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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이타카로 가는 길

김융희 선생님의 여강만필 | 혹한의 권태를 위해, 그리움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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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물처럼 작성일16-01-31 11:32 조회2,62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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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권태를 위해, 그리움이 사람이다.  

 

 

요즘 엄청 추워진 날씨에 움쑥 달싹이 싫은데, 그동안 혹사 탓의 휴식과

안정을 위해 모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집에서 쉬고 있다.

한적한 시간으로 별다른 기척이 없는데 우리 집 개들이 계속 짖고 있다.

그들의 짖어데는 소리가 오늘 따라 평소와 같지를 않게 들린다.

나는 자주 듣다 보니, 그들의 소리만으로도 대강의 밖에 상황을 감지한다.

상대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그 강도와 소리가 매번 다르게 반응하여 들린다.

해를 끼칠 것 같은 험상 궂은 사람에게는 소름이 끼치게 위협적이다.

사람이 집앞을 지날 때와 군인들이 행진할 때가 다르며,

낯선 사람과 알듯 모를 듯 가끔씩 들른 사람을 볼 때도 그 소리의 강도가 다르다.

우리 식구가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의 반기며 짖는 소리는, 늘 들르는 손자들이나

다른 식구가 왔을 때에도 그들의 반기는 행태가 전혀 다르다.

가끔씩 앞, 뒤 산에서 꿩, 노루, 멧 돼지같은 이상 물체나 낌세가 보일 때도

그 짖는 소리와 반응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한적한 산촌의 외딴 집에선 개를 기르며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우리 집에도 네 마리가 사방을 지키고 있다.

나는 다시 주위를 두루 살펴 보았지만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다.

 

추위로 꽁꽁 얼어야 할 겨울 날씨가 올 겨울 초기에는 겨울답잖게 계속된 온난화로

이상 기온의 작물에 미칠 영향을 염려했었다. 그런데 섣달이 지나고 새해가 들어서면서

시작된 추위는 점점 강도를 더해 급기야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지금

계속되고 있다. 오늘 아침 우리집 수은주가 영하 21도를 가르키고 있다.

앞 개울이 꽁꽁 얼어 붙었고, 온 산들이 혹한으로 측은해 보인다.

!하고 얼음 깨지는 예리한 금속성 소리가 비명처럼 간간이 들릴 뿐, 인적은 커녕

산새도 숙연하여 을씨년스럽다. 나뭇가지에 달라 붙은 잎새의 삭풍 스치는 소리,

그리고 짖는 개소리 밖엔 모든 주위가 온통 적막강산이다.

금방 툭 터질 것 같은 적막감이 나를 긴장케 한다. 보자 하니 저 개들도 적막의 무료를

달래기 위해 맹추위를 견디며 하릴없어 공연히들 짖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저 개짖는 소리가 나의 무료를 달랜 듯 싶기도 하다.

한적한 긴 긴 여름날이면 나는 저같은 개들의 놀이짖을 자주 보아왔다.

한 놈이 하늘을 우러러 길며 느리게 소리를 내면 다른 놈들이 따라서 소리짖으로

함께 맞짱을 한다. 혹서의 무료와 권태를 달래기 위한 한 방편일 것이다.

달 밝은 가을 밤 둥근 달을 쳐다보며 가끔씩 같은 짖을 한 것을 본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처럼 추운 날 무료를 달래는 꼴은 처음 경험이다. 또 여름의 권태 때에나

달밤의 감성때와는 그 소리가 영판 다르다. 쓸쓸함이 엉킨 외로움의 느리고 긴 약간의

긴장된 소리로 여운이 감돈다. 춥고 외로움을 견디며 울부짖는 비탄의 울음소리이다.

 

나는 지금 혹한의 산촌에서 무료를 달래며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구정이 다가오고 있다. 열차표 예약을 위해 늘어선 인파를 보면서 옛 고향이 떠오른다.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떠오를 뿐인 고향이 이제는 인연도 산천도 멀기만 하다.

그동안 얽설킨 많은 인연들을 떠올리면서 그리운 얼굴들을 그려 보기도 한다.

지난 한 때를 함께 살아오면서 얽키고 설킨 여러 형태의 인연들도 이젠 만나는 것조차

쉽지를 않아, 지금은 멀리서 그리움의 마음으로만 남아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벌써 유명을 달리한 인연들도 많으며,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외로움과 허무의 비애가 온몸을 저려온다.

 

저들도 지금 내 마음을 읽으며 동조를 구함인가?

적막의 산골에서 우리 개들이 지금 나와 함께 울고 있다.

개들의 긴 여운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고 애처롭다.

나와 함께 적막의 무료를 달래는 저 개들이나, 높이 나르고 있는 저 창공의

독수리도, 갈구하는 그리움의 심사는 모두가 같으리라.

지금 내 심정이 저들의 심정이며, 저들의 심정이 내 심정이 아니겠는가.

춥고 굼주리면 고독과 비애가 함께 함은 생명체의 본성이려니, 어찌 본성이 인간의

심성에만 있겠는가. 결코 생명체의 느낌의 본질은 같으리라 여겨진다.

저 개들도 권태를 이기려 하릴없이 허공을 향해 짖어데 듯,

저 높이 뜬 독수리가 바람을 거스르며 외로이 창공을 배회하듯...

하릴없이 빈 공간을 향해 짖고 있는 개들처럼, 나도 이 상황을 벗어 보려고

발버둥이다.

 

그리우면 전화를 하라고 했던가? 외로워서 사람이고, 그리워서 사람이다.

무료한 나는 그리움을 찾아 전화를 한다. 친구도 좋고, 선배도 좋고, 후배도 좋다.

나의 지인이다. 가까우면 어떻고 좀 멀면 어떠랴, 또한 누가 먼저면 어쩐가.

나는 생각나면 누구에게나 막무가내 거침없이 접속을 시도한다.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정보도 나누고 근황의 동정도 들으면서,

따스한 정을 나누는 기회가 있어서 나는 기쁘고 행복하다.

가끔씩은 마음에 거슬리는 일들로 비위에 거슬릴 때도 있다.

나는 전화를 하는데, 그래, 너는 받기만 해서야

그토록 내가 너에게 전화를 하는데, 도대체 너는 꼼짝도 않고 있다니!”

그러나 전혀 내 탓이로데 다른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속 좁은 소갈딱지로 내 알량한 자존심의 문제일 따름이다.

 

하지만 살짝 비위가 거슬린다. 자존심이겠지!

그런들 이같은 고달픈 심정을 누가 알기나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더욱 속상하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아신다며 기도를 한다. 나도 그같은 신자이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여, 그데 이름은 인간이려니,

우리 집 개들 짖거리에 의지하며 위로 받는, 별 볼일 없는 초부의 뒤틀린 심보가 부동이다.

지금도 우리 집 개들의 짖는 소리는 꽁꽁 언 산골에 퍼지고 있다.

 

 

 

 

 

 

 

 

 

[이 게시물은 MVQ님에 의해 2016-03-08 09:41:47 더부살이프로젝트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애독자님의 댓글

애독자 작성일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

그렇게 땅속의 씨앗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앞으로
자신들이 펼쳐갈 새로운 삶을 한 점으로 응축시키며

고요한 점화의 순간을
생명의 대폭발, 빅뱅의 순간을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당의 장독대도
뒷산의 소나무도
삭풍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치고 날아가는 산새도
흰눈-하늘 이불을 소복이 뒤집어쓰고 있네요.

추위가 언제 물러가나
구들장에 엎드려 이불을 잔뜩 뒤집어쓰고
두 눈만 빼꼼 내놓은 개구쟁이들처럼

멀고 가까운, 친한지 안 친한지
관계에 따라
개 짖는 소리가 다르다니 신기하네요

비단 산골 마을에 살지 않아도
산골 마을의 외딴집을 지키는 개가 아니어도
우리도 때때로 서로를 불러 봅니다

컹, 컹
적막 강산을 울리는 메아리가 듣고 싶어서

우리는 모두
벌거숭이 알몸으로 혹한의 겨울을 나고 있는
외롭고 그리운 사람들이라서!


mail : mvqblo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