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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三經)스쿨 | <사자소학> 2번째 시간! 兄友弟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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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태규 작성일17-09-18 03:12 조회231회 댓글1건

본문

 

 

 

 

안녕하세요, 송태규입니다. 오랜만에 후기를 쓰는 것 같습니다.

 

앞서 해인쌤이 작성한 후기에서 <사자소학>의 핵이 자식으로서의 였다면, 이번 시간 배운 부분의 주된 내용은 바로 '兄弟'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자소학>에서는 형제를, “骨肉雖分 本生一氣, 形體雖異 素受一血

 

뼈와 살은 비록 나누어 졌으나 본래 한 기운에서 태어났으며, 형체는 비록 다르나 본래 한 핏줄을 받은사이로 정의합니다. 굳이 남자의 형제에 국한되어서 생각할 것이 아니지요. (개인적으로는 본처의 자식과 첩의 자식, 서얼의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형제의 개념을 어떻게 변용하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주목할 것은 분량에 관한 지점입니다.

앞서 형제에 관한 이야기 사이에는 부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부에 관해서는 그 분량이 간략히 8로 되어 있는데 이에 반해, ‘형제에 관한 이야기는 장차 48가 나오니 자그마치 여섯 배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형제간의 마땅한 도리와 규범을 설파합니다.

 

어째서 형제에 관해 이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형제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에 강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 추측으로는 아마도 그만큼 형제간의 다툼과 반목이 잦았기 때문에, 형제들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다툼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형제의 사이를 <사자소학>에서는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지, 어떤 지혜를 나누어주는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兄弟怡怡 行則雁行

형제는 서로 화합하여 길을 갈 때는 기러기 떼처럼 나란히 가라.

寢則連衾 食則同牀

잠잘 때에는 이불을 나란히 덮고 밥 먹을 때에는 밥상을 함께 하라.

 

分毋求多 有無相通

나눌 때에 많기를 구하지 말며 있고 없는 것을 서로 통하라.

私其衣食 夷狄之徒

형제간에 그 의복과 음식을 사사로이하면 오랑캐의 무리이다.

 

兄無衣服 弟必獻之

형이 의복이 없거든 아우가 반드시 드리고,

弟無飮食 兄必與之

아우가 음식이 없거든 형이 반드시 주어라.

 

一杯之水 必分而飮

한 잔의 물이라도 반드시 나누어 마시고

一粒之食 必分而食

한 알의 음식이라도 반드시 나누어 먹어라.

 

 

<사자소학>에서 말하는 화목하고 평화로운 형제의 관계의 요체는분배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추해보고, 또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형제간의 불화는 늘상 소유욕과 시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시기심 역시 크게 보자면 가지지 못해서, 더 가지고 싶어서, 혼자만 가지고 싶어서 비롯된 마음이니 소유욕으로 귀결될 수 있겠지요.)

무얼 더 갖고자 하는 마음, 나의 것과 형(동생) 것을 분별하는 사사로운 마음에 대한 경계와 운명 공동체로서의 자각만이 형제의 불화를 막을 수 있는 길임을 <사자소학>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며 조식의 <七步詩>가 생각났습니다. <칠보시>에 얽힌 고사를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조에게는 본처의 소생인 큰 아들 조비와 둘째 아들 조식이 있었습니다. 동생 조식은 어렸을 적부터 문학에 빼어나 곧잘 글을 지었습니다. 심지어 조조는 누군가 대신 글을 써주는게 아닌지 의심하여 앞에 데려다 놓고 글을 짓게 하였는데 그 글재간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조조는 둘째 조식을 총애하여 태자로 삼으려고 했었지만 수많은 대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어느 날 조조가 전쟁터로 나가는데 조비와 조식이 전송을 하게 됐습니다. 문재(文才)가 빼어난 조식이 그 자리에서 조조의 공덕을 찬송하는 시를 지어 사람들의 칭송을 받자 누군가 조비에게 대왕님께서 떠나실 때 태자님께서는 그저 얼굴에 슬픈 빛을 띄십시오.” 라고 충고를 합니다. 조비는 그 말에 따라 아버지가 떠날 때 말없이 눈물만을 흘렸고 이를 본 조조는 조비의 효성에 감동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조비는 동생 조식이 술을 좋아한다는 약점을 이용해 계속해서 조식이 조조의 신임을 얻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 결과, 조조가 세상을 떠나고 태자인 조비가 그 자리를 이어 받게 됩니다.

위나라의 왕이 된 조비는 눈엣가시 같고, 왕권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든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조건을 갖춘 동생 조식을 죽이려고 작심합니다. 조비는 조식이 조정을 모욕한다는 이유로 업성으로 잡아 올려 심문을 하게 됩니다.

 

조식 네놈이 늘 글을 잘 짓는다고 뻐기고 다니는데 일곱 걸음 걸을 동안 시를 한 수 지어보이면, 내가 네 놈 목숨을 살려주겠다.”

 

조식은 일곱 발자욱을 채 다 끝내기 전에 6구체 5언고시를 짓습니다.

 

煮豆持作羹 콩을 쪄서 국을 만들고,

漉豉以爲汁 콩자반을 걸러 즙으로 하려는데

萁在釜底然 콩대는 솥 아래서 타고

豆在釜中泣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구나

本是同根生 본디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 불 때어 달이기를 어찌 그리 서두르는고.

 

조비는 이 시를 듣고 가책을 느껴 조식을 죽이지 않고 봉읍지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형제이기 때문에 죽이고자 했던 것이, 형제인 덕분에 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형제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둘도 없는 경쟁자이면서 하나뿐인 협력자이고, 수직적이면서도 수평적이고, 친구 같지만 피붙이고, 피붙이지만 친구 같고, 나를 가장 잘 알지만 동시에 나에 대해 가장 모르는 것이 바로 형제 아닐까요? 

 

그럼 저의 졸속한 후기를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얼음마녀님의 댓글

얼음마녀 작성일

조비와 조식의 이야기까지 소개해 준 태규샘 후기...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조선의 적서차별은 성종 때 재산 상속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확립되었다고  실록에 나와 있더라구요. 근데 그 때 적자와 서자 관계를 한 기운,
 한 핏줄의 문제로 보지는 않더군요. (성종실록 35권, 성종 4년 10월 1일 5번째 기사로 나와요.) 
근데 형제가 길을 갈 때는  기러기처럼 '나란히 가라'고 했는데 -> '차례대로 줄지어 가라'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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