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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와 석영이 | 각자의 사랑, 각자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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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영 작성일18-11-10 10:17 조회1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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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사랑, 각자의 인연

 

​김석영

보옥, 거절당하다!

 보옥이의 별명은 ‘무사망(無事忙)’.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뜻이다. 하는 일도 없이 왜 바쁘냐~ 하면, 물론 노느라! 누이들과 누나들과, 시 지어야지 낚시 해야지 꽃구경 해야지 술도 마셔야지, 보옥은 언제나 하루가 멀다 재밌게 논다. 그러던 보옥, 하루는 문득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영국부 소속 창극단의 메인보컬(?) 영관을 찾아간다. 보옥과 영관은 친한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보옥은 도련님이겠다, 또 평소에 모든 여자 아이들과 늘 장난치며 어울리는지라 망설임 없이 영관을 찾아가 노래를 한 대목을 불러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웬걸, 보옥이 이제껏 만났던 다른 누이들과는 달리, 영관은 보옥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자리를 피하며, 정색을 하고 보옥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한 번도 남에게서 싫어하는 기색을 받아본 적이 없는 보옥, 거절을 당하니 보통 민망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벌게진 채 밖으로 나온다.

보옥, ‘사랑’을 보다.

 그리고 잠시 후, 보옥은 자신에게 그렇게 퉁명스러운 영관의 관심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가장이라는 한 소년. 옆에 있던 시동이 하는 말이, ‘영관은 아마 가장 도련님이 오셔서 노래를 불러보라 하면 부를 것’이라는 것이다. 조금 후, 영관에게 줄 선물을 사러 나갔던 가장이 돌아온다. 그가 오자마자, 영관과 가장은 애정이 철철 넘치는 사랑싸움(?)을 한다. 그러는 통에 우리의 주인공 보옥은, 한 순간에 사이드로 스윽- 밀려났다. 이제껏 어디서든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나눠온 보옥이,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을 터. 이런 소외감(?)은 익숙치 않을 터인데, 자신은 쏙- 빠지고, 영관과 가장을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놀란 건지 화가 난 건지, 보옥은 한동안 넋이 나가 영관과 가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이홍원(보옥의 거처)으로 돌아간다. 방금 전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되새겨보며. 그리고 보옥이 방의 시녀이자 절친한 누나인 습인에게 탄식을 늘어놓는다.

 어젯밤에는 분명히 내가 말을 잘못하였어. 아버님이 늘 나를 보고 ‘대롱으로 하늘을 보고 바가지로 바닷물을 헤아리는 격’이라고 야단치시더니 그게 바로 맞는 말이야. 어젯밤에 내 죽으면 너희 눈물로 장사지내 달라고 한 말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구. 나 같은 놈이 모든 사람의 눈물을 독차지할 수는 없어. 앞으로 각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로 장사지낼 수밖에는 없을 거야.
(...) 그로부터 그는 다만 속으로 사람에게는 사랑과 인연이 각각 정해진 바가 있다고 깊이 깨달으면서 매번 슬픈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언젠가 내가 죽고 나면 눈물을 흩뿌리며 장사지내 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조설근, 『홍루몽』 2권, 나남, 2014, p.376

 보옥은 가장과 영관의 모습을 보고 ‘각자에겐 각자의 사랑과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거기에서 보옥이가 발견한 것은 아마, 사랑의 배타성이었을 것이다. 이제까지 보옥은 모든 누나들 누이들과 늘 화목하게 지냈다. 그러니 보옥은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가 보옥을 사랑하는, 세상은 그런 건줄 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애정 중에는 주변의 다른 것들을 배제시키고자 하는 성질을 가진 애정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강할 때, 우리는 흔히 그것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니 사랑이 ‘둘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영관과 가장처럼. 어쩌면 보옥은 영관과 가장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이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또 하나의 애정의 형태, 사랑에 대해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죽으면 눈물로 장사지내줄 이는, 바로 그 사랑하는 사람일 거라는 것도.

 

내 몫의 인연

 보옥의 깨달음도 깨달음이지만, 나에게 정말 낯설었던 건 자신을 거절한 사람과, 다른 이들의 사랑 앞에서 보옥이가 보인 반응과 태도다. 자신을 거절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거기에 서운해 하거나 화를 낼 법도 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사랑싸움을 하면, 꼴 보기 싫지 않을까? 우리는 자주, 스스로가 거절당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옆으로 빠져도, 나는 언제나 주인공이어야 하고,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야 한다. 아마 ‘모두에게 각자의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애정을 양으로 치환하여 그저 ‘많이 가지면 좋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데에서 애정을 두고 시기와 탐심도 생겨난다.
 그러나 보옥은 영관과 가장으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았다. 보옥이 말대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인연, 각자의 사랑이 있다. 그러니 뭘 더 가지거나, 덜 가지는 게, 큰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에게 상처가 되거나, 화가 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몫의 인연을, 나는 그저 나의 몫의 인연을, 만들어나가고, 겪어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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