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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이타카로 가는 길

일본에서 담담하게 | 바퀴를 살리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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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랑소 작성일15-09-15 23:14 조회2,260회 댓글0건

본문

  

어느 자전거성애자의 일상

바퀴를 살리는 인생

 

 

담담

 

 

자전거가 고장이 났다. 분명 아침에 바람을 넣었는데 다음날 타보면 고무줄 늘어난 고쟁이마냥 바퀴가 헐렁헐렁한게 뭔가 이상했다. 그래, 이건 분명히 빵꾸가 난 게 틀림없어. 하긴 3년을 줄기차게 탔으니 한 번 고장이 날 만도 하다. 원래 3년 전에 일본에 잠깐 있을 때 샀던 자전거다. 그 때 몇 군데 돌아다니다 결국 8천엔 조금 넘는 돈(10만원 정도)으로 가장 싼 자전거라고 골랐던 자전거다. 내가 잠깐 타다가 친구한테 물려주고 온 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물려주고, 이번에 일본에 와서 다시 내가 물려받았다. 그만큼 여러 손을 거치고, 관리도 제대로 못 받다 보니 언젠가 한 번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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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자전거도 등록제다. 학교나 기숙사에서도 자전거를 등록해야만 하는 건 당연.

여러 명이 거쳐간 흔적들이 보이시는지. 

 


빨리 학교 가서 글 써서 보내야 하는데 큰일이다. 00언니한테 내일까지 써주겠노라고 호기롭게 말했는데. 사실 뭐 쓸지도 생각도 안 했는데 말이다. ㅡ.ㅡ; 한국 같았으면 그냥 자전거포에 맡겨서 수리를 맡기면 되겠지만, 인건비도 비싼 여기에서 맡기면 얼마를 달라고 할지도 모르고, 주변에 자전거포도 잘 보이지 않는다.(거의 모든 집에 한 두 대씩 자전거가 있는 일본에서 자전거 수리는 당연히 각자 하는 건가?) 한국 같았으면 주변에 이런거 잘 하는 애한테 부탁하거나 하면 되겠지만 여기에서 잘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여차저차 설명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는 게 더 큰 일이다.

 

일단 근처 다이소에 가서 100엔짜리 자전거 빵꾸 떼우기 키트를 사왔다. 아. 근데 내가 이걸 고칠 수 있을까. 남들한테 자전거 빵꾸 떼우는 게 시계 건전지 가는 것만큼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시계를 조립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니다) 때 국기함 만들기(요즘에도 이런거 하나?) 때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던 내가, 군대에서도 총 닦을 때 분해 후 막힐 때면 나몰라라 동기한테 맡기던 내가 자전거를 고칠 수 있을까. 이게 다 어렸을 때 과학상자를 안 사준 엄마 때문이다.ㅋ 지금도 과학상자라는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국기함, 과학상자 이름만 들어도 추억돋네^^) 내가 소싯적에 대회란 대회는 모조리 다 휩쓸었는데 유일하게 과학상자 만들기 대회에서만 입상을 못한 아픈 추억이 있다. 그래 그때부터 기계에 소질을 잃게 된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면서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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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엔숍에서 산 자전거 빵꾸 수리세트. 팻치용 고무, 사포, 본드, 바뀌 빼는데 필요한 지렛대 같은 게 들어있다.

 


그래 해보자. 까짓것 뭐 대수겠어. 여튼, 일단 자전거 바퀴를 분해해보자. 난 자전거바퀴가 빵꾸 났다고 하면 그냥 빵꾸난데 찾아서 스티커 붙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걸. 자전거 바퀴를 벗기고 나니 그 안에 튜브 같은 게 있었다. 이건 뭐지? 자전거 타이어 안에 튜브가 있다는 걸 알았던 사람? 혹시 나만 몰랐던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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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검색한 다른 사람이 분해한 자전거 바퀴 사진인데, 이런 식이다.

자전거 타이어 안에는 튜브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응?).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다는 건 이 튜브에 바람을 넣는다는 거였다.


원래는 빵꾸(펑크라고 해야 하는데 펑크라고 하면 왠지 어감이 안 살아서..)난 데를 찾으려면 대야 같은 데다 물을 담고 이 튜브를 넣으면 공기방울이 퐁퐁 올라오지만, 귀찮아서 포기. 네이버 블로그에서 민감한 귀와 코를 이용해 바람이 세어나오는 곳을 찾으세요라는 조언에 튜브를 열심히 귀에 가져다 대어봐도 소리는 안 난다. 내가 덜 민감해서인가. 아무리해도 안 되겠다 싶어 포기. 다시 조립.

 

그러나 이게 웬걸. 역시 풀어헤치고 나니 다시 조립하는 게 또 일이다. 어떻게 다시 집어넣어야 할지 깜깜하다. 역시 자전거건 뭐건 간에 기계(자전거를 기계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는 풀 때 먼저 상태를 잘 봐놔야 한다. 그래야 원래 상태라도 회복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에 동네에서 맥가이버 소리 좀 들어봤다거나 트랜지스터라디오 만들기 대회에 나가 상 한 번 타본 사람이 아니라면 괜히 기계 고친다고 열어봤다가 남들 앞에서 망신 당하기 딱 쉽다. 집에서 그랬다간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맞기 딱 좋고. 게다가 그 놈의 나사는 어디 갔는지. 그다지 꼼꼼하지 않은 성격이라 대충 풀러놓고 팽개쳐 놓은 나사를 찾는 데만도 몇 분. 바닥 색깔이랑 나사 색깔은 왜 이리 똑같은지. 그래 그냥 맡기자. 내가 하는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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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자전거 공기 주입 마개가 있다. 보이시는지?^^

이러니 이걸 찾느라 또 몇 분씩 헤메기를 반복.

 


그런데 그렇게 몇 번을 바람을 넣다 뺐다 하다보니 타이어가 이상이 있는게 아니라 바람 집어넣는 노즐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이런, 고무바킹(바킹이란 말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이 문제였다. 고무바킹이 낡아서 거기서 바람을 집어넣어도 바로 바람이 줄줄 새나가고 있었던 것. 유레카. 이제야 끝났군. 다시 다이소를 가서 노즐을 새로 사온다. 걸어갔다 오는데 또 몇 십분. 이제야 바람을 집어넣어도 픽픽 김새는 소리가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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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이 문제였던거. 고무바킹이 헐거워져서 그리고 바람이 세어나갔던 거다. 근데 저 더러운 손은 어쩔껴ㅋ

 


그런데 문제는 바퀴를 끼었는데 이상하게 모양이 안 잡힌다는 것. 내가 잘 못 꼈나, 이리저리 뺐다 끼었다를 다시 해도 뭔가 이상하다. 그래, 뭐 그냥 대충타자, 굴러가기만 하면 됐지 하고 타보았더니, 안 나간다.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 그제서야 다른 자전거 바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바퀴를 밖으로 끼는 게 아니라 안으로 껴야 했던 것.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수리 완료. 손은 기름 때로 장난 아니고, 벌써 반나절이나 지나갔지만. 다시 타보니 바람 잔뜩 들어간 탱탱한 볼륨이 바람 빠졌을 때랑 비교하면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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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성공. 설명하기 어렵지만 타이어는 바퀴 안으로 집어넣듯이.

 


이런 사소한 일에 몇 시간이나 걸렸다는게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 성공(?)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겨우 책이나 읽을 줄 알았지 뭐 하나 혼자 힘으로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는 것 가지고 이 모양이니 말이다. 물론 남들에게 도움 받으며 사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지 남들에게 다 맡겨버리고 서비스를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생활과 일상은 무시해 버리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닐까. 무엇이든 돈으로 서비스를 사려는 태도, 자기가 하기 귀찮은 일들은 남들에게 떠맡기려는 태도.
   
무슨 자전거 바퀴 하나 고친 거 가지고 이런 진지빠는 글을 쓰냐고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나는 머릿 속에서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상주의자라면 당연히 현실 정도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찮다고 생각하는 현실이야말로 일상이야말로 내 공부거리가 아니었을까? 그것을 무시한채 우정이니 공동체니, 수련이니 공부니 하는 것들이야말로 허황된 것은 아닐까.

 

 

길 위에 산다는 건 무언가 거창한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나의 비루함을,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것을 아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결국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태도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걸 안다면 그것은 어디에 서있든 간에 길 위에 서있는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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