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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 | 투덜이 쿠바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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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VQ 작성일19-01-25 07:00 조회6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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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쿠바나가 되다 

 

 

 

 

김 해 완

  

 

오늘은 1월 21일이다. 2019, 라고 연도가 바뀐 지도 벌써 칠삼일이다. 갑자기 헉 소리가 난다. 정확히 한 달 전인 2018 년 12월 21일에 나는 비행기를 타고 쿠바를 떠났다. 싱가폴에 가서 고샘과 형태쌤, 그리고 청공자 멤버이자 강감찬 TV 편집자인 근아쌤과 석영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세상에, 전생의 일 같다. 그 사이에 너무나 많고, 많고,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 중 하나가 내 노트북이 만 5년의 삶 끝에 운명을 다하고 코마 상태에 빠진 거였다. 쿠바에 돌아온 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일주일만 더 빨리 망가졌어도... 싱가폴에서 고쳐서 올 수 있었건만......) 그 때문에 지지난주에 쿠바 리포트에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노트북도 결국 고치지 못했다. 친구의 노트북을 빌려, 한글 키보드를 설치해, 2019년의 첫 번째 쿠바 리포트를 쓰고 있다. 음, 이건 올해도 역시 다이나믹하리라는 징조다.

 

 

깜짝 여행, 싱가폴

 

그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 이야기를 빼먹을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도착한 싱가폴이었고, 만나는 사람들도 그리운 고샘과 뉴욕 시절의 학우인 형태쌤, 그리고 청공자에서 활약 중인 근아쌤과 석영쌤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생각지도 못해 더 반가운 멤버 조합. 3박 4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싱가폴은 ‘금융 도시’라는 차가운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아기자기한 풍경과 넓은 녹지 방문객을 반겼다. 그리고 이 낯선 도시에서 우리를 맞아준 형태쌤 역시 상기된 분홍빛 얼굴이었다. 두 달 사이에 새로운 라이프에 적응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뉴욕에서의 ‘시리어스맨’ 캐릭터를 까먹을 만큼 행복한 모습이었다. 회사 생활 틈틈이 사주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제는 내가 모르는 용어 구사하며 기업인 사주와 국가 사주에 대한 썰을 풀었다. 우리는 싱가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수다를 떨고 밥을 먹었다. 근아쌤과 석영쌤한테는 청공자 소식을 들었고, 고샘은 주역부터 성교육까지 두루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렇게 대화를 하던 와중, 사람마다 자기의 사주팔자에 따라서 용신이 될 만한 장소로 ‘체질 유학’을 가야한다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발굴되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형태쌤네 집과 그 바로 앞에 있었던 호텔 빌딩이었다. 붉은 톤으로 높게 솟은 호텔 빌딩 전체를 초록 덩 식물이 두루두루 감싸고 있었다. 만화에서나 볼 풍경이었다. 세상에, 형태쌤은 집에서 매일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사신단 말인가? 그런데 막상 쌤 집에 들어가자 뭔가 분위기가 썰렁했다. 아니나 다를까, 물 한 병 없이 깨끗했던 그 충격의 냉장고! 1층에 세븐일레븐이 있어서 언제라도 물을 사먹을 수 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쌤을 보자 ‘무식상’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사실 공감의 표시였다. 나라도 집 앞에 24시간 돌아가는 세븐일레븐이 있다면 냉장고를 텅 비워놓고 살 것이다. 나 역시 식상이 빈약하기로는 만만치 않다. 나의 식상 고립 팔자는 이번 여행에서도 또 다시 증명되었다. 여행의 셋째 날, 형태쌤과의 약속 장소까지 다 함께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12시간의 시차적응이 제대로 안 된 모양이었다. 커피를 마셔야 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많은 커피샵이 단 하나도 길거리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블럭을 더 걸어가자, 건너편 에 ‘Coffee House’라고 간판이 걸린 가게가 보였다. 모두를 대동하여 자신 있게 길을 건넜는데, 알고 보니 통닭을 파는 곳이었다. 기름 진 통닭...... 아니, 그러면서 왜 간판은 커피 집이라고 걸어놓은 건가? 사람 창피하게 말이다. 몇 분 후, 식상 많은 석영쌤이 나 대신 커피샵을 찾아주었고 마침내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 해프닝은 ‘네가 쿠바에서 잘 못 먹고 사는 건 쿠바 탓이 아니라 네 식상 고립 탓이야’라는 고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형태쌤, 저도 집 앞에 세븐일레븐 하나만 있으면 좋겠어요. 흑흑.

  

 

쿠바 탈출 = 불평의 시작

 

위에서도 말했지만, 싱가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형태쌤네 집과 그 앞 호텔 빌딩이었다. 사실 내 시선이 이런 데 꽂힌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싱가폴 여행을 떠날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가 바로 집이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집 탈출하기’였다.

 

내가 학기 초에 찾은 집이 어떠한지는 이미 <쿠바 리포트>에 소개를 했었다. 싸고, 깨끗하고, 하자가 많지만 조금만 부지런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살 만했던 집. 무엇보다 지리 조건과 가격이 훌륭했던 집. 그런데 그 당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물 부족’이라는 문제가 있다면 그 모든 장점들이 무색해진다는 것이었다. 지난 4개월 간 우리 집은 물이 수시로 끊겼다. 이틀에 한 번 물이 들어오는데, 물탱크가 작을 뿐만 아니라 수압이 약한 날이면 그 작은 물탱크조차 모두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날에는 비상용으로 채워놓은 ‘둑’에서 물을 일일이 길어다 써야 했다. 최악의 상황은, 지지난 편에도 말했지만 내 집은 빠띠오의 배수구가 작아서 비가 많이 오면 집 안에 물난리가 나는데, 그렇게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정작 화장실에는 씻을 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비를 쫄딱 맞아가며 둑에서 깨끗한 물을 긷고, 그 다음에는 일일이 빠띠오의 더러운 물을 퍼낸다. 그리고 양동이의 물을 아껴가며 바가지로 샤워를 한다...... 이놈의 물!

 

이 짓을 4개월 째 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이사를 가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새 집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기본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즉 물과 통풍과 햇볕만 잘 들어오는 집이라면 감사해마지 않으며 오래오래 살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본 쿠바 집들은 모두 물에 관련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수압이 너무 낮다던가(첫 번째 집), 혹은 수압이 오락가락한다던가(두 번째 집). 뜨거운 물을 쓰려고 순간온수기를 키면 머리 위에서 전선이 타서 끊어진다던가(첫 번째 집), 아니면 성냥으로 가스통을 켜서 물을 데우려다가 화상을 입는다던가(두 번째 집).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에서 훌쩍 싱가폴로 이동했으니, 길거리에서 ‘집다운 집’을 마주치면 눈이 휙 돌아가는 건 당연지사였다. 형태쌤이 “저렇게 허름한 건물들은 정부 보조를 받는 저소득계층을 위한 아파트들이에요”라고 설명할 때면, 나는 ‘저렇게 번듯한 건물이 아바나에 하나라도 서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라고 생각했다.

 

쿠바 사는 티는 역시 벗을 수 없는 것인지, 나는 싱가폴에서 새로운 것과 마주칠 때마다 그와 맥락이 이어지는 쿠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곧 ‘니가 쿠바에 대해 불평하는 게 꼭 쿠바 사람들 같다’는 평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내가 불평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쿠바의 상황을 그냥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해산물이 모두 수출되어서 섬나라인데도 로컬 시장에는 정작 생선이 없는 것, 달걀을 사려면 불법 거래를 해야 하는 것, 교통 수단이 늘 불안정해서 아바나의 버스 노선을 통째로 외워버리는 쪽이 더 마음 편한 것, 기타 등등. 이것들은 쿠바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그냥 팩트’다. 그러나 이 팩트를 전하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그간 억눌러왔던 욕구불만이 말 한 마디 한 마디 사이로 스며든 게 분명했다.

 

작년 4월에 일주일 동안 멕시코에 다녀왔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나름대로 잘 적응을 하고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멕시코에 발을 딛는 순간 쿠바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폭풍처럼 내 마음을 삼켰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물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흙 알갱이가 우르르 올라오며 ‘흙탕물’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의미로 내가 쿠바에 제대로 적응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쿠바에서 살 때는 오히려 불평을 안 하게 된다.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져도 욱, 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마음 속눌러 담는다. 어차피 불평해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문제 해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감정 소모에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쿠바를 잠시 떠날 때 해묵은 감정들을 폭발시킨다! 그러면 폭풍우가 지나간 바다가 깨끗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잠시나마 깨끗해진다.

 

 

우정에 대하여

 

‘불평한다’는 말이 불쏘시개가 된 것인지, 나는 정말로 본격적으로 쿠바에 대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이 불평 아래에는 불편함이 있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쿠바에 살면서 이 ‘쿠바’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품기 시작한 불편한 감정 말이다. ‘뿌리부터 다른 문화를 내 잣대로 판단하려 하지 말자’, ‘내가 제1세계 생활 환경에 익숙하다고 해서 이곳의 불편한 시스템을 폄하하지 말자’, ‘쿠바인들을 스테레오 타입에 묶어두지 말고, 나쁜 사람이 있다면 좋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모두 처음부터 가슴에 담아 둔 말들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판단을 보류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나를 불편하게 하는 뭔가가 이 장소에 있다.

 

내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쿠바 사람들과 내가 맺는 ‘관계’다. 한국 사람들이 다양한 것처럼 쿠바 사람들도 다양하리라. 그러나 이런 다양성은 내가 친구로서 다가가는 순간 훅, 하고 옅어지고 만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다들 어느 정도는 ‘외국인을 대하는 쿠바인’의 태도를 취한다. 쿠바에서 외국인은 단순히 외지에서 온 이방인을 뜻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쿠바에서 상징하는 것들은 참 복합적이다. 외국인이란 곧 쿠바의 적인 제국주의의 신민이요, 쿠바에 현금을 유통시키는 유일한 수입원이요, 도움을 요청하기 이용하기 좋은 인맥이요, 쿠바보다 더 ‘좋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늘 상기시키며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요, 언제나 쿠바인들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다. 내가 아무리 내 상황을 설명해도, 나의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며 가족도 없이 홀로 쿠바에 와 있는 나는 당신들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가난하게 산다고 말해도, 그들의 뚱한 얼굴에는 ‘니가 그렇게 말해봤자 나보다 더 부자라는 걸 알아’라는 생각이 그대로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반응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뉜다. 이용하려고 하거나, 적대감을 갖거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우정은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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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막역하게 지내는 가까운 친구들 

 

 

처음에는 이들의 태도가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면, 부자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며, 것이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쿠바 사람들이 그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정말로 그렇게 가난한 게 아니라는 것. 인도에서 7년을 살다 온 한국 친구나 남미 대륙 곳곳을 방문하면서 인류학 연구를 해온 한국 선생님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그 어떤 제3세계와 비교해도 외국인을 대하는 쿠바인들의 태도는 몹시 독특하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적극적으로 들이대고, 나쁘게 말하면 예의 없게 훅훅 치고 들어온다.

 

또, 쿠바인들의 생활 사정은 힘들다. 경제 봉쇄가 된 상황에서 경제를 어떻게든 계속 꾸려간다는 것은 그 어떤 나라라도 해내기 힘든 과제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들이 ‘빈곤’에 빠져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다 해결되고, 교육과 의료는 무료이며, 무엇보다 해외에 나가 있는 식구들에게 받는 원조도 상당하다. 매달 생활비로 지원받는 가족들이 있는가 하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처럼 쿠바에서 살 수 없는 물건들을 선물받기도 한다. 내 학급생들 중에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친구들이 없고, 웬만해서는 다들 타블랫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단지 쿠바 바깥에서는 ‘스마트폰’ 하나를 살 돈을 벌기 위해 몸과 마음과 시간을 모두 고용주에게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바깥과 비교했을 때’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 번은 내 친구가 쿠바 바깥에서 비싼 티셔츠를 사다달라고 내게 부탁해놓고, 돈이 없으니 천천히 갚겠다고 나중에야 말해서 나를 화나게 했다. 그래놓고 자기 여자친구에게는 아이폰을 사줬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이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정이 어렵지 않은데 계속 어렵다고 하는 것, 외국인에게 뭔가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을 무리하면서까지 욕망하는 것. 이런 모습들이 내 눈밖에 났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 싱가폴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쿠바인들에게 던지고 싶은 멘트들이 사실 연구실 선생님들이 청년 세대에게 던지시던 익숙한 멘트였다. 왜 너희는 돈도 없고 집도 없는데 스마트폰은 꼭 비싼 브랜드를 써야 하느냐, 왜 이렇게 사고 싶은 게 많느냐, 왜 능력도 없이 빚을 지느냐........ 헉!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쿠바인’이냐 ‘외국인’이냐가 아니라,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인간 보편의 욕망이 아닐까? 단지 쿠바가 물질적 풍요가 제한된 소박한 환경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욕망이 더 투박하고 또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쿠바는 작은 스케일 속에서 인간의 보편 욕망을 보여주는 훌륭한 샘플이 된다.

 

이처럼 관찰자의 시선으로 쿠바인들을 대하면 참 재미있다. 그러나 나 역시 사람인지라, 결국에는 이 외로운 외국 생활을 헤쳐나가는 데 한 줄기 빛이 될 막역한 우정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구를 뚫을 것인지 고민하면 다시 막막해진다. 이렇게 막막해 하면서 계속 가다보면 어떻게든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싱가폴 여행에서는 형태쌤과의 오랜 인연, 그리고 석영쌤과 근아쌤과 새로운 인연을 다지며 우정을 쌓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꼭 쿠바에 오라고 초대를 했다. 이들이 쿠바에 방문하기 전까지 내가 해답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막역한 쿠바 친구들을 소개시켜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공포의 생화학, 절망의 바퀴벌레, 기쁨의 삼겹살

 

그리고 나는 쿠바에 돌아왔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은 쿠바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일시정지가 된다. 일상을 들썩이는 사소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쿠바로 돌아가자마자 이사를 했다. (새 집과 새 이웃에 관한 썰은 다음 편에 본격적으로 풀겠다.) 원래 살던 집에서 두 블록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사는 이사인지라, 짐을 다 싸고 또 다시 풀고 나니 완전히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좋지 않은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에는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퀴벌레...였다. 바퀴벌레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이놈들은 하나 같이 겁을 상실해서는, 내가 발소리를 내도 도망가지 않았다. 내가 저녁을 먹고 있으면 식탁 밑을 뽈뽈뽈 기어다녔다. 나는 결국 빗자루를 들고 이들을 죽이기 위해서 한바탕 쇼를 벌여야 했다. (그리고 이사 첫 날부터 컵을 깼다.) 약을 갖다 뿌려도 별 소용이 없다. 언제는 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눈을 떴는데, 천장을 날아다니는 바퀴벌레와 대면한 일도 있었다. 후...... 이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바퀴벌레와의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기말고사 준비였다. 기말고사는 1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진행되는데, 시험 범위를 쪽수로만 따지면 500쪽이었다. 그 중에서 문제는 딱 21문제(총 3과목, 1과목 당 7문제)밖에 나오지 않았다. 방학 동안 자유 시간을 싱가폴 갔다 오는 데 몽땅 썼기 때문에, 나는 당장 공부를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름방학도 반납하고 학년 말 시험을 또 다시 봐야 한다. 그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하면? 1년을 꿇는다. 1학년을 다시 통째로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싱가폴에서 놀 때는 실컷 놀았는데, 쿠바에 돌아오니 슬그머니 겁쟁이의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나의 최고 공포는 생화학이었다. 내가 과학에 기초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과목이다. 그렇게 10일 동안 나는 책과 함께 달렸고, 생화학 시험을 쳤고, 마침내 긴장을 풀었다. 썩 잘 보지는 못했지만 턱걸이로 통과는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정말로 되었다. 갑자기 하늘이 더 푸르게 보이고 나무가 더 우거지게 보이는 것을 보니, 참 어지간히도 생화학이 무서웠나보다. 솔직히 말하면 26년 간 본 시험 중에서 제일 무서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포의 시간을 견뎌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토록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아직 봐야 할 시험이 더 남아있는데도 그랬다.

 

이처럼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갑자기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까지 걷는데, 뜻밖의 소득이 있었다. 정육점을 발견한 것이다. 세상에, 삼겹살도 판다. 우리 집 근처에는 고기 파는 곳이 없어서 계속 베이컨과 햄으로 연명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집과 학교를 왔다갔다하는 동선 내에서 손쉽게 고기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고기를 사러 30분을 걸어 옆 동네에 가지 않아도 된다! 삼겹살을 발견한 순간 나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나의 강렬한 기쁨이 누구에게는 궁상으로, 누구에게는 과장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내가 마음껏 기뻐하도록 내버려두시라. 쿠바에 대한 불평을 잠시 잊어버리고,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에 온전히 감사할 수 있는 이 순간만큼 이 ‘투덜이 쿠바나’에게 좋은 약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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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는 먹는 낙으로 산다!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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