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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벼리 작성일15-09-17 00:01 조회2,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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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출연기

 

 

김지현

 

 

2011년 한 해 동안 나는 배우로 살았다. <요세미티와 나>의 ‘나’역이다. 이 영화는 실제로 나와 내 컴퓨터 ‘요세미티’의 이야기로, 구상할 때부터 요세미티역에는 요세미티를 염두에 뒀다. 그러나 나까지 동반 출연할 계획은 아니었다. 나는 연기는 고사하고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긴장해 표정이 어색하게 굳는 형편이니 말이다. 그런데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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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와 '나'


   우리나라는 여배우풀이 어이없는 지경으로 좁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배우에게 주어지는 배역이 딱 네 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20대까지는 연애하는 女거나 그녀의 성격 좋은 친구, 30대 이후에는 어머니 아니면 시어머니. 그러니 무려 사십대에 어머니/시어머니가 아니고, 결혼 안 한 반백수 역을 할 여배우를 찾기란 힘들밖에.
   어차피 연기 가능자가 아니라면 이미지라도 일치하는 나 자신이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감독 겸 배우가 되어 첫 촬영을 했다. 한 장면 당 수십 번씩 NG를 냈고 그러고도 OK가 나오지 않았다. 촬영을 중단하고 연기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연기하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니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카메라 앞에서 긴장을 하는 것이므로 자꾸 카메라 앞에 설 기회를 만들어 익숙해져야지, 혼자 연습하는 건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했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연기에 아무 진전이 없는 채로 촬영이 재개됐다. 나와 연기톤을 맞추기 위해서 다른 출연자도 모두 일반인을 캐스팅했는데, 다들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 하는지 몰랐다. 95년 내가 첫 영화를 촬영할 때만 해도 다들 국어책을 읽던 기억이 나는데, 20년 만에 전 국민이 배우가 다 된 것이다. 나만 빼놓고 말이다. 평소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라니, 평소가 아닌데 어떻게 평소처럼 한단 말인가. 나는 평소와 다르게 긴장했고, 긴장을 풀어보려고 ‘긴장하지 말자’고 되뇌었으며, 그럴수록 긴장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게 됐고, 거기에 긴장하는 걸 들키지 않으려는 긴장까지 더해져 몸과 마음이 시멘트처럼 딱딱해졌다.
   긴장을 견디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있을까. 나는 긴장을 피하기 위해 감독의 권한을 사용했다. 콘티를 짤 때 고려 1순위가 ‘배우인 나’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되었다. 등을 돌리고 숨을 수 있는 자리에 주인공을 놓고 조연을 앞으로 내세웠으며, 카메라를 최대한 멀찌감치 세웠다. 감독으로서 카메라가 주인공에게 좀 더 다가가야 한다는 상식적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럴 때면 ‘배우인 나’ 쪽에서 “그런 앵글을 쓰려면 의미 있는 표정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했어야지.”라고 쏘아붙였고, 그러면 ‘감독인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원래 나는 배우의 사정 따위를 봐주는 감독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꼼짝을 못했다. 
   촬영현장에서 나는 감독이길 포기하고 오직 연기만 했다. 연기를 열심히 했다는 뜻은 아니다. 연기하는 서영화가 연기지도를 했는데, 나는 시키는 대로 하는 법이라곤 없이, 내가 왜 연기를 잘 할 수 없는지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데만 열을 냈다. 가만 놔두면 하소연이 끝이 없었다. 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설 엄두를 못 낸 채 엄마를 쳐다보며 징징대는 아이처럼 징징거리면서 누가 나를 안아 올려주기만을 바랬다.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는 믿음조차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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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만 서면 엄청나게 긴장하였다!


   촬영이 끝나고 모니터를 하다보면 제정신이 돌아왔고, 현장에서 내가 한 짓들에 대한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만 서면 여지없이 방어모드로 되돌아갔다. 그때는 그런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게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로선 그게 최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한다는 게 가능하지가 않다(라고 말하기엔 연출을 하면서 촬영과 연기 모두를 잘 해내는 감독이 너무 많으니, 내 경우에만 그런 것으로 하자). 나는 연출 겸 촬영을 동시에 한 적도 있는데, 사실 연기는 배우들이 알아서 하게 놔두고, 촬영만 했다. 촬영만으로도 신경 쓸 게 많아 배우 연기하는 것까지 볼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촬영자가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서 배우의 연기를 볼 것 같지만, 앵글이며 노출에 신경쓰다보면 배우의 연기는 다 놓쳐 버리게 된다. 연출 겸 연기는 더 어렵다. 연출은 배우가 연기를 잘 하는지 봐주는 역할이다. 그런데 자신을 볼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있으니, 그게 바로 자기 자신 아닌가. 게다가 나는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하는 것 보다 안 하려고 버티는 게 더 기운소모가 큰 법, 겁을 집어먹고 카메라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가진 에너지 전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어쩐지 이 얘기들, 기시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현장에서 늘어놓던 바로 그 하소연 레퍼토리!
   감독으로서 이번 기회에 연기의 비밀을 엿보고자 하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비밀의 베일을 살짝 건드려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수확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 그간 배우들과의 관계를 역지사지해보게 됐다. 배우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서니 다른 사람들은 다 옷을 입고 있는데 나만 옷을 벗고 있는 것처럼 부끄럽고 위축됐다. 짐작보다 훨씬 더 그랬다. 연기는 감정적으로 매우 취약해진 상태에서 감정을 사용하는 일이다. 그럴 때 배우가 의지할 사람이 감독 말고 누구겠는가. 우리 현장에서는 연기지도를 하는 서영화가 실질적으로 감독의 역할을 도맡았는데, 그 자신 연기자인 서영화는 내 상태를 나보다도 더 잘 이해했다. 그의 이해와 배려를 받으면서 그동안 나의 배우들은 의지가지없이 내던져진 기분이었겠구나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감독의 성격이라고 치자.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배우들이 연기할 때 도무지 신뢰할만한 거울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OK인지 NG인지도 확실하게 말을 안 해 주었으니 도대체 배우더러 어떻게 하란 것이었을까?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이 뭐든 적응하게 돼있고 나는 점점 카메라 앞에서 편안해졌다. 조연출 원진은 촬영기간이 길어지면서 중간에 다른 볼 일을 보다가 한참 만에 합류했는데, 내가 연기하는 걸 보고는 연기가 늘었다고 감탄했다. 원진은 첫 번째 촬영에서 배역을 맡았다가 잘린 바 있는데, 자기도 계속했으면 늘었을 거라며 부러워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내 가슴이 보람과 자부심으로 벅차오른 걸 그는 몰랐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좀 할만 해지니 촬영이 끝났다.
   첫 시사가 끝나고 관객들이 주인공 연기가 자연스러워 다큐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스탭들은 복잡한 눈웃음을 교환했다. 지난했던 촬영과정을 떠올렸던 것이리라. 나는 관객이 촬영현장의 불안과 긴장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에 감독으로서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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