한 근육 섬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쫘악, 수축하면서 즉각 뼈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다. 이 움직임의 이해 불가한 고도의 우아함을 이해하려면 맨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시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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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을 공부하는 자료2

이 영역에서는 세포가 바로 주인공이다. 수축/이완은 전적으로 세포의 능력이다. 근육 섬유라고 부른 것은 사실 근육 세포다. 생긴 게 다른 세포들과는 워낙 다르고, 섬유질처럼 길쭉하게 뼏어 있기에 섬유라고 부를 뿐이다. 그리고 근육 세포 내에는 진짜 섬유가 심어져 있다. 이 섬유는 근육원섬유(miofilbrilla)라고 불리는데, 이 역시 그냥 막 만들어진 구조물이 아니다. 내부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근육잔섬유(miofilamento)가 번갈아가며 층을 쌓고, 외부에서는 세관 시스템(sistema tubular)이라고 불리는 가느다란 튜브들과 내질 망상조직(retículo endoplasmático)이라고 불리는 그물 같은 세포 기관이 이 섬유를 꽁꽁 감싸고 있다.

자, 그러면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르는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니 천천히 따라오시길 바란다.) 우선 신경 세포들(뉴런)이 시냅스를 통해 뇌에서부터 근육 세포까지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가 근육 세포의 세포막을 자극하면 전극이 바뀐다. 세포막 내부였던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되고, 세포막 외부였던 플러스는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다. 그 순간, 근육 조직 전체에 작은 전류가 흐른다. 도미노 효과처럼 이 근육 세포에 붙어 있는 이웃 세포들도 줄줄이 전극을 바꿔치기 한다. 또, 전류는 이렇게 옆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세관 시스템을 따라 세포 안쪽까지도 퍼진다. 그리고 세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는 망상조직을 자극하여 칼슘을 분비하게 만든다. 칼슘!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멸치에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유명한 이 물질을 동원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칼슘은 근육잔섬유 중에서 악틴(actin/actina) 단백질에 달라붙어서 단백질의 모양을 바꾼다. 그러면 마이오신(myosin/miosina) 단백질이 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빗자루 질을 하듯이 악틴 섬유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악틴 섬유가 마이오신 섬유 쪽으로 끌어 당겨지면 근육 전체가 수축하고, 밀려나면 이완된다.

여기까지만 봐도 입이 헉, 벌어진다.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정말로 감탄해야 할 것은 단백질의 슈퍼 파워다. 위에도 썼지만, 악틴도 마이오신도 모두 단백질의 종류다. 근육 섬유를 쪼개고 또 쪼개보면 그 본질은 결국 단백질인 것이다. 단백질에게는 레고 블록처럼 서로 엮이고 엮이면서 더 커다란 구조물을 쌓는 능력이 있는데, 세포의 뼈대 또한 단백질에게 빚지고 있다. 이 외에도 단백질의 임무는 수도 없이 많다. 효소도 단백질이고, 호르몬도 단백질이고, 항체도 단백질이고, 뉴런이 보내는 신호(neurotransmisor)도 단백질이다. 한마디로, 단백질이 없으면 근육이고 뭐고 생명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거다. 이 마법 같은 고분자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아미노기(NH3) 하나와 카르복실로기(COOH) 하나, 그리고 기타 원자들이 합쳐진 게 아미노산이다. 그리고 이 아미노산이 줄줄이 엮이고(1차원), 배배 꼬이고(2차원), 불규칙하게 접힌 게(3차원) 단백질이다. 이렇게 보면 별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엉킨 실뭉치처럼 생긴 이 고분자는 그 독특한 구조를 무기 삼아서 수많은, 정말로 수많은 일을 해낸다. 슈퍼맨, 아니 슈퍼 분자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디옥시리보핵산, 즉 DNA는 유전의 비밀을 간직한 분자다. DNA가 유전 정보가 담긴 금고라면 RNA는 금고를 여는 열쇠다. 그런데 RNA에 고스란히 옮겨진 유전 정보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게 아니라 4가지 종류의 니트로겐기가 어떻게 배열되었는지 그 순서를 보여준다. AUG, GGG, CUA....... 이 순서가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바가 무엇일까? 바로 아미노산의 종류다. 3개의 니트로겐기 세트는 1개의 특정한 아미노산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똑같은 순서대로 배열된 아미노산들은 반드시 똑같은 단백질로 완성된다. 한마디로, 유전 정보란 결국 다른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단백질을 합성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최초의 세포, 그 수정체가 지금의 거대한 ‘나’로 분화하기까지는 단백질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친구 덕분에 나는 닭장처럼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저린 다리를 쭉 펴기도 하고, 뭉친 목 근육을 풀기도 하며 기묘한 요가 자세를 시현하고 있다.

지금 이 글 역시 악틴, 마이오신, 칼슘, 섬유, 근육세포막, 뉴런, 손가락 근육과 손가락 뼈가 연주하는 하모니 속에서 쓰이고 있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48시간이라는 비행 시간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내가 쿠바 탈출에 기뻐하고 있는지. 악틴과 마이오신은 서로 빗자루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고, 근육세포막은 성실하게 전극을 바꿨다 돌려놨다 하고 있을 것이고, 뉴런은 열심히 전기 신호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동시에 행동하고 있는 바로 지금, 나는 이 모든 드라마를 배울 수 있는 나의 행운에 감사하는 움직임(글쓰기)을 조용히 실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지만, 왜 수많은 과학자들이 신을 믿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몸의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데에는 어떤 단어를 써도 모자라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나의 공부는 이 단어를 찾는 것과 함께 가지 않을까 싶다.

 

경이로운 의학, 애처로운 의사

이렇게 힘껏 공부하다 보면, 가끔씩 질문이 들 때가 있다. 의학 공부는 재미있다. 그러나 나는 과연 의사로 일하고 싶은 것일까? 막 졸업을 하고 앞으로의 거취를 고민하는 선배들을 보니 이런 질문이 더욱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물론 이것은 미래의 일이니 지금 속단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그렇지만 또 무작정 6년 후를 예약하며 미뤄놓을 수 있는 종류의 고민도 아니다.

의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이것이 옳은 길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왔지만, 이 지식으로 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결론을 내렸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간직해 왔던 여러 고민에 새 길을 뚫어줄 좋은 처방전이라고 생각했다. 의학을 공부하면 작가로서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사람들이 사는 현장에 개입할 수 있고, 개인으로서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무엇을 하게 되든 간에, ‘의학’이라는 귀한 지식을 손에 쥐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었다. 그러나 의대 진학을 염두에 둔 이후로 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 중에서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공부를 마치고 나면 저절로 자격증이 생기는데, 음, 의사로 일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의사들의 노동 조건을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의료 행위에는 의사 개인의 의지보다 병원 시스템의 관성이 더 강하게 작동하고, 의사의 노동 강도는 참 빡세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애정을 품을 여력을 고갈시킨다. 이 가운데에서 지치는 것은 물론 의사들이다. (어쩌면 의사가 제일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직업이 아닐까?) 경이로운 의학, 애처로운 의사. 이 간극에 서서, 나는 또 다시 이 ‘사이’에 머무르는 게 편해질 때가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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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학생의 날을 맞이하여 행진한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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