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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와 석영이 | 나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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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영 작성일18-10-13 09:12 조회1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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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딨어?

​김석영

 

 

보옥이의 탄생

 모년 모월 모시. 금릉의 이름난 가문인 영국부에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는 태어나면서 입 안에 오색영롱한 옥을 물고 나왔다. 그렇다. 작은 옥으로 변한 석두가 한 아기의 입에 물려 인간세계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옥을 물고 나온 이 아이는 바로 홍루몽의 문제적 남자 주인공, ‘보옥’. ‘보옥’이라는 이름은 아이가 물고 나온 옥에 새겨진 ‘통령보옥’이라는 글자에서 따 온 것이다. 그러니까 ‘통령보옥’이 석두의 새로운 이름이 되겠다. 보옥은 통령보옥을 목걸이로 만들어 늘 걸고 다니는데, 그걸 잃어버리면 보옥이는 병이 들고 혼이 빠진다. 즉 통령보옥은 보옥이의 영혼과도 같다. 고요함이 극에 이르러 움직이고자 하는, 세상과 진하게 만나겠노라 들떠있는 돌의 영혼을 타고난 이 아이는, 어떤 독특한 성격을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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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대로 하는 말

 돌이 변신해서 태어난 아이라고 해서 보옥이에게 고매한 성품을 기대해선 안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옥이의 품행은 참으로 ‘문제적’이다. 돌잡이 때 다른 건 마다하고 비녀, 가락지, 지분 같은 것들만 움켜쥐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기대를 가볍게 짓밟아버리더니, 조금 자라서는 “여자는 물로 만든 골육이고 남자는 진흙으로 만든 골육이라, 여자아이를 보면 마음이 상쾌해지지만 남자를 보면 더러운 냄새가 진동한다.”라는 파격적인 말까지 해대는 것이다. 보옥은 그렇게 ‘대장부의 길’, 입신양명을 위한 공부는 더럽고 냄새가 난다며 욕을 하며,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만을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보옥은 새로운 누이 대옥을 만나게 된다.(그렇게 누이와 누나가 많으면서도 보옥은 새로운 여자아이를 만나면 좋아 팔짝팔짝 뛴다.) 보옥은 기분이 좋은 김에, 대옥에게 자(별명)를 하나 지어준다.

 

“내가 누이한테 멋진 자를 선물해야겠군. ‘빈빈’두 글자가 가장 좋을 거 같은데 말이야.”
 탐춘이 옆에 있다가 그 전고가 어디서 나온 거냐고 물었다. 보옥이 말했다.
“<고금인물통고>에 보면 말이야, ‘서방에 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대라고 하고 눈썹을 그리는 먹으로 쓴다’고 했거든. 더구나 이 누이는 눈썹 끝을 약간은 찡그리듯 하니까 이 두 글자를 취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어!”
 탐춘이 웃으면서 빈정댄다.
“아마도 또 오빠가 제멋대로 지어낸 책일 거야.”
“세상에 <사서> 말고는 대부분 멋대로 만들어낸 글들뿐이야. 나라고 멋대로 만들지 말라는 법이 어딨어?”

 

─조설근, 『홍루몽』 1권, 나남, 2014, p.91

 연약한 체력 탓에 약간 찌푸린 듯한 대옥의 표정을 보고 보옥이가 붙여준 별명은 ‘빈빈’. <고금인물통고>라는 책에 나온 글자라고 한다. 그런데 옆에서 그 얘기를 듣던 탐춘이 보옥에게 빈정댄다. 지금 그 책 얘기, ‘뻥’ 아니냐고.
 보옥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는 말. ‘세상에 사서 말고는 멋대로 만들어낸 글들뿐인데, 나라고 그러면 안 되냐’ 한다. 참 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없는 책 이야기를 만들어 내다니. 하지만 두 번 생각해보면, 그럴 듯도 하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글들은 누군가가 제멋대로 만들어낸 것 아닌가? 아니,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말과 글들은 원래 있던 것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오히려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위대하다. 그것은 세상의 흐름이 밀어내는 대로 표류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길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얼마나 강한 힘이 필요한 일인가!  우리는 항상 근거를 댈 수 있는 말, ‘옳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했던 말만 조심스럽게 해낼 뿐이지만 말이다.

 

 

 

 

말, 삶을 창조하는 힘

 어린 나이에 ‘모든 글은 누군가가 제멋대로 만들어 낸 것임’ 간파한 보옥은 스스로도 ‘제멋대로’ 말하기를 곧잘 시전 한다. 보옥이에겐 그게 남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러니 보옥이는 영국부라는 거대한 가문에, 엄한 아버지 밑에 태어나 자라면서도 자신의 독특한 성정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보옥이는 소위 주류적 가치라고 일컬어지는 아버지-남성-국가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에 포획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떠받들지 못해 안달인 남자들의 삶은, 보옥이가 보기엔 부와 권력을 쫓느라고 삶의 진정한 즐거움과 그윽한 정을 알지 못하는 바보들의 삶이었다. 그들은 성욕과 돈, 권력에 눈이 멀어 남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고만 할 뿐이었다. 보옥이가 누이들, 누나들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그러한 남자들의 삶에 물들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우정이 가능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말들을 실제로 입에 담는다. ‘남자는 냄새가 난다’거나, 입신양명을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방이 더러워지겠다’며 나가라고 하거나. 이런 어메이징한 꼬마를 봤나!
 그런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보옥이기에, 그렇게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아버지가 타이르며 어떤 권위 있는 이야기를 들이밀어도, 주위 사람들이 호색한이라며 손가락질해도, 보옥은 거기에 굴복하지 않는다. 누이들, 누나들과 지극한 우정을 나누며 ‘제멋대로’ 산다. 보옥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은 곧 삶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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