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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가족의 이집트 통신 | 여행의 가치는 무엇으로 셀까? (카이로 첫방문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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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eanlee 작성일16-08-08 19:57 조회2,3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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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이집트를 방문한 방문한 한국손님 1호^^의 후기입니다. 2000년에 중학생과 선생님으로 만나서 편지로 우정을 쌓아 이젠 친구가 되었지요. 공대를 나와 세이브더칠드런에 근무하다 여행 종자돈이 모이자 여행 중입니다. 스페인 위주로 포르투갈과 이집트, 모로코를 잠시 들르고, 지금은 쿠바에 있습니다.

여행의 가치는 무엇으로 셀까

2016년 이집트 여행이 내게 남긴 흔적을 되짚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는 영화 속 배경을 찾아간 여정을 다룬 자신의 저서 ‘필름 속을 걷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행기는 여행 중이 아니라 여행이 끝나고 쓴다’고 말했습니다. 숲에서는 숲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곳을 충분히 벗어나면 그때 내가 있었던 숲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듯, 여행 중에는 여행이 가져다 줄 의미를 미처 알지 못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글 서두에 이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제 여행이 이제 한 귀퉁이를 돌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제 여행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서입니다.


글을 부탁받고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동안 쓴 일기를 들춰보고 그 시간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 중 특별히 반짝이는 시간이 무엇일까 추려보았습니다. 물론 대단한 풍경이나 유적 앞에서 감탄을 연발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더욱 자세하게 나와 있을 테니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집트에 가신다면 룩소르의 카르낙 사원과 카이로의 모하메드 알리 사원은 꼭 가보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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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 있는 모하메드 알리 사원. ⓒ고우현

 

고대 문명에 문외한인 저는 누가 이집트 여행에 대해 물으면 피라미드나 고대 이집트 사원 보다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제가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이 제게 남긴 파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그 가상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짜증스러운 그대를 이해하기

이집트를 여행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가장 불평하는 것이 상인들의 끈질긴 강매와 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잔돈이 없다는 뻔한 레퍼토리부터 무작정 사진을 찍게 해준다고 우긴 후에 팁을 요구하기, 안 산다는 내 말은 들리지 않는 듯이 계속 물건을 보여주며 따라붙기 등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이집트에 비하면 매우 여유로운 스페인에서 날아온 저는 이집트 구경 첫날부터 이러한 요구에 인내심을 잃었습니다. 낙타 타기를 10번 가까이 권하는 가이드에게 “안 한다니까요. 안 한다고 했잖아요!”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날 저녁 (미리 읽었어야 했던) 가이드북을 꺼내 읽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강매와 팁 문화에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강매 수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보기에 당신이 이집트까지 올 비행기 표를 살 여력이 있다면 이들의 바가지 정도는 애교다. 사실 5 이집트 파운드의 가치가 현지인과 당신에게 절대 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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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콤오보에서 팁을 받고 포즈를 취해주는 아저씨. 주요 사원에는 이 분처럼 ‘이집트 느낌 나게’ 사진을 연출해주는 대가로 팁을 받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우현

 

여행을 떠나오며 백수가 된 저는 여기에 대해 할 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습니다.  1인당 GDP로 따지면 이집트는 가난한 나라는 아니지만 청년 실업률이 34%(UNDP, 2015)인데다 국민 대다수가 카이로를 비롯해 부자 나라 관광객들이 오는 나일강 지역에 살면서 관광 수입에 의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방문한 시기는 가뜩이나 비수기인데 테러 등 흉흉한 그늘까지 겹쳐 ‘이번 사람에게 뭐라도 팔아야 해’라는 절박함이 물정 모르는 관광객인 제게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덕분에 가이드 책에서 제시한 것보다 낮은 가격에 보트를 타기도 했습니다. ‘공 치느니 적은 돈이라도 벌겠다’는 것이었겠죠.

 

물론 그들을 이해했다고 (적어도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강매와 바가지가 유쾌해지지는 않습니다. 이후로도 하루에 한 번쯤은 꾹꾹 눌러놓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정색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감정이 지나가고 나면 침체된 시장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굳은 표정을 짓는 관광객에게 물건과 서비스를 팔려는 그들의 처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싫다는 사람에게 다가서는 게 누군들 쉬울까요. 우리나라 편의점 알바나 전화 상담원처럼 이곳 사람들 또한 감정 노동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강매와 바가지가 누군가의 생존 수단이라는 점을 알고 나면 ‘도대체 이 사람들은!’이 ‘오늘도 열(심히) 일하시네’로 바뀌고, 짜증에 가려져 있던 여행의 즐거움에 다가설 수 있으니까요.    

 

꼭 좋은 일이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현지 상인의 생존 전략과 저의 절약 의지가 수시로 부딪혔던 나일강 크루즈가 끝나고 저를 초대해 준 가족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스페인 여행 때문에 기념품을 전혀 사지 않아 이집트 파운드가 꽤 남아 있었습니다. 재환전하기에는 애매한 금액이라 그 집 두 동생과 동네 마실을 다니며 다 쓰기로 했습니다. 돈 쓸 생각으로 신나게 들어간 잡화점. 우리는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의도하지 않은 지출을 해야 했습니다. 텀블러를 구경하던 동생이 선반 안쪽에서 집어든 텀블러를 다시 내려놓는 순간, 볼링공을 맞은 핀처럼 앞에 선 텀블러들이 주르륵 넘어지더니 맨 앞의 텀블러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반투명 플라스틱 재질인 그 텀블러는 여지 없이 깨져 조각이 떨어졌습니다. 그 소리에 돌아본 카운터 직원과 우리는 눈이 맞았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그 깨진 텀블러를 들고 가서 값을 치렀습니다.

그렇게 수중의 현금을 쓰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이 깨진 텀블러로 무엇을 할지 이야기했습니다. ‘안쪽 스테인리스 용기는 멀쩡하니 플라스틱 조각을 다시 붙이면 물통으로 쓸 수 있다’, ‘조각을 붙인 자리에 유성 펜으로 그림을 그려서 꾸미자’, ‘스페셜 에디션 상품으로 만들어 엄마에게 선물하자’ 까지 가닿으자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우리는 순간접착제와 유성펜을 찾아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선물 받기로 한 선생님(저를 초대해주신 아이들 어머니)은 공부할 때 들고 다니겠다며 ‘내 스스로 암시할 수 있는 칭찬의 문장’을 적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두 동생과 저는 번갈아가며 "기운이 살아있네~", "공부를 열심히 해서 Find Yourself"등을 남기며 킬킬대기 시작했습니다. 균열을 따라 장식을 채우면서 서로의 솜씨에 감탄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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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산 것도 아니었고, ‘조심했어야지’라고 탓하며 인상을 구길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저는 그때 일이 떠오릅니다. 깨진 텀블러가 ‘리미티트 아트 워크’로 탄생한 것처럼 우리의 당혹스런 감정 역시 키득거림과 샘솟는 창의력으로 바뀌는 놀라운 순간이었으니까요. 꼭 좋은 일이 일어나야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순간이 즐거운 추억이 된다는 점을 이날 깨달았습니다.

 

여행의 가치는 무엇으로 셀까

이집트에서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간 뒤 한 숙소 벽에서 만난 문장이 있습니다. 미국 여행작가 팀 캐힐이 한 “여행의 가치를 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리가 아니라 친구다(A journey is best measured in friends, not in miles).”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100% 동의하지 않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일은 여행 중에 할 수 있는 매우 뜻 깊은 일이긴 하지만 친구와 함께이든 혼자이든 어떤 일을 마주하고 겪어냈을 때 우리는 한뼘 자랄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그렇다고 ‘얼마나 버라이어티한 사건을 겪었느냐’로 여행의 가치를 셀 수 있냐면 그것 또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답입니다. 카이로에서 텀블러를 깨먹는 일은 그다지 버라이어티한 일은 아니었지만 분명 제 여행을 풍요롭게 해준 일이니까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시간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미루어 놓았던 사색에 빠질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제가 내린 답은 그래서, 우리가 찾은 삶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것이 저의 최종 답안은 아닙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여행을 다니며 이 답안을 시험해 볼 기간이 한 달 남았습니다. 한 달 후에 답을 내릴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부디 그도안 지금 답의 부족함을 깨닫는 순간을 만나길, 그래서 더욱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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